소설리스트

〈 8화 〉탐식마(貪食魔) (8/429)



〈 8화 〉탐식마(貪食魔)

“22번 김우씨, 들어오세요.”
“네.”


 현은 문 너머로 들어가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걸로 다음은 자신의 차례다.

지난 일주일은  정신없었다. 이렇다 할 사건은 없었지만 해은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으로 찾아와서 옆에서 재잘거렸다. 해은 이외의 방문자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마 딱 잘라 말해놓지 않았다면 거기에 오희란까지 보탰을 테지.


해은이 찾아와서 정신없이 재잘거리고, 세아가 호시탐탐 그를 다그칠 기회만 노리는 와중에 류 현은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하루를 넘겼다. 어물쩍 하루를 넘기고 이틀을 넘기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가슴 졸이다 보니 순식간에 6일이라는 시간이 지나  현의 퇴원 일자가 되었다.

병원비를 마천루에서 대주기로 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퇴원할  있었다. 집에 온 당일에 걸려온 전화는  남매의 가벼운 마음을 바닥으로 쳐 박아 놓았지만.


플레이어 협회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현이 잠깐 속했던 원정대에서 신고가 들어왔으니 각성 확인 절차를 밟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동생이 플레이어가 된 게 마냥 기쁘지 않은 세아는 당연히 미묘한 표정이 되었고, 며칠 동안 누나의 눈치만 살폈던  현도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협회의 통지를 무시할 경우 국가에서 나서서 경고를 해 올 테니 검사를 받기는 해야 했다. 세아도 반대하지 못했다.

그리고 류 현은 사람들이 가득한 복도를 돌아보며 후회 하는 중이었다.


사람이 몰릴까 싶어 일찍 길을 나선 게 패착이었다. 사짜 돌림 직업보다 귀한 플레이어 후보는 왜 이렇게 많은지.

시험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무슨 면접 보러 온 것처럼 차림새를 가다듬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헛웃음 지었다.

‘보아 하니 내 뒤로 많아 봐야 한 명 밖에  나오겠네.’


초보 플레이어와 일반인을 구분할 정도로 감각이 돌아온 건 아니지만 대충 보면 감이라는 게 있다.


‘시간이 그렇게 남아도나. 아니라는  뻔히 알면서  오는 거야?’


과거에도 본 적이 있는 광경이지만 봐도봐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플레이어가 돼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각성 기미도 없이 대체 왜 시험장까지 온단 말인가? 지연 각성이라고 해도 본인이 모를 리가 없는데.


‘괜한 사람 피해보게 스리.’
“23번  현씨. 들어오세요.”
“아, 예.”


방안으로 들어가자 직선형 책상 너머에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온통 회색과 은색 빛의 방안에 시커먼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죽 늘어앉아 있으니 위압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서류철을 이리저리 뜯어보던 이 중에서 안경을 쓴 여자가 입을 열었다

“류 현씨? 각성 당시 짐꾼으로 원정대에 참여한 걸로 되어 있는데 맞나요?”
“예.”
“그 당시 미성년자였다는 것도 사실인가요?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서 신분을 속인 것도 사실입니까?”
“..예.”

 현이 조심스럽게 질문자의 눈치를 살폈지만 안경의 반사광에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질문한 여자 면접관이 종이에 뭔가를 끼적거리고 있자 건성으로 앉아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일반인 미성년자가 신분을 속이고 던전에 출입하는 건 범법행위입니다. 범법 행위가 두 가지나 되죠. 아시죠?”
“예에, 알고 있습니다.”
“아니 뭐, 협회가 무슨 법원도 아니고. 그렇게 주눅 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부터 짐꾼 끌고 다니실 텐데 주의하시라는 의미였습니다. 나이 어린 친구들이 던전 안에서 다치거나 하면  골치 아프거든요. 부모들 항의가 어우.”
“팀장님.”
“아, 알았어. 알았어. 어차피 이 친구는 측정만 하면 되잖아. 설마 ‘산군’ 소속이 뻥을 쳤겠어?”
“어휴.”
“류 현씨 경우에는 증언한 플레이어가 많아서 사정청취는 더 필요 없으니, 바로 측정하도록 합시다.”

남자는 자신의 정장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매끈한 수정구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휙 하고 위로 던졌다. 위로 던져진 수정구는 빠르게 추락하는 듯 하다가 두둥실 떠오르더니 류 현의 손 아귀에 안착했다.


‘염동능력자군.’

그것도 꽤 실력 있는 편이다. 염동력의 경우에는 괴수 상대하느라 무조건 출력을 세게 내고 보니까. 섬세한 컨트롤을 할 줄 아는 이가 드물다. 그 정도는 되니까 협회에서 한자리 꿰차고 있는 것 일 테지.


“측정방법은 간단합니다. 그냥 쥐고 있으시면 됩니다. 뭔가 간질간질하다든지 찌릿해도 문제 있는  아니니까 놓지 마시고요. 그거 꽤 비싼 물건이라서 깨먹으면 오늘은 측정  해드리니까. 마력량을 잰다고는 해도 그냥 유무판단 정도니까 너무 힘주시진 마시고.”
“예.”


면접관의 말을 한귀로 흘려들으며  현은 집중했다. 면접관의 말과는 반대로 오히려 힘을 빼야할 판국이다.


이전처럼 멍하니 측정 받으면 분명히 깨먹는다. 마력량이 그 때의 곱절이 넘으니까.


수정구를 깨먹기라도 하면 중견급 이상 길드에서 관심을 보일 테고, 그렇게 되면 서해란 처럼 달갑지 않은 얼굴을 다시 봐야 할지도 모른다.


회귀 전, 류 현과 어깨를 부딪치고 다닌 이들은 아직 많았으니까. 그건 정말 사양하고 싶었다.


손아귀에서부터 뻗어 들어오는 마력의 실에 그는 천천히  호흡을 했다.


‘살살, 부드럽게 쓰다듬듯...어?’

 현이 뭔가 해보기도 전에 손아귀에서 빠직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씨발.”


***

“미안해 해은아. 내가 어떻게든 꼭 보답 할 테니까.”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먼저  꺼내기도 했고, 같이 던전 도는 거 꽤 재미있거든요.”
“현이 쟤가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재미있을 거 같진...”

열심히 재잘거리고 있는 두 여자를 바라보며 류 현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번 째 보는 광경이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꼬인 건지 과거의 자신에게 묻고 싶은 지경이었다.


협회에서 받은 테스트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축하합니다, 귀하는 플레이어로 각성한 걸로 확인 되었습니다.


문제의 수정구 파괴 사건도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었다. 면접관들은 황당해 했지만 그렇다고 뭔가 캐묻지도 않았다.


협회의 특성상 당연한 행동이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협회가 하는 일은 플레이어의 소재파악과 교육이 전부다.

의외인 것은 중소길드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 달간의 교육기간 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은 교육기간이 끝난 다음날에 해결되었다. 퇴원 후 뜸하던 해은이 그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 때 류 현과 류세아는 냉전 상태였다. 발단은 말싸움이었다. 교육기간 동안 암묵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던 문제가 거론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플레이어 활동을 해야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세아는 아무리 플레이어 벌이가 좋아도 그런 위험한 일은 허락 못하겠다고 반대했고, 류 현은 요새 던전에 대한 정보가 많아서 생각하는 것보다 위험하지 않다는 식으로 설득했다.


감정에 기반 해서 반대하던 세아는 금방  말이 떨어졌고, 입을 다무는 것으로  현의 설득에 대응했다. 주도권이 세아에게 있었기에 류 현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아직 세아에게 해명해야  일이 몇 가지 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방문한 해은이 세아의 말을 듣고는 타결안을 내놓았다. 타결안이라기보다도 세아만 만족하는 대안이었지만.


 현이 괴수와의 싸움에 익숙해질 때까지 해은이 붙어 다니면서 돌봐준 다는 것이었다.


 현의 입장에서는 해은이 한창 배워야하는 애송이었지만 세아의 눈에는 엄연히 플레이어 선배였다. 세아는 마지못해서 해준 다는 듯이 허락했고, 거기에 조건을  가지  붙였다. 던전에 들어가지 말고 토벌전에 참가할 것.

하급 던전에 결정체를 투입하거나 플레이어를 투입할 수 없어서 일부러 포화상태까지 방치했다가 튀어나온 괴수들을 쓸어버리는  토벌전이라고 한다.

토벌전은 군대가 주도하며 플레이어는 거의 안전장치 정도로 끼기 때문에 던전 사냥보다는 위험성이 적다. 안전장치라기보다도 던전에 자리가 없는 플레이어들이나 가는 곳이지만.


문제는 토벌전은  현에게 아무런 메리트가 없다는 점이다. 토벌전에서는 마력을  늘리니까. 정말로 시간 버리기 밖에 안 된다. 하지만 류 현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장 켕기는 것은 해은의 이상한 친절이었지만. 그녀가 친절을 베풀고 싶어도 이런 식의 친절은 길드에서 반대할 것이다.

그녀는 길드에서 키워주기를 할 정도로 장래가 유망한 플레이어니까. 던전 사냥이나 토벌전이나 피로도가 쌓이는  매한가지다. 던전 사냥 돌리기도 바쁜 인재가 저렇게 나도는  내버려 둘 정도로 ‘산군’은 녹록하진 않다.
‘다른 속셈이 있나?’
그 의문은 첫 토벌전 이후 바로 풀렸다.


해은이 먼저 류 현이 협회에서 마력 측정용 수정구를 깨뜨린 얘기를 꺼냈다. 자기 언니로부터  얘기를 들었다고 했고, 언니가 그를 영입하려고 그녀의 팀 소속인 자신을 놀게 내버려 두고 있다고도 했다. 그럼 자신을 영입하려고 이러냐는 그의 질문에 픽 웃는 것으로 답했지만.

말은 안했지만 아마 수정구를 깨먹은 것도 서해란이 소문을 제어했을 것이다. 날파리가 꼬이는 건 원하지 않을 테니까.

‘자매가 쌍으로 정상이 아니군.’

자신 같은 말종에게 덮어놓고 친절은 베푸는 동생이나 싫다는 사람 기를 쓰고 영입하려고 팀원을 밖으로 나돌게 하는 언니나 정상인거 같진 않았다.

‘그럼, 서해란의 능력은 대충  개방된 상태라고 봐야하나.’


그녀의 능력중 하나는 ‘링커’와 매우 흡사하다. ‘링커’가 쌍방통행인 반면 그녀의 능력은 일방통행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능력이 다 개방되었다면 자신의 마력량을 대충이나마 봤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귀찮게 구는 것일 테고.

‘뭘 해보기도 전에 들러붙기는 더럽게 많이 들러붙는군.’

다시금 계획을 검토해보려던 순간이었다. 어느새 얘기를  끝냈는지 해은이 폴짝폴짝 뛰어오더니 말을 붙여왔다.

“현아,  가?”
“어? 어어. 가야지. 가.”


말처럼 바로 출발하고 싶었지만 류 현은 이 후에 10분 동안 세아의 당부를 경청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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