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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탐식마(貪食魔) (7/429)



〈 7화 〉탐식마(貪食魔)

회귀 전, 용잡이 팀을 제외하고 류 현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그의 최대강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입을 모아 답했을 것이다. 끝을  수 없는 마력량이 그의 최대강점이자 전부라고. 류 현에게는 섭섭한 대답이겠지만 그의 능력을 몰랐던 그들로서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런  현이 마력량으로 압도하는 데 실패한 플레이어가  한 명 있었다. 애기살 길드의 길드 마스터, 파도 잡이 서해란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녀의 능력 특성과 그 당시 류 현이 능력 2단계를 막 개방했다는 점이 꽤 컸지만 그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는 충분했다. 그녀 이후에 누구도 마력량으로 그와 대적하기는커녕 비교 대상조차 되질 못했으니까.


사후 그에게 후회를 남긴   되는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대립하지 말고 한 발 양보 했으면  괜찮은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직접 죽이진 않았지만 그가 남긴 상처가 그녀의 죽음을 앞당긴 것과 다름없었다. 그녀의 능력 때문에 아쉬움은  했다.


‘미친, 지금 저 인간이 왜 나타나?’

아쉬움은 있었지만 당장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적인 그녀의 능력을 어느정도 알아낼 정도로 오랜 시간 치고 받았었다. 지금은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류 현의 안에서는 아니었다. 지금도 몸서리 칠 정도로 지독하게 서로 물고 늘어졌으니까.

그러니 서해란을 향한 눈초리가 고울 수가 없었다. 노골적인 적의에 두 여자는 입을 다물  밖에 없었다. 세아는 세아대로, 해란은 해란대로 류 현의 눈치만 살폈다.


“저어, 현아?”

어색한 침묵을 못 견디겠는지 세아가 나섰다. 또 다시 시작된 동생의 이상 행동을 따지고 들고 싶었지만 손님을 세워두고 그럴 수야 없다.

“‘산군’에서 오신 분이 저한테 무슨 볼  이신지?”

조금도 적의를 풀지 않고 류 현이 내뱉자 세아는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옆의 손님의 눈치만 살폈다. 서해란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매끄럽게 대꾸했다.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요. 해은이한테 이야기 듣고 나니까 그냥 앉아서 기다리기가 힘들더라고요. 오늘은 연락처만 남기고 가려고 했는데 마침 깨어 있다 길래. 불쾌했다면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볼게요.”
“아닙니다.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조금 어지러워서 신경이 좀 날카로워 진거 같네요. 얘기 정도는 들을 만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라고 하고 내보내고 싶었다. 대놓고 적의를 뿜어낼 정도가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한건 불편했기 때문이다. 회귀에 대한 생각도 미처 다 정리 못한 판국에 과거에 적으로 만났던 이와의 재회가 달가울 리 없지 않은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뱉은  순전히 서해란 옆에서 눈을 흘기고 있는 세아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책잡힐 일이 많은데 대놓고 이랬다가는 뒷감당이 두려울 테니까.


“그래요? 그럼 사양 않고.”
“잠깐만요. 의자가 여기 어디..아, 여기 있다. 여기요.”

세아가 살갑게 자리까지 봐주는걸 보고 있자니 괜히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제 소개부터 다시 하죠. ‘산군’의 애기살 팀 팀장 서해란 이라고 해요.”
“아까 해은이 얘기를 하시던데......”
“제가 그 애 언니거든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아, 그런가요.”


누가 봐도 건성인 대꾸였지만 서해란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플레이어로 각성 직후에 성격이 지랄 맞게 바뀌는 경우도 숱하게 봤다.

도저히 제어가 안 되는 미친놈만 아니면 별 상관없다. 나머지는  내에서 알아서 길들이면 되니까. 눈앞의 남자는  정도의 미친놈 같지는 않았다.

“제가 알기로는 마천루 쪽에서 이미  번 다녀간 걸로 아는데 맞나요?”
“네, 뭐. 왔다 갔었다고 들었습니다. 전 못 봤지만.”


마천루. 저번 원정을 주도한 베테랑 두 명의 소속 길드였다. 류 현이 잠들어 있는 사이 와서 ‘산군’ 하부길드니 어쩌니 했다고 한다. 세아를 통해서 듣고 대충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 괴상한 이름이 아니었으면 완전히 잊어버렸을 테지.


각성 직후에 괴수를 증발 시켜버린 루키를 스카웃하고 싶어서 찾아왔다는데 마음속으로 이미 대형 길드도 거른 그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메리트도 없이 자기 목에 목줄 채우는 짓을 뭐 하러하겠는가.

“저도 같은 제안을 하러 왔답니다. 이왕이면 하부 길드보다는 ‘산군’내부 팀에 소속되는 게 류 현씨에게도 좋지 않겠어요?”

서해란의 날카로운 눈매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거절할 가능성은 생각해 두지 않았다. 막 각성한 애송이다. ‘산군’의 이름이면 설득이고 뭐고 할 필요도 없다.


예정대로 라면 오늘은 살짝 간만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감 좋은 해은이 난리를 치긴 했지만 그녀가 속한 곳은 ‘산군’이다.  각성한 애송이를 쫓아가서 데려올 만한 곳이 아니다.


플레이어가 아무리 귀하다고는 하나 ‘산군’의 이름이면 그런 걸 무시하고도 남는다. 그 말고도 유망주는 넘쳐났으니까.  유망주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 골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다. 자신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중에 들린 것뿐이다. 동생의 감을 잘 아니까 잠깐 시간 버리는 셈치고.

하지만 본인과 마주한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더 크지 않아도 상관없다. 아니, 여기서 더 크면 자신이 제어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계집애,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돌아가는 길에 해은이 좋아하는 치킨이라도 사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랗고 시커먼 공. 서해란이 자신의 능력으로 보고 있는 류 현은 그런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살아있는 마력탱크라고 해도  것이다.

‘지금 가득 차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상관없지.’

최대 용량이 저 정도만 되어도 더 바랄 것이 없다. 비어있다면 채우면 되니까. 시간이 해결 해줄 일이다. 저 정도면 2인 파티로 아직 연구 중인 ‘파도’를 연발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더 커질까?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가 기대 될 정도였다.


해은이 말한 땅돼지를 증발 시킨 능력? 아무래도 상관없다. 능력마저 대단한 수준이라면 좀 부담스러울 정도다. 오히려...

‘능력은 별 거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체내 마력량이 크다고  능력까지 대단 하라는 법은 없지만 만약 마력량을 따라가는 능력이라면 숨겨야 할지도 모른다. 일개 팀장이 데리고 있을 수 없을 테니까.

아무도 이 애송이의 가치를 모르고 있을 때 잡아야 한다. 아직 아무런 실적도 없을  바로 지금.

눈에 보이는 실적이 없으니 좀 켕기긴 했지만 길드 내에서도 그녀에게 팀 내의 인사권 행사 정도는 인정해 주고 있다. 영입하고 나서 지지부진 하다면 문책이 돌아올 테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하늘이 찍어준 단짝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둘은 상성이  맞으니까.

오히려 영입 이후 기존 팀원들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생각해야 할 판국이다. 왜 영입했는지 이유를 말했다가는 위에서 바로 채가려고  테니 다른 방면으로 달래야만 한다.

‘그 둘은 블루 던전에 꽂아준다고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벌써부터 사냥 일정이 그려졌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아직 길드에 들 생각은 없습니다.”
“...네?”
“아직 이른 것 같아서 어느 길드든 간에 들어갈 생각 없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죄송하지만 무슨 제안을 하셔도 제 생각은 안 바뀔 거 같습니다.”

‘아니 대체 왜?’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표정이 무너졌다.


‘산군’이다. 대한민국 최고는 아니어도 막 각성한 루키가 들어갈 수 있는  중에서는 최고라고   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루키가 일단 빼고 보는 것일까? 몸값을 높일 속셈으로?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류 현의 얼굴을 뜯어봐도 바뀌는 건 없었다.

‘그게 아니야.’

기대감이나 우월감에 젖은 그런 눈빛이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더 읽어 낼 수도 없었다. 괜히 더 찔러봐야 인상만 더 나빠질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고딩 이라고? 말도  되는 소리.’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다가 겨우겨우 대답을 내놓을  있었다. 물론 그녀가 바라던 대답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죠. 마음이 바뀌시면 언제든 연락 주시길.”


 현의 뇌리에 남은 인상에 비해서 싱거운 퇴장이었다.


***

“아니, 안 그러셔도 된다니까요. 병원비는 전부 해결 됐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하, 하지만 그럼 제가 너무 죄송해서......”
“괜찮습니다.”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허둥거리는 눈앞의 여자, 오희란을 바라보며 류 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꾸 휘말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알맹이도 없이 괜찮다, 아니다 그럼 내가 죄송하다 식의 대화가 벌써 10분 째였다. 문제는 딱 잘라서 대화를 끝낼 수가 없다는 거였다.


오희란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분명 초면인데 익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평소라면 벌써 짜증을 내고 축객령을 내렸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도 그 분위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낯설고도 괴상한 기분이었다.


 현은 농담으로라도 친절한 인간이 못되었다. 그의 친절은 모두 세아에게 할당 되어 있고 그 이상 늘릴 예정도 없었다.


굳이 후보정도를 꼽으라면 이제는 없었던 일이 된 용잡이 팀의 팀원들 정도일 것이다. 이상한  눈앞의 답답한 여자에게서 그 느낌이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영입 0순위로 생각 중인 ‘링커’를 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링커’는 훨씬 말이 없고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비상한 재주가 있었지만. 여러모로 능력과 거리가 먼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럴 리가 없지.’

류 현은 곧바로 자신의 감을 부정했다. ‘링커’에 대해서 아는  능력과 플레이어로서 활동한 시기 정도였지만 그것만 해도 충분했다.


가면 너머의 얼굴을 봤더라도 악룡의 독 때문에 심하게 망가졌다고 했으니 망가지기 전인 지금 봐야 별 소용도 없다. 성대도 같이 망가졌다고 했으니 목소리로 구분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만 지금은 굳이 얼굴까지 알 필요도 없다.

‘지연 각성상태라고 했었지.’


‘링커’가 플레이어로 각성하는 건 이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그녀가 각성을 한 건 몇년간의 의식 불명 상태를 벗어난 이후라고 했다.


오희란은 지금 지연각성 상태를 겪고 있으니 둘의 연관성은 없다고 해도 좋을 테지. 지연각성이 주 단위 이상 지속되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더욱 이해가 안 갔다.

‘지연각성 상태인걸 알았으면 협회에서 지연각성이 뭔지 알려줬을 텐데. 대체 왜 여기까지 온거야?’

보통의 각성은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 바로 이루어진다. 며칠씩 정신을 잃거나 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건 각성의 과정이 아니라 각성으로 인한 반동일 뿐이다.

플레이어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지지부진한 상태가 지속되는 걸 지연각성 상태라고 한다. 겉으로 티는 안 나도 꽤 불안정한 상태다.


지연각성에 대한 조치는 매우 간단하다. 큰 자극 받지 않을만한 조용한 곳에서 안정을 취하면 된다.

지연각성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희귀해서 연구가 진행된 적도 없고, 지연각성 상태에서 짐꾼 일을 하다가 폭주해서 원정대를 통째로 말아먹은 선례가 있으니 당연한 조치였다.

오희란은 그런 지연 각성 상태였고, 지금 누가 보기에도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어 보였다.

폭주가 두려운  아니었지만 류 현은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서해란을 만나고 감정 정리를  하기도 전에 예전 동료의 느낌이 나는 여자가 이러고 앉아있으니 뭐라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단호하게 쫓아내기도 뭣하고 이러고 있기는 싫고.


‘운도 없지.’


오희란이 자신이 지연각성 상태인 걸 깨달은 건 오늘 오후라고 했다. 당연히 협회로부터 안정을 취하라는 권고를 받았고, 그 권고를 따르기 위해서 오희란은 세아에게 연락을 취했다. 몸에 좀 문제가 생겨서 당분간은 병문안을 가기가 힘들  같다고 말해두기 위해서.


문제는 류 현이 지금 깨어있다는  알게 된 그녀가 부리나케 다시 병원으로 뛰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정말 괜찮습니다. 병원비는 마천루 길드에서 대납해주기로 했고, 몸에  이상도 없으니  신경  쓰셔도 됩니다. 제가 그날 그런 건 의도적으로 도우려고  게 아니니 이만 잊으셔도 됩니다.”

류 현이 나름 마음의 빚을 덜어주려고 한 말에 오희란이 노골적으로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괴상한 반응까지 똑같네.’

그리울 거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 ‘링커’의 침묵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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