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탐식마(貪食魔)
“미안해서 어쩌지. 정말 얼굴 안보고 가도 되겠니?”
“네, 괜찮아요. 괜히 깨우면 미안하니까. 무사히 눈뜬 거 확인한 걸로 됐어요. 언니도 힘드셨을 텐데 안 잊고 연락 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헛걸음 하게 만들어서 내 마음이 좀...”
“어차피 오늘 다른 일정도 없었는걸요. 나중에 현이 일어나면 연락해 달라고 전해주세요.”
“알았어. 꼭 전할게.”
세아의 거듭된 권유에도 해은은 결국 병원 로비로 발길을 돌렸다. 해은이 출입문을 나설 때까지 배웅한 후 세아는 류 현이 누워있는 병실 문 옆에 기댄 채로 오늘 하루를 곱씹어 보았다.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정신없었던 하루였다. 하루 종일 잠든 동생의 얼굴이나 보고 있을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었다. 류 현을 목적으로 한 방문이 벌써 네 번째였고 세아가 배웅까지 나간 건 두 번째였다. 모든 방문자가 귀신같이 류 현이 잠든 때만 골라서 찾아왔기에 류 현을 얼굴을 보고 간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거의 다 여자였지.’
기묘한 우연의 일치였다. 방문자는 한명을 빼고 모두 여자였고, 그마저도 남자가 포함된 두 명이 함께 방문했을 따름이었다. 그 이인조와 플레이어 관리 어쩌고에서 나온 여자 공무원은 알바 아니었지만.
다른 두 명의 방문자는 달랐다. 류 현의 상태에 대한 순수한 걱정 때문에 방문한 것이니까. 류 현이 혼수상태로 실려 온 날에 찾아와서 연락처를 남긴 걸로는 모자라는지 매일같이 병문안을 왔었으니까. 그 둘 중에서도..
‘해은이는 그렇다고 쳐도..희란씨 라고 했었나? 반응이 좀 과했지.’
오희란 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의 반응이 과했다. 류 현이 실려 온 첫 날에 다 죽어가는 몰골로 울먹거리면서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더니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갔다. 그 뒤로 매일 같이 찾아왔기에 어렵지 않게 앞뒤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오희란은 땅돼지의 표적이 되었던 그 여자 짐꾼이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말하자면 류 현은 그녀에게 은인이니까 은인 병문안 정도야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오희란이 과도하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사고 당사자의 가족인 세아가 나서서 그녀를 달래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 류 현이 깨어났다는 연락을 넣자마자 그녀는 부리나케 달려왔고 세아는 그 엄청난 행동력이 한 번, 탈색된 것 같은 안색에 두 번 놀라야만 했다.
세아는 내심 류 현이 마침 잠든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류 현이 깨어있었다면 이 대책 없는 여자는 환자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러다가 힘이 다 해서 기절했을 것이다. 돌려보내면서도 저렇게 보내도 사고 나지 않을까봐 걱정이 들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신경 쓰이는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니, 이쪽이 진짜로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현이 반응도 좀 이상했어.’
류 현은 거의 깨어나자마자 자신을 껴안고 펑펑 울었다. 그건 세아가 봐온 류 현의 감정 표현 중에서 가장 극적인 것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자신에게 마음의 짐을 지울까 구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삼키던 류 현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어땠을지 몰라도 세아가 목격한 것은 그게 전부였다.
그런 류 현이 펑펑 울었다. 그것뿐이라면 던전에서 당한 사고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류 현의 이상행동은 좀 더 오래 되었다.
‘두 달쯤 됐나. 그 때부터 쭉 이상했어.’
류 현이 뒤통수가 깨져서 울먹거리면서 전화 한 날, 그 날이 기점이었다.
그 날 당일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그 뒤로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알아도 모른 척 넘겼다. 캐물어도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으니 숨기는 부담이라도 줄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겉보기에는 더 심해지지는 않았으니 그런대로 맞아 들어간 셈이다. 겉보기에는 말이다.
‘모르겠어. 갑자기 왜..’
착각이었다. 별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 류 현은 뜬금없이 던전으로 뛰어들었고 혼수상태로 실려 나왔다. 문제는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류 현의 행동들이 아귀가 안 맞는다는 게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 날 이후 류 현은 아무 말 없이 세아를 빤히 쳐다보다가 뜬금없이 서글픈 표정을 짓고는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짐꾼으로 던전에 뛰어든 것이다. 그녀가 보기에 연관성이 없는 걸 넘어서서 정신이상이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지?
거대한 벽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신 차려, 류세아. 현이가 힘들어 하는데 너까지 이럴 거야?’
류세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결연한 표정으로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류 현은 굉장히 억울한 기분이었다. 잠든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을 뜨자마자 세아가 잔뜩 별렀다는 듯이 덤벼들었기 때문이었다.
앞뒤도 없이 “이젠 누나도 안 참아.”하고 사정 설명을 요구하니 까마득할 따름이었다. 보통 때라면 몇 번이고 불편한 곳 없냐고 물었을 텐데.
‘미친놈, 아무런 대비도 안하고 거기서 나서길 왜 나서.’
어떻게 세아를 일을 그만두게 설득할 지조차 두루뭉술하게 구상만 해두었다. 솔직히 답이 안 나왔으니까.
회귀 전, 세아는 눈이 안보일 정도로 건강이 악화 되었음에도 류 현의 플레이어 활동을 반대했었다. 부모님을 죽인 것이 괴수였고, 그래서 세아는 하나 뿐인 동생이 괴수와 싸운다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었다. 동생과 괴수를 가까이 두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괴수 사체 가공 공장에서 몸을 그렇게 상했다는 게 아이러니 하지만.
그런데 플레이어도 아니고 짐꾼이면서 레드 던전에서 남 구하다가 실신해서 실려 나와서 늘어놓을 변명? 생각해본 적조차 없다. 자신이 거짓말에 재능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로서는 눈앞에 어둠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젠 누나 말은 어떻든 좋다는 거야? 현이 너 정말...”
“누나 때문이야.”
“뭐?”
“던전에 들어간 거, 누나 때문이라고.”
내뱉는 순간 미쳤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이미 뱉은 말을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고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현아 너 지금..”
“보여.”
“..보인다고? 뭐가?”
류 현은 이를 악물었다. 흑역사 하나 늘려서 세아의 상태가 더 나빠지는 걸 막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 아닌가.
“누나 안의 검은 게.”
류 현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
“후우.”
쓰러지듯이 침대에 몸을 기대며 류 현은 한숨을 두 어 차례 더 내뿜었다. 그 정도로는 모자라는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허공에 발차기를 날리며 바동거리기까지 했다.
미관상 심히 추했지만 그것을 지적할 만한 사람은 없다. 세아는 옷을 챙기러 집으로 돌아갔으니까.
‘됐어. 그래도 최악은 면했다. 최악은......’
“씨발.”
면하긴 개뿔. 세아는 아마 납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도 납득 못했으니까. 세아 안에서 죽음의 기운을 봤다니 그런 미친 소리를 누가 믿겠는가. 증거로 세아의 ‘그날’ 주기가 심하게 불규칙 해진 것과 만성적인 피로감에 대해서 지적하긴 했지만 그건 가족이라면 알 수 있는 것 들이다. 몸이 안 좋아진 걸 보고 돈벌이라도 하려고 짐꾼을 했다니 자신이 봐도 심하게 엉성한 거짓말이다.
동생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납득하려고 노력할 세아 조차 안 믿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던전 돌입 전까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까. 그냥 물러서준 것 일 테지.
아마 이렇게까지 해서 감추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의심만 더 키웠을 것이다. 아니면 병상을 털고 일어날 때까지만 다시 참고 기다리자고 생각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새삼 자신의 거짓말 능력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다 말해버리는 게 나았을...아니야. 그건 절대 아니야. 정신 차려라 류 현. 이 미친 자식아, 내 마음 좀 편하자고 누나를 끌어들이겠다고?’
미래가 바꿀 수 있는 것이라도 의미가 없고, 바꿀 수 없다면 의미가 없는 걸 넘어서서 문제가 된다. 회귀 사실을 털어놓으려고 했으면 첫날에, 늦어도 그 다음날에 말을 했어야 했다. 말하지 않은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증명할 수단으로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기도 했고.
납득시키는 데 성공하더라도 세아가 일을 그만두게 하고 얌전히 집에 있는 게 전부다. 아니면 병원에 입원해서 전보다 빠른 치료에 들어가거나.
그 대신 세아는 다시 악룡에게 죽거나 아니면 류 현이 악룡을 잡아 죽일 때까지 달고 살 걱정거리를 얻게 되겠지. ‘절대 안 돼.’ 류 현은 어금니를 사려 물고 바로 앉았다. 창 너머를 불 사르고 있는 황혼이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문제는 누나를 어떻게 설득 하냐는 건데.’
이번 던전 건은 중2병 발언으로 어물쩍 넘어갔지만 본격적으로 플레이어 활동을 하려고 들면 분명히 반대할 것이다. 자신이 던전 사냥으로 돈을 벌어 올 테니 공장 일을 그만두라고 한다면? 지금 어물쩍 넘어간 건 우습게 여겨 질 정도로 꼬치꼬치 따지고 들 것이다.
현 시점에서 그녀가 다니는 공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아직까지는.
“망할. 1단계 반 정도만 개발됐어도..”
그래서 일단 힘을 쌓을 때까지는 비밀로 해두려고 했다. 개발 2단계까지는 갈 필요도 없다. 1단계 반절 정도만 개발해도 그린 던전 정도는 혼자서 사냥이 가능 할 테니까.
그 정도면 온갖 길드나 정부 부처에서도 회유를 하려 들 테니 세아를 설득하기도 쉬울 것이다. 아니면 적금통장을 내밀고 설득을 하거나.
아무리 그녀가 괴수와 류 현을 떼어놓고 싶어 해도 보장된 출셋길을 막무가내로 막지는 못할 것이다. 문제는 그 전에 발각되고 말았다는 것.
아무것도 없다. 쌓아놓은 힘도, 몰래몰래 던전을 드나들어서 괴수사체로 번 돈도. 뭘 해보기도 전에 혹 하나만 더 늘어났다.
‘측정 때라도 난리쳐서 급한 대로 인지도를 끌어 모아야하나.’
플레이어 검사 때 마력 보유량의 반만 보여도 가능성 있는 루키 취급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작정하고 전부 내보인다면 아마 ‘터주’와 ‘산군’에서 사람이 나올 테지.
무슨 일인지 막 각성한 루키가 가질 수 없는 마력량이 돌아와 있었으니까. 자신의 이상행동으로 미래가 바뀌어서 능력도 바뀌었나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과거 자신의 능력과 마력이었다. 전성기 때를 생각하면 개미 눈곱 만큼이라고 해야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과거, 류 현은 누구보다 빠르게 강해졌다. 능력 특성 덕택이었지만 그가 최강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마력량도 적고 능력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던 초반이 조금 힘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힘든 초반마저 없다. 이런 상태에서 대형길드에 밀어주기까지 받는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세아를 설득하는 것도 더 쉬울 테고.
‘아니,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야. 인지도는 팀을 꾸린 다음이다. 길드에 들어가는 것도 마지막 수단으로 둬야해.’
생각을 떨쳐내듯이 고개를 털던 그 때였다.
똑똑, 하고 노크소리가 들렸다. 류 현은 급히 표정을 수습하고 대꾸했다.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는 그 순간 솜털이 쭈뼛하고 서는 느낌이었다. 세아의 뒤편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플레이어다. 그것도 꽤 수준 높은.
하지만 이 솜털이 서는 기분은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과거에 저 정도 수준의 플레이어는 숱하게 봐왔고 죽여 본 경험까지 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이 느낌은...
류 현이 뭐라고 묻기 전에 세아가 입을 열었다.
“현아, ‘산군’에서 오신 분이라는데 지금 괜찮겠니?”
“안녕하세요. 서해란 이라고 합니다.”
파도 잡이 서해란. 회귀 전, 류 현과 가장 오랫동안 치고받았던 플레이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