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탐식마(貪食魔)
타는 냄새가 났다. 도시가 타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길 따위 없었으나 도시는 타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곳 하나 예외 없이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으며, 시체 타는 냄새가 온 도시에 가득했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연기의 색깔이 보랏빛이라는 점이었다. 류 현은 이 연기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런 연기를 피워 올리게 만드는 건 단 하나 밖에 없다. 닿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태우는’ 독은 그것 밖에 없다.
악룡의 극독뿐이다.
“아지..다하카!”
못으로 철판을 긁는 것 같은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짓씹은 입술사이로 피가 흘러내렸지만 류 현은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확인해야 했다. 직접 확인할 것도 없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훤했지만 그래도 확인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쳐버리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테니까.
잰걸음으로 시작한 발걸음이 뜀박질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대로 서있는 건물이 거의 없었기에 류 현은 몇 번이고 건물 잔해를 뒤적여 위치를 확인해 가면서 움직여야 했다.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류 현은 저도 모르게 두 어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부서진 환자용 침대와 산소통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류 현이 멈춰선 곳은 병원 앞이었다. 정확히는 병원이었던 폐건물이라고 해야겠지만.
병원은 기적적으로 다 무너지지 않고 반파정도에 그친 상태로 버티고 서있었다. 그 사실은 류 현에게 있어서 희망보다는 다가올 절망을 암시하고 있는 듯 했다.
류 현은 몇 번 머뭇거린 끝에 간신히 다시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낯설지 않은 기운이 그를 반겼다. 그는 전혀 반갑지 않았지만.
‘시체냄새.’ 벌써 부패가 진행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선을 밥 먹듯이 넘나들며, 그보다 많은 주변의 죽음을 봐온 그의 감각이 고하고 있었다. ‘이 안에 살아있는 것은 없다.’ 고. 하지만 류 현은 그 사실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답을 얻으려고 온 게 아니야.’
그렇다면 대체 무슨 답을 찾으러 위험을 감수해가며 부리나케 이곳까지 뛰어온 것 일까.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류 현은 조심스럽게 잔해를 해치며 걸음을 재촉했다.
불행 중 다행이도 병원 내부의 계단은 꽤 멀쩡한 편이었다. 군데군데 끊어진 곳이 좀 있었지만 여차하면 천장을 뜯어서라도 올라갈 생각이었던 류 현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걸음을 옮길수록 조바심보다 두려움이 커져만 갔고, 계속해서 커져가는 두려움이 그의 발목을 잡아채었다. 어울리지 않게 몇 번이나 발을 헛딛고 나서야 류 현은 목적한 곳에 도착 할 수 있었다.
5층. 류세아가 장기 입원해 있던 곳이다. 6층부터 어떻게 서있는지 이상할 정도로 심하게 파손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5층 내부는 비교적 멀쩡한 상태였다.
잔해를 치우고 할 것도 없이 류 현은 506호 병실 앞에 설 수 있었다.
“......”
문손잡이에 그의 손이 닿았다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감전이라도 된 양 파르르 떨리는 자신의 오른 손목을 움켜쥔 채로 류 현은 하염없이 병실 문을 바라보았다.
이 너머에 답이 있을 것이다. 아직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지다하카와 혼자 마주칠 위험까지 감수해가면서 이곳까지 오게 만든 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답을 확인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확인하고도 미쳐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이대로 있어도 미쳐버리겠지.’
류 현은 이를 악물었다. 다시금 그의 손이 문손잡이에 닿았다. 이번에는 이전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침대에는 전체적으로 하얀 환자복 차림의 여자가 누워있었다. 조금 야윈 느낌의 여자는 잠든 것처럼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입가나 침대 시트를 흠뻑 적신 피가 아니었다면 그도 그녀가 잠든 것이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피로 수놓아진 침대에 누운 채로 류세아는 잠든 것처럼 죽어있었다.
“끄읍......”
오른쪽 다리가 풀려 양쪽 무릎을 호되게 바닥에 부딪혔다. 가까스로 거꾸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정도로 뭔가를 느낄 몸뚱이도 아닐뿐더러 그런 시답잖은 걸 신경 쓸 상황도 아니었다. 류 현은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몇 번이고 닦달해서 겨우 다시 설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떼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가슴이 쥐어뜯겨 나갔다. 침대까지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뒤돌아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누나를 버리고 도망칠 수 없었다. 비록 이미 싸늘하게 식은 시체일 지라도.
더 이상 찢길 가슴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 쯤 그는 어느새 침대 옆에 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뻗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손에 닿은 누이의 뺨은 차가웠다. 더 이상 웃을 수도, 안부를 물어올 수도 없다. 사라진 온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으..아아......”
류 현은 세아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이미 딱딱하게 굳은 그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류 현은 부서질 것처럼 몸을 떨었다. 어깨 너머로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
“아…….”
전세방 보다 높은 천장과 더 비싸 보이는 조명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확실히 집은 아니었다.
눈을 두어 번 깜빡여서 고인 눈물을 흘려보내고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핀 후에야 그는 한숨을 몰아 쉴 수 있었다. 꿈이었구나.
셀 수 없이 자주 꾸었던 꿈이다. 세아가 죽고 난 후, 류 현은 수많은 밤을 악몽 속에서 헤매야만 했다. 미쳐버리지 않은 게 불행인지 행운인지 모를 정도로.
그 유쾌하지 못한 경험들이 아니었으면 지금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회귀 이후에 전혀 꾸질 않아서 영영 작별을 고했나 싶었더니 각성을 하자마자 이 꼴이다. 절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집은 아니고, 병원..인가.’
그리고 딱 거기까지였다. 생각을 도무지 그 이상 진전 시킬 수가 없었다. 꿈 때문에 사고가 마비된 건 같았다. 회귀 전 수 십 번도 더 꾼 꿈이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건 지금도 요원한 일이었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회귀 전에는 류 현을 지탱하던 증오의 근원이었고, 지금은 그를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이유였다. 세아가 살아있는 지금도 그 일을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히려 돌아온 이후 세아의 멀쩡한 모습을 보았기에 혼란은 더 커져만 갔다. 자신은 이미 한 번 실패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지킬 수 있을까?
‘누나는 아직 죽지 않았어. 살아있어. 그러니까, 그만 돌아봐. 그건 이미 사라진 일이라고.’
류 현이 이리저리 흩어진 생각을 가다듬는 동안 무릎께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생각에 잠긴 류 현의 얼굴을 잠시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현..아? 현아!”
류 현이 목소리에 반응하기도 전에 시커먼 뭔가가 가슴께로 확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하니 굳어있던 류 현의 입술사이로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누나?”
류 현의 목소리에 반응한 세아가 다시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들었다. 세아는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한 채로 한 번 쉼 호흡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아직 울면 안 돼.’
딱 한마디만 해줄 생각이었다. 미성년자가 짐꾼이라니. 그것도 위조신분증까지 만들어서. 더군다나 첫 번째 원정부터 사고를 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안도감과는 별개로 한마디 해줘야만 한다. 지금 하지 않으면 또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서 할 기회도 안날 거다.
의사도 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었다. 그저 의식을 못 찾고 있는 것 뿐 이며 막 각성한 플레이어들 통과의례처럼 거쳐 가는 증상이라고 했다.
그냥 기다리기만 해도 멀쩡하게 깨어 날거라고 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막 정신 차린 애한테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라도 안하면 또 무슨 무모한 짓을 벌일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지금 말해둬야 해. 지금…….’
“현이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세아가 놀랄 차례였다. 사흘 내내 누워있기만 해서 제 몸 같지 않을 텐데 류 현이 와락 껴안더니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억눌린 울음을 토해내었다.
세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굳어 있다가 천천히 그의 등을 쓸어내려주었다. 류 현은 그에 응하듯이 억눌린 울음소리를 처절한 통곡으로 바꾸었다.
두 남매는 한참을 그렇게 부둥켜안은 채 떨어질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