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탐식마(貪食魔)
많은 사람들은 플레이어를 초인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차에 치여도 치인 사람은 멍 좀 들고 말며, 차가 막힌다고 빌딩위로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플레이어가 현실에 끼어든 지 4년이 지났다.
사람들이 플레이어의 존재에 어느 정도 익숙해 질만한 시간이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초인의 영역이 좀 크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플레이어하면 초인스러운 감각으로 괴수를 감지하고, 괴수의 품안으로 뛰어들어서 일격에 머리를 베어 넘기는 그런 초인을 떠올린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상위 1%의 헌터도 그렇게는 하지 못한다. 아니, 할 수 있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현실은 게임이 아니니까.
그 누구도 위험을 감수 하고 싶어 하진 않는다. 더욱이 플레이어들은 존재만으로 중상위층에 들 수 있는 인재들이 아닌가.
그래서 던전 사냥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평범한 편이다. 굳이 비슷한 예를 찾자면 논밭을 다 갈아엎는 멧돼지 사냥 정도일 것이다.
사냥개도, 엽총도, 무전기도 없이 하는 멧돼지 사냥. 당연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난이도가 낮은 개척 던전일 경우에는 얘기가 좀 달라지지만.
그리고 류 현은 자신이 봐온 원정대 중에서 나태함을 끝을 달리고 있는 이들을 목격하는 중 이었다.
던전에 입장한지 만 하루째.
류 현에게 있어서 원정대의 행보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주로 좋지 못한 의미에서.
실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편이었다. 괴수를 농락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초짜들치고는 침착했다.
초짜 셋이서 조급증 내지 않고 천천히 이 던전의 주력괴수인 귀머거리 도마뱀에게 상처를 선사했고, 그런 식으로 두 마리 귀머거리 도마뱀을 죽였다.
세 마리째를 혼자 상대한 해은의 실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제 키만 한 대검을 어찌 다룰까 싶었는데 발광하는 귀머거리 도마뱀의 공격을 슥슥 두 번 피하더니 단칼에 목을 따버렸다.
이번이 네 번째 던전 사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일격이었다. 산군에서 데려다가 키울 만 하다 싶을 정도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들은 괴수를 사냥할 때 이외에는 무슨 나들이 나온 사람들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플레이어들이 대놓고 풀어지니 짐꾼들이라고 제대로 경계할 리가 없다.
‘던전이 무슨 유원지인 줄 아나.’
심해도 너무 심했다. 아무리 레드 수준을 넘어서는 베테랑들이 둘이나 있다고는 하지만 부자들 던전 관광도 아니고.
‘거기다가..텐트라니 어쩐지 짐이 더럽게 무겁다 했어.’
그를 가장 어이없게 만든 것은 대형텐트였다. 짐꾼들의 군장 안에는 전인원이 다 들어가서 자도 될 정도로 커다란 텐트 부속이 나뉘어들어 있었다.
야영지를 정하고 나서 원정대장이 짐꾼들에게 텐트를 꺼내라고 했을 때 그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짐꾼들이 진짜로 텐트 부속을 꺼냈을 때는 뒤통수를 망치로 두들겨 까인 기분이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무슨 이틀짜리 던전에서 텐트야.’
'가방'을 보유한 플레이어들조차 어지간히 낮은 등급의 던전이 아닌 이상 침낭이상의 것을 챙기지 않는다. 보존식이나 물, 구급약, 예비 장비를 챙기는 것만 해도 무게 제한에 아슬아슬 했으니까.
심지어 침낭이나 담요하나 안 챙기는 경우도 허다했다. 편하게 자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당장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가방'조차 없는 작자들이 대형 텐트라니.
보초까지 세우지 않는 만행을 저지르진 않았지만 원정대에 대한 평가는 수직하강 중이었다.
‘내가 다시는 이 원정대 들어오나 봐라.’
류 현은 선두에 걷고 있는 원정대장의 뒤통수를 한 번 째려봐 주고는 시선을 돌렸다.
원정대 분위기가 개판이든 말든 간에 할 일은 해야 했다. 도처에 살필 곳이 널려있었다.
‘이래서 정글 필드가 싫다니까.’
시야가 탁 트여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로가 아주 제한되어있는 것도 아니니 괴수는 사방에서 습격해 올 수 있다. 초목들 때문에 냄새도, 소리도 감지하기가 쉽지가 않다.
나오는 괴수 종류도 성가신 것이 많고, 재수가 없으면 주변으로 독을 내뿜는 식물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다. 이래저래 신경 쓸 거리가 많은 필드다. 짐꾼 시절 안 좋은 기억도 제법 있었고.
그래서 그는 유적형, 정글형, 미로형 중에서 정글형을 가장 꺼렸다. 어느 정도냐면 회귀 이전에는 정글형 필드라면 일단 거르고 볼 정도였다.
각성부터 하고봐야하는 지금이야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지만.
수다를 떨며 걷고 있는 선두 그룹의 플레이어들을 애써 못 본채 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슥 다가왔다.
어제 그 덩치 큰 사내였다.
“에이, 개척된 던전인데 뭘 그리 두리번거리시나. 어차피 이 던전 나오는 거라고 해봐야 귀머거리 도마뱀 정도인데 그렇게 안 봐도 되우. 뭐 개척당시에는 땅돼지도 몇 마리 나오긴 했다던데 그 뒤로는 안 나왔다고 하니.”
“그래도…….”
“귀머거리 도마뱀이라고, 두리번거리는 것보다는 이쪽에 집중하는 게 백번 낫지. 사실 집중할 필요도 없이 오면 온다고 다 티내는 놈이니까. 아까 전에 봤잖수?”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귀머거리 도마뱀은 붙여진 이름에 충실한 몇 안 되는 괴수 중 하나였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도마뱀은 거의 소만한 덩치를 하고 나뭇가지고 돌이고 닥치는 대로 밟고 씩씩거리면서 돌아다닌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만한 소음을 내고 돌아다니는 놈이니 못 알아채는 게 이상할 정도다.
반대급부로 후각이 뛰어난 편이라서 한 번 포착한 사냥감은 끝까지 쫓아오지만 별 의미 없는 특성이다. 귀머거리 도마뱀은 레드급 던전에서 출몰하는 괴수 중에서도 최약체니까. 등 쪽 가죽이 두터운 걸 제외하면 별 특별한 점도 없다.
예전에 나온 적 있는 땅돼지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개척 이후 나온 적이 없다고 하니 그야말로 키워주기 용으로는 최적의 던전이라 할 만 하다.
실제로 앞서 걷고 있는 플레이어들에게서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막 각성한 애송이도 때려잡는 게 귀머거리 도마뱀이니 그래도 베테랑 축에 드는 레벨 30대의 플레이어가 둘씩이나 있는데 걱정하는 쪽이 이상할 것이다. 류 현에게는 정반대의 의미로 다가왔지만.
‘암만 그래도 저건 좀 아니지.’
짐꾼이며 플레이어며 할 것 없이 풀려있는 모습을 보자니 절로 한숨이 새어나올 것만 같았다. 경계는 고사하고 플레이어진은 아예 잡담모드다. 귀머거리 도마뱀이 주 괴수라지만 해도 너무한 게 아닌가 싶었다.
‘개척던전 이라고 괴수가 약해지는 것도 아니고.’
류 현은 다시금 플레이어 진의 후미를 힐끔거렸다. 해은을 포함한 초짜 플레이어 셋이 이야기꽃을 피워가며 걸어가고 있었다. 원정이 아니라 피크닉을 나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기어코 류 현은 조그맣게 볼멘소리를 내었다.
“이런 식으로 키워주면 대체 무슨 소용이야.” 불평은 의미 없지만.
***
[뀌이익!]
둔중한 소리를 내며 귀머거리 도마뱀의 머리가 땅에 쳐 박혔다. 해은이 도마뱀의 목덜미에서 제 팔뚝보다 굵은 칼날을 비틀어 뽑자 도마뱀의 두꺼운 목이 몸에서 떨어져 나오며 피부와 같은 검붉은 피를 흩뿌렸다.
그와 함께 고약한 냄새가 뿜어져 나왔지만 짐꾼 두 명이 부리나케 절단면에 채혈기를 갖다 대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내저으며 등을 돌렸다. 베테랑이라던 둘은 노골적으로 혀를 차기까지 했다.
어디에 쓸지 너무 뻔했다. 아마 블랙마켓에 내다 팔 테고, 그걸 도매상이 사서 말 그대로 '약팔이'를 할 것이다.
괴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십년도 더 됐지만 아직도 괴수에 관한 미신은 수없이 많았다. 괴수의 피나 살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낭설은 정부에서도 뿌리 뽑기를 포기했을 정도다.
짐꾼 중에서는 저런 가치 없는-플레이어 입장에서나- 부산물을 노리고 짐꾼을 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류 현은 오랜만에 보는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경계를 서고 있는 플레이어 뒤편으로 걸어갔다. 회귀 전 짐꾼생활 할 때면 몰라도 지금은 저런 걸 챙길 이유가 없다.
미성년자 신분으로 저런 걸 내다팔다가 재수 없으면 짐꾼 노릇조차 아예 못하게 될 위험도 있었고.
다른 인원들이 경계를 서는 걸 확인하곤 원정대 대장 박재상은 대검을 정리하고 있던 해은의 옆에 자리 잡고 앉으며 말을 붙였다.
“해은이는 이제 슬슬 승급할 때 되지 않았나?”
“아직 세 번 정도 남았어요. 오렌지 던전 한 번이면 되긴 할 텐데 어디 자리가 나야 비벼보죠. 그냥 레드로 세 번 채우려고요.”
“그래? 사냥하는걸 보면 굳이 승급조건 채울 필요도 없어 보이는데. 내가 보기에는 언니보다 나은 거 같은데?”
“에이, 너무 비행기 태우신다. 그래도 듣기는 좋네요.”
“저 친구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네?”
해은이 반쯤 얼이 빠진 채로 원정대 대장, 박재상을 돌아보자 그는 손가락으로 앳되어 보이는 남자를 가리켜보였다. 류 현이었다.
“짐꾼 중에 해은이가 알 만한 사람은 없을 거 같은데. 혹시 저 친구 학교 친구...”
“언니 대학교 친구요. 저 오빠 입대하기 전에 몇 번 봤어요. 한 달 전에 제대했다던데요.”
해은이 말을 가로막듯이 대꾸하자 박재상이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해은은 못 본채 하며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안되지, 안 돼. 현이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류 현이 무슨 생각으로 신분까지 속여가면서 원정대에 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들키면 원정대 대원들한테 욕 들어먹는 걸로는 안 끝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그 이유를 영영 류 현에게서 들을 수 없을 테고.
“그래? 흠…….다 끝나셨으면 슬슬 움직입시다. 조금만 더 가면 출구에요!”
더 캐물을 생각은 없는지 박재상이 일어나면서 무리를 향해서 걸어가자 해은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어쉬었다. 그리곤 자신도 몸을 일으켜 일행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개척 이후, 이 던전에서는 평균적으로 귀머거리 도마뱀이 세 마리에서 네 마리 정도 나온다고 했으니 앞으로 많아 봤자 한 마리만 더 잡으면 클리어다.
***
회귀 전, 류 현은 탱커였다. 정확히는 탱커 행세를 하고 다녔었다. 능력이 능력이다 보니 남들에게 말하고 다닐 수도, 그럴 생각도 없었던 그는 탱커행세로 자신을 감췄다.
그 전략은 꽤 유효하게 먹혔었다. 단단하면서 재생력이 뛰어난 몸과 사리지 않고 괴수의 공격을 막는 그는 뛰어난 탱커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고, 오래지 않아 빚을 청산하고 탱커행세도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탱커행세를 그만둔 뒤에도 그가 탱커 포지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정확히는 딜러 겸 탱커였지만 순수 탱커들 중에서도 그만큼 괴수의 공격을 받아낸 이는 드물 것이다.
어느 정도냐면 의식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 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류 현이 친분도 없는 여자 짐꾼의 앞을 가로막아 선건 순전히 반복된 경험으로 인한 반사 반응이었다.
‘씨발.’
자신을 향해서 달려드는 땅돼지를 바라보았다.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턱 때문에 땅돼지의 시커먼 이빨과 목구멍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미 피하기는 글렀다.
‘미친놈. 네가 아직도 플레이어인 줄 아냐.’
할 말은 수없이 많았지만 우선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다. 그는 반쯤 포기하는 기분으로 왼팔을 휘둘렀다. 팔 하나를 내주는 것으로 이런 실책을 덮을 수 있다면 싼 것이겠지. 순식간에 류 현의 팔과 땅돼지 간의 거리가 좁혀졌다.
“피해!”
“늦었…….”
사람들의 비명이 닿기도 전에, 뻥- 하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허공을 향해 흩뿌려졌다. 열기와 함께 피비린내가 얼굴에 확 닥쳐들었지만 해은은 얼굴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선채로 한 곳을 멍하니 쳐다볼 따름이었다.
“현아?”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해은조차 자신의 말을 듣지 못했다.
해은을 포함한 모든 이들은 그대로 못 박힌 것처럼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굳어있는 류 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그가 이 상황을 전부 해결해 줄 거라는 듯이.
문제는 류 현 또한 그들과 별 다를 것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류 현은 멍하니 자신의 왼 주먹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한 방에 땅돼지를 '증발'시켜버린 왼 주먹이었다.
땅돼지. 레드 급에서 옐로 급까지 광범위하게 등장하며 초심자 킬러라는 별명을 가진 괴수다.
땅돼지의 공격 패턴은 매우 단순하고 치명적이다. 사냥감이 지나갈 때까지 땅굴에서 대기 하다가 사냥감이 지나가면 귀신같이 알고 튀어 오른다. 그리곤 제 몸뚱이보다 크게 벌어지는 턱을 벌리고는 덥썩.
단순하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최소 팔다리 중 하나는 못쓰게 되니까. 그리고 류 현의 왼팔도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정점을 섰던 그라고 능력이 없는데 어찌 할 텐가.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땅돼지만 죽었다.
‘대체 왜?’
그는 답을 알고 있었지만 자문해보았다.
‘..마력이 돌아왔다. 어째서?’
아직 능력이 돌아올 때가 아니었건만 모든 정황이 그의 능력이 돌아왔음을 말하고 있는 상황. 땅돼지를 증발시킨 건 자신이 예전에 즐겨 쓰던 기술이었고, 지금 느끼고 있는 어지러움은 마력고갈로 인한 증상이 분명했다.
하지만 벌써 능력이 돌아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방금 사용한 기술도 각성 직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뭐가 바뀐 거지?’
머리를 굴릴수록 어지러움이 더 해졌다. 실제로 그의 몸은 위태롭게 앞으로 기울여져 있는 상황이었다.
-..인지 데이터 덮어씌우기 완료. 인지 공유를 시작합니다.
“뭐?”
그 때였다.
류 현의 의문에 답하듯이 뇌리에 직통으로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정체를 유추해보기도 전에 그의 의식은 밑 없는 바닥을 향해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