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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탐식마(貪食魔) (3/429)



〈 3화 〉탐식마(貪食魔)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대열에서 이탈하시면 안 됩니다. 던전 안에서 그러시면 저희가 보호해 드릴 수가 없어요. 저희라고 짐꾼 중 누가 죽으면 좋겠습니까. 같은 원정대 동료인데. 대열 유지만  해주시면 저희도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지켜 드릴 겁니다.”

‘개소리.’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원정대 대장을 슬쩍 흘기며 류 현은 속으로 욕지기를 중얼거렸다. 같은 원정대 동료? 가당치도 않는 소리다. 고기 방패로 보고 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회귀 이전 짧은 짐꾼 경력이었지만 플레이어들의 짐꾼에 대한 인식을 체감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들에게 짐꾼이란...

‘예비 미끼지. 소리 지를 입 달렸고, 여차하면 발까지 달려서 알아서 도망가기까지 하는 훌륭한 미끼.’


플레이어들은 던전에 일반인을 들이는 것을 꺼린다. 이것저것 더러운 일들이 얽힌 자신들만의 영역을 침입당하는 느낌이라는 이들도 있지만 위험하기 때문이다.

던전이 포화상태가 되서 밖으로 나온 저급 던전에 괴수에게는 소형 화기가 먹히긴 하지만 던전 안에서 전자장비나 화기는 먹통 돼버리고 만다. 화약병기가 제 기능을 못하니 일반인은 전력은커녕 짐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전력에 보탬이 안 되는 일반인은 존재만으로도 위험요소가 된다. 그들이 내는 냄새, 소리, 원정대 대장이 컨트롤해야 하는 인원이 늘어난다는 부담까지.

그래서 짐꾼이라는 개념은 저급 중 저급 던전에서나 통용되지 옐로급 이상만 되도 짐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짐꾼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도 1차 '대소환' 초기에 던전에 대한 이해와 지금은 플레이어들의 필수 아티펙트가 된 '가방'이 없을 때였고, 그 이후에 이상하리만치 오래 존속되고 있는 직종이었다. 애초에 일반인보다 월등한 신체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자기 짐이 부담된다고 일반인을 끌어들인다는  자체가 넌센스다.

정부에서 나서서 막자니 짐꾼 짓을 하다가 각성하는 이들도 제법 있었고, 짐꾼들이 활동하는 던전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레드던전이니 다 단속하기도 힘들었다.


옐로급 이하는 나오는 괴수 수준이 좀 튼튼한 짐승 수준이고 던전 내부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니 군식구를 달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짐꾼들이 안전하냐면 전혀 아니올 시다지만.


상대적으로 상위 던전들보다 덜 위험할 뿐이지 던전 내부에서 일반인들이 자구책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짐꾼이 원정대 뒤꽁무니를 쫄래쫄래 쫓아다니다가 괴수에게 급습당하면 그날로 팔다리 하나 잃거나 제삿날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꾼 인원이 계속 나오는 건 던전을 돌다 보면 각성이 된다는 도시괴담과 짭짤한 위험수당 덕분이었다. 더불어 '개척까지  던전인데 설마 내가 당하겠어?'하는 안일함도 큰 일조를 했다.

“계측 결과 나왔습니다. 확인하실 분은 앞으로 나와 주시고  보실 분들은 좀 비켜서 주세요!”

류 현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섰다. 설마하니 던전 난이도를 뻥을 쳤겠냐만은 확인해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류 현의 옆으로 덩치  짐꾼 사내가 따라붙었다. 그가 본채도 안 하자 사내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붙여왔다.


“형씨, 확인할 거유?”


그럼 뭐 하러 나왔겠냐. 저도 확인하려고 나왔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류 현은 원정대 대장 앞에 섰다.

“예, 여기 있습니다.”

원정대 대장이 내민 손바닥 위에는 손바닥 반 정도 크기의 반들반들한 돌이 놓여있었다. 결정체라고 불리는 것으로 게이트 주변 흙에 한 시간 즈음 묻어놓으면 게이트 내부의 던전 난이도에 따라서 색깔이 바뀐다. 그 외에도 아티펙트나 던전 포화를 늦추는데 사용되는 등 사용처는 무궁무진했다. 던전 클리어시 무조건 나오는 보상으로 국가에서 던전 사냥을 장려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길드 소속 정규 원정대는 보통  결정체 가공해서 만든 계측기를 들고 다니지만 레드급 던전이나 다니는 비정규 원정대는 통짜 결정체로 충분한 것이다. 돌의 색깔은 선명한 빨강. 최하위 던전의 색깔이다.


“확인했습니다.”

류 현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뒤돌아서서 짐꾼 무리로 향했다. 류 현 이외에는 계측 결과를 확인하려는 자가 더 이상 없자 원정대 대장이 플레이어 레벨을 확인시켜주겠다고 소리쳤다. 남은 짐꾼들이 류  옆을 지나쳐 우르르 몰려나갔다.

방금 전 말을 걸어온 사내가 다시금 따라붙었다. 류 현은 티나게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봤다. ‘계측 확인도 안 할 거면서 왜 따라 나온 거야?’


“형씨 짐꾼 처음이지? 저 치들 티는 안내지만 계측 결과 확인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압니다. 그래도 확인할 건 확인해야죠. 목숨 달린 건데.”

저도 모르고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말았다. 회귀 전에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단독 행동만 해왔기에 말할 일이 거의 없었고, 누나가 죽고 나서는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어쩌다 귀찮게 말을 붙여오는 자들도 그냥 무시하거나 찍어눌러왔기에 치근덕거리는 눈앞의 사내가 그렇게 성가실 수가 없었다.


너무 틱틱거린게 아닌가 싶었지만 사내가 더 이상 따라붙지 않자 그는 신경 끄기로 했다. 던전  번 돌고 나면 다시 안  사이다. 어쩌다 마주치더라도 별 상관없는 사이고.




류 현이 무리에서  떨어져서 엉거주춤하게 서있자 금방 확인을 끝낸 짐꾼들이 다시금 오와 열을 맞춰 섰다. 류 현을 포함해서 총 여섯 명. 플레이어가 다섯인  감안하면 지나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수였다.

‘두  얼마씩 지원받기로 한 모양이군.’


필요 이상의 짐꾼을 고용해서 지원금 떼어먹기. 흔히 있는 일이다. 키워주기 의뢰를  길드에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이 그저 그렇더라도 콧대 높은 플레이어가 이런 일을 하려고  리가 없으니까. 도를 넘어선 수준이 아니라면 길드에서도 그냥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별일이야 있겠어.’

짐꾼이 과하게 많다는 점이 걸리긴 했지만 레드급 던전에 플레이어 다섯이라면 사고가 나는 게  어렵다. 이미 개척된 던전이라면 더더욱.


플레이어 중  이상이 초짜이긴 했지만 길드에서 생각이 있다면 남은 둘은 경험 많은 이들로 붙였을 것이다. 초짜든 뭐든 플레이어는 귀중한 자원이니까.


‘그런데  출발 안 하는 거야?’

“아직 도착 못한 친구가 있어서 말입니다. 조금만 더 양해를..아, 저기 오네요.”



플레이어가  명 더 있다고? 원정대 리스트에는 들어가 있지 않았으니 분명히 길드 쪽에서 보낸 초짜일 것이다. 아무리 키워주기라 하지만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싶었다. 레드급 던전에 플레이어만 여섯이라니.

거기다가 지각이라니 대체 어느 길드의 금지옥엽이기에 원정 시간에 늦는단 말인가. 류 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발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

“와아, 진짜 세상 좁다. 그치? 현아.”



그래, 정말로 끔찍하게 좁네. 류 현은 억지로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리곤 땅바닥을 내려다봤다. 별로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일반인 몸으로 던전에 들어서는 감회를 느껴볼 새도 없을 줄이야.


그 지각자가 같은 학교 같은 반 학생일 거라고는 상상도  했다. 아니,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우연이 대체 왜 자신에게 닥친단 말인가.


그것도 모자라서 반에서 죽은 듯이 지내는 자신을 알아보는 애가 있을 줄이야.

“근데 안 힘들어? 군대 다녀온 오빠들도 짐꾼 처음 해보면 힘들어하던데. 좀 나눠들어줄까?”



응, 너만 좀 떨어져 주면 괜찮을 거 같아. 말이 목구멍을 간질였지만 류 현은 입가를 경련 시키며 다른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여자아이는 그냥 또래 여자아이가 짐꾼인 류 현에게는 아니라 갑중 갑이다.


행여나 류 현의 진짜 신분을 불어버린다면 두 달간의 노력이 한방에 허사가 돼버릴 것이다. 치명적인 타격까지는 아니겠지만 유쾌하진 않을 타격.


아무리 키워 주기용 원정이라지만 짐꾼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면 좋아할 원정대 대장은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짐꾼을 데리고 던전에 들어가는 것도 탈법과 불법의 영역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치고 있는 일이니까.

플레이어도 아닌 일반인 미성년자를 던전 안에 데리고 간다? 말도 안 된다.

“괜찮아, 견딜만해.”
“무거워 보이는데…….”


원래라면 포지션이 반대여야 하겠지만 해은은 이미 자기 등에 제 키만 한 대검을 비끄러매고 있는 상태였다. 플레이어니까, 보일  있는 기괴한 모습이다.


“진짜 괜찮으니까, 반장은...”
“해은이.”
"응?"
“내 이름. 반장이 아니고 서해은 이라고. 현이 너 내 이름도 기억  하지?”

뭔가 변명할 말을 짜내어보았지만 류 현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미안”

진짜로 몰랐으니까. 회귀를 했어도 학교생활은 영 관심이 가질 않았고 자연히 같은 반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아니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난 두 달간 류 현의 정신은 온통 누나와 아지다하카 등에 쏠려있었다.


심지어 회귀 사실에 대한 생각도 아직 다 정리 못한 상태였다. 시간만 자꾸 죽이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니 일단 움직이는 것이지 누나의 사직 이외에 뚜렷하게 정해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니 두 달 안에 끝나는 학교생활 따위 신경  이유도 없다.


눈앞의 여자애가 반장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는 것도 그녀가 반 테두리 안으로 류 현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한답시고 치근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같은 반이라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반장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 못 했지만. 설마하니 플레이어였을 줄이야.

“괜찮아, 같은 반이라고 기억이라도 해준 게 어디야. 너 담임선생님 성함도 모르지?”

당연히 모른다. 해은을 제외한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담임선생도 류 현에 대해서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으로 행동 방향을 정했고 류 현 또한 같은 태도를 취함으로써 그 결정을 존중했다. 누구도 이 관계에 대해서 불만이 없었다.

해은만 제외하면. 그녀는 생각 날 때마다 그에게 말을 걸어왔고 그 결과 류 현은 해은에게 경계심 비스무리 한 것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류 현은 그녀가 왜 불만이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무슨 이득이 있어서?




“어…….그게 까먹었어.”
“거짓말, 처음부터 기억할 생각도 없었을걸.”



그렇게 잘 알면서 대체 왜 묻는 건데.  현은 해은의 시선을 외면했다.

노골적인 대화 거부였지만 해은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처음부터 이럴 거라고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기까지 했다.


“근데 현이 너 생각보다 침착하다? 원정대는 처음 아냐?”
“처음 맞는데.”
“흐으음, 아닌  같은데?”

해은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짓궂게 쳐다보았지만 류 현은 앞만 바라보며 걸을 뿐이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19살의 자신은 이게 첫 원정이니까.


 현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시들해진 것인지 아니면 슬슬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해은도 몇 마디 더하고는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짐꾼 무리로부터 좀 쳐져 있었던  현도 자리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해방감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이야, 형씨 보기보다 인맥 좋은가 봐? 근데  짐꾼으로 온 거야? 산군 길드 아가씨랑 알고 지낼 정도면…….”

아까 그 사내였다. 걸걸한 목소리에 곤두서있던 신경이 긁혀나가는  같았지만 신경 쓰이는 단어가 있었기에 짜증을 억누르며 대꾸했다.


“산군(山君)이요?”
“응? 몰랐어? 저 아가씨랑 아는 사이 아냐?”


'아가씨는 무슨 아직 졸업도 안 한 고딩인데.'
“알긴 아는데 오랜만에 만난 거라서.”


산군이라면 그도 회귀 전에 몇  들어본 이름이다. 한국 최초, 최고의 길드인 '예거즈'와 규모로는 ‘예거즈’를 넘어서는 정부 산하의 ‘터주’에 밀려서 빛이 바라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길드다.


‘예거즈’는 아직 기업화되지 않았을 테니 기업형 길드 중에서는 산군이 가장 클 것이다.

그런 길드에서 작정하고 밀어줄 정도였다니, 모르긴 몰라도 학교에 소문이 났어도 몇 번을 났을 것이다.

‘내가 너무 무관심했나.’



“척 봐도 이 원정대 저 아가씨 하나 키우려고 꾸린 거야. 뭐 겸사겸사 끼어가는 초짜가 둘 있긴 하지만 진짜로 덤이고. 옐로급 던전 돌아야 할 32,35렙짜리 플레이어가 키워주기에 가담할 정도면 산군 내부에 인맥이 있거나 이정도로 밀어줄 만한 유망주거나, 하여튼 보통내기는 아니겠지. 몇 번 못 봤는데 움직이는 게 초짜 같진 않더라고.”



“잘 아시는  보니 이번이 처음 보는 게 아닌가 봅니다.”
“잘 알긴, 몇 번 같은 원정  게 전부인데. 이번이 네 번째였던가. 저런 멤버에 피로도  때마다 원정이라면 뻔한  아니겠어? 아마 피로도 문제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횟수 채우고 승급 신청 했을걸? 뭐 전부 내 추측 일뿐이지만.”




류 현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리 저급 던전이라도 할 건 해야 하니까. 시작이 조금 꼬였지만 원정은 지금부터다. 클리어 하는데 평균 이틀 가량이 걸리는 던전이라고 했다. 이제 막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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