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탐식마(貪食魔) (1/429)



〈 1화 〉탐식마(貪食魔)

-임계점 통과. 특이점 발생. 특이점, 인과율 편입까지 남은 시간 6분 13초.


"응?"


그곳에는 여자 혼자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위, 아래, 오른쪽, 왼쪽을 나누는 게 무의미해 보이는 시커먼 공간에 여자는 오롯이 혼자 존재했다.

여자의 존재가 어둠에 파묻히지 않은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잠에 든 것처럼 눈을 살며시 감고 있던 여자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창이 열리듯 시커먼 어둠이 옆으로 밀려나더니 검은 공간속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 위에는 기괴한 글자들이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한 남자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괴생물체와 치고받는 모습이 떠올라 있었지만 여자의 관심사는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글자  이었다.




"제일 가망 없던 곳에서 두 번째 특이점이라고? '그녀' 말고는 변수가 없을 텐데? 조건도  맞았을 텐데 악룡은 대체 어떻게 쳐 죽인거야. 계측이 잘못  건가. 마신의 유산? 이건 또 뭐야. 그 괴물 이름이 왜 튀어나와."


잠시 동안 화면을 들여다보던 여자의 얼굴에 더욱 깊은 의문감이 떠올랐다.

"변수 직접 개입도 없이 막바지에 두 번째 특이점 발생?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계산식의 문제는 아닌데 대체 뭐가 바뀐 거지? 더 배분할 자원도 없는데 어쩐다."



여자는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창으로 손을 뻗어 휘적거렸다. 그녀의 손길을 따라서 꿈틀거리던 글자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 때였다.


-인과율 편입까지 남은 시간 3분 49초.

"멸룡도 죽어나자빠졌는데 저놈의 인과율 조정은 어떻게 좀 안되나. 돌겠네, 진짜. 멸룡도 없는데 대체 뭘 맞춘다는 거야?"


머릿속의 목소리에 짜증을 부리며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헤집던 여자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플레이어 명 '류 현'의 인지 데이터를 백업한다. 4초 후 백업을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백업 완료. 잔존 자원 0.015%.

"플레이어 명 '류 현'의 인지 백업 데이터를 덧씌운다. 젠장, 어차피 자원도 다 된 거 올인이다."


-덧씌우기 완료. 잔존 자원 0.003%. 인과율 편입까지 1분 29초.


"엥? 자원이 그거 밖에 안 들어? 얼마나 머리가 텅 빈 놈 인거야. 진짜 어떻게 악룡을 잡은 거야? 그럼, 잔존 자원으로 플레이어 '류 현'의 인지를 공유한다."


-공유 작업 완료. 잔존 자원 없음. 인과율 편입 시작.


여자는 턱을 쓰다듬다가 다시 손을 내저어 창을 닫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곤 잠꼬대를 하듯이 내뱉었다.

"큰 기대는 하지도 않으니까. 제발 들인  정도만 해달라고 악룡 사냥꾼씨."

***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한 소리를 내며 악룡 아지다하카가 땅으로 처박혔다. 어찌할 길 없는 즉사였다.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은 악룡의 죽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악룡의 추락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충격을 일으켰지만, 악룡의 최후의 순간을 목격한 행운의 주인공은 한 명 뿐이었다. 나머지 인원들은 전부 죽었으니까.


유일한 목격자인 남자는 죽은 악룡의 시신 속에서 일어섰다. 남자의 전신은 자신의 피와 악룡의 피로 젖어 엉망이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아지다하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남자는 절뚝거리며 악룡의 시체에서 내려왔다. 그리곤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토사물의 대부분은 위액이나 음식물이 아닌 핏덩어리들이었다. 시커멓게 죽은피가 덩어리진 채로 꾸역꾸역 쏟아져 나왔다. 피를 거의  바가지 토해내고서야 남자는 토악질을 멈출 수 있었다.


입가를 훔치며 남자는 자신이 쓰러뜨린 악룡을 슥 한번 돌아보았다.


악룡 아지다하카. 여태껏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괴수 중에서 가장 강력하며, 가장 악랄하게 인류를 괴롭힌 괴물. 피는 극독이며 생전에는 피를 쏟으면 그곳에서 독충들이 태어났다.


지금은 죽었으니 피에서 독충들이 태어나진 않았지만 그 피가 극독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남자의 시야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아지다하카를 죽이는데 성공하더라도 필연적으로 피에 중독돼서 죽을 것이라고 예상했었으니 그리 놀랄 것도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불멸자라고 불리며, 독 저항력이 높더라도 아지다하카의  지근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은 저항력을 논하는게 의미가 없는 것이니까.


남자가 예상치 못한 것은 허무감이었다.

복수가 달성된 순간부터 그를 잠식해 들어오고 있는 허무감만큼은 남자 또한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 사실에 분노하거나 당황하진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 화를 낼 필요도, 놀랄 필요도 없다.




"졌군."

인류는 결국 패배했다.



2026년 8월 24일. 1차 '대소환'이 일어났다.


그날, 던전의 입구인 게이트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 회색빛 구멍은 시간이 지나자 그것이 뭔지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괴수들을 쏟아내었다.


괴수들이 던전에서 뛰쳐나오기 까지는 포화기간이라는 유예시간이 있었지만 게이트를 처음 보는 인류가 알 턱이 없었다. 포화시간이 되자 괴수들은 던전 밖으로 뛰쳐나왔고 닥치는 대로 인간을 공격했다.

지구의 동물들이 돌연변이를 일으킨  같은 외형의 괴수들은 지구 동물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에게는 쉴드라는 자기 보호 기재가 있었고 인간에게 한없이 적대적이었다. 괴수의 쉴드 앞에서 인류가 믿고 있었던 화기의 위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괴수의 등장과 함께 플레이어들이 눈을 떴다. 일부 사람들이 영화에서나 보던 초능력을 얻었고, 화기에 이상하리만치 강한 저항력을 보이던 괴수들도 그들의 손속에는 버티지 못 했다.






다행스럽게도 알려지지 않은 플레이어의 분투와 차분한 대처로 인류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우습게도 화려한 등장과는 달리 괴수로 인한 초기 피해는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독감보다 피해가 적었다.

오히려 괴수의 부산물과 던전 내에서 얻은 노획물을 통해서 전에 없는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거나 물리법칙을 일탈한 것 같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으니까.

5년 후 일어난 2차 '대소환' 또한 쌓아놓은 힘을 통해서 어렵잖게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2차 '대소환'을 이겨낸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오판한 인류는 남아도는 힘을 서로에게 겨누는 우를 범했다.


내전의 결과는 처참했다. 쌓아놓았던 힘들의 대부분이 소진되었고 남은 이들마저 남겨진 증오를 움켜쥐고 서로의 피로 피를 씻는 짓을 포기하지 않았다.


거기에 '대소환' 또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인류가 자중지란에 빠진 상태에서 일어난 3차 '대소환'은 이전의 사건들이 준비운동이라고 해도  정도로 끔찍한 상처를 인류에게 남겼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악룡 아지다하카는 그 날개를 세상에 드리우자마자 인류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자처한 죽음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에서야 달성된 악룡의 죽음은 뒤늦은 복수에 지나지 않았다.

악룡이 죽었지만 인류에게는  이상 회복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악룡이 살아있든, 죽었든. 혹은 악룡이 최후의 괴수든 간에.

오염된 땅과 어찌할 길 없는 반목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류에게 남은 것은 멸망뿐이었고 남자는 인류 최강자로서의 의무감이 아닌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악룡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의 목숨도 곧 끝나게  것이다.


남자는 허무함은 느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망할 것이라면 복수를 해주고 싶었다. 악룡 때문에 죽은 누이의 복수를.

확신조차 없었던 일을 해냈으니 더 바랄 것은 없었다. 시야 한편을 천천히 잠식해 들어오는 어둠을 발견한 남자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늦기 전에 누이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떠올리고 싶었다.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한 누이의 모습을 떠올린 남자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끝없는 어둠 속으로.

***

잠에서 깨었다.


남자는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일어서려고 했다.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세상이 뭉개졌다가, 펴졌다가, 멀어졌다. 등에서 느껴지는 아픔이 빙글빙글 돌아 아랫배를 후려쳤다. 남자는 구토감을 느꼈지만 토악질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남자는 자신의 턱과 입술이 어디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팔 밑에 있는 건 발목인가? 아니야 그건 허벅지야. 그럼 입술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도무지 제어 할  없는 감각의 풍랑 속에서 남자는 자신의 몸이 토막 쳐져서 여기저기 흩뿌려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몸뚱이를 제대로 느낄 수조차 없었다. 눈앞에 놓인 자신의 팔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자는 의심스러워하면서도 손가락에 힘을 주었던 기억을 더듬어 그대로 실행했다. 놀랍게도  멀리 떨어져 있던 그의 새끼손가락이 그의 의지에 응답했다.

남자는 커다란 환희 속에서 자신의 시도를 확장해보았다.

남자가 예상했던 어려움 따위는 없었다. 그는 무리 없이 오른팔을 움직일  있게 되었고, 곧 상반신 전체도 그렇게 되었다. 자신의 성공에 고무된 남자가 성급하게 다리를 움직이려다가 다시 거꾸로 처박힐 뻔 한 것을 제외하면 아주 순조롭게 전신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러자마자 화장실로 뛰어가 호쾌하게 토하기 시작했다.



웩웩거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귀에 윙윙 울릴 지경이었지만 남자는 토하는 것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목 놓아 통곡하는 것 같은 토악질이었다.

그렇게 거의 반시간 동안 웩웩거린 끝에 남자는 토악질을 멈출 수 있었다.  안의 것들이 다 빠져나간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남자는 자신의 머릿속에 생각하나는 토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왜 살아있지?'

사람들이 살면서  번쯤 던져보는 질문이었지만 남자에게는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다. 남자는 구토로 인한 가슴을 뜯어내는 것 같은 통증과 지독한 혼란 속에서 생각을 가다듬었다. 손가락을 움직였을 때처럼.


'내가 살아있나? 그래, 살아있어. 그런데 어떻게? 나는 아지다하카를 죽이고…….'


한  방향이 잡히자 생각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 굴려나가기로 했다. 생각에 집중하자 가슴의 통증은 멀어져 갔다.


이윽고 남자가 주변을 한  돌아볼 여유를 얻었을 때 그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곳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곳이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돌아올  없는 곳이었다. 남자는 맹렬하게 자신이 이곳에 돌아와 있는 이유를 찾았고, 황당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사실이었기에 저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전세방이라고…….? 돌아온 거야? 십 년 전으로?"



남자는 자신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이 토해놓은 것을 밟고는 호쾌하게 뒤로 넘어갔다. 눈에서 불꽃이 확 튀나 싶더니 남자의 눈앞에 어둠이 닥쳐왔다.

깨진 뒤통수에서 보내오는 통증을 느끼기도 전에 남자는 그대로 기절했다.

***


정신을 차렸을  남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에게 욕을 몇 마디 퍼붓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뒤통수에 피가 흥건하고, 그렇게 된 원인이 밟고 넘어진 것이 자신의 토사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 치고는 꽤나 점잖은 반응이었다.

자신에게 욕을 다 퍼부은 후 남자는 다시금 뒤통수에 손을 대었다. 따끔한 통증이 내달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손에 묻어난 피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몇 년 만에 보는 '증발하지 않는' 자신의 피였다.


플레이어로 각성하고  년.


수많은 싸움이 있었고, 상처도 수없이 입었지만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흘러내린 피로 엉망이 된 몰골은 다른 세계 이야기였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의 정점에 섰던 남자에게 있어서 흘러내리는 피는 낯설다 못해 어색한 존재였다.

질병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면역성과 웬만한 상처로 인한 출혈은 눈 깜빡 할 사이에 멈추며 흘린 피는 순식간에 증발한다. 플레이어가 괴물 취급받게 되는데 큰 일조한 요인들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 플레이어들 중에서 재생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그러니 아물지 않는 상처와 흘러내리지 않는 피를 남자가 낯설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낯섦은 남자에게 기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남자는 한참이나 피에 젖은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피가 말라붙자 남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토사물로 엉망인 화장실을 대충 정리한 남자는 수건으로 뒤통수를 꾹 누른 상태로 자신이 일어난 방으로 향했다. 피를 씻어내지 않아서 볼썽사나운 모습이었지만 남자의 관심은 다른 곳에 쏠려있었다.


좁다 못해 옹색해 보이는 방에 도달하자 남자는 하나뿐인 수납장으로 달려들었다. 피 묻은 오른손으로 한참을 뒤적거린 끝에 남자가 찾아낸 것은 해질 대로 해진 지갑이었다.

지갑을 쥔 남자의 오른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지갑을 펴려다 몇 번이고 바닥에 떨어뜨리고 나서야 집어 드는 것을 그만두고 지갑을 펼 수 있었다. 거의 지갑이 펼쳐지자마자 남자는 그것에 고개를 처박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고개를 처박은 지갑에는 사진이 하나 꽂혀있었다. 남자와 남자의 누나가 사이좋게 찍혀있는, 그의 누나가 죽던 날 잃어버린 사진이.



***


"2035년 10월 9일."

자신의 말을 똑똑히 알아들었지만 남자는 휴대폰 화면 상단의 글자들을 재차 소리 내어 읽었다.


"2035년 10월 9일."



그러자 현기증이 밀어닥쳤다.


돌아왔다. 10년 전으로. 누나가 살아있었던, 인류가 몰락을 길을 걷기 전인  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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