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8화 (588/604)

“그건 양립하기 힘든 특성인데….”

데이지를 제외하면 다른 가디언들 역시 두 개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실새삼은 공격형 메인에 지원형 특성을 서브로, 포인세티아는 지원형 메인에 공격형 특성을 서브로, 메스키트는 방어형 메인에 지원형 특성을 서브로 가지고 있었다.

가디언다운 사기급 특성이었으나 지원형 특성은 서브로 잘 붙을 수 있을 만큼 융화되기 적합하다는 특징이 있었으나 전혀 다른 두 특성이 함께 붙는 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한 특성에 집중할 수 있는 턴 오버 특성이 존재했던 거고.

“난 가능하지.”

“맹그로브는 가능해!”

“어쨌든… 아, 둘 다 회복형 드라이어드였기 때문이구나.”

포인세티아는 특이점을 발견한 후 박수를 한 번 짝 소리가 나게 쳤다.

“그래, 아무래도 저 불은 회복형 특성을 가진 드라이어드만 공격이 가능한 걸로 보인다.”

보스급 불은 상황 억제력을 야기할 만큼 특별한 기술을 사용할 줄 알았다. 특정 직업의 능력이 봉쇄당하는 건 가막살나무의 군락지에서도 비슷하게 겪어 본 적이 있었다.

“가디언이라도 예외 없이?”

“저 불이 수많은 드라이어드를 삼켜 그만큼 수많은 능력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면역 체계를 갖게 된 걸지도 모르겠군.”

그 뒤로 우린 나머지 세 개의 불에도 차례로 공격을 가해 이 가설이 맞음을 확인했다.

내가 가진 드라이어드들만으로 특성을 나눠 따로 공격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4개의 문이 동시에 공격을 받자 회복형 불에 집중되어 있던 도깨비불이 사라지는 걸 발견했다.

“저건 아무래도 버프가 맞는 거 같은데… 데이지, 그쪽 공격을 잠시 바곳과 실새삼에게 맡기고….”

혹시나 싶어 데이지에게 다시 회복형 불을 공격해 볼 것을 제안했다.

“네!”

데이지는 곧바로 공격 타깃을 돌렸다.

그러자 공격과 동시에 폭발이 일어나며 기술이 먹히지 않았던 이전과 달리, 데이지의 기술이 온전히 통하는 걸 확인했다.

최악의 상황엔 네 개의 문을 각각 특성별로 공략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했었다. 아무래도 방어형과 회복형은 공격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가 부족한 편인 데다 공격력도 떨어지니까.

네 개의 문을 동시에 공략한다면 한 개의 문에 집중되던 버프가 걷혀 다른 특성도 공격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경우 좀 더 자유로운 특성 조합을 운용해 공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지만, 안타깝게도 이로 인해 킹의 패턴이 달라졌다.

“이번엔 내 기술이 먹히지 않아. 회복도 통하지 않고.”

엘더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깜짝 놀라 엘더를 보니 그의 주위에 한눈에 봐도 불길해 보이는 도깨비불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디버프를 받은 것이다.

“이런, 공격을 멈추거라!”

공격형 불을 맡고 있던 실새삼이 갑작스레 바곳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바곳의 공격은 데이지처럼 끊고자 할 때 곧바로 끊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공격은 지속적으로 대미지를 쌓는 유형이었기 때문이다.

콰르릉! 마치 번개가 치는 듯한 굉음이 들렸고 바곳이 서 있던 자리에 새까만 재가 가득 뿜어져 나왔다. 급한 대로 실새삼이 줄기를 사용해 바곳을 끌어냈는데, 이미 그는 타격을 받은 후였다.

바곳의 머리 위엔 잿가루로 이루어진 새까만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는데, 마치 장마철 먹구름이 가득 낀 우중충한 하늘을 보는 듯했다.

“윽….”

바곳의 눈가가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무슨 일이야?”

“공격이 되돌아왔다.”

실새삼이 심각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고 바곳은 즉시 무기를 뒤집어 회복형으로 턴 오버했다.

“공격 반사? 무슨 말도 안 되는….”

만약 바곳의 공격이 반사됐다면 그는 자신의 디버프 공격에 피해를 입었다는 말이었고, 이를 가장 잘 회복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전 괜찮아요.”

의연한 척하지만 본인의 공격력이 좀 강해야지…. 대미지가 그대로 반사되는 성질이라면 공격력이 강할수록 불리했다. 즉, 공격형 드라이어드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기술이란 뜻이었다.

다행히 바곳은 스스로를 회복하며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회복형 불은 회복형 드라이어드의 기술을 봉쇄하고, 공격형 불은 공격형 드라이어드의 대미지를 반사시킨다니….”

공격 반사라면 실새삼이 은둔자의 정원에서 비슷한 기술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공격한 자의 스킬을 훔쳐 그대로 되돌려 주는 방식이었지만.

본인이 사용해 본 유형이니 알아차리는 것도 빨랐는지, 실새삼은 완전히 공격을 멈춘 채 못마땅하다는 얼굴을 했다. 마치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줄기들을 가지고 놀며 저걸 어떻게 혼내 줘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둘이 저렇다면 나머지도….”

남은 방어형과 지원형 불도 문제가 있을 게 분명했다.

“뒤로 빠지겠습니다.”

역시나 문제가 생겼는지 가막살나무가 메스키트를 내버려 둔 채 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쪽은 무슨 일이야?”

남겨진 메스키트의 모습도 좋지 않아 보였는데, 그녀의 주변엔 바곳보다 훨씬 많은 잿가루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방어형 불과 기다란 줄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불로 이루어진 줄이 마치 거미줄처럼 그녀의 팔과 다리에 얽매여 있었다.

“아군이 공격한 대미지까지 제가 전부 받고 있어요.”

그녀의 말에 가막살나무를 보니 미안하다는 표정이 가득해 보였다.

“팀 킬이 가능해졌다고…?”

본래 팀으로 묶인 아군의 공격은 팀에게 전혀 해를 입히지 않았다. 그런데 아군의 공격을 받는다?

탱커의 스킬 중엔 아군이 받는 대미지를 자신에게 집중시켜 대신 받는 스킬이 존재했는데, 이 경우 어이없게도 역전 현상이 일어나 적이 받는 대미지를 자신이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럼 메스키트 본인의 공격은?”

“그건 괜찮아 보이는군요.”

그렇다면 방어형 불은 공격 반사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었다.

“이래선 해치울 수 없겠어요.”

메스키트가 아군의 공격까지 받게 되었으니 그쪽에 팀이 가세할 순 없었다. 그렇다면 메스키트 홀로 방어형 불을 해치워야 하는데, 그녀가 부정적으로 말하는 걸 보니 단독으로 해치우는 건 많이 어려워 보였다.

“혼자서 상대하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해치울 순 있으나 오래 걸린다. 그러나 우리에겐 많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지원형은?”

내 드라이어드 중 지원형이라 분류할 수 있는 건 포인세티아뿐이었기에 그녀 홀로 공략 중이었다. 마거리트도 지원형이었다는 생각에 일순 가슴이 아팠지만 애써 그녀 생각을 떨쳐 냈다.

“아이참….”

불만이 가득한 포인세티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들이 진짜!”

황급히 그쪽을 살피니 이상하게 지원형 불의 문이 재가동을 시작한 게 보였다. 다시 불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수가 늘어나! 더구나 늘어난 녀석들이 전부 내 기술을 흉내 내는 기분이야. 몸도 무거워진 느낌이고.”

“추가로 튀어나온 녀석들만 해치우고 물러서자. 이대론 답이 없을 거 같아.”

내 말에 포인세티아는 열이 잔뜩 오른 얼굴로 물러났고, 뒤로 빠져 있던 가막살나무가 재빠르게 잡몹들의 어그로를 가져갔다.

지원형은 머릿수를 늘려 버프를 흉내 낼 뿐만 아니라 디버프도 거는 걸까?

“다들 일단 후퇴하자. 망할….”

결국 나 홀로 킹을 상대하는 건 무리란 것과 킹을 제대로 상대하려면 재정비가 필요하단 걸 깨닫고 후퇴하게 된 것이다.

“퇴로를 열게요!”

사실 지금 킹만 온전히 상대할 수 있다면 남아서 전략을 궁리해 볼 텐데, 주변의 불들이 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적어도 보스를 상대할 동안 잡몹을 해치워 줄 다른 전력도 필요하단 소리였다.

“좀 멀지만 임시 처소로 돌아가야겠어.”

아쉽지만 불이 더 몰려오기 전에 등을 돌린 채 도망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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