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전이라 하더라도 이미 망해 버린 도시에 대한 정보를 찾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주변에 물어볼 사람 하나 없는 데다 잘 보존된 기록 또한 찾기 어려운 게 현 상황이었다.
“먼저 내부 지도를 만들어 보자.”
운 좋게 도시 중심부까지 진출했을 때를 대비한 도주로와 만일에 상황에서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처 확보 등이 지도를 만드는 이유였다.
우리들이 직접 내부를 살피는 건 무리였지만 드라이어드들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동성이 좋은 드라이어드들은 드루이드라는 짐을 지지 않는 한 빠르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 내부 수색에 적격이었다. 데이지를 필두로 포인세티아와 칼미아, 페리윙클이 수색 부대로 선정되었다.
“다들 도시 내부를 살피고 주의 사항이 있다면 기억해 줘.”
4그루의 드라이어드들이 각각 동서남북을 기준으로 도시에 진입하여 적의 집중력을 약화시키고 효율적으로 수색할 예정이었다. 이중 가장 기동성이 뛰어난 데이지가 나와 정반대 방향에서부터 진입하는 걸로 결정되었다.
“안전이 제일이야. 무슨 일이 생긴다면 곧바로 돌아와야 해.”
“명심할게요.”
데이지가 몸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땅을 밟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겠어.”
포인세티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비교적 높은 건물들을 눈에 담았다.
“맡겨만 주세요! 이 기회에 제이 님께 제대로 점수를 따 보이겠어요!”
“아서라. 가서 사고나 치지 마.”
기합이 잔뜩 들어간 칼미아가 나를 보며 눈을 빛냈고 이를 페리윙클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시들링의 옆에서 푼수 같은 모습을 자주 보여 준 드라이어드들이지만 이중 가장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었다. 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모험에 뛰어들어 산전수전을 다 겪어 본 드라이어드들이기에 알아서 잘할 거란 믿음이 있었다.
함께 움직이지만 분리된 구역에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단독 임무나 다름없었다. 이는 위기가 생겨도 도움 없이 스스로 대처해야 한다는 걸 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리스 파티가 여기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드루이드를 향한 과한 애정 표현으로 사사건건 사고를 치지만 도깨비바늘 드라이어드의 능력은 팀이 멀리 떨어져서 동시 작전을 벌일 때 상당히 유용했기 때문이다.
노토스의 소나무 드라이어드들이 있다면 단번에 지리를 파악할 확률이 높아서 상당수의 과정이 생략될 것이다. 또한 운이 좋다면 지뢰의 위치까지 한 번에 탐지해 냈겠지.
역시 무리해서 모두를 데려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애쉬를 보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진다.
이리스는 사리 분별을 잘하지만 한편으론 과하게 다혈질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옆에서 부채질하는 제퍼까지 낀다면 진작 애쉬를 상대로 큰 싸움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과묵하지만 신념이 강한 노토스가 싸움에 가세할 확률이 높았고 헤르마는 언제나처럼 방관하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겠지.
고개를 흔들어 그들에 대한 생각을 잊고 현재에 집중했다.
“민들레들은 상공을 살펴 줘.”
민들레 드라이어드들의 꽃씨 퍼뜨리기 기술도 이런 때 활용하기 좋았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가벼운 꽃씨들은 지뢰를 밟을 위험도 없었고 적에게 발각될 위험도 낮았다. 기동 부대가 지상에서 수색을 펼치는 동안 민들레 아이들은 상공에서 탐지 활동을 벌이면 됐다.
내부 지도를 대강 완성하면 실새삼이 힘이 닿는 범위까지 줄기를 퍼뜨려 지뢰 위치를 체크한 후 지도를 업데이트한다. 계획대로만 한다면 적어도 우리가 활동할 필드에 대한 정보를 숙지할 수 있었다.
드라이어드들이 수색 활동을 할 동안 우리는 손 놓고 기다리진 않았다. 전투의 주요 전력을 수색으로 돌린 만큼 그에 따라 생긴 빈 구멍을 메꿔야만 했다.
애석하게도 공격형 셋에 지원형 하나, 더구나 회복 서포트가 가능한 민들레들이 빠진 터라 그 차이는 절실하게 와 닿았다.
주위에 우리가 숨을 곳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드라이어드들이 도시에서 활동 중이니 거리상 내버려 두고 멀리 갈 수도 없었다. 그러니 우릴 발견하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불을 전부 상대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루의 절반을 내부 지도를 만드는데 소요했다.
수색을 나선 드라이어드들은 짧은 간격으로 주인에게 돌아와 보고를 했다. 지정한 시간을 넘어서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면 위험에 빠진 것으로 간주, 구출팀을 보내는 전략을 썼는데 최악의 경우는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역시 지켜야 할 드루이드가 없다 보니 드라이어드들은 기량을 최대한 펼쳐 뛰어난 기동성을 보여 주었다.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각자에게 지리가 익숙해져 더 시간이 단축될 뿐만 아니라….
“내가 간 방향에 도서관이 있어서 좀 살펴봤는데 이런 걸 찾았어. 건물은 다 타 버렸는데 그 안에 운 좋게 보존된 몇 가지 책들이 있더라고. 지도라도 있었다면 좋을 텐데 책은 가죽이나 아주 두꺼운 표지가 있는 것들만 겨우 살아남은 와중에 종이들이 멀쩡할 리가 없지. 다 가져올 순 없으니 최대한 도움이 될 만한 걸로 주워 왔는데….”
포인세티아가 우리 앞에 책을 한 아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제가 간 방향엔 1번째 테라리움의 주둔 부대 숙소가 있었어요. 짐을 전부 챙겨서 철수한 건 아니더라고요. 저도 그래서 도움이 될까 싶어서 가져왔어요! 위험한 일은 안 했어요!”
데이지 역시 재가 거뭇거뭇 묻은 꾸러미를 내려놓으며 해맑게 웃었다.
“제 쪽엔 테라리움의 주요 인사들의 저택들이 다수 포진된 구역이었어요. 일반 주민들의 집과는 테가 다르니 한눈에 알겠더라고요. 대부분 반파되었지만 혹시나 해서…. 물론 도둑질은 나쁜 거고 시들링이 그런 짓을 벌이는 애는 절대 아니지만 주인이 없으니까 도둑질은 아니지 않을까요? 제가 한 행동은 가택 침입죄도 아니에요! 금품 같은 건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어요!”
칼미아가 필사적으로 날 향해 변명했다.
“제가 간 곳은 평범한 주민들의 거주구에 상점 거리가 끼어 있어서 큰 소득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건물이 무너지며 안의 비밀 구역들이 드러난 곳들이 몇 있더라고요. 본래 값진 정보는 그런 곳에서 나오잖아요?”
페리윙클이 음습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부 수색을 하라고 했더니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정보가 될 만한 모든 것들을 주워오기에 이르렀다. 하나가 시작하니 다른 이들 역시 질 수 없다는 식으로 더 가져오는 식이었다. 그렇게 모아온 것들을 우리 앞에 늘어놓고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와 같은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솔직히 예상외의 수익이라 기뻤지만 한편으론 체류 시간이 길어질수록 위험에 노출될 확률도 높아지기에 걱정은 됐다.
그들이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게임에서 영웅들을 탐색 수행에 보내 보상을 얻는 콘텐츠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맵도 뚫고 아이템도 얻고 스토리도 여는….
“다들 아주 잘했어!”
망한 도시라 정보를 얻기 힘들 거란 걱정은 이제 안녕이었다. 아직 가져온 것들을 모두 살펴보지 못했기에 쓸만한 정보가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지만, 드라이어드들이 수행을 통해 정보를 물어오는 방식은 후에 또 써먹을 수 있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투가 소강상태로 진입하여 겨우 틈이 생기면 쉬는 것보다 드라이어드들이 가져온 자료들을 살폈다.
포인세티아가 가져온 도서관 자료는 101번째 테라리움의 역사와 환경에 대해 이해하기 좋았다. 101번째 테라리움은 단순히 100번대의 마지막 테라리움이라는 상징성에 그치지 않았다. 과거 필드의 가디언을 배출한 테라리움인만큼 번성했던 테라리움인 건 확실했다. 다만 오랜 시간 뒤번대로 머물다 보니 현재엔 그 영광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빛이 바래 버렸다.
“101번째도 해안 테라리움 연합이었다고?”
놀라운 점은 이곳 또한 해안 테라리움 연합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건데, 지금은 사방이 황무지였지만 과거엔 이곳까지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불에 의해 바다의 면적이 축소될 정도라니…. 불에 의한 멸망이 가까워지면 나중엔 바다가 완전히 사라지기라도 하는 건 아닐까?
101번째 테라리움은 과거 태양의 보석 중 3월의 태양이 맺히는 젊음의 아쿠아마린의 생산지이기도 했다. 아쿠아마린은 태양의 보석들 중 유일하게 특정 조건이 만족되어야 했는데 그게 바로 해안 테라리움이라는 지리적 조건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러모로 화려한 역사를 간직했던 테라리움이라는 걸 알게 되자 더욱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땅을 파보면 아쿠아마린이 나오는 거 아니야? 이거 꽤나 쓸만한 정보인데.”
이를 다르게 해석하여 입맛을 다시는 사람도 있지만.
에우노미아와 디케, 에이레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들의 고향이 멸망한 데에는 인페르노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그녀들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귀걸이가 전란의 시초였는데, 귀걸이에 9월의 태양이 맺히는 진실의 사파이어가 달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들의 고향이 사파이어 생산지라는 오해를 받게 되었고, 인페르노에선 이를 차지하기 위해 마을을 점령하고 탄광을 만들었다.
하지만 허위 광고였음을 알게 된 이들이 홧김에 벌인 것인지, 아니면 실수로 발생한 산업 재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그녀들이 과거 살고 있던 집은 물론 부모님의 목숨을 통째로 잃게 되었다. 자매들이 생이별하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태양의 보석을 얻기 위해 잔혹한 짓을 벌인 과거가 있는 만큼 애쉬의 발언이 곱게 들릴 리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가서 파 보는 게 어때? 네 두 손에 흙먼지를 묻혀 가며 땅을 파는 모습이 제법 볼만한 구경거리일 텐데.”
“내 손으로 그런 걸 할 리가 있나.”
정말로 인페르노를 데려와 채굴 시설을 갖출 것처럼 보여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데이지가 가져온 주둔 부대의 자료는 그들이 주둔하며 남긴 일기와 같은 기록들이 많아 테라리움의 바로 직전 상태에 대해 이해하기 좋았다. 거기엔 미미르의 입을 통해 들었던 마약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도 적혀 있었다.
마약 사건을 알리고 싶지 않아 하던 1번째 테라리움의 태도로 보아 이 자료들이 발견되었다면 그들이 분명 파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고통을 잊게 해 주는 약. 테라리움에서 마약은 그렇게 퍼져 나갔다.
변두리나 다름없는 테라리움에 주둔한 사람들에게 의료품은 항상 부족했다. 길이 위험하여 물자 운송을 기피하는 마차들이 많다 보니 긴 텀을 두고 한 번에 지원을 받았다. 마치 추운 날씨 때문에 거의 달에 한두 번 정도만 지원을 받던 스노우 필드의 고산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곳은 쉴 새 없이 불과의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므로 운송 일정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의료품 없이 부상을 견뎌야만 했다. 부상자들은 자꾸 늘어나지만 크게 다쳐도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될 수 없고 설상가상으로 생필품도 동이 나고….
힘겨운 생활을 이어 나가던 그들에게 누군가 검은 손을 내밀었다.
[처음엔 전쟁터에 찾아온 천사라고 생각했다. 모험가들의 발길이 끊긴 이곳에 사람들을 돕겠다며 자청하여 찾아온 이가 있었다. 그 드루이드는 솔선수범으로 부상자들을 돌봤고 힘든 기색 한 번 내지 않았다.]
큰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 마약을 처음 유통한 사람은 전투를 지원하러 온 드루이드 행세를 했다.
[어떤 의료 자격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자가 돌본 환자들은 금방 병상을 털고 일어났다. 일주일 내내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끙끙 앓던 이가 단 하루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걸 봤다. 그러니 우린 그 자를 의심할 수도 추궁할 수도 없었다. 설상 그 자가 떠나기라도 한다면 부상자들은 다시 지옥 같은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
어쩌면 카수스일 확률이 높은 의문의 드루이드는 병을 치료해 주는 척 환자들에게 접근해 마약을 사용했고 그렇게 천천히 이곳의 모든 이들을 중독시킨 듯했다.
일기와 기록들을 더 살펴봤는데, 치료 행위는 드라이어드의 힘을 사용하거나 직접 제조한 약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이 제조한 약이 101번째 테라리움을 넘어 48번째 테라리움까지 흘러가게 된 것이다.
흘러가게 된 경위는 의외로 단순했다.
테라리움에 지원 물자를 실은 마차가 오면 이곳 사람들은 수고비를 더 얹어 주었다. 이미 값을 모두 지불했기에 더 돈을 낼 필요 없었지만 일종의 관습이었다. 테라리움에 있는 자들의 생명 줄은 마차를 모는 이들에게 걸려 있었으니 뇌물의 개념으로 수고비를 더 주어 이탈을 방지하려던 거였다.
그리고 그 수고비 대신 건넨 것이 바로 다량의 마약들이었다.
내부엔 이미 마약임을 눈치챈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때가 늦어 버렸고 마침내 불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참변이 일어났다.
주둔 중이던 사람들을 쫓아내면 그들의 보호로 겨우겨우 테라리움에 묵고 있던 사람들도 떠나게 되고… 사실상 101번째 테라리움은 완전히 비어 버리게 된다. 의문의 드루이드는 바로 이 결과를 노렸을 것이다.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가 할 일은… 그의 위치가 현재 과수원이란 것만으로도 모든 답이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101번째 세계수 가지에서 가디언을 불러내려는 거였다.
“드라이어드의 힘이라고 했지. 카수스는 설마 카나비스와 같은 힘을 가진 드라이어드도 데리고 있는 건가?”
마약의 힘을 가진 드라이어드가 필드의 가디언인 걸까? 그렇다면 무척이나 까다로운 상대가 될 테지만 다행히도 내겐 바곳이 있었다. 초기엔 카나비스의 힘도 다 막지 못할 정도로 회복형 특성의 힘을 다 깨우치지 못했던 바곳이, 이제는 어엿하게 자라 디버프 해제 능력을 마음껏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만약 내게 바곳이 없고 카수스에게 그런 능력을 가진 드라이어드가 있다는 걸 모르는 상태였다면 아주 끔찍한 전투가 될 뻔했다.
난 주둔 부대의 기록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시들링과 애쉬에게 알려 주었다.
“마약성 드라이어드라….”
“생각해보니 인페르노가 손을 대지 않는 범죄가 거의 없다시피 하네. 너희 조직은 마약도 취급하잖아.”
인페르노와 최초로 연결 고리가 생겼던 카나비스 사건. 그 사건으로 인해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자들 중 신체 부위 한 곳에 상징적인 화상 자국이 있다는 공통점에 대해서 듣게 되었고, 과거 인페르노에 대해 자세히 알기 전까진 정보통으로 써먹던 칼롱을 매수하기도 했었다.
이젠 조직의 말단인 칼롱보다 내가 더 인페르노에 대해 많이 알게 되어 그를 부를 일이 없어졌다. 말벌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지금 그에게 다시 연락을 취할 방법이 아예 없기도 했다.
“자금을 모으기 위해선 할 수 있는 건 다 하자는 주의지.”
태연하게 말하는 애쉬를 보며 저 자식만큼은 어떻게든 죗값을 치르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둔 부대의 기록물 중 몇 가지는 나중을 위해 따로 챙겨 넣었다.
다음은 주요 인사들의 집을 털어 온 칼미아의 전리품을 확인해 볼 차례였다. 그녀가 가져온 자료엔 꽤나 놀라운 정보가 실려 있었다.
나는 낮은 거목으로 인해 1번째 테라리움의 주요 건물들이 비밀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외부로 새어 나간다면 치명적일 수 있는 비밀로 특히나 여기에 있는 애쉬 같은 자가 절대 알아선 안 되는 정보기도 했다.
그런데 101번째 테라리움은 오랫동안 1번째 테라리움이 위시한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들의 영향을 받아 테라리움 내 주요 건물들이 하나로 이어진 통로를 만든 것이다.
지상에 굳이 다니기 힘들 정도로 지뢰를 깐 이유가 있었다. 지하로 다니면 되기 때문이었다.
드라이어드들이 도시를 수색해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이미 몇 개 통로는 붕괴하여 이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 파괴가 심해 우리가 도저히 다니기 힘들 만한 구역은 체크해 달라고 했는데, 그 구역 아래로 지나가는 통로가 제법 되었다.
더구나 외부 침입으로 인해 지뢰가 실시간으로 터지고 있는 지금, 그나마 남아 있던 통로마저 계속해서 막히고 있을 터였다.
이 정보를 잘 숙지한 후 제대로 된 통로를 찾게 된다면, 그리고 운이 겹친다면 과수원까지 들키지 않고 이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둔 부대에 침투하여 괴멸까지 몰고 갔을 이가 이 정보를 모를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 외의 정보들은 101번째 테라리움의 행정들에 관한 정보들이기에 지금 상황에선 그다지 쓸모없는 정보이기도 했다. 행정 관련 정보들은 보안을 걸고 엄중하게 다뤄야 하는 게 맞지만 이미 망해 버린 테라리움이니 뭘 어떻게 해 볼 구실도 없는 거다.
페리윙클이 비밀 거처에서 찾아온 정보 중엔 칼미아의 정보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작성 시기가 유독 제각각이었는데, 어떤 것들은 종이가 누레지고 잉크의 흔적이 거의 다 사라졌을 정도로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자료들을 통해 정말 의외의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건….”
여긴 망하기 전까진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전통 있는 테라리움이었다. 태양의 보석 산출지이니 테라리움 내 자금이 풍족하여 영화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고 수많은 연금술사들을 영입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다만 멀리 테라리움 안을 살펴도 우뚝 솟은 연금탑이 없는 걸 보니 아주 오래 전 일임이 분명하다.
비밀 거처에서 찾은 정보는 테라리움 내 비밀 결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드루이드와 연금술사로 이루어진 비밀 결사단의 목표는… 세계수 가지의 봉인이었다.
[먼 훗날을 위해 세계수 가지에 결계를 쳐 봉인해야 한다. 그리고 테라리움이 유지되는 한 후대들이 대대손손 이 봉인을 지켜야만 한다.]
[행정 관리원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를 반대했지만 이웃 테라리움들이 멸망 수순을 밟는 걸 보며 결국 이에 동의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테라리움의 멸망을 직감했고 세계수 가지를 봉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만 이 봉인 의도가 상당히 모호했다.
보통은 세계수 가지는 아주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지키기 위해 봉인한다고 생각하지만….
침입해 오는 몬스터 불을 적으로 지칭한 건지 아니면 기타 다른 요인들을 지칭한 건지 알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모든 자료들이 전반적으로 도저히 ‘불’만을 경계한다는 느낌을 주진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봉인이 주는 어감 역시 다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봉인은 주로 악한 것이 더 활동하지 못하도록 가둬 둘 때 사용하는 단어였다. 차단의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었다. 그런 단어를 축복을 선사하는 세계수의 가지에 사용하다니….
어쨌든 가지를 봉인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연구에 매달렸고 마침내 그들은 성과를 보였다.
[태양의 보석과 태양의 가호가 있다면….]
기록을 읽다가 과수원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봉인은 성공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는 건 지금 과수원에 있는 세계수 가지는 결계를 이용해 봉인된 상태라는 걸까? 가지는 아직 죽지 않았고 동면과 같은 상태라면?
방식에 대한 부분은 너무 오래된 기록이다 보니 잉크가 사라져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봉인에 태양의 보석과 태양의 가호를 이용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태양의 가호, 이곳에서 이걸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식물이 최초로 군락지를 이룬 곳으로, 식물의 최초 모체가 이룩해 낸 신화의 근원지를 태초의 군락지라고 부른다. 그곳에선 오랜 세월 태양의 가호가 머무는데 이걸 태양의 보석이 아닌 텅 빈 보석에 담아내는 걸 장비 강화라고 부른다.
난 인삼 드라이어드의 태초의 군락지에서 태양의 가호를 보석에 담아냈다. 그곳의 가호가 가지는 힘은 무려 시간을 정지할 수 있는 힘이었다.
태양의 가호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정도에 따라 시간 정지처럼 놀라운 힘을 낼 수 있었다. 즉 이 테라리움은 그런 가호의 놀라운 힘을 십분 발휘해 봉인에 사용한 것이었다.
[태양의 가호를 담은 보석을 봉인석이라 일컬으며 ……한다면 봉인이 풀리기에….]
봉인이 결국 세계수 가지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내지 못했지만, 지금 세계수는 봉인 상태이며 이를 해제하기 위해선 태양의 가호가 담긴 보석 주물을 찾아내 뭔가를 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과수원에서 세계수 가지를 마주하고 있을 카수스가 이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