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0화 (5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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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수확제 당일이 되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세계수의 가지는 풍년이라 일컬을 정도로 수많은 드라이어드 열매를 맺었다.

수확제 시기가 되자 거짓말처럼 텅 빈 가지에 열매가 맺혔고, 밤을 새워 가며 기다리다 첫 열매를 마주했을 때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해냈다.’였다. 전부 불타 버렸던 테라리움을 성공적으로 재건했고 이제 정상적인 테라리움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이 모든 일을 결국 해내고 말았다는 내 자신이 뿌듯했다.

가장 먼저 열린 열매를 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내게 영혼의 COST는 충분하나 새로 드라이어드를 들이는 데에는 고민이 앞섰다. 앞으로 내 남은 자리는 최대한 필드의 가디언들을 영입하는 데 남겨 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걱정 없이 수확제를 진행할 수 있겠어요.”

나뿐만 아니라 보좌관들도 수확제가 다가오자 뜬눈으로 가지를 지켜봤었다. 은연중에 다들 가지에서 열매가 열리지 않으면 어쩌나 덜덜 떨었었다.

18번째 테라리움에서 감사가 내려와 가지를 살핀 후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불안을 잠재우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그 걱정이 전부 날아갔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수확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방문객들은 어느 정도라고 하나요? 다른 테라리움들과 비교해 보면….”

“20번대 테라리움 중에선 해안 테라리움 연합 쪽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것으로 추정 중입니다. 수확제의 타깃을 초보 드루이드들로 잡은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과수원의 가장 높은 층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미칠 듯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우리 과수원도 사람들이 무료 열매를 얻기 위해 3일 전부터 줄을 서려고 찾아왔었다. 열정은 좋으나 괜한 고생으로 여겨져 우린 번호표를 발급해 그들의 수고를 덜어주었다.

번호표는 수확제가 열리기 하루 전 모두 동났지만 발걸음을 돌리려는 이들을 붙잡기 위해 많은 혜택을 마련해 뒀다.

28번째 테라리움은 내가 막 재건 당시 목표했던 대로, 뉴비들을 위한 초보자 마을이라는 방향성을 확고히 다잡기로 했다. 내가 <테라리움 어드벤처>에 도착한 직후 가장 필요했던 장소가 바로 이런 곳이었다.

먼저 수확제에 방문한 모든 초보 드루이드들에게 기념품으로 초보자 전용 장비 세트를 나눠 주었다. 수확제에 맞춰 우리 테라리움뿐만 아니라 이웃 테라리움들의 장비점에 미리 발주를 넣었었는데 다행히 수확제 당일 기념품으로 펑펑 뿌리고도 남을 다량의 장비들을 받아 볼 수 있었다.

초보자 마을에서 장비를 나눠 주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

이 때문에 무료 열매 배포를 놓쳤어도, 초보 드루이드들은 알뜰살뜰하게 모은 다이아를 우리 테라리움에서 열매 뽑기에 사용하기 위해 찾아와 주었다. 열매도 뽑고 장비도 얻고 일석이조를 노릴 수 있었으니까.

과수원 입구에 장비 배포 구역을 만들어 나눠 주었는데 장비를 갈아입고 기뻐하는 뉴비들을 보니 모험을 떠나기 위해 첫 장비를 마련했던 때가 떠올라 내가 다 설레는 기분이었다. 그날 샀던 나의 초보자 장비는 아직도 내 인벤토리 안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또 다른 혜택은, 열매 뽑기에서 레어 등급 미만의 드라이어드를 개화했고 보유 중인 드라이어드가 2그루 이하일 경우, 테라리움에 거주 중인 드라이어드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는 것이었다.

각각 특성에 맞춰 팀을 이루기 좋은 드라이어드를 소개해 주는 건데, 공격형 드라이어드를 개화했다면 회복형과 방어형을, 방어형에겐 공격형과 회복형을, 회복형에겐 방어형과 공격형을 소개해 주는 방식이었다. 물론 소개를 받을지는 드루이드의 선택이었지만 아직까지 이를 거절하는 드루이드는 없었다.

16번째 테라리움의 연금탑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드라이어드들과 은둔자의 섬에서 이주해 온 드라이어드들은 모두 야생의 상태로, 내 가드닝 스킬을 이용해 테라리움 자체에 영혼을 묶어 둔 상태였다. 하나 언제까지 이들을 모두 나 혼자 끌어안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들에겐 함께 모험을 떠날 드루이드가 필요했고 수확제야말로 인연을 찾아가기에 최적의 때였다.

특수하게 태어나고 자라난 드라이어드들은 교습소에서 교육을 받음으로써 결핍된 부분을 채워 나갔다. 인공 개량 드라이어드와 은둔자의 섬 드라이어드들은 공통적으로 사회화가 덜 되어 있는 게 문제였는데,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 임시 포레스트 형성이나 다름없는 무리 생활을 하며 버팀목 드라이어드들에게 배움을 받았다.

그중 여행을 떠나도 적합하다고 판정이 난, 즉 교습소를 졸업한 드라이어드들만이 이번 수확제에서 드루이드들과 영혼의 연결을 맺을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열매 뽑기에서 원하던 드라이어드를 뽑지 못했어도, 뽑은 드라이어드의 등급이 낮더라도 또 다른 드라이어드를 맞이할 수 있으니 분노하거나 절망하는 경우를 확연히 줄일 수 있었다.

특히나 과거 데이지가 겪었던 불상사가 또다시 일어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과수원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또 다른 혜택으로는 초보 드루이드들이 새롭게 맞이한 드라이어드와 합을 맞춰 볼 수 있도록 실전을 체험 및 연습을 위한 초보자 사냥터를 조성한 것이 있었다.

먼저 테라리움 밖에 방벽을 쌓고 약한 몬스터 불들을 끌어왔다. 28번째 테라리움 근처는 워낙 치안이 좋다 보니, 당장 밖에 나가도 이웃 테라리움까지 넘어가야 겨우 불을 만날 수 있기에 인공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밖에 없었다.

노련한 양성소 직원들이 사냥터를 관리하며 초보 드루이드들이 전투하는 걸 감독하고 팁도 전수해 주었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혜택과 더불어 드루이드 양성소 홍보 차원에서 교육 과정 맛보기를 제공하는 거나 다름없었는데, 그 덕분에 양성소 등록자들이 물밀듯이 몰려왔다는 보고도 받았다.

테라리움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이아 분수도 큰 시너지를 일으켰다. 일단 전투를 하다 드라이어드의 바크가 손상되면 곧바로 분수에 방문해 이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컸다.

랜드마크나 다름없는 모든 다이아 분수를 방문할 때마다 도장을 찍어 줬는데, 도장을 다 모으면 테라리움 내의 모든 상점에서 이용 가능한 할인 쿠폰으로 교환해 주었다.

드루이드들이 포션이나 비상식량과 같은 여행 물품을 구매하는데 부담을 덜어 주었는데, 대놓고 뿌릴 때보다 이벤트에 참여하여 쿠폰을 얻는 과정을 거쳐야 하다 보니 성취감이 따르기에 더 반응이 좋아 보였다.

테라리움에선 또한 전투 체험 외에도 용병 의뢰 체험도 제공하고 있었다. 정해진 수량만큼 불을 해치운 후 감독에게 확인을 받거나 마을 주민들의 소소한 의뢰를 해결해 주는 것과 같은 비교적 매우 쉬운 일들이었으나, 모험가의 기본이나 다름없는 퀘스트에 익숙해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모든 의뢰 체험 보상은 할인 쿠폰이나 여행에 필요한 각종 물품들로 구성되었다.

현재 28번째 테라리움은 튜토리얼 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콘텐츠들을 제공해 주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전부 내가 게임 속 튜토리얼에서 겪은 일들을 혜택화시켜 놓은 것이었다.

수확제를 맞아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들이나 수확제가 끝나더라도 적당히 제도화시켜 계속해서 초보자 마을 콘셉트를 밀고 나갈 예정이었다.

이젠 긴장을 잊고, 뿌듯한 마음으로 테라리움의 혜택을 양껏 즐기고 있는 초보자들을 바라봤다.

“저도 첫 모험의 시작을 이런 곳에서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 내 옆에 이리스와 제퍼가 다가왔다.

“모든 초보 드루이드들이 멘토 드루이드에게 배우거나 양성소에 다니진 않는 게 아쉬울 정도로 28번째 테라리움이 정석적인 교육의 장으로 느껴져요. 엄청 대단하네요.”

“솔직히 초보 시절을 힘들게 보낸 드루이드의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긴 한데….”

제퍼가 말을 하며 슬쩍 내 눈치를 봤다.

“뭐, 제가 좀 헤매긴 했거든요. 그래서 초보자 친화적인 테라리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 왔어요.”

게임의 튜토리얼이야말로 수많은 유저들의 데이터를 수집해 스타트를 위한 최적의 시스템을 꾸려 놓은 것이라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튜토리얼의 진행 방식이 다 거기서 거기인 이유가 그 방식이 뉴비들을 가르치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튜토리얼은 학습 외에 다른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게임을 막 시작한 유저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향후 유저가 게임을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중요 포인트라고 볼 수 있었다.

수많은 게임이 범람하고 있기에 유저들은 많은 시간을 쏟지 않는다. 처음 10분만으로 게임을 삭제, 환불하고 다른 게임을 하러 갈지 결정되는 거다.

즉 그 부분이 게임의 첫인상이나 다름없기에 많은 게임들이 상당히 공을 들이는데, 28번째 테라리움에서 제공하는 일련의 과정들도 이 의미가 적당히 내포되어 있었다.

처음 하는 경험은 상당히 중요하다. 초보 드루이드들은 이렇게 미리 경험을 함으로써 앞으로의 모험에 대한 불안을 줄이고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런 그들이 쑥쑥 자라 다시 28번째 테라리움에 고향처럼 돌아온다면 테라리움은 지속 방문객을 갖게 되므로 장기적으로 보면 아주 이득이었다.

“제 생각엔 1번째 테라리움에서 상을 줘야 한다고 봐요. 이런 건 한 자릿수 테라리움들이 대표로 나서서 해야 되는 것들이 아닌가요? 앞으로 자라날 미래의 드루이드들을 위해 이렇게나 노력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어선 안 되죠.”

이리스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날 띄우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따지고 보자면 자기만족이나 다름없어서 그렇게까지 칭찬하지 않으셔도 돼요. 거기다 다이아가 한두 개 드는 일들이 아니다 보니 다른 테라리움에선 쉽사리 행할 순 없겠죠. 그저 다이아가 좀 더 많은 제가 꿈을 실현했다 생각하고 웃어넘겨 주세요.”

다른 테라리움들이 이걸 따라 하려면 다이아가 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손해 볼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사고만 안 생겼으면 좋겠다….”

수확제 때는 경비 인력을 평소보다 배는 늘렸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만큼 사건 사고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들링도 이에 동원되어 한창 바쁜 상태였다.

보통은 테라리움 내부 경비도 드라이어드들이 겸임하고 있었는데, 이젠 하나둘 영혼의 연결을 맺고 떠나는 실정이다 보니 외부에서 용병 길드를 섭외한 상태였다. 이번에 행사 경비 전문 길드도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확제 기간이라 모든 테라리움에서 수요가 늘다 보니 고용비가 상당히 뛰어서 다음 수확제가 오기 전까지 대체 인력을 마련해 놔야 적자를 줄일 수 있을 거다.

“내일부터는 제이 님도 밖으로 나가실 거죠?”

“네, 지금은 월렛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네요. 원래 첫날이 제일 바쁜 법이니까…. 모든 시스템들이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게 확인된 후엔 저도 직접 살펴보러 나가려고요.”

과수원 안에서만 지켜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당장 자리를 비우면 연락이 안 되기 때문에 보좌관과 직원들만 죽어 나가는지라 바로바로 연락을 받을 수 있도록 과수원에서 상주 중이었다.

“그럼 데이트도 하시나요?”

이리스가 실실 웃음을 띠며 물었다.

“아뇨, 시들링은 더 부담 없이 양껏 부려 먹을 예정이에요.”

연애는 무슨. 근 며칠간 바빠서 얼굴 볼 시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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