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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로웰라 님을 드루이드님으로 착각하여 계속 스토킹하는 자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길드원분들은 이를 잡기 위해 미끼를 놓기로 했고요.”
“그랬지. 나를 죽일 정도로 증오하는 이가 대체 누굴까 정말 궁금했어. 인페르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이라면 로웰라가 알아차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야. 또한 이제는 애쉬가 나와의 계약 때문에 통제를 하고 있을 테니 더더욱 아니겠지.”
길드원들은 스토커가 여전히 로웰라를 나라고 착각하길 바랐다. 그래야 내가 안전히 여행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테라리움을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나 대신 로웰라의 곁을 지키며 더더욱 그런 행세를 했지.
그러다 그들은 스토커를 잡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로웰라가 언제까지나 대리 역할을 할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이대로라면 그녀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끼를 놓아 유인하겠다는 대략적인 계획은 들었는데….
“로웰라 님이, 아니 로웰라 님이 대리 역할을 하는 드루이드님이 그 자연 동굴을 시찰하러 가겠다는 정보를 일부러 뿌렸습니다. 테라리움에서 벗어난 먼 지역으로 잡으면 높은 확률로 미끼를 물 거라 생각하신 거죠. 그렇게 스토커를 꾀어낸 후 미리 잠복하고 있던 길드원분들이 사로잡으려고 했는데….”
위기에 몰리자 그자가 자폭을 했다고 한다. 드라이어드 간의 전투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스토커는 드루이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자의 어떤 드라이어드도 그자를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분명히 아티팩트가 존재했으나 그게 빛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이리스의 그날의 회상을 전달받길, 그렇게까지 호감도가 바닥으로 떨어진 드루이드와 드라이어드의 관계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드라이어드를 위시한 전투를 할 수 없으니 최후엔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방법을 택하고 만 것이다.
그의 몸엔 수많은 연금제 폭탄들이 갑옷처럼 둘러져 있었기에 폭발 위력이 대단했고, 그 여파로 자연 동굴의 입구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로웰라가 갇히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테라리움에서 잘 관리되고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동굴 주변에 식물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고 목재 더미도 꽤 많아서 화재가 크게 발생한 것이다.
그때 주변을 지나가던 드루이드들이 이를 보고 안에 있던 사람이 죽은 거라 확신하게 되었고 그것이 소문의 근원이 되었다.
“무너져 내린 바위들은 드라이어드들이 금방 치울 수 있었지만 화재가 너무 커서….”
안에 갇힌 로웰라가 화상이나 질식으로 죽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그녀를 구한 것은 놀랍게도….
“스텔라라는 베스탈리스가 구했어요. 놀랍게도 60번째 테라리움에서 탈주 중이었다고 하던데….”
“스텔라… 라고? 확실해?”
“네, 다들 안면이 있는 듯했습니다.”
60번째 테라리움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야 할 스텔라가 로웰라를 구했다고? 치명상을 입은 스텔라는 그녀만을 위해 만든 중환자실에서 십여 명의 의료진들에 의해 간신히 명을 유지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잠깐 눈을 뗀 사이 회복한 것도 모자라 그곳에서 도주하여 28번째 테라리움 근방까지 왔다니….
짧은 시간 동안 도주까지 가능할 정도로 회복한 그녀의 회복력에 놀랐고, 하필 그녀의 행선지가 28번째 테라리움의 근방인 것에 또 놀랐으며, 몹시 잔악한 모습을 보였던 그녀가 로웰라를 구했다는 말은 놀라다 못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째서 난 그녀가 탈주했다는 소식에 대해 전혀 듣지 못한 거지? 스텔라가 사라졌다면 60번째 테라리움엔 비상이 걸렸을 거다. 그곳이 이제 막 새롭게 정비 중이라 바쁘고 혼잡하긴 하겠지만, 중요 안건이 있다면 나와 벌을 이용해 직속 연락을 할 직원이 준비되어 있었다.
만에 하나 그 직원이 몰랐다 하더라도, 28번째 테라리움의 두 보좌관 중 한 명인 에이레네가 60번째 테라리움 전담 보좌관을 뽑을 때까지 부가적으로 그곳을 관리하고 있었으므로 연락책이 모자랐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에이레네에게 보고를 할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데다 에이레네가 이를 내게 알리지 않았을 리 또한 없으니까.
“그래서 지금 스텔라는… 아니 로웰라는… 아니 그….”
나는 혼란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마치 주변에 수십 개의 시한폭탄이 흩뿌려져 있는 느낌이다. 눈만 떼면 여기저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이 터져 나간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내가 라운보다 더 사건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아닐까?
“화재가 컸지만 베스탈리스가 불을 다루는 종족인 덕에 늦지 않게 로웰라 님을 구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로웰라 님께선 테라리움의 의료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시며 가벼운 화상을 입은 거 외엔 무사하십니다. 일반인이었으면 모를까, 그녀 역시 드루이드지 않습니까?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쾌차하실 겁니다.”
로웰라가 무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스텔라가 도주 중이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스텔라는 로웰라 님을 구한 후 가이아 길드원분들께 순순히 잡혔습니다. 탈주 중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투 시도 없이 바로 투항한 점이 이상하긴 하나 그런 상황에서 불필요한 전투가 일어나지 않은 건 다행이지요. 그자는 현재 테라리움의 드라이어드 교습소에 구금되어 있습니다. 과수원 다음으로 튼튼한 건물인 데다 사방에 드라이어드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탈출 시도는 불가할 겁니다.”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라 이 또한 하나의 계책이 아닐까 의심이 되네…. 28번째 테라리움으로 돌아간다면 곧바로 확인해 봐야겠어. 자폭한 범인의 신분은?”
“폭발 때문에 온전한 시신을 거두는 건 불가했고, 다만 마지막 목격자인 로웰라 님의 증언에 의해 몽타주가 만들어졌습니다. 몽타주를 가져오려고 했지만 더 중요한 안건이 있어 제가 깜박하고 말았네요. 지금 바로 가서 가져올까요?”
스텔라가 탈주하고 로웰라가 미끼 작전을 쓰다 다쳤으며 범인은 자폭한 상황에서 더 중요한 안건이 있다고?
“아니야. 이미 범인이 사망한 시점에서 신분을 밝히는 건 우선순위가 많이 떨어지긴 해. 그것보다… 더 중요한 안건이란 건 뭐야?”
“드루이드님의 연락 수단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벌 말입니다.”
“내 월렛에 문제가 생긴 것 말이야?”
“아뇨, 정확히는 드루이드님이 이용하시는 벌을 통한 모든 연락 수단이 문제가 생긴 듯합니다. 저희는 어쩌면 더 이상 드루이드님께서 벌을 이용하실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이한 이야기였다. 내가 벌을 못 쓴다니.
“확인이 늦었는데, 그동안 드루이드님과 벌을 이용한 연락이 장기간 되지 않는 문제가 있음을 몇몇 분들이 이미 인식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땅굴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내 핸드폰에 이상이 생겼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그때의 여파로 핸드폰에 깔린 앱과 다름없는 벌집도 덩달아 문제가 생겨 지금까지 복구가 되지 않은 거라 믿었다.
하나 데이지2가 말하기를 땅굴에서보다 더 오래전부터 벌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내 주변인들은 숱하게 내게 벌을 통해 연락을 보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워낙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나이다 보니 처음엔 바빠서 연락을 하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연락이 이어질 거라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보낸 벌이 아예 내게 도달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을 땐, 나 역시 벌이 보내지지 않음을 인식했을 때인 만큼 많이 늦어진 후였다.
“이미 보좌관님들은 양봉업자와 연금술사들을 불러 조언을 구하고 계셨던 듯합니다. 하지만 중간에 거미줄이 가로막지 않는 이상 벌이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은 없기에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셨고… 어쩌면 드루이드님께 문제가 생긴 걸지도 모른다는 결론이 내려지게 됐습니다.”
“내가 벌을 이용해 메시지를 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쪽에서도 벌을 보내지 못했을 줄이야.”
“보통은 암벌과 수벌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향해 다리에 묻는 꽃가루처럼, 메시지를 들고 날아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걸 이용해 양봉 연금이 발달했고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현재 드루이드님께는 이 공식이 전혀 적용되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벌이 드루이드님을 찾을 수 없을뿐더러 드루이드님 또한 벌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거부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혹시 내가 보유 중인 말벌에 필라가 만든 기생충이 심어져 있긴 한데, 이게 문제일까? 필라와도 이야기해 봤대?”
온갖 기상천외한 일을 해낼 수 있던 기생 말벌이었다. 어쩌면 루프의 기생충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걸 수도 있다.
“드루이드님께 가장 먼저 벌을 주신 분이 필라 님이시기에 당연히 이 논의에 참여하셨는데…. 그분은 인간들의 이론으로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없을 듯하니 아예 이해하려 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당연한 이론이 성립될 수 없다는 건 현실을 왜곡하는 외부의 힘이 작용하고 있을 거란 뜻이겠지요. 이를테면 신의 힘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 드라이어드들이 드라이어드로서 의견을 드리자면…. 문제의 원인이 세계수 같습니다.”
“세계수…?”
데이지2의 목소리에 약간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세계수는 만물을 창조하고 관장하는 신. 벌 또한 연금술이 결합되기 이전에 세계수의 창조물이나 다름없으니, 자연이라면 당연히 세계수를 따르고 세계수는 마음대로 자연을 조종할 수 있죠. 드루이드님께서 세계수가 제시한 길을 걷길 거부하고 반기를 드니….”
“어쩌면 본보기로 벌을 이용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자신이 만든 것들을 누리지 못하게 될 거라 경고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는 거지?”
데이지2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의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세계수의 묘목으로 태어난 영혼이면서 대리자의 길을 포기하고 동등한 신이 되어 대립의 길을 걷겠다고 선포했으니 세계수의 계획이 일그러졌을 것이다.
세계수의 뜻대로라면 나는 그 신이 안배한 대본대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고 끝내 그 신이 원하는 어떠한 목표에 도달했어야 한다.
그 길의 끝은 어쩌면 마거리트가 예언을 통해 본 엔딩이겠지.
생각해 보면 예상하지 못한 것이 미련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 세계는 결국 세계수가 만든 세계가 아닌가? 나는 아직은 세계의 구성원이나 다름없었고.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에 세계수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세계수가 비틀린 마음을 먹는다면, 나는 더 이상 세계가 생산해 내는 식량이나 물을 섭취할 수 없는 것부터, 심하면 땅을 딛고 서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신이 완전히 나를 거부하면 더 이상 이 세계에 내가 발붙일 곳이 존재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전대 노멀 필드의 가디언도 자신의 영역으로 선포하여 멋대로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인데, 온 세계가 자신의 영역인 세계수는 보다 더하겠지.
내가 항복하지 않는다면 벌 다음엔 무엇을 빼앗아 갈까? 테라리움? 펑펑 뿜어내는 다이아를 포기하면서까지 가지를 거둬 간다면?
“기존에 내가 이용하던 모든 시스템들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는 걸 염두에 둬야겠네.”
마치 게임에서 밴 처리 당한 유저처럼 말이다.
“일단 알겠어. 충격이 크긴 하지만 견뎌 내지 못한다면 애초에 세계수에 반하지 않았겠지. 오늘부로 벌을 이용하는 건 완전히 포기할게. 새 연락 방법을 찾을 때까지 번거롭겠지만 당분간 네가 내 연락 담당이 되어 줘.”
“네, 알겠습니다.”
난 침대에 앉아 차분히 세계수가 내게 보내는 경고에 대해 생각했다.
드라이어드를 빼앗아 갈 순 없겠지. 내 영혼 중 세계수의 축복이 심어진 부분인 제이를 떼어낸 후에 다들 내 영혼에 담았으니까. 본래는 세계수의 축복이 담긴 영혼의 한 조각을 형상화한 아티팩트의 색과 모양이 바뀐 건 이 때문일 테고.
밴 처리 당하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 이를테면 해킹과 유저 자체 업데이트인 모드와 같은 수단으로 내가 이 게임에 계속 남을 수 있는 방법 같은 걸 말이다.
“세계수가 치사하게 구는 건지 당연하게 구는 건지… 후….”
세계수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러자 곧바로 떠오르는 게 있으니… 바로 불이었다. 그 위대한 신이라도 세계를 침입해 오는 불은 막지 못했다. 어쩌면 돌파구는 불에 있는 걸지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28번째 테라리움까지 친히 찾아와 준 스텔라가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