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기사는 분명 가이아 길드의 마스터가 죽었다고 알리고 있었다.
혹시 동명의 길드가 아닌가 해도 아스키아 길드와 길드전을 치렀다거나 28번째 테라리움의 전속 길드라고 친절하게 부가 설명을 하니 우리 가이아 길드가 맞았다. 그리고 가이아 길드에 마스터라곤 나 하나뿐이고.
“이건… 나잖아요? 내가 죽었다고요? 그것도 날짜가… 이번 주네?”
“운 좋게 이번 발행일에 맞춰 가져온 소식지입니다. 역시 여기에 나오는 그 길드 마스터가 당신을 뜻하는 게 맞죠…? 아니, 이런 물음이 참 이상하긴 한데.”
“이상한 게 맞죠. 전 이렇게 살아 있는데.”
당황한 나를 향한 길드원의 시선엔 의심이 담겨 있었다. 하긴, 죽은 사람이 사실 살아 있다는 것보단 내가 길드 마스터를 사칭했다고 믿는 것이 더 일리 있을 것이다.
“어디서 발행한 소식지지? 47번째? 꽤 먼 곳의 테라리움 소식지까지 받아 보시네요.”
글로리아가 있는 44번째 테라리움이라면 모를까, 47번째는 아직까지 나와 연이 없는 테라리움이었다.
“대표적인 소식지 하나만 가져온 거지 다른 소식지들에도 같은 기사가 실려 있어요.”
“대체 왜…. 아,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일단 이리스와 연락을 해 봐야….”
난 멀쩡히 잘 살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죽었다는 기사가 여러 테라리움의 소식지에 실려 있다는 걸 내 길드원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내게 연락이 없을 리도, 허위 기사라면 막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 벌을 부르며 에르바 길드원에게 말했다.
“제가 사칭을 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 거 이해가 가요. 어쩌면 지금 상황에 차라리 가이아 길드의 마스터가 에르바 길드 룸에 방문했다는 소식이 아예 전해지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 사칭했다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될 수도 있겠죠.”
분명 이런 소식이 실리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 후 알려드릴게요. 아, 혹시 방을 빼라고 하셨나요?”
사칭죄가 작은 죄는 아니니 자신들을 속였다는 생각에 길드 룸에서 나가라고 할 수도 있었다.
“아닙니다. 그냥 알려드리라고만 전달받았습니다.”
“네, 감사해요. 당장 묵을 방을 찾을 시간은 없어서.”
이야기를 끝낸 에르바 길드원은 돌아갔다. 난 벌이 전달할 메시지를 고르는 동안 소식지에 실린 기사를 살폈다. 내 이름이 적혀 있진 않으나 모든 설명들이 나를 나타내고 있어,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단번에 알아볼 정도였다.
하지만 기사가 이상했다.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사망 원인에 대한 설명보단 누군가 내가 죽는 모습을 봤다고 제보했다는 게 기사 내용의 시작이었다. 더구나 사실을 확인하려 가이아 길드에 요청했으나 전부 묵묵부답이라고 하고.
보면 볼수록 단순 지라시에 불과한 기사 내용인데 여러 테라리움의 소식지에 실렸다는 건 내가 가진 유명세 때문인가?
가이아 길드 마스터와 생전 알고 지낸 지인들이 애도를….
문제는 나와 연이 있는 지인들이 이 기사를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실상을 알고 있을 길드원들을 제외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 소식이 느린 사람들이라면….
그러다 문득 이 기사가 정말 사실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여기 있지만 내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따로 있으니까. 혹시 로웰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어쩌면 로웰라가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더 이상 가만있을 수 없게 되었다.
무슨 일이 생겼냐며 이리스에게 벌을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답장을 하기 힘들 정도로 바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래서 이리스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도 벌을 통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마찬가지로 감감무소식이었다.
“혹시 내 벌집이 잘못된 거 아니야?”
핸드폰을 통해 벌의 상태 창을 살펴봐도 별다른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이상은 없지만 어쩌면 땅굴에서 내 핸드폰이 먹통이 된 적이 있으니 그로 인해 후유증이 생겼을 수도 있다. 이 경우는 필라나 루프와 같은 연구원에게 직접 보여 주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 세계의 연락 수단은 빨리 발전해야 해. 필라를 닦달해 볼까….”
하다못해 전화라도 됐다면 이렇게 애가 타진 않을 텐데.
아스키아 길드와의 접점이 생겼을 때부터 길드와의 일이 마무리된 이후까지도 날 노리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렇게 노골적인 노림은 처음이었고 그 이유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그렇게까지 날 죽이고 싶어 하는 자가 누굴까?
로웰라가 내 미끼가 되어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내 행동에 어느 정도 제약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이리스 파티가 작전을 세워 날 노리는 자들을 역으로 유인해 내려 했으나 일이 잘못된 걸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로웰라가 다치고…. 이를 본 누군가가 내가 죽은 걸로 오해했을 정도라면 아주 크게 다친 거겠지.
결국 28번째 테라리움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길드원들은 자신들이 알아서 할 테니 마음 놓고 모험을 다녀오라 했지만 누군가가 크게 다쳤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하루 이틀 정도 휴식을 하라는 조언을 받은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방을 나왔다.
“떠나야겠어요. 아무래도 제 대리 역할을 하는 길드원이 크게 다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난 에르바 길드의 마스터에게 내 사정을 설명했다.
“제 목숨을 노리는 이들이 있어서 저와 비슷한 체형의 길드원이 지금껏 대리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기사가 떴다는 건 그 대리 역할을 하는 아이에게 큰 문제가 생긴 걸 수도 있어요. 돌아가 봐야겠어요.”
“대리 역할이 필요하실 정도라니. 저희 길드의 마차를 타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앞 번대 테라리움에 볼일이 있어 길드원들을 보내려던 차였습니다.”
“네, 마차 수송 의뢰를 맡길게요.”
“아뇨, 의뢰가 아니라….”
가는 길에 태워 주는 거라며 한사코 정식 의뢰를 맡는 걸 거부했지만, 난 그들이 땅굴 수색을 맡게 되며 자금난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하던 걸 얼핏 들었다.
위험한 77번째 테라리움을 주기적으로 오가며 드는 비용이 테라리움에서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부족할 터였다.
에르바 길드는 테라리움과의 연줄을 만들고 경력을 채우기 위해 투자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일을 수락했겠지만 빠르게 돈이 될 만한 다른 의뢰를 맡지 않는다면 경영이 힘들어질 터였다.
마차가 준비되는 걸 기다리며 에르바 길드의 마스터에게 또 다른 의뢰를 맡겼다.
“땅굴 외에 77번째 테라리움을 전반적으로 수색한다고 들었어요.”
“실종자가 땅굴에서 도망쳐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꼼꼼히 살피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테라리움에서 지원 온 길드들도 합류해서 예전처럼 위험하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77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에 대해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정확히는 그 행정 관리원이 소지하고 있던 책에 대한 정보인데…. 어떠한 소문이라도 상관없어요.”
교단원들이 제단을 만들고 전대 노멀 필드 가디언의 부활 의식을 행하는 데 도움을 받았던 문제의 그 책. 그 책의 출처, 내용, 저자 모든 것이 궁금했다.
“77번째 테라리움이 망한 지 워낙 오래되어서 기대하신 만큼의 정보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듣자 하니 과수원은 그래도 마지막까지 상태가 양호했던 걸로 보여요. 특히나 행정 관리원의 집무실은요.”
내가 들었던 과거의 파편에 의하면 사람들은 행정 관리원의 집무실을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일반인이 무리 없이 오갈 수 있을 정도라면 폐허나 다름없던 다른 건물들에 비해 과수원이 비교적 보존이 잘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어렵다면 다른 길드와 연계해서 의뢰를 수행하셔도 좋아요.”
내 쪽 사람들을 파견하는 것이 가장 좋을 테나 66번째 테라리움까진 손을 뻗치기엔 너무 멀었다. 그나마 가까운 60번째 테라리움도 이제 막 성장 중이니 인력을 빼 올 수도 없고.
“일단 알겠습니다. 책 말씀이시죠.”
“28번째 테라리움에 도착한다면 주기적으로 수색에 도움 될 정보들을 보낼게요.”
그렇게 일을 맡기며 준비된 마차에 올랐다. 앞 번대 테라리움에 볼일이 있어 길드원들을 보낼 예정이었다고 하더니 정작 마차에 탄 에르바 길드원은 운전할 마부를 제외하고 둘뿐이었다. 룽카와… 트러블 메이커 라운.
“28번째 테라리움에 빨리 가야 하는데 사고 치지 않을 수 있어요?”
사고와 행운을 동시에 몰고 다니는 라운이 돌발 행동을 벌일까 봐 좀 걱정이 된다.
“저… 저라고 매일 사고를 치진 않습니다!”
라운이 시뻘게진 얼굴로 열심히 변명을 했다.
“아무래도 한 번 의뢰를 같이 했던 자가 함께 가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해 마스터께서 맡기셨습니다. 호위는 물론 필요하지 않으시겠지만….”
“알고 있어요. 마차 의뢰를 맡기면 기본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길드원 수가 정해져 있다는 걸요. 그나마 앞 번대로 가는 마차라 수가 줄었네요.”
“최대한 불편한 일 없으시도록 라운을 잘 관리하겠습니다.”
“이번엔 정말 돌발 행동은 하지 않을 거예요!”
둘은 28번째 테라리움까지 함께 가는 걸까? 로웰라의 상황이 좋았다면… 비슷한 또래의 라운과 인사시켜 줄 수 있었을 텐데. 아냐,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자. 로웰라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건 확정이 아니잖아? 그저 추측일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