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8화 (458/604)

룽카가 발견했다는 발자국은 보통 사람들의 것보다 긴 편이었는데 아무래도 발을 질질 끌 때 나타나는 형상처럼 보였다. 잠깐 동안 소복하게 내려앉았던 눈이 금방 녹아 버리자 흔적은 주변의 환경과 동화되어 땅이 움푹 파인 건지 발자국인지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최근에 생긴 것처럼 보입니다.”

“그 말은… 이런 죽음의 대지를 오가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는 거네요. 혹시 라운의 것으로 보이진 않나요?”

“아뇨, 라운은 이보다 발이 훨씬 작습니다. 어쩌면 실종 사건의 주범의 것일지도 모르죠. 어쨌든 사람이 벌인 짓일지도 모른다는 확률이 훨씬 더 올라갔습니다.”

“족적을 추적할 거죠?”

룽카는 족적이 향하는 방향을 가늠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족적이 좀 기묘해 보이지 않나요? 보통 정상적인 족적은 말 그대로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지표가 되는데 이건 마치….”

그는 발견한 발자국에서 간신히 이어지는 다음 발자국을 찾아 손으로 가리키며 눈살을 찌푸렸다.

“크게 점프를 했다든가… 하늘을 날았다거나….”

드문드문 끊긴 발자국은 그 주인의 걸음걸이가 평범하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더구나 겨우 찾은 것도 이렇게 여기서 끊겨 버렸습니다. 정말 하늘로 솟은 건지 땅으로 꺼진 건지….”

발자국이 끊긴 지점에 눈에 띄는 무언가가 있진 않았다. 엄폐물이나 건물, 그 어떤 것도. 말 그대로 잘 걷다가 증발한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하늘이라….”

고개를 들자 구름이 자욱해 더욱 어두워진 하늘만 보인다. 드라이어드 중 몇은 공중에 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드라이어드의 힘을 빌려 발자국의 주인이 하늘을 날았다면 기묘하게 끊긴 족적이 설명이 되나, 근처에 드라이어드가 있다면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땅으로 꺼졌다?

난 족적이 끊긴 지점의 땅을 힘 있게 발로 쿵쿵 밟아 보았다. 딱히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문득 땅속에 지어진 양조장이 떠올랐다.

지상 위, 겉으로 봤을 땐 다 쓰러져 가는 폐가에 잿더미가 두껍게 내려앉아 불이 시선을 획기적으로 가렸고 지나가던 사람들조차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사실은 땅속에 크게 굴을 파 양조장을 운영 중이었지.

그러자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다. 건물조차 모두 쓰러져 없어지고 과거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모두 사라진 이곳은 주민들이 버리고 간 생필품을 주워 가려는 도둑조차 접근하지 않았다.

더구나 불도 어떠한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는 곳이기 때문인지 이곳에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불이 접근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자의로 인해서인지 아니면 이 지역에 작용하는 어떤 특수한 힘 때문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민들레 군락지를 지키던 단델리온도 은신 기술을 사용해 넓은 지역을 숨겨왔으니 특수한 힘이 존재할 법도 했다.

“땅속으로 꺼진 게 아닐까요?”

내 물음에 룽카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저… 농담이었습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습니까?”

“아뇨. 하늘로 솟는 것보단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여요. 이 넓은 지역에 우리의 시선을 피해 숨을 수 있는 높은 건물이나 엄폐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잖아요? 하지만 직감은 이곳이 맞는다고 말하고 있고. 그렇다면 어쩌면 모든 게 땅속에 있지 않나 싶어서요.”

그렇게 말하며 난 땅속에서 운영하던 양조장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자 룽카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땅속으로 향하는 입구도 이 근처일까요? 족적이 이 근방에서 끊겼으니까….”

그는 입구를 찾아보려는 것처럼 램프를 들고 여기저기를 비춰 보며 말했다. 그걸 보며 입구가 그렇게 쉽게 발견될 곳에 있을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인세티아, 분신을 만들 수 있는 만큼 만들어서 주변 좀 살펴볼래? 땅굴로 향하는 입구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 어쩌면 여러 개일 수도 있고.”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어. 밑 작업을 해야 하니까.”

밑 작업이란 그녀가 분신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포인세티아 꽃을 피우는 일을 말했다. 평범하게 모체를 피우는 것이 아닌 염원을 담은 특별한 포인세티아를 피워 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능력이 사기적인 까닭은 특정기간엔 세상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염원이 담긴 포인세티아가 장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들레….”

내 말에 민들레 아이들이 못들은 척 고개를 돌린다. 예전엔 ‘작은 세계수님!’하면서 의욕도 넘쳐났고 곧잘 따랐는데….

“여기 더러워.”

“더럽고 불쾌한 곳이야.”

툴툴거리며 행여나 재 가루가 묻을까 신발을 툭툭 털어 내는 행동엔 의욕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귀여운 묘목들아, 나와 내기하지 않을래? 누가 먼저 찾나? 아, 어린 나무들에겐 너무 무리한 일이었나?”

그런 모습을 보며 포인세티아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살짝 도발을 걸었다.

“누가 어리다는 거야! 어리다고 무시하는 거야?”

“우린 어리지 않아! 다 컸어!”

그러자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도발에 낚여 갓 잡은 생선처럼 팔딱거렸다. 자기들은 다 컸다며 으름장을 놓는 모습에 어쩐지 마거리트가 떠올라 아련해졌다.

포인세티아의 도발에 넘어간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스태프를 높게 들었다. 포인세티아를 이기기 위해 연리지를 발동하기 위해 손을 잡은 건데, 그 모습을 보며 아직까지 서로 반목하며 싸우진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드라이어드들은 다르겠지만 듣기론 쌍둥이 형제자매들이 사이가 좋은 경우도 있지만 사이가 나쁜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반항적인데 서로 사이까지 나쁘면… 종래엔 자기가 포레스트 왕이 되겠다며 싸울 날이 머지 않을 듯했다. 그때가 되면 정말 슬프겠지.

민들레 아이들은 진심으로 더 멀리, 넓게 수색을 위한 꽃씨를 퍼뜨렸다. 눈송이처럼 새하얀 빛 무리가 어둠 속에 지상에 깔린 별처럼 퍼져 나갔다.

그때까지도 제 자리에 서 있던 포인세티아는 날 보며 윙크를 하더니 슬쩍 자신의 무기인 크리스탈 오브를 들었다. 그러곤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어떠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보였다.

새하얗게 빛을 내던 오브는 또다시 구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작고 여린 구름이었다.

구름은 꽃씨처럼 아주 작은 눈꽃을 만들어 내 뿌렸고 반짝이는 눈꽃들은 널리 퍼지는 꽃씨들과 함께 어우러졌다. 서로 새하얗게 빛나기에 어떤 것이 꽃씨이고 어떤 것이 눈꽃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꽃씨와 함께 어우러져 날아가던 눈꽃은 마치 자석에 끌리는 철처럼 꽃씨에 철썩 붙었다. 덕분이 몽글몽글 떠다니던 빛 무리의 크기가 훌쩍 늘어났지만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다.

난 그제야 포인세티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아이들의 꽃씨에 눈꽃을 붙여 자신의 수색 범위를 넓히려는 수작이었다.

이리스 파티에도 이와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는 드라이어드가 있었다. 도깨비바늘은 어디든 자신의 씨앗을 부착시킬 수 있었고 이를 이용해 위치 탐지를 할 수 있었다. 포인세티아 역시 눈꽃을 이용해 비슷한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민들레 아이들은 자신들의 꽃씨가 이용당하고 있음을 꿈에도 모른 채 두 눈을 꼭 감고 오직 포인세티아를 이기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힘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 치사하지 않아?”

“이것도 내 능력인 걸? 그럼 난 분신을 만들러 가 볼게! 이러다 정말 묘목들에게 지겠는걸?”

마지막 말은 일부러 민들레 아이들이 들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의 어깨가 움찔 튀더니 더욱 꽃씨가 자욱하게 퍼져 나갔다.

“민들레 드라이어드를… 이렇게도 쓸 수 있었군요.”

하얀 꽃씨와 눈꽃이 한데 어우러져 어두운 공간에 퍼져 나가는 장면은 정말 이 척박하고 암울한 땅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장관이었다. 이를 넋 놓고 바라보던 룽카는 홀린 듯한 목소리로 감탄했다. 내가 그를 바라보자 그는 민망하단 얼굴로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흔한 드라이어드긴 하지만 실전엔 잘 나오진 않잖습니까?”

“민들레가… 그렇긴 하죠.”

노멀 등급을, 그것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드라이어드는 아직까지 품을 들여 키울 가치가 없다는 평이 만연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우리 데이지였다. 수많은 동종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을 테지만 개량종이 아닌 오리지널의 길을 걷게 된 레드 데이지는 오직 우리 애뿐이란 현실.

“더구나 아직 묘목으로 보이는데. 음, 저게 말로만 듣던 연리지인가요? 두 드라이어드가 함께라…. 어쨌든 저런 능력이라면 금방 입구를 찾을 수 있겠네요.”

사실 민들레 아이들에게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군락지를 수색할 때나 인적을 찾을 땐 확실히 지상에서 널리 살피는 아이들의 능력이 큰 효과를 보일 테지만 이번은 보이지 않는 땅속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당장 우리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꼭꼭 숨겨진 입구.

아이들은 더구나 수색 능력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놓치는 것도 있을 테지.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 준다면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므로 발견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발견한다면 아주 좋은 일인 것이다.

드라이어드들이 수색에 나선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민들레 아이들은 결국 지쳐서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했다.

“헉헉… 더 할 수 있어.”

“맞아. 아직 더….”

“그래그래, 그러다 쓰러지면 이젠 아예 할 수 없게 되니 휴식을 좀 취했다가 다시 해 보자.”

아이들은 바들바들 떨리는 팔로 스태프를 들려다가 다시 서로에게 기대며 축 늘어졌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의 레이더망에 걸린 특이점은 없는 듯했다.

“나 왔어.”

그때 테라리움의 더욱 깊은 곳까지 홀로 뛰어가 수색을 끝낸 포인세티아가 돌아왔다.

“일단 꽃씨… 아니 눈꽃을 기반으로 지역을 넓게 스캔하고 분신으로 여러 지점을 살펴봤는데 말이야.”

포인세티아가 바로 아래 땅을 신발 앞코로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지면의 온도가 냉각되는 방식이 이상했어. 마치 텅 빈 것처럼.”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어 주변을 크게 가리켰다.

“이 구역 전부의 발 아래가 텅 빈 것 같아.”

그녀의 말은 77번째 테라리움 아래가 전부 땅굴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들렸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