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스 파티가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그들이 느끼기에 저 구역이 그들이 숱하게 거쳤던 다른 필드와 다를 바 없었다는 거다.
양조장 주인에게 지도를 건네받고 의뢰를 완수하는 데 겨우 하루가 걸렸다고 했다. 그러니 그들은 낮과 밤을 굳이 가리지 않고 일을 진행하려 했다는 거다.
난 지도를 펼쳐 양조장과 현재 있는 테라리움 사이의 거리를 살폈다. 날이 밝을 때 의뢰를 받았고, 마차를 따로 마련하지 않은 채 도보로 이동했다고 말했으니 여길 도착했을 땐 이미 밤이었을 터. 지도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곧 해가 넘어가려는 하늘을 바라봤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 지역에 들어선 이후로 불의 습격이 줄어든 것 같지 않나요? 처음엔 우리가 마차로 이동할 때보다 시선을 덜 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따져 보니 기이하게 습격 빈도가 감소했어요. 마치 평범하게 테라리움의 구역에 진입할 때처럼요.”
세계수 가지가 축복의 기운으로 보호하는 테라리움 구역에 진입하면 단계적으로 불의 출현이 줄어든다.
내 말에 뭐라 반박하려던 룽카의 말을 막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요. 여긴 이미 옛날에 축복이 증발한 지역이기에 말이 되지 않겠죠. 하지만 느낌만 놓고 보자면 그렇지 않나요?”
룽카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 길드원들은 시간상 밤에 이곳에 도착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무 수행을 멈추지 않았어요. 만약 계속 불이 들끓고 저곳이 테라리움이라는 걸 알았다면 룽카 씨 같은 판단을 내렸겠지요. 하지만….”
점점 어둠이 깔려 가며 77번째 테라리움 위로 검은 베일이 덮이니 더욱더 그곳이 과거에 어떤 지역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저는 제 길드원들이 과거 당했던 이상 현상을 똑같이 목도하려면 밤이 되어도 상관없이 이동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라운을 찾기 위한 일과는 무관해 보일 수도 있으나 제가 말하는 건 이동의 자유예요. 실종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간들이 전부 언제였죠?”
내 질문에 룽카는 자신의 길드가 열심히 긁어모았던 정보를 떠올리는 얼굴이 되었다.
“밤이 아니었죠? 민간인들이야말로 밤에 테라리움 밖으로 나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죠.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데 시야까지 제약을 받으니까요.”
실종 정보를 막 살펴봤을 땐 실종자들의 마지막 목격 장소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에서 큰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본래 제시간에 돌아와야 할 자들이 소식이 없어 실종 신고를 했을 테니, 애타게 기다리던 이들은 곧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발을 동동 굴리다가 과수원으로 뛰어갔을 거다.
결국 실종은 전부 아직 날이 밝을 때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실종 신고 접수 시간은 정보 리스트에 대략적으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다들 엇비슷한 걸 봐도 유추가 가능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날이 밝을 때보다 어두울 때가 이동이 더 자유롭고 안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리스 파티가 하루 만에 의뢰를 끝내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곳에 밤에 도착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든다.
아직까지 라운의 실종이 그동안 근방에서 숱하게 일어났던 실종 사건들과 관계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으나, 일부러 전투력이 없는 민간인을 노리던 것이나 시야 제약이 없는 낮에 일을 벌인 점들을 따져 보면… 범인들 역시 일반인일 거란 확신이 든다.
밤에 이동하기 위해선 횃불이나 랜턴, 조명 등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어둠 속에서 이런 반짝이는 것들이 오히려 더 시선을 끌게 된다. 그것이 여럿이라면 더욱더. 사람뿐만 아니라 지척을 기어 다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은 더 환장하게 만든다.
그러니 시야 확보를 위해 필연적으로 광원을 챙겨야 하는 밤은 능력 있는 사람들에겐 은신하기에 좋은 시간대지만 일반인들에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날이 어둑해져도 77번째 테라리움에선 단 한 점의 빛도 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전 밤이 되더라도 외곽은 물론 테라리움 곳곳을 살필 거예요. 만약 못마땅하시다면 이곳에서….”
“아닙니다. 같이 가죠. 당신은 정말 여태 만난 의뢰인 분들 중 가장 까다롭고… 특이하신 분이네요.”
룽카는 결국 졌다는 어투로 날 따랐다.
난 물을 꺼내 마심으로써 악취로 진창이 된 속을 달래며, 지금보다 더 악취가 심해지는 구역으로 진입하는 데에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거부감을 밀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며 크게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테라리움의 경계면일까?
테라리움의 면적은 번호마다 달랐다. 물론 앞 번대로 갈수록 마을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커져 대도시급의 면적을 보유했다. 축복의 힘이 크니 보호를 받는 면적도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 번대 테라리움 중에도 면적이 넓은 테라리움이 간간이 있었다. 앞 번대에 비해 축복의 힘이 약하더라도 사람이 많이 몰리고 방어 전력이 충분해 비교적 약한 외곽을 수비할 수 있다면 주민들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땅을 늘리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77번째 테라리움은 소멸하기 전 과거의 면적이 어느 정도였을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기준으로 잡고 수색해야 하는 걸까?
지금 발을 딛는 땅이 입구일까? 아니면 아직도 입구에 도착하지 못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룽카와 함께 걸어 나가다가, 어느 지점을 밟자 갑자기 엄청난 두통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잠식해 왔다. 꼭 지뢰라도 밟은 것처럼.
“의뢰인님?”
머릿속에 둥둥 떠오르던 모든 생각들이 반죽처럼 뒤섞이다 훅 쓸려 나갔고, 마치 눈을 뜬 채 꿈을 꾸는 것처럼 기이한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낯익은 장면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공허와 나를 중심으로 양옆에 떠오르는 환상들.
내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 <테라리움 어드벤처> 세계로 돌아가려 할 때, 끝에 황금빛 문이 있는 공허의 복도를 걸었었다. 그곳에서 난 어쩌면 전생의 나였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형상을 봤었다. 그리고 전부 불에 타 사라져 버렸던 그것들….
그래서 난 그 공허 속의 길을 내 영혼이 여태 지나쳐 왔던 여정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수많은 배드 엔딩을 겪었던 시간들이 기록되어 있는 공간 말이다.
그 공간이 갑자기 지금 여기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전생의 내 형상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이 때문에 불에 의해 사그라드는 끝이 빠르게 다가왔다.
잠깐이나마 평온해졌던 후각을 향해 수많은 형상들이 불에 타들어 가며 터져 흐르는 연기와 잿더미 냄새가 잔뜩 응축되어 다가온다. 그리고 그 영혼이 아스러져 형용할 수 없는 죽음의 냄새가 함께 뒤섞이며 다시금 날 괴롭혔다.
이미 내가 겪는 악취는 단순히 코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영혼을 썩어 들어가게 할 정도로 오염된 기운 그 자체였음을 느꼈다.
그리고 한데 모여 있는 악취의 근원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며 비로도 단정 지을 수 있었다. 악취는 겹겹이 쌓인 내 영혼의 과거의 흔적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수많은 죽음의 자국들이었다.
다친 곳을 또 다치고, 새살이 돋기 전에 또다시 다치게 되면 그곳엔 영원히 완전하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게 된다. 마치 그것처럼 내 영혼을 담았던 그릇이 불에 타고 또 타서 그 향이 영혼에 배어 버린 것이다.
사람의 몸엔 각자 저마다의 체취가 있듯 영혼에도 체취가 있을 수 있음을.
하지만….
“달라.”
두통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눈앞을 어지럽히던 환영도 훅 꺼져 버렸다.
“네? 괜찮으세요?”
“악취가 달라요. 분명 같은데… 달라요.”
두통이 사라졌다 하더라도 마치 머릿속을 믹서기로 갈아 버린 것처럼 과격하게 굴었던 고통의 여파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뒤죽박죽된 머릿속이 정리되기까지 조금은 시간이 걸렸다.
“죄송해요.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겨서…. 정말 이곳에 뭔가 있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봐요. 그것 때문에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힘드시면 지금이라도 수색을 관두고 안전한 곳에서 쉬는 게 어떻습니까?”
룽카가 날 부축하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에요. 이젠 괜찮아요. 그것보다 제가 지금까지 계속 느꼈던 악취…. 그 원인을 알 것 같은데, 달라요.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분명 같은 악취인데….”
내 영혼이 겪은 부정적인 일들이 악취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고 차마 룽카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내가 당신과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를 먼저 설명해야만 했다.
“진정하시고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어차피 전 느끼지 못하니 설명하기 어렵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의 말에 조금은 감사함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취는 누적된 시간 속에 곪은 죽음의 냄새였다. 그런데 어째서 악취가 나는지는 대강 알아차렸지만 여기까지 오며 날 괴롭힌 악취는 내 영혼의 여정에서 맡은 악취와 달랐다. 악취가 다른 이유….
아, 멍청하게. 사람은 저마다 체취가 있듯 어쩌면 영혼에도 각기 다른 체취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놓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될 것을.
지금까지의 악취는 갑자기 내 영혼의 흔적을 들춰내며 깨달은 것이 아니었다. 이곳 어딘가에 있을 다른 존재가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이들은 냄새를 맡지 못했던 이유, 그건 마치 동족끼리, 동류끼리 서로 알아볼 수 있듯이 수많은 시간 층 사이에 죽음을 겹겹이 깔아 놓은 영혼의 여정이 있는 나만이 그걸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곳 어딘가에 나에 버금갈 정도로 무수한 죽음이 곪아 있는 존재가 있다.
잠깐…. 그렇다면 데이지는 어째서 맡을 수 있었던 거지?
악취를 오롯이 나만 맡을 수 있다면 이 이론이 성립하나 데이지라는 변수가 존재했다. 만약 내 드라이어드이기 때문에 나의 영향을 받는다면 오롯이 내가 맺어 낸 오리지널 드라이어드인 바곳이 맡지 못할 리가 없었다. 바곳이야말로 내 영혼의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대체 저곳에 뭐가 있는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아직 데이지가 나처럼 악취를 맡을 수 있는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어쩌면 이번 일에 아주 큰 열쇠가 될 것임은 분명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