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4화 (454/604)

“엘더, 넌 이상한 냄새 안 나?”

“냄새?”

드라이어드들은 인간보다 훨씬 기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더 역시 마차 안의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이 냄새를 맡지 못했다. 이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약한 냄새는 온갖 불쾌한 감정을 다 끌어 올리며 정신까지 괴롭혔다.

엘더는 품에 찰싹 붙는 내 어깨를 만족감이 가득 담긴 손길로 토닥였다.

“너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

그러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나만 맡을 수 있는 이유라….

마차는 75번째 테라리움을 지나 76번째 테라리움을 향해 달렸고 그럴수록 냄새는 더욱 심해졌다.

어쩌면 이미 소멸된 76번째 테라리움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닌가 싶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특히나 건물의 형태나 외곽을 두른 울타리의 잔존도는 75번째 테라리움 보다 훨씬 멀쩡해 보였다.

“이대로 77번째 테라리움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가려는데 괜찮으십니까?”

난 엘더의 로브를 마스크처럼 이용해 코와 입을 가린 채 속이 곪아 가고 있었다. 보통은 후각이 어느 정도 적응해서 나아져야 하는데, 이 지독한 냄새는 단순히 후각을 자극하는 걸 떠나 속으로 타고 들어와 계속해서 휘젓는 느낌이었다.

더 미칠 노릇은 지금 이 고통이 최대치가 아닐 것 같다는 불길함이었다. 지금도 냄새가 심했지만 어쩐지 77번째 테라리움이 있는 곳으로 가면 더욱 역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 정말 힘들어 보여. 대체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게 어때?”

결국 보다 못한 엘더가 조언했다. 그는 내가 나아지길 바라며 계속해서 약하게 스태프에 힘을 불어넣어 가벼운 힐링 기술을 사용했다.

“물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그래선 안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원인이 무엇이든 근원이 어디든 도망가지 말고 맞서야 할 듯한 기분에 참는 것을 선택했다.

“메스키트에게 물어보는 게 어때? 그녀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난 이 세계로 되돌아온 이후 유리 돔이 새까맣게 변해 버린 내 아티팩트를 바라봤다. 그 안은 예전 마이 룸 같은 모습이 아닌 광활한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마치 아직 형태가 확정되지 않은 구성 초기 단계의 공간을 보는 듯했다. 그 안에서 대기 중이던 드라이어드들이 날 걱정스러운 얼굴로 올려다봤다.

난 현재 내가 맡고 있는 끔찍한 냄새에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혹시 드라이어드의 기술인지, 아니면 내게 무슨 이상이 생긴 건지 답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상이 생겼다면 그 누구보다도 내 드라이어드들이 가장 먼저 알아차릴 것이고, 이 기이한 냄새가 드라이어드의 기술이라면 계속해서 움직이는 좁은 마차 안에서 오직 나만 특정하여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싶었다.

“글쎄요. 그건 저 역시 처음 겪는 현상이네요. 어쩌면 엘더의 말처럼 제희 님만 맡을 수 있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싶군요.”

한시바삐 소멸된 테라리움을 모두 살펴보고 내가 찾던 곳이 없다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4개의 테라리움이 일렬로 소멸된 이 지역 근방은 죽음의 대지라 불리고 있었고, 그만큼 제집인 것처럼 마음껏 돌아다니는 불도 많았다.

마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전투를 치르느라 시간이 지연되었다.

“안 되겠어요. 저도 참여할게요.”

답답한 마차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데다 차라리 나도 전투에 참가하여 빨리 교전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아…!”

기이했다. 마차 안이나 밖이나 일관적인 지독한 냄새. 차라리 불이 타며 내뿜는 재 가루 냄새가 훨씬 향기로울 지경이었다.

“제가 저쪽을 맡을게요.”

난 마차를 향해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불이 몰려오는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불과의 대규모 전투는 오랜만이었지만 두려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들은 또 다른 방향에서 한 가득 몰려오는 불을 바라보며 내게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네, 제 걱정은 말고 지금은 빨리 해치울 생각만 하죠. 도움이 필요하다면 부를게요.”

내 부름에 아티팩트에서 대기 중이던 드라이어드들이 죄다 소환되었다.

“역시나 아무런 냄새도 맡아지지 않아요. 혹시 제희의 영혼에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니겠죠?”

밖으로 나오자마자 메스키트가 날 걱정하며 물었다. 기민한 그녀 역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절망스러웠다.

“아냐, 실새삼이 잠잠하잖아. 내 영혼에 문제가 생긴다면 내 드라이어드들이 모를 리도, 특히나 실새삼이 아무 말도 안 할리가 없어.”

그렇지? 그런 눈빛을 담아 아티팩트 안에 남은 실새삼을 바라보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날 향해 고개를 끄덕이다 혼자 생각에 빠져 버린다.

“엘더 말처럼 정말 나만이 맡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어떠한 신호일지도 몰라.”

난 77번째 테라리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예전 일을 떠올렸다.

불길한 징조, 그건 이전에 한 번 겪어 본 적이 있었다. 바로 꿈에 찾아온 세계수가 내게 들려주던 울부짖는 비명 소리였다.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을 찾아 떠났던 날, 수많은 드라이어드들이 고통과 슬픔에 찬 비명을 질러 대는 꿈을 꿨었다.

그때의 비명이 꿈을 꾼 직후 방문한 은둔자의 정원의 지반 아래에 묻혀 있던 드라이어드들의 것인지,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에서 짐승처럼 사육되던 드라이어드들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경우 모두 고통받는 생명들이 있었고 나만이 들을 수 있었던 괴로운 소리가 징조를 알려 준 것이라 본다.

그러니 어쩌면 지금 나만이 맡을 수 있는 이 냄새가 내게 무언가를 알리려는 징조일지도 모른다.

“얼른 해치우고 신호를 쫓아가자.”

내 말에 메스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랜스를 쥐었다.

바곳이 거대한 데스 사이드를 높게 들어 독이 가득한 늪을 만들어 내자 늪에 빠진 불의 이동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불이 지나갈 때마다 늪이 부글부글 끓으며 유독성 가스가 피어올랐다. 그 광경을 보며 여럿이 아닌 혼자 전투를 맡은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독성 가스는 높게 피어오르다 공중에서 뭉치더니 형태를 갖췄다.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이는 청보라색 나비가 되어 불의 사이사이를 헤집으며 공격을 가했다. 바곳의 공격 스킬이 어느새 진화한 것이다.

본래 독의 늪과 바곳이 날려 보내는 나비는 각기 다른 공격 기술이었으나 연계 공격으로 진화하여 함정을 밟은 적에게 지속적으로 대미지를 입히는 후속 공격이 추가된 것이다. 바곳이 든 위협적인 사신의 낫에 어울리는 집요하고 참혹한 공격 기술이었다.

다만 죽음의 대지를 활보하는 불은 자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 주듯 바곳의 공격에 대처를 하기 시작했다. 늪을 건너는 동료의 몸을 다리 삼아 타고 올라가며 마치 탑을 쌓듯 함정을 피해 다가오는 게 아닌가?

꾸물꾸물, 기분 나쁘게 꿀렁이는 것들이 탑을 쌓고 몸집을 불려 건너오는 꼴이 여간 악착스러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저렇게 나오면 방어에 취약하죠.”

메스키트가 랜스를 바로잡으며 파고들 자세를 취했다.

“하단을 노릴게요. 그 틈에 데이지가 상단을 무너뜨린다면….”

“데이지?”

전투에선 어느 때보다도 빠릿빠릿한 모습을 보여 주던 데이지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어쩐지 멍한 눈으로 불이 몰려오는 방향을 바라보던 그녀가 별안간 손으로 코와 입을 막으며 인상을 썼다.

“너무 끔찍해요.”

괴롭게 찡그린 얼굴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데이지 역시 나와 같은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주변에 영혼이 썩는 듯한 악취가 가득해요. 정말 다들 이 냄새가 맡아지지 않는다는 건가요?”

코를 꾹 쥐고 말하는 탓에 데이지의 목소리가 맹맹하게 울렸다. 그녀의 말에 메스키트는 오히려 충격을 먹은 얼굴이 되었다.

“당신도 냄새가 느껴진다는 건가요?”

메스키트의 물음에 데이지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동정심이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눈빛이 꼭 이 냄새를 어떻게 계속 참아 왔냐고 묻는 듯했다.

나만이 맡을 수 있기에 내게 보내는 신호, 어떠한 징조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많은 드라이어드 중 데이지만 맡을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이상했다.

“제 영혼까지 전부 썩어 들어갈 것 같은 냄새예요. 절망과 슬픔, 죽음이 한데 뭉쳐 풍기고 있어요.”

내 영혼까지 썩어 들어 갈 것 같다는 데이지의 표현엔 나도 동의한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군요. 둘 모두 계속 그런 끔찍한 기운에 노출시킬 순 없어요. 빨리 해결하고 방안을 찾죠.”

메스키트의 결단에 데이지가 힘겨운 표정으로 단도를 쥐었다. 한 손은 차마 코와 입에서 뗄 수 없다는 것처럼 고민했지만 이내 코를 막아도 냄새는 계속 난다는 걸 깨달은 것인지 힘겹게 손을 내렸다.

“제 영혼이 오염된 기분이에요.”

“그래. 마차 안도 밖도 냄새가 균일하고 코를 막아도 똑같아. 하지만 엘더에게서 풍겨 나오는 회복의 향을 한껏 들이켜면 좀 나아져.”

내 말에 엘더가 기다렸다는 듯이 광범위 회복 스킬을 연사했다. 다친 드라이어드는 아무도 없었지만 오로지 냄새를 차단하기 위해 힘을 사용한 것이다.

엘더가 있는 힘을 다해 기술을 펼치자 상황이 훨씬 나아졌다. 단순히 향기로운 냄새로 끔찍한 냄새를 가리는 데에 끝나지 않고 정말로 냄새가 옅어진 것이다.

“이제 공격할 수 있어요. 감사해요!”

금방 기운을 회복한 데이지가 몸을 풀더니 공격 태세를 취했다. 그러곤 메스키트의 신호에 맞춰 쏜살같이 튀어나가 몰려오는 불을 정리했다.

데이지가 거침없이 불이 몰려 있는 중심을 파고들어 끝까지 달리면 그녀의 특수 기술로 인해 공격이 되감아지며 몰려드는 불들에게 후속타를 날렸다.

메스키트가 랜스를 내지를 때마다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엄청난 파열음이 나며 데이지로 인해 균형이 무너진 불의 탑을 완전히 무너뜨려 버렸다.

조금 멀리까지 나아갔다가 황급히 돌아오는 데이지가 보였다. 아무래도 엘더의 능력 범위 밖에 나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돌아오는 모양새로 보였다.

굳이 그래프트까지 사용할 필요 없이, 실새삼이나 포인세티아까지 참전할 필요 없이 한 무리의 불은 금방 정리되었다. 에르바 길드원들과 얼추 비슷하게 상황이 종료했는데 5명이 할 일을 혼자 빨리 끝낸 것에 대해 약간의 자긍심이 끓어올랐다.

“아티팩트 안은 괜찮았던 거야?”

“네, 안에선 아무런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밖으로 나오면서부터 맡아졌어요. 처음엔 저도 바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서….”

밖에 나오자마자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냄새에 얼마나 놀랐을까?

내 드라이어드들의 가세로 마차는 예정보다 더 빠르게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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