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2화 (452/604)

위즈의 조언대로 후에 방문한 그녀의 길드 마스터는 정말 거침없이 마차 비용을 올렸다. 위즈가 넌지시 건넸던 주의 사항보다 두 배는 더 많은 항목들이 붙는 것이 누가 봐도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위즈는 내가 다이아를 많이 낼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 후 태도가 조심스러워진 데 반해 그녀의 길드 마스터는 오히려 이를 이용해 제대로 한탕 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난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마차를 걱정했던 것보다 빨리 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 이래도 혼자 다 지불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듣다 보니 안전이 많이 신경 쓰이네요. 그 의문의 실종 사건 부분이요.”

“역시… 그러시지요…?”

그는 아차 하는 표정이 되었다. 너무 값을 올린 탓에 내가 무를 거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니 경호를 늘리죠.”

다시 길드 마스터의 얼굴이 화색이 된다.

어차피 이 일은 남들 모르게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 아니었으니 단순히 마차를 호위할 경호를 늘리는 것 정도는 상관없었다. 나 역시 미지의 적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차라리 인페르노나 불이면 알고 있는 적이니 경계를 하지만 정체를 모르는 적에겐 허를 찔리기 쉬웠다.

“또한 이왕이면 그 실종 사건에 대해 정보도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주변에 돌고 있는 소문이라든가 직접 수색 임무에 참가했던 사람의 증언이든 전부 상관없어요.”

어쩌면 실종자들에게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그들이 마지막으로 목격한 위치를 추적하다 보면 내가 찾는 소멸된 테라리움에 근접해지지 않을까?

곧 날이 어두워지려고 해 다음 날로 출발이 미뤄졌다. 앞 번대에선 날이 어두워도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녔던 것에 비해 뒤 번대로 갈수록 밤에 움직이는 걸 꺼려 했다. 뒤 번대에서의 밤길은 앞 번대보다 몇 배는 넘는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밤에 접어들 때쯤 에르바 길드의 사람들이 발 빠르게 실종 정보를 긁어모아 왔다. 듣기론 그들에게 간만에 들어온 의뢰다운 의뢰라 모든 길드원들이 동원됐다고 한다.

“그럼 총 길드원이 10명인 건가요? 제법 수가 많네요.”

과거 우리 가이아 길드보다 수가 많았다.

“그렇습니다. 앞 번호 테라리움으로 길드 스톤헨지를 옮기기 위해 길드원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내친김에 스톤헨지로 나를 초대해 시끌벅적한 대접을 했다. 나 역시 묵고 있던 여관의 술들을 끌어다 그들에게 돌렸다. 흔쾌히 초대에 응한 데엔 그들의 실력이나 성향이 어떤가 한번 살펴보려는 이유도 있었는데, 직접 그들의 생활이 묻어나는 스톤헨지에 들어서니 걱정이 누그러들었다.

소규모의 무명 길드였지만 곳곳에 그동안 성실하게 생활해 온 길드의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 의뢰지를 꽂아 넣는 의뢰 판은 너덜너덜했고 손님을 맞는 입구와 로비는 항상 청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10명이나 되는 길드원들이 지내는 길드룸치곤 상당히 규모가 작고 좁았지만 모든 공간을 알뜰히 잘 사용하고 있었다.

“길드가 더 성장하고 싶어도 뒤 번대까지는 의뢰가 잘 내려오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가장 험난한 지역에서 길드가 이렇게 번듯하게 운영되고 있으니 정말 대단해요. 분명 에르바 길드는 크게 성장할 거예요.”

“하핫, 이거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간만에 거액의 의뢰를 맡긴 나를 환영하며 좋아해 주었다. 특히나 길드 마스터인 크라우트의 나를 향한 친밀도는 미친 듯이 상승해 오랜만에 만난 지인만큼이나 살갑게 대했다.

“그런데 70번대 테라리움은 어떤 연유로 가시는 겁니까?”

“아, 찾는 게 있어서요. 그러고 보니….”

이 근방에서 활동했던 길드라면 알고 있을까?

“혹시 이 지역에 멀쩡한 사람들이 길을 잃게 만드는 장치나 장소가 있나요? 혹은 드라이어드의 능력이라든가….”

“음….”

“아무래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키는 능력 같아요. 제 길드원들이 숙련된 드루이드임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길을 헤맸다고 들어서요.”

난 이리스 파티가 길을 잃었던 상황을 최대한 아는 대로 풀어내며 도움을 받아 보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들 역시 아는 정보가 없는 듯했다.

“그런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실종 사건도 무관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알고 보니 미지의 적에 당해 사라졌다기보단 그들 모두 길을 잃고 인적이 드문 곳에 제 발로 걸어갔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죠. 그래서 위즈 씨에게 실종 사건에 대해 들었을 때 관심이 생겼던 거예요.”

“60번대 테라리움에서 저희 말고도 활동하는 길드가 몇 있기는 한데 한번 문의를 넣어 볼까요? 일단 저희 길드에선 인지 능력 저하가 의심될 정도로 길을 심하게 헤매다 돌아온 사람은 없습니다.”

“어차피 내일 이곳을 떠날 거긴 한데… 물어봐 주신다면 감사하죠.”

난 차려진 술이나 음식을 딱히 즐기지 않았기에 대화에 참여하면서도 틈틈이 에르바 길드가 모아 온 정보를 살폈다. 실종자는 하나의 테라리움에 국한된 일이 아닌 60번대 테라리움에서 두루두루 발생하고 있었다.

살피다 보니 실종자 중엔 드루이드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종자는 다들 민간인이나 상인이었다. 특이하게도 모두 이 지역 출신들로 주변 지역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사람들로 보였는데 여느 때처럼 집을 나섰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불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테라리움과 멀리 떨어진 지역까진 가지 않을 테고 그들만의 안전한 루트가 확립되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자경대가 순찰을 자주 돌아 쾌적한 경로 말이다. 그러니 몰려다녀도 위험할 판에 겁 없이 한둘씩 따로 돌아다녔던 거겠지.

물론 뒤 번대 테라리움까지 여행 올 정도라면 실력이 상당한 드루이드가 아니라면 도달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60번대 테라리움도 엄연한 테라리움이며 과수원을 갖추고 있었다. 즉, 60번대 테라리움에서 태어나 여행을 시작하는 드루이드도 있을 거란 거다.

막 드라이어드를 개화하여 실력이 부족한 드루이드도 제법 있을 텐데 실종자 중에 드루이드는 아예 빠져 있었다.

난 31번째 테라리움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도둑 사건을 떠올렸다. 엘더의 나비가 움직여 발길이 닿았던 그곳은 은둔자의 정원에서 온 허브 드라이어드들이 공물을 모으기 위해 강도질을 일삼고 다녔었다.

그들은 일반인, 드루이드 가릴 것 없이 타깃으로 삼아 주머니와 짐가방을 털고 다녔지.

허브 드라이어드들에겐 드루이드들을 상대할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들켜서 전투가 벌어지기 전 잠재우거나 기분을 풀어 방심하게 만든 후 털어간 것이지만. 어쨌든 대비할 실력이 있기 때문에 타깃을 굳이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실종 사건은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는 드루이드를 완전히 대상자에서 제외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어쩌면….

원인을 총 두 가지로 볼 수 있었다. 만약 이리스 파티가 겪었던 것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길을 잃게 만드는 능력이 원인이라면 드루이드에게 그 능력이 잘 통하지 않거나 큰 영향력이 없다고 볼 수 있었다. 아니면 겨우 길을 잃는 정도의 피해로 그친다거나.

혹은 정말로 몰래 사람들을 데려가는 미지의 적이 있다면 드루이드를 상대할 실력이 전혀 없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같은 민간인들만 노릴 수 있는…. 잠깐, 그렇다면 범인이 민간인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

아니 어쩌면 은둔자의 정원에서 기억을 잃기 전의 실새삼이 드루이드들을 없애려 했던 것처럼, 드루이드가 관여되면 안 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나저나 ‘제 길드원들’이라고 표현하신 걸 보면 혹시 한 길드의 마스터셨습니까?”

“아, 제가 그렇게 말했나 보네요…. 네, 부족하지만 저도 길드 하나를 맡고 있습니다.”

“오! 그걸 이제 말씀하시다니! 혹시 어떤 길드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몇 번대 테라리움에 스톤헨지를 두고 계신다거나….”

“그렇게 대단한 길드는 아니라서요. 다들 못난 길드 마스터 때문에 고생하고 있죠.”

문득 날 대신해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을 길드원들이 떠올라 뜨끔하고 미안해졌다.

“아닙니다. 길드원들이 무슨 능력에 당한 것이 걱정되어 직접 몸소 탐문차 60번대 테라리움까지 내려오셨을 정도시지 않습니까? 충분히 대단한 길드 마스터이십니다!”

크라우트의 말에 주변의 다른 길드원들도 감탄을 터뜨리며 날 열렬히 바라봤다. 그 시선들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길드원들이 걱정되어서라기보단 그들이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알아야 신전형 던전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저… 실종자 중에 드루이드가 없다는 점을 주목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실력을 가릴 것 없이, 이 지역 출신에 갓 드라이어드를 개화한 드루이드라도 훈련을 위해 제법 주변을 돌아다녔을 것 같은데 그들이 실종됐다는 이야기는 보이지 않아서요.”

난 황급히 주제를 돌리며 그들의 관심을 실종 사건으로 돌렸다.

“그러고 보니 드루이드는 없군요. 물론 60번대 테라리움 출신 드루이드들도 꽤 되지만….”

실종자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도 상당히 중구난방이라 그들이 모두 평범한 일반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당장 확정 지을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결국 하릴없는 추리만 이어지다가 밤이 지났다.

이른 아침부터 마차를 출발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호위는 마부를 포함한 여섯, 거의 길드의 반이 움직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목적지는 소멸된 테라리움인 75~78번을 차례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겉으로 봤을 때 테라리움 티가 많이 난다면 그곳은 목표에서 제외였다.

전날 밤 그렇게 놀고 마셨으면서 모인 이들 중에 숙취를 드러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무명 길드라 하더라도 뒤 번대 테라리움에서 버텨 내려면 이 정도 성실한 태도는 기본이었던 것이다.

“출발하겠습니다. 안전한 이동을 책임지겠습니다.”

“전 사고가 좀 발생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나의 조금은 진심을 담은 농담에 다들 웃으며 누군가를 가리켰다.

“그렇다면 안심하셔도 될 겁니다. 저 녀석이 제법 유명한 사고뭉치라 지루해질 때쯤 뭔가 하나씩 터뜨려 줄 겁니다.”

손끝에 있는 사람은 그중 가장 나이가 어려 보이는, 로웰라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러고 보니 저자는 어젯밤 나처럼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던 자였지. 그는 자신이 지목당하자 발끈하며 소리쳤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그런 거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를 보자 문득 다른 이들이 말했던 것처럼 주변에 사고뭉치의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아무것도 안 해도 항상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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