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6화 (446/604)

“그… 팔찌를 제가 좀 더 자세히 살펴봐도 될까요?”

다들 에트나의 손목에 생긴 팔찌의 존재감에 말하는 것도 잊을 정도로 놀란 상태였다. 주변의 모두가 내 테라리움 아티팩트와 에트나의 팔찌를 번갈아 보았다. 지금 자신들이 보는 게 정말 그게 맞는지 의심하는 듯도 하다.

에트나는 조금 떨리는 손을 내밀었고 난 다급히 난쟁이가 살림을 차린 아티팩트를 확인했다.

[주인님! 여기서 마음껏 일할 수 있어요!]

“네가 왜 거기 있어?”

[주인님! 이 광산은 주인님이 저만을 위해 만들어 주신 광산이에요!]

내가 만들어 줬다고?

자그마한 광산은 막 <무한 다이아>를 시작했을 때의 규모보다 훨씬 작았다. 저 정도 광산은 엔드 콘텐츠까지 끌고 가기도 전에 고갈 날 것이 분명했다. 난쟁이가 광산을 가리키다 품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툭툭 꺼냈다.

광산을 캘 때 필요한 난쟁이들의 필수품 곡괭이와 작은 바구니였다. 저 난쟁이는 정말로 이 작은 광산에서 채광을 할 작정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이익이 있는 거지?

난 난쟁이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아무 말 없이 지켜봤다.

도구를 모두 꺼낸 난쟁이는 광산으로 들어가 새까만 광맥을 향해 곡괭이질을 했다. 몇 번의 곡괭이질로 부산물이 튀어나왔고 그건… 다이아가 아니었다. 구슬처럼 둥글며 표면이 새까만 광석은 처음 보는 광석이었다.

“아… 설마.”

광석을 자세히 살피니 익숙한 기운이 풍겨 왔다. 물의 기운으로 훑으며 확인했던 영혼의 상처받은 부위, 오염되고 공허한 기운이 풍겨 나오던 그 화기에 다친 영혼과 같았다.

난쟁이는 내가 미처 다 찾지 못한, 화기가 손상시킨 영혼의 부위를 캐내 결정으로 만들었다.

작은 바구니는 겨우 몇 개의 보석들만으로도 가득 차 버렸고, 난쟁이는 검은 구슬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광산 옆의 구덩이에 쏟았다. 만약 내 <무한 다이아> 속이었다면 창고에 보관했을 테지만 이곳의 면적은 고작 작은 광산 하나가 자리하는 게 다였다.

그러니 내 <무한 다이아>에서 파견된 특급 난쟁이가 창고 대용으로 쓰는 구덩이를 검은 결정으로 가득 채우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구덩이가 다 차 버리자 할 일이 떨어진 난쟁이가 날 멀뚱멀뚱 올려다보며 말했다.

[주인님! 창고를 비워 주세요!]

“거긴 내… 핸드폰이 아니라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데? 그나저나 그 검은 결정은 어디에 쓰는 거야?”

[저건 아직 못 써요! 쓰레기예요! 쓸모없는 돌멩이예요!]

“아직이라면… 쓸모 있는 상태로 바꿀 수도 있다는 거야?”

[네! 맞아요! 주인님은 천재예요!]

쓸모 있는 상태로 바꾼다고? 지금은 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치가 있는 물건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거지?

느긋하게 고민하기엔 내 설명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이들이 많았다. 난 현재까지 보고 들어서 파악한 정보들을 재빨리 머릿속에 정리하며 에트나에게 설명할 말을 골랐다.

“많이 놀라셨죠? 그건… 드루이드가 소지하는 테라리움 아티팩트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아티팩트예요.”

“이게… 드루이드가….”

베스탈리스는 평생 가질 수 없었던 물건이었다.

“정말 이게 아티팩트라고요? 그럼 베스탈리스도 드라이어드와 영혼의 연결을 맺을 수 있게 된 건가요?”

잔뜩 흥분한 포르낙스가 에트나에게 몸을 붙여오며 물었다.

“아니요. 드라이어드가 아닌… 제게 속한 정령을 보관할 수 있는… 아니 이걸 보관이라고 해야 하나?”

난쟁이는 앞으로 에트나의 아티팩트 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걸까? 만약 난쟁이가 내가 봤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에트나의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할 수 있다면 내가 할 일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수많은 베스탈리스를 매번 만나 치료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테라리움 아티팩트는 세계수의 축복을 심은 영혼의 한 편을 가시화한 무구예요. 에트나에게 생긴 아티팩트 역시 에트나의 영혼을 가시화한 물건으로… 그곳에 제 권속인 정령이 살며 화기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며 어떠한 결정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그 결정에 대해 확신을 내리기 힘드네요.”

당장은 가치가 없다는 그 결정. 하지만 어떠한 행동에 따라 쓸모 있게 만들 수 있다?

<무한 다이아>의 난쟁이들은 기본적으로 광산에서 다이아를 캐낸다. 그 다이아는 내 생명력을 정제한 것으로, 캐내기만 해도 바로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그렇다면 그 검은 결정체가 가치가 아직 없는 이유는…. 영혼이 아직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는 힘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아티팩트 안에 있는 정령은 본래 제 기운을 정제하여 또 다른 결정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제게서 만드는 결정은 다이아로…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그 다이아가 맞아요.”

“하지만 다이아는 세계수의 수액이 결정화된 것이 아닌가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결국 모든 이야기를 하려면 이들에게 내 정보를 한정적으로 오픈할 것이 아니라 죄다 오픈해야 하는구나.

“맞아요. 지금의 제가 세계수와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말씀드려야겠네요…. 믿으시는 건 자유지만 이렇게 영향력을 몸소 겪으셨으니까 믿으실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해요.”

잉켄과 포르낙스는 힘들겠지만 에트나는 직접 영혼이 치유되고 아티팩트까지 생겼으므로 믿을 수밖에 없으리라.

“당신이 샘의 원천의 기운을 느낀 것도, 제가 그 기운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제 생명력으로 세계수의 수액과 다를 바 없는 다이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전부 제가 존재 본질의 신성한 힘을 새로이 일깨웠기 때문이에요. 전 세계수의 묘목, 세계수를 대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신이 될 수 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어요.”

오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난 그들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며 문득 단 세 명도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진실을 세상이 납득하도록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난 이 자리에서 더 나아가 1번째 테라리움을 상대로, 전 테라리움을 상대로, 세계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기존의 이치와 완전히 반대되는 진실을 공표해야만 했다.

“제가 새로운 힘을 일깨우는 과정에서 베스탈리스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고, 이들이 겪고 있는 부조리를 모두 타파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베스탈리스에 대한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내 이야기를 듣던 에트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난 그 웃음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쩐지 조금은 부끄럽다는 기분도 들었다. 혹시 모두 허황된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걸까?

“영광이에요.”

“네?”

“세계수가 뜻을 펼치기 위해 드루이드를 선택한 것처럼 당신은 베스탈리스를 선택했다는 말이 아닌가요?”

그녀의 물음에 난 곧바로 답할 수가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이 왜 그렇게까지 베스탈리스에게 마음을 쓰는 건가요? 당신의 가족과 소중한 지인 중에 베스탈리스가 있나요?”

내게 가장 깊은 관계를 맺은 베스탈리스라면 겨우 미미르 정도이긴 했다.

“그건 아니지요. 그렇죠? 당신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페르노를 처단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니까요. 물론 우리들에게 연민을 느끼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제가 지켜본 바로 당신은 무척이나 선량하며 정의로운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기존의 체계에 반기를 들 정도로 움직이기엔 너무 리스크가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힘도 부족하고요.”

에트나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제 생각에는… 당신이 본능적으로 깨달은 거라고 생각해요. 베스탈리스를 선택하는 것이 당신이 앞으로 할 모든 것에 이로울 것이라고요. 드루이드는 이미 세계수의 축복을 한껏 누리는 자들, 그들에게 새로운 신은 필요가 없지요. 그리고 또 다른 경쟁자가 등장해 혜택을 나눠 받는 걸 원치 않을 테고요.”

그녀의 말처럼 이미 넘치도록 세계수를 통해 힘을 얻은 드루이드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다이아를 무한정 생성해 내는 힘을 제외하곤 드루이드와 양방향으로 이득을 주고받는 관계를 맺기에 유리한 힘은 없었다.

세계수는 드루이드에게 축복과 드라이어드를 선사하고 드루이드는 불을 해치우고 다이아를 바치고 세계수가 원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해 힘쓴다. 이건 이미 이 세계에 고정된 불변의 진리였다.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감히 당신의 머릿속을 추론해 보는 정도지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당신이 우리에게 얻을 이득이 있음을,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믿지 않으면 인정하지 못할 것 같아요.”

주기만 하는 관계는 일방적이며 베푸는 쪽이 먼저 손을 놓아 버리면 반대쪽은 어쩔 수 없게 된다. 마치 떨어지려는 사람에게 버틸 수 있도록 동아줄을 내려 준 것과 같겠지.

그런데 에트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마주 보고 손잡는 이미지를 원하고 있었다. 즉, 그녀는 불안한 것이었다. 내가 마음이 바뀌어 베스탈리스들을 저버리게 되는 미래가.

난 베스탈리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할 생각은 했지만 왜,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고민하진 않았다. 그저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미미르의 샘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자마자, 베스탈리스들이 정화의 힘을 가졌다는 진실을 알게 되자마자 그들을 위해 앞장서고 뒤에서 밀어주는 모든 일들을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지금도 내가 왜 그렇게 정의롭게 행동해야 하는지 본연의 이유를 묻는다면 쉽게 답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어쩌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뿐이니 누군가가 원하는 그런 숭고한 이유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해도 결론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이유도 괜찮겠네요.”

난 에트나가 제시한 근거에 손을 들어주었다. 나쁘지 않았으니까. 세계수는 드루이드의 손을 들고 난 베스탈리스의 손을 든다. 이끌어 주기로 마음먹었으면 당연히 그들을 ‘선택’해야지.

“맞아요. 전 세계수와 대등한 존재가 되길 원하며 제 뜻은 베스탈리스를 통해 펼칠 거예요.”

드루이드와 마찬가지로 세계 공통의 적인 몬스터 불에 대항할 힘을 가지고 있는 종족. 그리고 어쩌면 내가 알고 싶은 세계의 거대한 비밀의 열쇠가 될지도 모르는 종족.

“드라이어드를 기대하셨으면 죄송하지만 그보다 훨씬 작고 귀여운 난쟁이 정령은 어떠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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