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5화 (445/604)

난쟁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깃털처럼 공중에 붕 떴다가 느린 속도로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황급히 떨어지는 난쟁이를 두 손으로 받아 내자 정작 당사자는 놀이기구라도 탄 것처럼 꺄르르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게 대체 뭐죠?”

에트나는 난쟁이가 올라탔던 제 손을 감싸고 격정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

내 손 위에서 벌떡 일어난 난쟁이는 에트나를 미련이 철철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난 그 모습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보다 답했다.

“이건… 정령이에요. 드라이어드와는 조금 다른….”

“정령이요?”

“네, 그런데 저도 이게 저 이외에 다른 이에게 이렇게 흥미를 표출하는 모습은 처음 봐서….”

[주인님! 저쪽에 엄청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아요!]

난쟁이는 에트나와 포르낙스를 가리키며 방방 뛰었다. 나란히 앉은 소파 반대편엔 두 사람 외에도 잉켄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난쟁이는 오직 베스탈리스인 둘만 가리켰다.

난 일단 급한 대로 더 이상 난쟁이가 나올 수 없도록 핸드폰을 뒤집어 뒀다. 어쩐지 핸드폰에서 내보내 달라며 아우성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듯하다.

“해가 되는 존재는 아니고 단순히… 호기심이 좀 많은 정령이에요.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물론 이런 적이 없긴 했다. 난쟁이가 핸드폰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허허, 정령이란 건 아이들 동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실존하다니.”

자칫 딱딱하게 굳어 버릴 수 있는 분위기를 푼 건 잉켄이었다. 그는 난쟁이를 향해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자신이 알고 있는 정령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풀었다. 난쟁이를 수상쩍은 시선으로만 바라보던 에트나의 경계심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풀 꺾였다.

“하지만 이건 어딜 봐도 당신이 봤다던 그런 정령으로 보이지 않는데요.”

에트나는 매몰차게 난쟁이를 쳐 냈던 전과 달리 작은 난쟁이의 뾰족한 모자도 툭툭 건드려 보고 둥근 배도 쿡 찔러보며 아직 의심을 다 버리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기도 하나요?”

“공격성이 아예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주인님! 선물을 안 가져왔어요! 문을 다시 열어 주세요!]

난쟁이는 뒤집어 놓은 핸드폰을 가리키며 방방 뛰었다. 선물이라면 필시 다이아일터. 만약 난쟁이가 핸드폰으로 돌아가 다이아를 가지고 나온다면 이젠 정령을 넘어 월렛 털이 도둑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선물은 됐어.”

“어머, 설마 선물도 주겠다고 하던가요? 하는 생각이 제법 깜찍하네요.”

이제 와서 느낀 건데 아무래도 다른 이들은 난쟁이의 모습이 보이지만 그들의 말은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마치 드루이드가 아니면 드라이어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쟁이의 등장으로 잠깐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에트나의 영혼을 살펴보는 일을 재개하게 되었다. 그 틈에 난쟁이가 내 손을 타고 에트나의 손으로 넘어가 마치 신중히 광산을 둘러보는 모양새로 그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벌일지 걱정은 돼도 에트나는 이전과 달리 제 손등 위로 올라온 난쟁이를 가만 내버려두었다.

다시 한번 밀고 들어오려는 내 물의 기운에 에트나의 화기가 반발 작용을 일으켰다. 그 화기를 잠재워 가며 영혼의 더욱 깊은 곳을 훑게 되었을 때, 에트나가 다시 한번 깜짝 놀라 몸을 떨고는 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세상에….”

단번에 내 손을 쳐 내지 않은 걸 보면 지금 이 상황이 그녀에게 나쁘진 않은 것이리라…

“어머니, 왜 그러세요?”

지켜보고 있던 포르낙스가 안색이 달라진 제 어머니를 보고 걱정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화기가…. 볼일이 끝나신다면 꼭 제게 설명해 주셔야 할 거예요.”

“물론입니다.”

날뛰던 화기를 잠재우고 살핀 에트나의 영혼 역시 애쉬나 스텔라와 다를 바 없이 많은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다만 폭발적인 힘을 가졌던 둘과 다르게 그 정도가 덜 심한 정도였다.

그녀의 영혼 치료도 병행하며 가장 강력한 화기를 뿜어내는 지점까지 살핀 결과, 역시나 균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로써… 모든 베스탈리스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영혼을 한바탕 물의 기운으로 훑은 후의 에트나는 놀랍도록 침착하고 안정된 상태로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쏟아지는 잠을 참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항상 이런 기분인 건가요? 속에서 치솟는 화가 없으니 가슴이 시원하고,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 감각들도 모두 가라앉았어요. 마치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화기가 사라져 버린 듯한 속 시원한 기분이 드네요.”

몽롱한 그녀의 말에 포르낙스가 당황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이 물의 기운은 느껴 본 적 있어요. 미미르를 태어날 수 있게 도운 축복의 기운이었죠.”

“설마 당신 넵튜누스였나요?”

“아뇨, 전 넵튜누스가 아니에요. 완전히 달라요”

“그럼 이제 말해 주세요. 당신이 내게서 확인한 건 무엇이고 내게 뭘 한 건지. 어째서 당신이 샘의 기운을 사용하는지.”

“드루이드가 태어날 때 영혼에 세계수의 축복을 심고 태어나듯 베스탈리스도 불씨를 심고 태어난다고 알고 있었어요.”

“그렇지요.”

베스탈리스인 에트나와 포르낙스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하지만 영혼의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건 불씨가 아니라… 어떠한 균열이에요.”

이 이야기를 베스탈리스에게 직접 말하는 건 이 자리가 처음이었다. 당사자들인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기이한 균열이 영혼 한 곳에 자리하고 있고 그 균열 너머엔… 화기의 원천이 되는 기이한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어요. 전 그 무언가에게서 아주 익숙한 기운을 느꼈고, 어쩌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그 ‘불’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건 아주 위험한 발언이군요.”

듣고 있던 잉켄이 무섭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다혈질인 두 모녀 사이에서 완충제 같은 역할을 하던 남자는 처음으로 내게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건 이해가 갔다. 불이 세계를 침입하자 사람들은 침입자 불과 베스탈리스 사이에 연관성이 없음에도 단순히 불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베스탈리스들을 핍박했다.

지금 내 발언은 알고 보니 침입자 불과 베스탈리스가 정말 연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과 다름없으니 자신의 가족들이 받게 될 불이익을 걱정하는 거겠지.

“베스탈리스들이 자유자재로 다루고 통제가 불가능해 가끔 외부로 표출되는 화기와 열기 모두 그 불이 근원이에요. 균열을 통해서 넘어오는 거거든요.”

말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건 베스탈리스의 영혼이 손상된 상태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지 베스탈리스가 가진 진정한 힘이라고 볼 수 없어요. 진정한 힘은….”

“진정한 힘?”

난 에트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부러 마지막 치료 단계는 잠시 남겨 둔 상태였다. 한눈에 봐도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인 그녀는 내게 떨떠름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난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한번 물의 기운을 흘려 영혼의 균열을 수복했고, 이내 완전히 치료된 영혼은 역류 작용을 일으키며 균열을 통해 화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차별적으로 넘쳐 나던 화기가 뚝 멈췄다.

“이건….”

에트나는 변화가 생긴 제 몸을 살피는 듯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세계를 침입한 불은 평범한 불과는 다르지요. 물에 꺼지지도 않고 오직 세계수의 축복과 드라이어드의 힘으로만 끌 수 있어요. 그런데 베스탈리스의 영혼에는 이러한 침입자 불의 기운을 정화하여 순수한 원소인 불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내내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던 잉켄의 얼굴이 다른 감정으로 물들어 갔다.

“그 말은… 베스탈리스가… 마치 드루이드처럼….”

“네, 드루이드처럼 불을 무찌를 수 있는 또 하나의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에요. 다만 어쩌면 모든 베스탈리스의 영혼은 균열을 통해 넘어온 화기에 의해 오염되고 망가진 상태라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듯해요. 제가 에트나에게 한 건 망가진 영혼을 고치고 균열을 손봐서 본래의 힘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거예요.”

“베스탈리스들과 대면 요청을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군요.”

“확신이 없었기에 정확한 이유를 말하지 못했습니다.”

핍박받던 베스탈리스가 사회에서 드루이드와 같은 위치가 될 수도 있다. 만약 모든 베스탈리스가 전부 그런 게 아니라면 덧없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에 말을 아꼈었다.

“저도… 저도 가능한 건가요? 혹시 영영 불의 힘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니고요?”

포르낙스의 다급한 물음에 에트나가 시험 삼아 손을 들어 불의 힘을 이끌어 내 보았다. 그러자 맑은 빛의 영롱한 화기가 피어올랐다. 포악하지도 거칠지도 않은, 순수한 힘이었다.

“화기를 끌어 올릴 땐 항상 온 영혼이 요동치는 기분이 들었는데 놀랍도록 잠잠하네요. 우리들은 그 요동치는 떨림을 통해 우리의 남은 수명을 계산하곤 했죠. 불씨가 날뛰며 생명을 완전히 좀먹는 순간을 말이에요. 그런데… 어쩌면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드네요?”

“여보!”

에트나의 감상에 잉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이 상태는 무한한가요?”

“아쉽게도 그건 아니에요. 물의 기운으로 치료한 건 어쩌면 일시적일 거예요.”

“그렇다면 주기적으로 당신에게 영혼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건데. 베스탈리스들이 새로운 힘을 깨닫는 건 기쁘지만… 당신이 매번 그 수많은 이들을 하나하나 치료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요?”

[주인님!]

갑자기 잠잠하던 난쟁이가 큰소리로 날 불렀다. 내 시선이 난쟁이가 있는 에트나의 손으로 향하자 다들 그쪽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주인님! 이것 보세요!]

난쟁이는 몸을 낮춰 에트나의 손목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러자 그 순간 눈부신 검푸른빛이 그녀의 손목을 감쌌다.

“앗!”

빛은 점점 형태를 갖추더니 곧이어 에트나의 손목에 익숙한 물건을 남겼다. 애쉬의 손목에도 갑자기 생겼던 둥근 돔 형태의 팔찌, 테라리움 아티팩트와 겉모양이 유사한 그 팔찌였다.

[주인님!]

그리고 그 유리 돔 안에 어느새 자리를 잡은 난쟁이가 해맑은 목소리로 날 부르고 있었다.

[주인님! 이 광산은 이제 제 거예요!]

돔 안엔 내 <무한 다이아>에 비할 바가 못 되는 아주 작은 광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단 하나의 난쟁이를 위한 소규모 광산처럼 보였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