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2화 (442/604)

“혹시 이게 보여?”

난 제 품에 한 가득 다이아를 안고 날 올려다보는 난쟁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엘더가 애정을 한껏 품은 눈으로 난쟁이를 바라보며 답했다.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는 대체 뭐야?”

[오오! 나는 당신이 누군지 알아요!]

엘더를 단번에 알아본 난쟁이가 가까이 다가온 그에게 가진 다이아를 죄다 바치며 살갑게 굴었다. 엘더와 난쟁이의 조합은 최강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조합이었다.

“보이는구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동안 난쟁이들과 대화를 해도 혼잣말로 치부될 정도로 나 이외에 이들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자들이 없었는데… 이젠 직접 폰 밖으로 나와 자신들의 존재를 여실히 어필하고 있었다.

“나야말로 묻고 싶어. 네 월렛에 대체 왜 이런 것들이 살고 있는 거야?”

엘더는 난쟁이들이 퍼다 나르는 다이아를 재빠르게 챙기며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정체가 대체 뭘까요? 혹시 인간들의 동화책 속에 나오는 정령이라는 걸까요? 세상엔 드라이어드와 같은 신비로운 정령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정령이라… 당장 난쟁이들을 표현하기에 딱 좋은 단어가 아닌가 싶었다. 다이아의 정령.

메스키트 역시 흥미를 보이며 한쪽 무릎을 꿇고 책상 위 난쟁이들과 눈을 마주했다.

[오! 나는 당신도 잘 알아요!]

메스키트 역시 알아본 난쟁이들이 엘더에게 다이아를 나르다 말고 경로를 바꾸어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엘더가 황급히 책상을 툭툭 치며 자신을 어필했다. 이쪽으로 오라는 뜻이었다.

“둘을 알아본다는 건… 그래프트 때문이구나.”

언젠가 꿈속에서 난쟁이들의 마을을 방문했을 때, 엘더의 코스프레를 하고 그를 신격화하며 찬양하던 난쟁이들의 모습을 봤었다. 물론 꿈속이니 진실이라 볼 순 없지만 어쨌든 난쟁이들이 핸드폰 속에서도 그들을 인식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엘더와 메스키트는 한 번 그래프트를 발동하면 세계수의 가지 못지않게 다이아를 소모시키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지 않을까?

마치 과자에 몰리는 개미처럼, 소문을 듣고 몰려오는지 핸드폰에서 튀어나오는 난쟁이들의 수가 늘어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엘더와 메스키트를 향해 손을 붕붕 흔들었다.

[저희는 당신들에게도 기대가 커요!]

[어서 주인님의 다이아를 몽땅 사용해 주세요!]

더불어 아직 그래프트를 펼치지 못하거나 스킬 사용에 다이아 소모가 붙지 않은 드라이어드들을 향해 가감 없이 응원을 펼치기도 했다. 조금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제이.”

“아… 소개해 줄게. 정령, 그래 얘들은 다이아의 정령이야.”

핸드폰 게임 속의 캐릭터들이라 말하기엔 너무 메타적이었기에 적절히 말을 골랐다.

“내 월렛은 다른 사람들의 월렛과 조금… 아니 많이 달라. 내가 그… 다른 곳에서 왔다는 건 눈치챘지?”

바곳이 제이와 날 분리시키며 난 본래 있던 세계로 귀환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며칠을 보내는 동안 너무 늦는다 생각한 실새삼이 데리러왔다.

그때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내 드라이어드들 중 돌아오길 바라는 의견과 계속 원래 세상에서 살길 바라는 의견이 나뉘었다고.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걸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다른 존재라는 것은 다들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혹시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정확히 말해 줄게. 난 이 세상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야.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 어느 날 갑자기 이곳에 오게 되었어.”

<테라리움 어드벤처>에 온 후 드라이어드들을 만나게 되며, 그들에게 과연 내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게 될 날이 과연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테라리움 어드벤처>는 그저 게임 속 세계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이곳이 어딘가에 실존하는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말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비밀에 대해서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것들을.

“내 영혼은 세계수가 퍼뜨린 씨앗에서 태어났어. 그러니까 말하자면 세계수의 묘목 같은 거라고나 할까?”

내 이야기에 실새삼을 제외한 드라이어드들이 놀란 얼굴을 했다.

“네가… 세계수의 묘목이라고? 그저 대리자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응, 식물이 자손을 퍼뜨리는 일이 세계수에 대응되면 얼마나 큰일인지도 실새삼에게 들어서 알고 있어. 절대적인 존재인 줄 알았던 세계수가 어떠한 이유로 죽어가고 있고 후일을 위해 자손을 다른 세계로 퍼뜨렸는데 그게 내 영혼이었어. 사실 아직도 확 와닿진 않지만….”

직접 과거의 기억을 겪지 못했다면 완전히 믿지 못했을 진실이었다.

“내 영혼의 본질을 기억해 내는 과정에서 이 정령들이, 이 월렛에 대해서도 알게 됐어. 보통의 월렛은 아니고… 이건 어쩌면 내 생명력을 사용해 만든 아티팩트, 보구 같은 걸 거야. 그리고 이 정령들은… 난 난쟁이라고 부르는데, 내 보구에 속한 정령들이야.”

사실 무한 다이아의 존재 의의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게 됐지만 하필 핸드폰 게임의 형태를 취한 것에 대해선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아직 풀지 못한 비밀이 <무한 다이아>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세계수가 언젠가 돌아올 자신의 묘목인 내게 친근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테라리움 어드벤처>란 게임의 형태를 취했던 것처럼, 나 역시 보구를 친근한 게임에 투영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출처를 모를 다이아를 무한에 가깝게 사용했었지…. 다들 출처가 궁금했을 법도 한데 묻지 않아 줬고 말이야.”

내 말에 엘더가 머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드라이어드들은 내가 다이아를 펑펑 써 대도 한 번도 그 출처에 대해 의심하거나 묻지 않았다. 물론 데이지는 처음 만났을 때 그녀에게 했던 거짓말을 아직 믿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세계수의 수액이 증산 작용으로 퍼져 나가 드루이드의 영혼에 닿아 월렛에 굳는 게 다이아잖아. 그것처럼 내가 사용하는 다이아 역시 내겐 수액이라고 할 건 없지만 비슷하게 생명력을 굳혀서 만들어지는 원리인 듯해.”

“잠깐, 그렇다면 이 모든 다이아가 네 생명력이란 말이야?”

난쟁이들에게 다이아 조공을 받던 엘더의 표정이 단박에 굳어졌다.

“응, 그런데 소모되는 개념은 아니야. 무한이거든. 내 다이아는 무한이야. 이곳에 올 때부터 지금까지 세계수 가지에 다이아를 제공하고 그래프트를 사용할 때도 생명력 대신에 다이아를 사용했지만 생명력이 깎인다는 느낌을 받은 적 없어.”

“하지만 나와 그래프트를 사용했을 때는…!”

아픈 기억을 건드린 탓에 엘더의 표정이 단번에 침울해졌다.

“그건 그때도 말했지만 결코 네 잘못이 아니야. 잘못이 있다면 세계수에 있어. 그때 세계수 가지가 그동안 비축해 뒀던 무한에 가까운 다이아를 전부 소모해 버리자 대체제로 내 영혼을… 건드렸거든.”

제로 다이아 그래프트를 사용했던 그날 이후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기절해 있었던 원인에 대해 아주 정확히 알고 있던 건 오직 실새삼뿐이었다.

세계수 가지가 날 빈사 상태로 만든 정확한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선 <무한 다이아>의 존재부터 시작했어야 하는데 그때는 밝히기 힘들었지.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내가 ‘제이’였을 시절에 세계수의 가지는 내 영혼에 기생 식물처럼 깊게 박혀 있었고 이번에 세계수가 완전히 내 몸을 차지하고 폭주를 했던 걸 보면, 어쩌면 날 죽어 가는 자신의 새 몸을 대신할 그릇으로 사용하려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정확한 건 오직 세계수만 알 테지만.”

내 말에 그동안 세계수와 나의 관계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고 있던 메스키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녀는 그간 내게 일어난 일을 겪은 뒤 세계수에 대한 적대감을 은근하게 표출하고 있었다. 또한 메스키트를 제외하고도 내 드라이어드들은 아예 나를 작은 세계수가 아닌 또 하나의 자신들의 세계수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거리낌 없이 빨아먹을 다이아가 없으니 내 영혼에 손을 댔겠지. 사실 테라리움을 손에 넣을 때마다 세계수 가지가 빨아들이는 다이아 양이 엄청나. 아마 내 테라리움들은 이미 몇십 개의 테라리움들이 소비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다이아를 빨아들이고 있을 거야. 그렇게 많은 양을 풍족하게 먹으면서도 다이아가 바닥을 보이자마자 내 영혼까지 게걸스럽게 먹으려 든 걸 보면… 생각보다 세계수가 아주 위태로운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이미 나 혼자 세계에 존재하는 드루이드가 제공하는 다이아 공급의 반절 이상을 커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수가 나아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세계수는 여전히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쨌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날 그래프트의 일은 엘더 네 잘못이 아니야. 오히려 넌 내가 원했던 힘을 충분히 발휘해 줬을 뿐이야.”

“하지만 다이아라서 그런 그래프트를 펼쳐도 더욱 거리낌 없었던 건데. 네 생명력이란 이야기를 들으니까….”

“넌 여태 뭘 들었니? 난 보통 인간이 아니야. 세계수의 묘목이라고. 그렇다는 건 나 역시 세계수와 다름없는 신이란 거잖아. 겨우 드라이어드가 신인 나를 걱정하는 건 아니겠지?”

장난기를 섞은 목소리에 엘더가 울상이 된다. 엘더의 걱정은 전적으로 약한 존재였던 제이에게서 비롯된다. 내가 다시 쓰러질까 봐, 오랜 시간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봐, 망가질까 봐…. 하지만 이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넌 신의 직속 드라이어드잖아. 자연재해를 상대할 힘과 깡 정도는 있어야 당당하지 않겠어? 네가 이대로 그래프트를 더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이 난쟁이들이 무척 슬퍼할 거야.”

[주인님! 더 이상 다이아를 쓰지 않으신다고요?]

[주인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세요!]

[다이아! 다이아를 쓰세요!]

난쟁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우성이다.

“난 세계수와 다르게 무한한 다이아를 생성해 내고 있어. 지금도 이 월렛엔 이 테라리움을 다 채우고도 훨씬 남을 다이아들이 가득 들어 있어. 그래서 항상 이 난쟁이들이 다이아를 써 달라고 아우성이란 말이지.”

내 말에 엘더가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내 진짜 이름은 제이가 아니라 제희야.”

지금까지 실새삼만이 날 제희라고 불렀지만 이젠 다른 드라이어드들도 제희라고 불러 주길 바랐다.

“복으로 세상을 구제하란 뜻을 가진 이름이며 메마른 땅을 비옥하게 만들 거란 꿈의 계시를 받고 태어났지. 그러니 내 영혼의 본질은 무한으로 쏟아 내는 다이아처럼 넘치는 복을 세계에 뿌리는 데에 있다고 봐. 다이아를 뿌리는 일, 그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자 주특기잖아? 다들 앞으로도 내 다이아를 마음껏 소모해 줬으면 해. 그럼 세계에 이로울 뿐만 아니라 이 난쟁이들도 무척 기뻐할 거야.”

말이 끝나자 난쟁이들이 책상 위를 폴짝 폴짝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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