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6화 (426/604)

깊은 물에서 확 건져지는 것처럼 갑자기 깨어났다. 밀려오는 탈력감에 잠시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내 어깨를 조금은 아프게 토닥이는 손이 있었다.

“혹시 술 마셨니? 술 냄새는 안 나는데.”

“어? 엄마?”

“학교 안 갔어? 아직 올 시간도 아닌데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외출복 상태 그대로 서서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 눈 비비고 봐도 우리 엄마였다.

“어… 엄마가 여기 왜….”

혹시 환각인가? 드라이어드 중에서도 환각 기술을 사용할 줄 아는 드라이어드가 있긴 한데….

“오늘 일찍 퇴근해서 바로 집에 왔지. 그러는 너는 왜 그러고 있어?”

환각 치고는 너무 생생해서 문제였다. 드러누워 있던 몸을 일으키자 손끝에 가방 끈이 툭 채었다. 학교 다닐 때 자주 들고 다니던 가방이었다.

깜짝 놀라 내 몸을 살피니 장비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코트에 간편한 외출복 차림뿐이었다. 더구나 장소도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우리 집 현관이었다. 막 학교에서 집에 돌아온 모양새.

<무한 다이아>의 [???] 업적을 채우기 위해 자체 휴강을 한 후 다이아 수레를 미친 듯이 비우다… 업적을 달성한 것과 동시에 <테라리움 어드벤처>로 끌려가기 직전의 상태와 똑같았다.

“어….”

“얘가 영 정신을 못 차리네. 밥은 먹었어? 너희 아빠 퇴근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우리끼리 나가서 먹을까?”

“내 핸드폰! 내 핸드폰 어딨어?”

“저기 있잖아.”

한심하단 목소리를 뒤로 하고 엄마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내 핸드폰도 무사히 바로 근처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뭐야, 왜 안 켜져?”

마치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핸드폰이 완전히 먹통이었다. 급하게 보조 배터리를 꺼내 끼우는 날 보며 엄마는 외식을 포기했는지 그대로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됐다, 됐어. 그냥 시켜 먹자. 술 마신 게 아니라면 공부 때문에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지. 그럼 어디 안 나가고 집에서 쉬는 게 낫겠어.”

난 배터리 충전 표시도 뜨지 않는 핸드폰 화면과 자연스럽게 안방으로 향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며 혼란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째서 집으로 돌아온 거지?

익숙한 생활 소음들을 들으니 흐릿했던 정신이 점점 더 맑아졌다. 난 확실히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핸드폰을 켜 본다면, 켜서 <무한 다이아>를 확인해 본다면 뭐라도 알 것만 같은데. 업적은 그대로인지, 여태 했던 내 모든 여행이 전부 꿈일 뿐인지….

바곳이 세계수와 연결된 내 운명을 끊어 냈기에 그대로 전쟁터로 돌아갈 줄 알았다. 당장 수습해야 할 일도 많았기에 정말 바쁘게 뛰어다녀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 보니 난데없는 평화로운 집이라니.

“핸드폰은 어때? 고장 난 거야? 오래 쓰긴 했지.”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엄마가 아직까지 핸드폰을 쥐고 허망한 표정을 짓는 날 보며 말했다.

“이게 아까까진 잘됐어.”

아마도.

“수리 센터에 맡겨 봐.”

충전도 안 되고 전원도 아예 켜지지 않는다. 완전히 먹통이 되어 버린 핸드폰. 수리한다고 살릴 수나 있을까 싶었다.

<테라리움 어드벤처> 게임 속에서 현실의 나와의 유일한 연결 고리는 <무한 다이아>가 살아 숨 쉬는 내 핸드폰이었다. 그러니 정말 단순히 꿈이었는지, 진짜였는지는 어쩌면 내 핸드폰만이 알고 있는 진실일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씻고 옷 갈아입어.”

“응….”

뭔가 기운이 빠진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매우 긴박한 상황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불 속에서 활활 탔던 것치고 몸 어딘가가 뜨겁지도 화상을 입은 곳도 없었다. 맨바닥에 누워 있었기에 살짝 몸이 뻐근한 정도. 그래도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느라 근육도 좀 생겼었는데 말랑한 살만 보인다.

털레털레 가방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텐데. 불길에 갇혀 있던 게 내 마지막 모습이니 내 드라이어드들은 물론 길드원들이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까?

“아!”

불현듯 생각난 것이 있어서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전원을 누르고 로딩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이 몇 년처럼 느껴졌다.

바탕 화면이 보이자마자 인터넷 창을 열어 ‘테라리움 어드벤처’를 검색했다.

동기의 반강제적인 권유로 사전 예약에 참가했던 게임. 내가 1년여 정도를 바쁘게 여행했던 그 게임.

내 손으로 가꾸는 아름다운 RPG, 테라리움 어드벤처 사전 예약 진행 중.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