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키아 길드가 우리를 한없이 얕봐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그리고 우릴 상대로 연장전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계획을 갖고 4일을 버티기 위해 체력 비축을 한 판단 역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아스키아 길드가 총력전을 기울여 무리하게 승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 덤비느라 예상보다 평범하게 시간을 끌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래서 이름 있고 많은 사람들을 통솔하는 자리는 번거로운 거다. 평판을 신경 써야 하니까.
아스키아 길드가 외부적으로 내세우는 자신들의 길드 이미지는 ‘정의, 교양, 기사도’. 이곳은 자신들의 길드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니 전투에서도 교양 있고 엘리트다운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집착하는 것이다.
더러워지기 십상인 전쟁터에 흰옷을 유니폼으로 입고 온 것만 봐도 그렇지.
그리고 그들은 어쩌면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번에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 천천히 피 말려 죽이는 것도 일종의 벌을 주는 과정이라고. 적이 떼로 몰려 있는 광경을 보고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을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렇게까지 합리화하지 않고서야 왜 우리가 아직까지 무너지지 않는지, 왜 그들이 1일 차에 승부를 보기 위해 모든 것을 걸지 않는지가 납득이 되지 않을 테니까.
“길드 이터를 상대로 상당히 애먹고 있나 본데.”
빨리 해치우고 합류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버거웠는지 후방의 몇몇 인원들이 길드 이터를 상대하기 위해 차출되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저 모습을 보니 내 짐작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끌리더라도 이기는 건 자신 있으니까 여유를 부리며 전력을 빼돌리는 거다. 지금 상황이 급박하다면 불 보스를 상대하고 있을 전력까지 끌어와 덤볐겠지.
여긴 걱정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