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길드전이 다른 곳에 생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스키아 길드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연금탑을 상대로 워낙 일을 크게 벌인 터라 아예 모를 순 없었고 대략적인 정보는 알고 있을 거다. 다만 그게 정말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지. 내가 살던 세계에선 흔하나 이 세계에선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신기하다. 지금 방송 타고 있는 거겠지?”
원래의 나라면 그런 상황을 정말 극혐했을 건데. 내 플레이가 나도 모르는 다수에게 보여 좋든 싫든 평가받는 대상이 되는 건 정말 끔찍했다.
그래서 게임을 할 때도 방송 중인 스트리머가 있다면 기를 쓰고 피해 다녔었지.
어쨌든 생중계가 시작되면 정작 일을 벌인 우리 길드가 아닌 아스키아가,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새에 많은 이득을 볼 것이다.
메모리아는 내가 요구했던 생중계가 가능한 시스템을 정말로 만들어 냈다. 전기가 없어도 연금술로 커버할 수 있는 참 신기한 세상.
이 발명품의 무시무시한 점은 파급력이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은 지금쯤 모니터를 통해 한눈에 아스키아의 길드가 얼마나 대단한 저력을 가졌는지 생생하게 보고 있을 것이다. 대형 길드란 말만 들었지, 길드원이며 동맹들을 죄다 끌고 와 힘자랑을 하고 있는데 보고도 감탄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이곳의 길드들은 기업보단 못해도 전문 드루이드들과 모험가들이 모인 무력 집단인 만큼 현재와 같은 난세엔 인기가 많았다.
더구나 어느 정도 브랜딩이 된 길드라면 더욱.
아스키아 길드가 우리를 염탐할 동안 나라고 손만 놓고 있던 건 아니다. 이쪽도 아스키아를 열심히 파헤쳤다. 그 결과 아스키아 길드의 아주 독특한 시스템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대형 길드가 되기까지, 그들이 용병 중개업으로 부를 모으고 성장한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어느 지점이 되자 기업들이 협찬과 후원을 붙였다. 마치 연예인이나 스포츠 팀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잘 나가는 길드의 길드원들 모두가 빠짐없이 애용하는 드루이드 필수품이란 홍보 문구가 붙으면 괜히 혹하게 되는 거지. 이유가 있기 때문에 모두가 사용하는 건 아닐까? 실상은 협찬 광고지만.
물론 시들링처럼 유명세가 있는 드루이드 역시 빈번하게 협찬이 들어온단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들링은 길드 수배범이란 악명이 이미지에 마이너스가 되는 바람에 기성품을 파는 기업들은 시들링이 행여 그들의 물건을 사용해 타격을 입을까 봐 덜덜 떨었다는 씁쓸한 사실까지도.
어쨌든 현재 그들의 저력이 TV를 통해 톡톡히 홍보가 되는 만큼 유명세는 더욱 높아져 후원과 협찬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어찌 보면 죽 쒀서 개 준 꼴이지만, 나라고 마냥 그들에게 이득이 되라고 다이아를 퍼부어 가며 연구를 지원한 건 아니었다.
높아지는 유명세는 딱 초반까지만 허용이다. 그 이후부턴 그 대단한 저력을 가지고도 소수 길드에게 개박살 나는 모습만 보여 줄 거거든.
난 아스키아 길드원들을 훤히 내려다보며 한 명 한 명을 살폈다. 역시나 유니폼을 제외하고도 그들이 공통으로 장비하는 물건들이 보였다. 그렇다는 건 당연히 이 자리에도 협찬 물품들을 가져왔다는 건데.
초반 아스키아 길드가 대규모 인원을 이끌고 60번째 테라리움으로 쳐들어오는 장면은 굉장히 멋있을 것이다. 일부러 그 장면을 놓치지 않도록 송출하는 전 테라리움의 담당 연금술사들에게 당부해 뒀으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기대할 것이다.
인원 차이가 크게 나는 우리 길드가 쪽수로 밀어붙이는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꼴을.
그러나 정작 그들이 보게 될 모습은 어째서 그 인원을 가지고도 아직까지 전전긍긍하냐는 의문 가득한 모습인 것이다.
아스키아 길드원들은 외부 싸움에 집중하느라 정작 아직도 정문, 후문의 상징물은 손도 못 대는 중이었다.
대단한 방어벽이 있는 것도, 장애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난 테라리움의 가드닝 스킬은 아직 사용도 안 했지. 그들은 단순히 수문장에게 막혀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쪽수만 보면 4일은커녕 하루, 아니 몇 시간 만에 결판날 싸움이 이상하게 질질 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의심이 생기게 될 거다.
***
“왜 저렇게 사람이 많은데 아직도 승패가 나지 않는 거지?”
“그러게. 괜히 긴장되게 만드네. 이러다가 저쪽이 이기면 돈 다 날아가는 거 아냐?”
간만의 즐길 거리를 반기지 않을 사람들은 없었다. 이 즐거움이 오래 가길 원했으나 한편으론 이해관계에 따라 시간이 길어질수록 걱정이 느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거 보러 오는 동안 이미 끝나 있을까 봐 걱정하면서 왔는데, 이래선 내일까지 가는 거 아니야?”
모든 테라리움에 대나무숲이 조성된 것은 아니기에 소문을 듣고 이웃 테라리움에서 원정을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몇몇은 술과 먹거리를 들고 비좁은 자리에 기어코 돗자리를 깔고 앉아 마음껏 즐겼다.
“그래서 상황은 어때? 나 오기 전부터 계속 저런 거야?”
“이상하긴 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상대가 의외로 잘 버티는걸.”
여태까지 의문을 갖지 않던 사람들도 하나둘 목소리를 내자 뒤늦게 군중들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연금술과 공성 무기는 등장하지도 않고 오로지 드라이어드들만의 싸움만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숱하게 드라이어드 간의 전투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서로가 얼마나 치밀한 공방을 주고받으며 결전을 이어 나가고 있는지 알아보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겐 그저 쪽수 싸움으로 보일 뿐이었다.
“대형 길드라더니… 이거 순 사람만 많을 뿐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 아냐?”
취기도 오르고 열도 오른 분위기 속에서 이 정도 직설적인 험담이 나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당사자들은 모두 한참 거리가 먼 곳에 있으니 두려울 것도 없었다.
“그런가…?”
흥분은 전염되고 통제되지 않는 비난은 손쉽게 퍼져 나간다. 믿지 않으려 해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니 아스키아가 밀릴지도 모른다는 희박한 가능성이 점점 힘을 얻어 가고 있었다.
드라이어드들의 전투가 부각되고 있지만 드루이드도 직접 무기를 들고 전투에 참전하고 있었다.
드라이어드끼리의 전력 싸움도 승패를 가르는 주요 요인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드루이드의 안위였다. 그렇기에 아무리 드라이어드들끼리 치열하게 공방을 치러도 드루이드를 먼저 쓰러뜨리는 쪽이 승리나 다름없었다.
그걸 아는 드루이드들은 드라이어드 육성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실력도 열심히 갈고닦았다.
비록 정문은 버티기가 진행 중이라 온갖 현란한 드라이어드들의 기술들만 눈에 들어왔지만, 후문은 나름대로 다수가 맞부딪히는 공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검과 검을 맞대거나 화살이 쏟아지거나. 우위에 서기 위한 드루이드 싸움 역시 불길이 거셌다.
“어, 저거 나도 쓰는 건데. 저렇게 쉽게 박살 나는 거였어?”
단순 몸싸움인가 싶었으나 특이하게도 한쪽은 과격하게 장비나 무기를 박살 내는 데 서슴없었다. 상대편의 장비가 망가진다면 이득이긴 하지만, 리타이어시키는 것보다 물건을 망가뜨리는 것이 더 큰 목적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꽤나 집요했다.
“아, 저 비상 실드 위급 시에 좋다고 해서 나도 산 건데!”
“어디? 어, 저거 나도 본 적 있어.”
작은 몸집의 드루이드가 벌처럼 날아 내리친 단검에 상대의 팔에 고정된 작은 간이 방패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파편이 살에 박혀 고통을 준 데다 믿었던 방패가 하릴없이 박살 나자 물건 주인은 당황하여 틈을 보이고 말았고 이내 고스란히 쏘아지는 연공에 쓰러졌다.
모험은 언제나 위험했고 목숨은 하나이기에 길을 떠나는 모험가들은 동료와 든든한 장비를 생명줄처럼 여겼다. 그렇기에 현재 이 광경을 보는 이들의 생각은 하나로 집결되었다.
‘저건 사지 말아야겠다.’
대형 길드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날개 달린 듯 팔려 나가던 물품들이 처치 곤란 재고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
전부는 아니지만 아스키아 길드에 들어가는 협찬과 후원 목록들은 파악해 뒀다. 그리고 길드원들에게 리스트를 공유한 후 당부했다. 긴박한 순간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여유가 된다면 눈에 보이는 족족 파괴해 달라고.
리스트를 전부 외우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다들 똑같은 걸 착용하고 있으니 알아보는 게 쉬웠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만들어 낸 길드 이터처럼 단번에 전투에 영향을 끼치는 전략은 아니었으나 앞으로 남은 4일이란 긴 시간을 보고 만든 전략이었다.
안뿐만 아니라 바깥에서까지 그들을 공격하는 것. 아스키아의 후원을 하나둘 끊어 내부 동요를 유발할 셈이었다.
어차피 우리 길드는 후원이 필요하지 않기도 해서 아예 없었으니 맘 놓고 싸워도 됐다. 더구나 이런 방식의 전략을 상대가 어떻게 눈치채겠어?
전쟁엔 필수적으로 자금이 많이 든다. 더구나 현재 길드전은 오로지 내 지갑으로 해결한 것에 비해 아스키아는 길드 공동 자금을 사용했을 테지.
이 전투엔 육신이 지치고 상처 입는다고 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동아줄도 관리해야 했다. 듣자 하니 길드전 신경 쓰기 이전부터 용병 중개업을 아주 느슨하게 관리하고 있었다지?
그래서 이쪽도 미꾸라지를 풀기 수월했다.
후원을 끊고 그들이 돌아갈 본업에도 경쟁자들을 키워 놨다. 일감을 몰아주고 당장 자금이 필요한 곳은 숨을 틔워 주어 굵직한 의뢰 하나에 목매다는 것이 아닌 난이도가 낮은 의뢰를 왕창 가져갈 수 있도록 조절해 줬다.
즉, 아스키아 길드가 뒤로 후원과 협찬을 받았던 것처럼 나 역시 그들의 본업 라이벌이 될 수 있는 단체들을 후원한 것이다.
빠르면 이틀 뒤, 늦으면 길드전이 절정에 달하는 4일째 되는 날 저들도 소식을 접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장이라도 수습할 생각이라면 길드전을 포기하고 내실을 다지기 위해 후퇴할 수도 있을 건데, 과연 어떻게 나올까?
모든 손해는 60번째 테라리움을 먹으면 메꿀 수 있다고 자만하고 있겠지. 하지만 노리던 테라리움은 결국 먹지 못하게 될 것이고 돌아가도 한동안 손가락만 빨면서 지내야 할 것이다.
이게 다른 길드원들처럼 뛰어나가 무기를 휘두르며 싸울 수 없는 내가 가장 잘하는 방식이었다.
빨리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차려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