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전이 시작되기 직전 테라리움을 빠져나와 길을 우회해 아스키아 길드 행렬의 뒤편으로 달렸다.
신변의 안위만으로도 길드전의 승패가 갈리는 몸이 가장 안전한 성에서 뛰쳐나가 밖을 나도는 건 아주 무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난 싸우기 위해 밖으로 달렸다.
가이아 길드는 28번째 테라리움의 드루이드 양성소 직원들을 흡수하며 조금이나마 전력이 보강되었다.
비록 4명뿐이지만 개개인이 후배를 양성할 실력이 될 정도로 뛰어난 베테랑들이었다.
어중이떠중이들 수십 명을 데려다 놓느니 보증된 실력을 가진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리고 난 당연하지만 아스키아 길드와 다르게 단 한 명의 용병도 고용하지 않았다.
근 한 달간 다이아로 사람이 쉽게 움직이는 모습을 질리도록 봐 왔기 때문인지 내 울타리 안의 사람들이 아니면 좀처럼 믿기 힘들었다. 물론 변심하지 않고선 못 배길 정도로 아낌없이 다이아를 뿌려 댔지만 정작 호응이 되니 마음이 더 식어 가더라.
아스키아 길드에 비하면 우리 길드는 인원 충원을 했어도 한참 머릿수가 부족했지만, 난 그 간격을 메꾸기 위해 길드전이 시작되기 전 수많은 준비를 해 왔다.
지금 아스키아 길드의 후방으로 달려가는 이유도 그동안 준비한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서였다.
한참을 달려서 아스키아 길드의 행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에 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리 그곳에서 대기 중이던 가막살나무가 날 반겼다.
이제 십여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선두가 테라리움의 정문과 충돌할 터였다. 그리고 거기서 시간이 더 흐르면 후문까지 인파가 나눠질 것이다.
그들이 어떤 전략을 들고 왔는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내가 돌아갈 때까지 정문이 충분히 버텨 주는 것이었다.
“후… 이제 시작해 볼까?”
우리의 인원이 모자라면 상대의 전력을 줄이면 된다.
그 첫 번째 계획이 바로 공성 병기의 무효화였다. 불을 퇴치할 때 평범한 공성 병기를 쓸 일이 없고, 대부분의 전투는 드라이어드에게 의존하니 이 세상의 병기들은 누군가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독점할 수 있는 구조였다.
하물며 인페르노를 제외한 어떤 인간이 간 크게 테라리움을 공격할 마음을 먹겠는가?
그 인페르노도 공성 병기가 아닌 스스로 만들어 낸 화염을 사용해 공격했다.
즉, 지금 길드전에서 상대가 가장 필요할 공성 병기는 죄다 60번째 테라리움 안에서 기술자들의 손에 당장이라도 발사할 수 있을 만큼 조율이 끝난 상태였다.
다만 우리 쪽에서 사용하는 공성 병기는 상대편의 수많은 드루이드들이 드라이어드들에게 방어를 명령하게 된다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그저 허를 찌르기 위해 대기 중일 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통제되지 못하는 모든 외부 요인을 우리 쪽의 병력으로 사용한다.
사람은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외부 요인은 우리는 물론 상대도 공평하게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난 대기하고 있던 가막살나무에게 신호를 줬다.
그가 착실히 여태 펼치고 있던 스킬을 거두자 순식간에 엄청난 열기가 일대를 뒤덮었다.
“당장이라도 다 태워 버리고 싶어서 엄청 날뛰고 있네.”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최악의 존재. 그동안 내가 허투루 여행을 다닌 것을 아님을, 이 길드전에서 내 모든 것을 쏟아 내 보여 줄 때였다.
“자, 너희들의 시간이다. ‘길드 이터’들아.”
주변의 모든 것을 태우며 매캐한 연기가 퍼져 나갔다.
가막살나무가 친히 만든 감옥에서 온몸에 고도로 압축된 시뻘건 화염을 두르고 거대한 검을 형상화한 불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화염 기사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선두를 따라 각기 다른 무기를 든 화염 기사가 넷은 더 기어 나왔다.
모두 사람의 형태를 취한 불로, 첫 시작은 이 언덕을 전부 뒤덮을 만큼 거대해질 뻔한 불이었다.
세계수의 축복이 약해지는 뒤 번대에서 작정하고 다이아를 미친 듯이 먹여 키우니 여태 내가 봤던 불 중 가장 크기가 거대한 불이 될 뻔했다. 하지만 그 계속 크기를 불리도록 내버려 두기엔 너무 눈에 띄었다. 불을 인위적으로 키우는 걸 남이 봐서 좋을 일이 하나 없지.
다음은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크기로 만들기 위해, 생태계의 최강자를 모방하는 불의 습성을 이용했다.
내가 여행하며 처음으로 만났던 강한 불, 그건 바로 민들레 군락지에서 만난 시들링의 모습을 표방한 불이었지.
그래서 불의 몸집을 불리는 것과 동시에 시들링을 포함해 길드원들로 하여금 불을 계속 쥐어패도록 시켰다.
다섯 개의 불은 몸집을 불리는 대신 길드원들의 모습을 모방하며 내부를 단단하게 응축하는 방식으로 변해 갔다. 종내엔 사람의 몸집만 한 크기에 다양한 무기를 휘두르는 형태가 완성되었다.
즉 내가 키운 건 움직이는 길드 대항 병기, 필드에 소환한 불 보스들이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이제부터 고삐는 내가 쥘게.”
내 말에 가막살나무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쥐고 있던 핸드폰에 힘을 주자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며 형체가 길쭉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핸드폰 화면 속에 있던 나뭇가지들이 꾸역꾸역 밖으로 기어 나와 유려한 곡선을 이루며 핸드폰을 휘감았다. 세 개의 테라리움을 손에 넣으며 나뭇가지는 전과 비할 바 없이 더 빽빽하게 휘감았고 어느덧 거대한 지팡이가 핸드폰 대신 내 손에 자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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