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잘 타지 않는 방화 소재로 이루어진 가구는 어딜 가나 인기였다.
세상에 갑자기 불이 침범한 이후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생활용품을 모두 방화 제품으로 바꿨다.
하지만 그래 봤자 헛수고였다. 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불과 달랐다.
물에 꺼지지 않고 산소가 차단된 곳에서도 활활 타오르니, 단순히 잘 타지 않는 수준의 방화 제품은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스텔라는 방화 소재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으며 생각했다.
‘의자가 또 바뀌었군. 누군가 회의실에서 난동이라도 피웠나 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인페르노의 본부에선 방화 소재로 만들어진 가구가 아니면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세상을 침입한 불엔 무용지물이었지만, 베스탈리스가 만들어 내는 불꽃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불이 맞았기에 효과가 있었다.
수시로 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베스탈리스들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항상 방화 소재로 만든 생활용품을 가까이했다.
사람들은 침입자인 불과 베스탈리스의 불, 둘의 차이를 모른다. 아니 일부러 외면하며 인정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 ‘불’은 인간들의 생활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이들이 불길하게 여기는 것이기도 했다. 불은 추악하고 불쾌하다. 베스탈리스도 추악하고 불쾌한 존재들이다.
먼 과거의 한땐 신성한 존재라 추앙받던 베스탈리스였으나, 지금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세상의 가장 어둡고 음습한 곳에서 모여 지내고 있었다.
“장로님, 보고 드립니다.”
스텔라는 부하가 가져온 보고서를 조금 읽다 말고 덮었다. 요즘 들어 어느 일이든 하나라도 좋게 흘러가지 않는다 생각하며 이마를 짚었다.
“그 배신자들은 왜 갑자기 지랄일까?”
세상의 모든 핍박받는 베스탈리스들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힘을 합쳐 뭉치자고 했으나, 동지들을 외면한 채 떠나 버린 야속한 이들이 있었고 남겨진 자들은 그들을 배신자라고 불렸다.
스텔라는 보고서에 첨부된 소식지를 태워 버릴 듯한 눈으로 바라봤다.
“불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기부 행사?”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 왔어요.” -에트나
“이런 때일수록 모두가 힘을 합쳐 이겨 내야 한다고 항상 부모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 저 역시 제가 물려받을 가문의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포르낙스
기부 행사의 주최자인 ‘에트나’의 말에 따르면, 불의 위협이 가장 큰 뒤 번대 테라리움 지역이야말로 많은 관심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에 행사 장소 채택으로 많은 고려 중이라고 한다.
또한 기부 행사는 최초 1회로 끝나지 않고 가능하다면 순회 형식을 갖추어 지속적으로 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실현으로 많은 이들이 행사를 환영하는 가운데, 첫 번째 행사가 열릴 장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동 주최자인 ‘잉켄’은 현재 60번째 테라리움에서의 주최를 긍정적 검토 중이며 빠른 시일 내에 확인차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식 행사 날짜와 장소가 확정될 경우 소식지를 통해 안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