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3화 (403/604)

경매 방식은 28번째 테라리움을 대상으로 했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월렛에 USB 코드를 닮은 줄기를 꽂고 다이아를 들이붓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60번째 테라리움은 28번째 테라리움과 다르게 빚더미를 가득 안고 파산했기 때문에 추가 조정이 들어갔다.

“본래라면 가장 많은 금액을 제시하신 분이 다음 행정 관리원이 되시겠지만.”

중개를 맡은 10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이 자신의 월렛을 바라보며 설명했다.

“경매 가격에 따라 채권의 가치도 변동됨을 숙지해 주세요.”

채권이 변수였다.

60번째 테라리움이 파산하면서 사실상 빚을 갚을 능력이 사라졌으니 채권은 백지가 되어야 하지만 나를 비롯한 또 다른 존재가 채권을 사들인 후 경매에 참여해 버리면서 가치를 부여하고 말았다.

즉 행정 관리원이 되면 현재 풀려 있는 빚을 대신 갚아 주어야 한다는 걸 뜻했다.

그것도 우리가 경매를 통해 60번째 테라리움에 매긴 가치에 따라 상승한 채권의 가치만큼 갚아 주어야 했다.

“상대가 채권 처분을 거절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나요?”

물론 그것도 갚는 것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였다.

채권을 팔지 않거나 빚을 갚을 여력이 없다고 하면 그건 고스란히 테라리움의 지분이 되어 버렸다.

즉, 채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찝찝하게 남과 테라리움을 공유해야 된다는 것인데.

“채권을 소유한 분의 소유권이 우선시됩니다.”

안 팔고 버티면 그만이니 그건 곤란했다.

“지금 경매에 참여하지 않고 제게 채권을 파신다면 각자 생각하시는 금액에 구입하겠어요. 얼마를 부르든 상관없어요.”

내 말에 다들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보다 비싸질 수도 있지 않나요?”

“물론 지금보다 가격이 상승할 수도, 하락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본인들이 생각하는 금액만큼 채권의 가치가 도달할지도 모를 일이지 않나요?”

눈치 게임이었다.

지금 팔고 손 털래? 아니면 도박을 해 볼래?

“그렇게까지 하실 정도로 60번째 테라리움이 가치 있는 곳인가요?”

자리에 앉은 이들 중 한 명이 은근하게 물었다.

물론 이 경우 반작용도 있었다. 내 행동이 되레 60번째 테라리움에 뭔가 있다고 여기게 만들 수도 있었다.

“지금을 놓치면 후회하실 거예요. 제가 60번째 테라리움을 먹게 되면 당분간 아무것도 안 하고 내버려 둘 거거든요. 기업 유치도 없고 주민도 안 받을 거예요. 채권 가지고 버티시면서 투자하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겠지만 빈 땅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세계수 가지의 명맥만 이어 놓은 채 테라리움을 텅 비운 후 전쟁터로 쓸 예정이었으니까.

채권을 굳이 팔지 않겠다면 알아서 떨어져 나갈 때까지 진절머리 나도록 굴면 된다.

테라리움을 제대로 굴리지 않는다면, 주워 먹을 콩고물도 나오지 않을 터.

아무리 지분을 가졌다 하더라도 결국 테라리움의 주인은 결국 행정 관리원이었다.

“아무도 없나요?”

하지만 휴지 쪼가리나 다름없던 채권을 들고 끝끝내 이 자리까지 온 사람들이다 보니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타오르는 욕심을 연료로 끝내 도박을 선택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면.”

난 핸드폰에 줄기를 꽂은 후 단번에 경매 가격을 올렸다.

최초 참가 금액은 내가 28번째 테라리움을 인수한 가격 그대로였다.

회의실의 거대한 탁상에 떠오른 나뭇잎 문양에 마치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미친 듯이 숫자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주르르 떠오르는 숫자에 자리에 앉은 이들의 얼굴이 모두 새하얗게 질렸다.

이 정도면 경매는커녕 시작하자마자 즉시 구매가를 때려 넣고 버튼을 누른 격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겨우 60번째 테라리움을 대상으로 이 정도의 금액을 보게 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처럼 눈을 비볐다.

10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조차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이를 지켜봤다.

이건 인페르노를 향한 나의 확고한 테라리움 매입 의지를 보여 주는 것과 동시에 가진 채권을 포기하란 선전 포고였다.

물론 난 이 금액 그대로 60번째 테라리움을 매입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지금 한창 축제를 열고 있을 난쟁이들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대체….”

“이렇게 나온다면 더 채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는다는 걸 모르시나요?”

나 또한 그들의 욕심을 믿었다.

나를 제외한 4명 중 아직까지 채권을 팔겠다고 나서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나뭇잎 문양에 떠오른 숫자를 보고 나를 누르고 경매를 이길 순 없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28번째 테라리움 경매 당시, 이보다 더 쟁쟁한 사람들이 자리했지만 그들 역시 금액을 확인 후 깔끔하게 포기했었다.

“그러시겠죠.”

그들이 노리는 건 차츰 금액을 쌓게 되는 경매라는 특수성이었다.

내가 여기서 가격을 더 올릴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모양인데, 그 반대였다.

난 폰을 두드려 현재 경매에 올린 다이아를 절반으로 줄여 버렸다.

어디선가 난쟁이들이 오열하는 곡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입찰가를 줄이신다고요?”

그래 봤자 아직 까마득한 금액이긴 했지만 파급력은 대단했다.

“경매인데 이래도 되는 건가요?”

중개인을 향해 항의 어투로 묻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경매에서 참여가 보다 금액을 낮춰서 입찰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어차피 현재 등록하신 분이 단 한 분뿐이기 때문에 문제는 없습니다. 지금은 경쟁이 없으니 최초 시작가를 조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제시한 가격보다 더 높게 누군가 상위 입찰을 했다면, 내가 다이아를 절반으로 줄여 버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보다 상위 입찰을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난 지금보다 입찰 가격을 더 줄일 수 있었다.

“자, 두 번째 기회예요. 채권 파실 분?”

경매 가격에 따라 채권 가치가 조정되므로, 현재 채권의 가치는 최고치를 찍고 하락하는 중이었다.

“없는 걸로 알겠습니다.”

이번엔 고민할 시간을 많이 주지 않았다.

단번에 터치 몇 번으로 다이아를 다시 덜어 냈다.

누구도 감히 참여할 수 없는 금액을 유지하면서 금액을 하락 조정한다.

내가 마음먹었듯이 어차피 경매는 열리나 마나였고 형식상 절차에 불가했다. 내게 무한 다이아가 있는 한 다이아로 날 이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레벨이 뒤처지고 무력이 딸려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난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먼치킨이었다.

“세 번째 기회. 파실 분 있어요?”

난 아예 바로 금액을 내릴 준비를 하며 대강 질문을 던졌다.

다들 원래 발만 동동 굴리며 책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고치를 찍었던 채권이 본래 자신들이 마땅히 가졌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속을 태우고 있겠지.

꼬우면 나보다 상위 입찰을 해서 최하 금액을 고정시켜 내가 더 다운시킬 수 없도록 막아 버리면 된다. 하지만 이 자리엔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

“잠깐만요! 팔겠습니다!”

드디어 미끼를 문 사람이 항복을 외쳤다.

솔직히 이 정도도 매우 비싸게 사 가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사람 마음이 어떻게 그리 단순하기만 하겠어?

로또 번호 하나 틀려서 2등이 된 사람도 1등을 할 수 있었단 생각에 끙끙 앓는 게 사람 마음이었다.

“저도 팔게요!”

“아뇨, 한 번에 한 명만 받을 거예요.”

난 가장 먼저 포기한 이의 채권을 매입한 후 경매 입찰가를 더 내려 버렸다.

“내가 팔겠소!”

“제가 팔겠습니다!”

이번엔 셋 중 둘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저쪽이 더 빠르셨네요.”

이로써 채권 보유자는 나와 여태껏 요지부동인 한 명만 남게 되었다.

입찰 가격도 낮출 만큼 낮췄다.

“안 파세요?”

“…….”

이미 채권을 처분한 자들은 침묵을 고수하는 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난 마지막 남은 저 자가 어쩌면 인페르노 소속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쪽도 저처럼 반드시 60번째 테라리움을 손에 넣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봐요?”

“…….”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채권을 계속 틀어쥔 채 경매에 참여하지도 않고.

난 10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 이에 화답하듯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가 길어지고 있으니 예정대로 잠시 휴식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행정 관리원이 자리를 떴다.

채권도 팔았겠다, 경매에 참여할 능력도 안 되니 다들 떠나도 될 텐데. 마치 이 싸움의 끝을 보겠다는 것처럼 단 한 명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대체 60번째 테라리움에 뭐가 있는지 살짝 귀띔해 주시면 안 될까요?”

“파산해서 매물로 나온 테라리움이 이렇게까지 뜨겁게 달아오를 줄은 예상도 못 했습니다.”

“나쁜 마음을 먹는 건 아니고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그들은 안달하며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물었지만, 난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만 주시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인지 표정이 완전 썩었다.

난 미끼를 던진다면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어 능청스럽게 연기를 시작했다.

“반드시 60번째 테라리움을 매입해야만 해요. 그걸 원하는 분이 계시거든요. 믿고 맡기신 일을 실패하면 절 태워 죽일걸요?”

잠잠히 있던 자가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태워 죽인다고요?”

“아니 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내 말에 경매를 지켜보던 이들이 한마디씩 보탰다.

“잡음 없이 깔끔하게. 채권까지 온전히 가져오라 명령하셨으니 전 시키는 대로 일을 완수할 뿐이에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일이 틀어진다면 결국 저도 마지막 수단을 써야겠죠.”

난 진지한 표정으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마지막 수단?”

반응은 보이고 있었지만 정작 호들갑은 주변인들이 다 떨고 있었다.

“애초부터 경쟁자가 아예 없다면 남은 단 한 명이 승자가 아닐까요?”

“그렇긴 한데….”

이제 결정적인 한 방을 내지를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최후의 불씨’를 써서라도.”

쿵!

누군가의 무릎이 책상 아래에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오호라?

“어차피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단순한 사고로 위장되겠죠.”

미끼를 문 물고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낚싯줄을 감는 것처럼, 그의 긴장을 팽팽하게 끌어당겼다.

“도통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내 애매한 말에 다들 답답함을 표했다.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면 족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그러게 진작 손을 뗐어야죠.”

난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고 선고하듯 말했다. 곧이어 어디선가 이질적인 기계음이 들려왔다.

삑, 삑, 삑.

듣는 이로 하여금 초조한 마음을 갖도록 만드는, 무언가 카운트를 세는 듯한 소리였다.

“젠장!”

다들 무슨 연유인지 몰라서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깜박이는 와중, 인페르노 교단원으로 추정되는 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멈춰! 그렇게까지 할 필욘 없잖아? 계획에 혼선이 생겼나 본데 이쪽이 먼저 손을 떼겠어!”

‘최후의 불씨’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난 일부러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빤히 바라봤다.

“젠장!”

그러자 그자가 황급히 회의실 문을 열어젖히고 나가려던 차였다.

“어딜 가시나요?”

밖은 이미 10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이 불러온 경비들이 도주로를 막고 있었다.

그중엔 1번째 테라리움의 이단 감찰단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자를 바라보며 웃어 주었다.

최후의 불씨는 스텔라가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했던가?

그에겐 미안하지만 이곳에 봄버와 같은 역할을 해 줄 사람은 애초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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