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 지금 내가 잘못들은 건 아니겠지?
“사위… 라고요?”
“맞아요. 내일 시들링은 제 딸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에요.”
파격적인 내용과 다르게 말투가 평이했다.
대체 내가 없는 사이 일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던 거지?
시들링이 결혼을 한다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것도 당장 내일.
“아스키아는 시들링에게 현상 수배를 걸지 않았던가요?”
“제 딸을 버리고 도망갔으니 마땅히 어미가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이에요.”
그 시들링이 여자를 버리고 도망을 갔다니… 혹시 내가 사람을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리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 알고 있었다면 오자마자 바로 그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우리 길드원이 면담 요청을 한 지 2주가 넘어갔는데, 그사이 이리저리 주제를 회피하더니 내게는 갑자기 결혼이 예정되어 있다고?
“뭔가 이상하네요. 시들링을 만나게 해 줘요. 어떻게 된 일인지 그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들어야겠어요.”
“결혼을 앞둔 새신랑을 외간 여자와 만나게 해 줄 순 없지요. 딸의 뜻이기도 하고요. 결혼식에서나 겨우 볼 수 있을 건데 안타깝게도 행정 관리원님을 위한 청첩장은 남지 않았네요.”
내가 시들링과 만나는 걸 극구 사양하는 걸 보면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듯했다.
“말뜻을 이해 못 하시네요. 전 실종 신고된 거주민을 찾으러 왔다니까요? 그가 이사를 했다고요? 이쪽엔 접수된 내용이 없는데? 더구나 그는 장기 부재로 인해 테라리움 세금까지 미납했고요.”
물론 시들링은 물론 우리 길드원들은 테라리움에 내야 할 세금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면 시들링은 악의적으로 세금 납부를 피하기 위해 불법 이주를 택한 걸로 판단해야겠네요.”
“밀린 세금은 이쪽에서 대신 납부하도록 하지요. 이제 가족이 될 사이니 이 정돈 당연히 도와야죠. 그러니 행정 관리원님께선 더는 신경을 끄시고 돌아가 주셨으면 해요. 그래서 미납된 금액이 얼마지요?”
“1억 다이아요.”
“네?”
내 말에 라피스는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을 했다.
“길드 수배범이니 일반 사람들과 같은 세금을 받을 수는 없지요. 1억 다이아. 대신 지불해 주시면 깔끔하게 물러날게요.”
“말도 안 되는 금액이네요.”
“그럼 본인이 직접 납부할 수 있도록 만나게 해 주든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1억을 아스키아 길드 앞으로 달아 놓으면 되려나요?”
“아무리 행정 관리원이라도 이런 식으로 소란을 일으키시는 건 곤란하답니다. 그렇게 나오시면 저도 길드 차원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어요. 괜찮으시겠어요?”
라피스의 말투엔 은근하게 날 무시하는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내 나이 때문에? 아니면 소규모 길드의 마스터라서? 그것도 아니라면 고작 28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행정 관리원답게 일을 처리하도록 할게요.”
계속 길드 룸에서 버텨 봤자 시들링을 만나게 해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력했기에 진전이 없을 게 뻔했다.
그래서 난 아스키아의 길드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5번째 테라리움의 과수원으로 쳐들어갔다.
행정 관리원답게 공권력을 행사해 주려는 거다.
이때 사용한 신분은 28번째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이 아닌, 16번째를 사용했다.
뒤 번대 테라리움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어?
“아스키아 길드가 16번째 테라리움에서 악성 세금 미납 및 불법 이주를 저지른 중범죄자를 보호 중입니다. 속히 처분 부탁드립니다.”
테라리움 번호 연계법의 도움을 받기 위해 6번째 테라리움에 사람을 시켜 서신을 보냈다.
그간 파필리온이 6번째 테라리움과 좋은 교류를 유지했기 때문인지 금방 반응이 왔다. 6번째 테라리움의 권고까지 더해진 터라 5번째 테라리움은 바로 당일 아스키아에 시정 명령을 내려줬다.
그리고 마침내 아스키아는 과수원의 압박으로 결국 시들링을 내어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난 간신히 마련된 자리에서 어딘가 수척해진 시들링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오랜만에 만난 시들링은 그간 아스키아 길드에서 입맛대로 다룬 것인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인상이 확 바뀐 상태였다. 마치 부잣집 도련님 꼴을 하고 서 있는 게 영 어색해서 보기 힘들었다.
“결혼을 하게 됐다.”
“아니, 아니. 전후 사정 다 자르고 말하지 마. 결혼에 대해선 듣긴 했어. 후… 대체 아스키아 길드 마스터의 딸이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알려 줘. 그것 때문에 길드 수배범이 됐던 거 아냐?”
내 앞에선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다하더니 지금은 영 말하기 싫다는 것처럼 껄끄러운 표정을 했다.
“아스키아 길드 쪽은 속이 터지겠지만 난 시간이 많아. 지금 제척 기간 조정 명목으로 넌 잠시 반구금 상태거든. 여기서 해소되지 않는다면 난 5번째 테라리움에 요청해 널 강제로 감옥에 억류시킬 수도 있어. 그러니 숨기지 말고 이야기해 줘야 할 거야.”
“제척 기간… 말인가? 난 불법적인 일은 저지르지 않았다.”
“널 만나기 위한 구실이 필요해 지어낸 거야.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아예 만날 수도 없겠던데?”
“…….”
쟤가 자의로 장시간 입을 다무는 건 처음 봐서 놀라웠다.
“후… 그래. 그럼 이것만 물어볼게. 돌아가는 상황을 봐선 넌 가이아 길드를 탈퇴하고 결혼식을 올린 후 영영 이곳에서 살아야 될 것 같던데, 네가 진정으로 원해서 하는 일이 맞아?”
“그렇지 않다. 하지만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해야만 한다.”
“혹시 아스키아 길드 마스터 딸내미랑 과거에 애인 사이였던 건 아니고?”
내 물음에 시들링의 눈빛이 달라졌다.
마치 내가 큰 말실수라도 한 것처럼 나를 바라봤는데, 그의 심경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말을 해 주질 않으니 누구든지 이 정도 정황을 의심해 볼 수 있는 거 아냐?
“그런 과거는 없다.”
“그럼 이번에 극적으로 눈이 맞아 사랑에 빠졌다거나?”
날 보는 시들링의 눈에 이젠 서운함까지 담겨 있었다.
“내게 평생을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을 묻는 거라면, 그건 너다.”
아… 이건 좀 놀랐다.
어쩐지 이를 악물고 홧김에 터뜨리는 말투였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어어… 그랬구나….”
솔직히 그가 내게 굴던 모습들을 보고도 그런 감정을 지금까지 눈치 못 챘다고 한다면 머저리였다.
본인도 제대로 자각 못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정확히 규정하는 걸 회피하는 듯해 나 역시 은연중에 무시했던 것 같다.
“그래…. 혹시 방금 네가 한 말의 뜻은 알고 있지…?”
“내게 ‘라줄리’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지 않는가? 그래서 내가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끼는 건 그녀가 아니라 너라고 말한 거다.”
사랑한다는 직설적인 단어에 얼굴이 삽시간에 달아올랐다가 이내 갑자기 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이건 당장 감당하고 싶지 않았던 문제였기에 서러움이 밀려왔던 탓이었다.
타인의 감정까지 다뤄야만 하는 상황엔 평소보다 고도로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볼에 몰렸던 열이 눈을 거쳐 머리까지 치솟았다.
난 지금 기계로 친다면 과부화 상태였다. 그리고 시들링의 저 뜬금없는 고백에 얻어맞아 망가지기 직전이었다.
마거리트와 카수스에 대한 일을 잠시 잊기 위해 일에 매달린다고?
아니, 이건 연산이 끝나지 않은 컴퓨터에 억지로 두 개, 세 개의 시스템을 더 실행시키는 거나 다름없었다. 귓가에 컴퓨터 본체가 윙윙거리며 죽어 가는 듯한 이명이 들렸다.
“일단 네 무드 없는 고백은 잘 들었어. 다음엔 내가 여유 있을 때 분위기 좀 잡고 해 줘.”
겨우 장난스러운 말투를 쥐어 짜낼 수 있었다.
“알겠다. 그런데 네게 여유가 있는 날이 있긴 한가? 많이 피곤해 보인다.”
솔직히 말하자면 멘탈이 이미 만신창이라, 모든 일을 내려놓은 후 시간이 멈춘 방에 들어가서 술과 담배로 뇌를 재부팅을 하고 싶었다.
지금도 너무 힘든 나머지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억지로 참느라 깨문 입 안 살이 성치 않았다.
“내가 그나마 여유라도 갖길 원한다면 이젠 이야기해 줘. 아스키아 길드와 네가 대체 어떻게 꼬여 있는지.”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시들링은 결국 사건의 인과 관계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아스키아 길드 마스터 라피스의 딸 ‘라줄리’는 시들링과 같은 고아 출신으로 지금의 부모에게 입양되었다.
라줄리와 시들링의 인연은 그를 보살펴 주던 회양목 드라이어드가 수명이 다해 죽은 후, 그가 사회에 막 뛰어들었을 때 용병업 중개를 맡았던 길드, 현재는 대형 길드로 성장한 아스키아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라줄리는 자신이 나와 같은 고향 출신이기에 날 버린 부모가 누군지, 그들이 아직까지 살아 있으며, 그들의 거주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겠다며 내게 접근했다. 하지만 난 그런 정보 따위 원치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정확하게는 몰랐던 시들링의 사정이 드러났다.
“회양목이 말하길,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과는 아주 먼 곳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그곳에서 갓난아기였던 날 발견했다고 한다. 당시에 다 죽어 가던 상태였는데 죽기 직전 토해 낸 울음소리가 겨우 그에게 닿았다고 했지.”
그렇다면 갓난아기일 때 버려졌던 시들링의 부모에 대해서 라줄리가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아기였을 때부터 갖고 있던 이 화상 자국.”
시들링은 옷을 내려 턱부터 가슴까지 이어진 자신의 화상 자국을 가리켰다.
“이 화상 자국과 내가 회양목과 지냈던 지역을 토대로 정보를 특정한 걸지도 모른다. 그녀도 나처럼 아기 때부터 달고 있는 화상 자국이 있다고 했고, 대형 화재가 일어났던 테라리움을 토대로 고향을 찾았다고 했지. 특히나 그 시기에 고아들이 많이 발생했다고 하니 어쩌면 나 역시 그곳이 고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정말로 부모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았다. 날 버릴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을 테고 내겐 과거나 지금이나 부모는 드라이어드들뿐이었으니.”
하지만 라줄리는 시들링의 거절에도 끈질기게 굴었고.
시들링이 나와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면 사람이랑 대화하는 게 마냥 좋으니 강하게 끊어 내진 못했을 거다.
어찌나 끈질기게 굴었던지, 심지어 시들링의 고향에 그의 생존 사실을 신고하고 강제로 부모와 자리를 마련하려는 둥 무례하게 굴었다고 한다.
솔직히 여기까지만 들었을 때는, 라줄리가 같은 고아 출신인 시들링에게 동질감을 느꼈다가 점차 그에게 반해서 앞뒤 재지 않고 돌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녀가 내게 잘 대해 주려는 건 고마웠지만,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들었다.”
시들링은 그 후로 아스키아 길드에서 있었던 일을 내게 이야기해 줬고, 나는 이를 토대로 그가 수배되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라줄리는 라피스의 뒤를 이어 차기 아스키아의 길드 마스터가 될 존재였다.
그런 라줄리가 아직 정식 길드원 신분도 아닌 시들링을 쫓아다니니 다른 길드원들 입장에선 라줄리가 마스터가 된다면 시들링에게 길드의 큰 자리가 떨어질 거라 오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들링을 견제했고 그런 그들이 선택한 방법이 이간질이었다.
당시 아스키아 길드엔 라이벌 관계인 길드가 있었는데, 두 길드가 하나의 대형 불 토벌 의뢰를 두고 서로 기 싸움을 벌이느라 정작 의뢰는 해결되지 못해 불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때 시들링이 눈치 없이 의뢰를 수락해 토벌을 끝냈고, 라줄리가 부담스러웠던 시들링은 용병업 중개를 아스키아의 라이벌 길드로 옮기며 그 공로까지 넘겨 버린 것이다.
그러자 다른 길드원들이 득달같이 일어나 시들링이 사실 스파이였을 거라 주장하며 일을 크게 키웠다.
그것이 바로 길드 수배범이 되는 시초였다.
걔는 그저 자신이 판단하기에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대신 처리하려고 했을 뿐일 텐데.
그 후 틈만 나면 아스키아 길드 쪽에서 시들링만 보면 공격하려 들어서 그는 결국 16번째 테라리움의 전 행정 관리원인 파필리온의 아가리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스파이 짓을 했다고 그렇게 굴었으면서 왜 태도가 뒤바뀌어 널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려는 거지?”
단순히 아직까지 라줄리가 시들링에게 마음이 있어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내가 순순히 결혼하면 가이아 길드와의 길드전을 무르겠다고 했을 뿐이다. 가이아 길드는 아스키아 같은 대형 길드와 맞붙는다면 승산이 없다.”
“뭐? 길드전?”
세상에, 길드전까지 터질 뻔했다고?
난 아스키아 길드와의 일화 속에서 계속해서 날 찝찝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잡아내기 위해 고민했다.
“그래서 걔가 네 고향이 어디래?”
“…아마 57번째 테라리움인 듯하다.”
어쩌면 그 찝찝함을 해소할 수 있는 키가 57번째 테라리움과 관련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재 이곳에 있는 다른 길드원들을 비롯해 보좌관들에게 벌을 통해 연락을 돌려 57번째 테라리움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았다.
시들링과의 만남 이후 그의 결혼식이 열리는 바로 다음 날, 마침내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시들링에게 집착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들이 노리는 건 시들링이 아닌 57번째 테라리움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