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1화 (391/604)

큰 부상을 입은 나. 그리고 곁에서 함께 겁에 질려 있는 포인세티아.

제삼자가 보기엔 포인세티아가 날 공격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드라이어드들이 황급히 나와 포인세티아를 분리하고 그녀를 구속했다.

“너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냥!”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그렇지, 저 사람을 공격하면 어떡해요!”

“아주 위험한 드라이어드였어!”

“내가…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잠깐만!”

포인세티아를 거칠게 몰아가는 드라이어드들의 모습을 보곤 말리려는데, 실새삼이 막아섰다.

“가만히 있어. 저것에 가까이 가지 마.”

“제이, 움직이지 말아요.”

그리고 메스키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상처를 살폈다.

“하지만 날 공격한 건 포인세티아가 아니야. 아니 맞긴 한데 저 포인세티아가 아니라… 그….”

“무슨 말을 하려는진 알고 있다. 다만 네가 지금 저것의 곁에 가까이 가서 좋을 게 없어.”

실새삼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 더는 안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훌쩍 자라 목소리에도 좀 더 무게감이 실렸다.

“오해가 있어.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

“나도 대충은 알고 있다.”

날 공격했던 의문의 포인세티아와 기이한 얼음 공간을 깨뜨렸던 건 실새삼의 힘이었다.

그렇다면 진실을 알고 있을 텐데 어째서 포인세티아를 변호해 주지 않는 거야?

“치료부터 해. 지금 네 상태를 보고도 다른 이를 먼저 챙기겠다는 거야? 그것도 너와 상관없는 드라이어드를?”

“상관없지 않아. 앞으로 함께 여행할….”

“아니, 저건 안 돼.”

내가 말을 꺼내는 족족 실새삼이 단호하게 가로막았다.

“제이, 우선 치료부터 해요. 그 후에 다음 일을 생각해요. 제발….”

난 보석의 힘으로 간신히 틀어막은 어깨 상처를 바라봤다.

“알겠어. 포인세티아를 너무 험하게 대하지 마….”

할 수 없이 클로에와 버드의 집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기로 했다.

집 밖에서 날 걱정하는 드라이어드들의 소리가 웅성웅성 들려왔다.

“상처를 좀 봅시다. 다행히 만일을 위해 응급 용품은 구비하고 있답니다.”

손을 떼고 살핀 상처 주위가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날카롭게 베인 단면 근처로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는데, 다행히도 걱정과 다르게 상처는 깊지 않았다.

아마 장비가 좋지 않았다면 어깨가 잘려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 장비 수리받아야겠네.”

“태평하게 그런 걸 걱정할 때야?”

엘더가 날 타박하는 목소리엔 한심함과 울음이 섞여 있었다.

치료 도중 아티팩트에서 쉬고 있던 드라이어드들이 죄다 튀어나와 난리 법석을 피우는 바람에 소란스러워졌지만, 몇 차례나 괜찮다며 안심시킨 덕에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난 클로에의 솜씨로 붕대가 잘 감긴 어깨를 바라봤다. 시간 정지의 힘을 풀자 고통이 한번에 밀려와 죽는 줄 알았다. 아직도 상처가 욱신거리고 후끈거려서 자꾸만 신경 쓰였다.

이젠 이런 큰 상처에도 어느 정도 의연한 태도를 갖는 내가 신기했다. 예전이라면 아프다며 울고불고 난리였을 텐데.

물론 그만큼 이곳에 온 이후로 온갖 사건 사고를 겪어서 무뎌진 거겠지.

“넌 포인세티아가 만들어 낸 공간 안에 끌려들어 갔다.”

일명 ‘겨울눈의 방’, 소수의 스노우 필드 드라이어드들이 구현해 낼 수 있는 기술.

위기의 순간에 스스로 만들어 낸 공간에 자신을 가둬 상황을 피하는 기술이었다.

실새삼의 설명이 애매모호했으나 게임 속 스킬들 중 일시적으로 무적 상태가 되는 스킬을 이에 대입하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보통은 스킬을 사용한 드라이어드 홀로 영향을 받는다고 하지만 어째선지 나도 함께 끌려들어 갔다.

“그곳에서 무얼 본 거지? 내가 침투하기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난 어깨에 두른 붕대를 매만지며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포인세티아가 내게 건넨 얼음꽃은 너무나도 놀라운 정보를 노래했다.

실새삼의 전 주인이 죽지 않고 스노우 필드 어딘가에 동면 상태로 묻혀 있다. 이 사실을 그가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래도… 지금의 포인세티아 어딘가에… 전대 가디언이었던 포인세티아가 숨어 있는 것 같아. 그게 의식이든 영혼이든.”

내 말에 메스키트가 심각한 얼굴이 되어 팔짱을 꼈다.

“그건 불가능해요. 가디언 자리의 계승은 기존의 가디언이 생명을 잃으며 시작돼요. 계속해서 부활하는 실새삼은 조금 다른 경우지만.”

“생명을 잃는다는 건 그 드라이어드의 모든 것이 세계수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걸 의미해. 영혼도 기억도 모두.”

메스키트의 말을 실새삼이 거들었다.

“하지만 난 봤어. 실새삼 너도 봤지? 그 전대 포인세티아는 뭔가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 그래서 일부러 후대 포인세티아에게 자리를 떠넘긴 거야. 포인세티아는 스노우 필드의 가디언 자리를 포기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다른 스노우 필드 드라이어드에게 가디언 자리를 넘길 수 있었는데, 전대가 그걸 막은 거야. 계속 포인세티아들이 이어받도록.”

적어도 먼 옛날, 인간들이 소중해 기꺼이 가디언의 자리를 맡았던 초대 포인세티아와 다르게 지금의 포인세티아는 일말의 책임과 의무를 느끼지 않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애초에 스스로 원해서 받은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망령 따위가…. 무슨 원한을 품고 있는 거지? 곱게 세계수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지.”

난 분노하는 실새삼을 빤히 바라봤다.

전 주인의 존재를 알게 되면 그는… 돌아가고 싶어 할까?

전 주인의 동면 중인 신체를 찾고 그를 부활시키기 위해 내게서 떠나려고 할까?

그러고 싶어 한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보내 줘야 하는 걸까….

확실한 건, 절대 그를 놓아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실새삼은 엄연히 내 드라이어드였다.

내 시선을 느낀 실새삼이 못마땅하다는 눈빛을 마주 보내왔다.

“날 왜 그렇게 보는 거야?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게 맞지?”

“후… 사실… 안에서 엄청난 사실을 들었어.”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기절시키자. 감히 본 주인을 두고 외도하려 들다니!

“네 전 주인, 세상을 멸망시켰다던 그 드루이드.”

“갑자기 카수스는 왜?”

“스노우 필드 어딘가에 그 드루이드가 죽지 않고 잠들어 있는 것 같아. 전대 포인세티아는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일을 벌인 거고.”

진실을 털어놓고 실새삼의 반응을 살폈다. 과연 그는….

“카수스가… 아직까지 살아 있다고?”

역시나 그는 적잖게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 말이… 사실인가요? 이미 드루이드의 수명으로도 버틸 수 없을 만큼 긴 세월이 지났어요. 그런데도 먼 옛날의 드루이드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니.”

“그건 말이 되지 않아. 카수스는 죽었어. 우린 분명 그 자리에서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너와 처음 만났을 때, 네가 비슷한… 말을 하긴 했어. 그를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식으로.”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고?”

은둔자의 정원에서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실새삼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어쨌든 그건 불가능하다. 아니, 다시 부활해선 안 돼.”

메스키트가 팔짱을 낀 채 턱을 매만지며 우리 둘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만약 정말로 그 드루이드가 살아 있다면, 전대 포인세티아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요. 그리고….”

메스키트는 실새삼에 오래 시선을 두다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계승 문제에 대해선 의문이 남아요.”

“어쨌든 전대 포인세티아의 의지가 지금의 어린 녀석에게 남아 있다면, 데려가는 건 포기하도록.”

가디언을 10그루 모두 모아야 하는데 포인세티아를 포기하라고?

실새삼은 가차 없이 날 공격했던 전대 포인세티아를 들먹이며, 함께하면 언제든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확실히… 그 녀석, 다짜고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공격을 가했어.

“지금의 어린 것은 그 노망난 망령을 제어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가디언이라면 가디언이라고 볼 수 없지.”

한동안 포인세티아를 향한 부정적인 의견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포인세티아가 너무 불쌍하지 않나?

스노우 필드의 그 누구도 포인세티아를 반기지 않고, 그녀는 족쇄처럼 가디언의 자리에 묶여 있었다.

자리 계승을 통해 벗어나기 위해선 죽는 수밖에 없었다.

“실새삼… 전 주인이 살아 있다는 소릴 들어도 아무 생각도 안 들어?”

“그 작은 머리로 대체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거지? 지금의 내 주인은 오로지 너뿐이다. 내가 전 주인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장 그를 찾아 떠날 거라 생각했나?”

나는 아니라곤 말을 못 한 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서운하군. 드루이드와 드라이어드 사이의 믿음이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니.”

“미안해. 그냥…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넌 전 주인이 죽을 때… 같이 죽으려고 할 만큼 슬퍼했잖아.

이동하는 뿌리가 실새삼의 과거에 닿았을 때, 심장에 검을 꽂아 죽으려 했던 모습을 봤었다.

내게 있는 두 드라이어드 모두 전 주인을 따라 죽으려 했으나, 정작 죽은 것은 규율 수호자의 위대한 정신이었다.

그러니 죽었다고 생각했던 자가 다시 돌아온다면 감회가 남다를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네가 불안하지 않게 확실하게 말해 주지. 난 널 떠나지 않는다. 내게 주인은 너다.”

실새삼은 자신을 믿지 못한 내게 큰 실망을 표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불안해할 것을 걱정하여 확고한 답을 내주었다.

안심이 됐다. 나 홀로 전전긍긍 앓았다면 그가 혹여나 나도 모른 사이에 떠나가 버리지 않을까 불안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너 왜 갑자기 성장한 거야?”

난 꾹 참고 있던 또 다른 의문을 그에게 던졌다.

“…….”

하지만 그는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곤 시선을 피하며 이 대화의 주제를 명백히 회피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실새삼을 성장시키기 위해 여기저기 정보를 찾고 방법을 찾으려 했으나 진전이 없었다.

그가 이처럼 갑자기 성장한 건 이번으로 두 번째였다.

어째서 내가 특별한 액션을 취하지 않았음에도 성장한 걸까?

그가 첫 번째로 성장했던 때를 떠올렸다.

나 홀로 인삼들의 군락지에 갇혔다가 간신히 돌아왔을 때, 그는 완전 아기였던 모습에서 유치원생 정도로 성장을 했다.

혹시 내가 성장했기에 실새삼도 따라 성장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완전히 달랐다.

난 단순히 포인세티아의 겨울눈의 방에 끌려가서 다쳐 왔을 뿐이었다.

잠깐만… 다쳐?

난 놀란 눈으로 실새삼을 바라봤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자신이 성장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방법을 안다면 내게 알려 도움을 구할 수 있을 텐데도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너… 설마 내가 다쳐야 성장하는 거야?”

내 말에 실새삼은 그저 눈을 감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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