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9화 (389/604)

500개의 다이아는 내가 숨긴 게 반, 메스키트의 도움을 받은 게 반이었다.

날아다니는 데이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우리 사랑스러운 봄의 요정도 추운 날씨엔 약했다.

모든 다이아를 찾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기한은 숨뭄데이의 마지막 날까지! 축제가 정식으로 끝났음을 선포하는 마지막 날의 밤에 가장 많은 다이아를 보유하고 있는 드라이어드가 이기는 거야. 물론 같은 꽃끼리 힘을 뭉쳐도 되고 개인전을 펼쳐도 돼.”

“수는 이끼들이 가장 많잖아! 개인전으로 해야지!”

“앉은부채는 동물들과 친하잖아. 동물들 도움을 받으면 어떡해?”

벌써부터 과몰입한 꽃들이 극성이었지만, 저마다 강점과 페널티를 고루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끼는 수가 가장 많지만 산의 높은 곳까지 가는 걸 힘들어했다.

앉은부채는… 딱히 이 행사에 큰 승부욕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 꽃은 그저 초연한 자세로 다른 드라이어드들을 마치 어린아이들 보듯 하고 있었다.

“자, 그럼….”

더 불만이 나오기 전에 운을 띄우니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앞만 바라봤다.

“준비…. 시작!”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마을에 모여 있던 수많은 드라이어드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기세라면 일주일이나 필요 없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포인세티아가 더 빨리 모습을 드러내겠네요.”

“부디 미끼를 물었으면 좋겠네.”

난 드라이어드들이 바쁘게 산을 뛰어다니는 동안 느긋하게 축제 요리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복수초들이 있던 곳에서 돌담을 마저 쌓으며 체력을 길렀다.

어쨌든 이것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혹시나 하루 만에 다이아를 전부 찾아오면 어쩌나 했는데 우려와 다르게 축제 첫날은 조용히 넘어갔다.

축제 둘째 날.

드라이어드들은 잠을 잘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게 실수였다.

평소에는 고요한 마을에 밤새 쉴 새 없이 꽃들이 뛰어다니는 소릴 들었는데, 괜히 다른 주민들에게 민폐라도 끼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더구나 행동반경이 겹치는 꽃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을 경우 작은 싸움도 일어났다.

누가 먼저 왔느니 마느니 다투다가 참다못한 내가 나가서 말리면 다시 흩어지는 식이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죄송한 마음에 사과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의외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홀홀홀….”

둘째 날은 첫날만큼 요란하게 축제를 진행하진 않았지만, 주민들이 모두 집 밖으로 나와 흔들의자에 앉아 볕을 만끽하고 있었다.

앉은부채를 비롯한 겨울 꽃들이 난로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는지 주변이 후끈후끈했다.

“잘들 뛰어다니는고만.”

주민들은 드라이어드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마치 간만의 볼거리를 발견한 듯 흐뭇한 얼굴로 구경하고 있었다.

“저걸 치워 줬네, 고맙게스리.”

“눈엣가시였지.”

드라이어드들이 밤사이 마을을 수색하며 의외의 성과도 낳았다.

샅샅이 뒤지다 보니 눈길과 손이 잘 닿지 않는 구역까지 꼼꼼히 살피며 정리와 청소까지 하게 된 것이다.

“여기도 치워 봐. 혹시 몰라.”

폐자재가 위태하게 쌓여 있는 곳에 이끼들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저쪽은 너무 위험해서 다이아를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곳인데, 이끼들은 무력으로 폐자재를 차곡차곡 정리하면서까지 살피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길이 깨끗해졌네.”

하룻밤만에 마을 주변에 잔뜩 쌓여 있던 눈이 싹 청소되었다.

혹시나 다이아가 눈 속에 파묻혀 있을까 봐 드라이어드들이 열심이었던 덕이다.

드라이어드들이 요란스레 움직일수록 주변이 정리되고 깨끗해져서일까, 아직까지 소란으로 내게 불만을 표하는 주민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차피 이런 시끌벅적한 모습도 일주일이면 끝이 날 테지요.”

슬쩍 클로에에게 불편하진 않냐고 물었는데 오히려 그녀는 섭섭하단 목소리로 말했다.

오랫동안 정적과 고요에 싸여 있던 마을에 모처럼 활기가 넘쳐나니, 소란쯤은 충분히 눈감아 줄 수 있을 만큼 기꺼웠던 것이다.

축제 셋째 날.

“어디 있는지 살짝 내게만 알려 주면 안 되냥?”

“에구, 난 뭐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구먼. 저기, 저쪽은 살펴본 게냐?”

“저기? 저기에 있는 거당? 정말이당?”

어차피 눈에 띄는 곳에 있는 다이아는 이미 찾았을 테고, 드라이어드들은 아직 못 찾은 다이아를 찾기 위해 꾀를 부리기 시작했다.

혹시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까 주민들에게 치근덕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은 못 찾은 다이아가 마을 안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도 주민들이 깊숙이 숨겨 두고 시치미를 뗀다고 믿고 있었다.

“이거만 도와주면 알려 주는 거 맞죠?”

“거기, 그래, 그래. 아니 조금 삐뚤어졌구먼. 좀 더 위로.”

한쪽에선 노랑만병초가 아양을 떨고 있었고, 한쪽에선 복수초가 지붕 수리를 도와주고 있었다.

물론 둘 다 주민들이 먼저 다가간 건 아니었다.

어차피 말도 통하지 않는데 애가 탄 드라이어드들이 먼저 접근해서 자진하여 봉사 중이었다.

저 모습들이 어딜 봐서 이기적….

보물찾기는 기세를 잃지 않고 어느새 축제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날이 적당히 어두워지자 드라이어드들은 저마다 다이아가 담긴 주머니나 통을 품에 안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마을에 나타났다.

“포인세티아가… 없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포인세티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이 방법으론 되지 않았던 걸까? 분명 참지 못하고 끼어들 것 같았는데.

“어쩔 수 없지만 끝내긴 끝내야 하니, 뭐. 그럼 슬슬 이 승부의 승자를 가려 볼까?”

“잠깐!”

익숙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놀랍게도 그토록 찾던 포인세티아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그녀 역시 품에 주머니를 안고 있었다.

“나, 나도 있어! 벌써 끝난 건 아니지?”

“뭐야? 너도 참가했던 거야?”

“이런 일엔 빠질 리가 없는 녀석인데 왜 안 보이나 했당.”

“이이익! 어쩐지 다이아가 싹 사라졌다 했더니 당신도 참여했던 건가요!”

드라이어드들은 포인세티아를 향해 저마다 타박이 섞인 말을 던지며 맞이했다.

“이것도 가져가렴.”

그때 뛰어오는 포인세티아를 향해 클로에가 주먹보다 작은 주머니를 휙 던졌다.

얼떨결에 주머니를 받은 포인세티아가 입구를 열자, 그 안엔 푸른 다이아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앗! 역시 숨겨 두고 있을 줄 알았당!”

“치사해! 내가 그렇게 물어봤어도 무시했으면서!”

무시했다기보단 말을 못 알아들으니 반응을 하지 않은 거겠지.

드라이어드들은 직접적으로 포인세티아를 도와준 클로에를 향해 울분을 토해 냈다.

그런데 클로에가 포인세티아에게 다이아를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드라이어드들이 예상했던 대로 산에 마을도 포함되어 있기에 몇 개의 다이아는 마을에 숨겨 뒀었다.

몇몇 주민들은 그 위치를 알고 있었고, 직접 자신이 숨겨 보겠다며 가져간 경우도 있었다.

“내가 응원하는 건 포인세티아니까 살짝 도움을 줘도 되겠지요? 그동안 우리 마을을 많이 도와줬으니 몇 개 빼놨답니다. 물론 포인세티아가 끝까지 참여를 안 했다면 다른 드라이어드에게 줬겠지요.”

“저런 수가 있었구먼. 그럼 나도 내가 응원하는 꽃에게 슬쩍 찔러 줄 걸 그랬네! 허허.”

포인세티아는 감격에 겨운 얼굴로 클로에를 한참 바라보다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자신이 모은 다이아에 그 세 개를 합치지 않고 소중히 쥐고 있을 뿐이었다.

“나… 나도 참여해도 되는 거지?”

“당연하지. 너도 스노우 필드의 드라이어드잖아. 필드의 가디언인 넌 꼭 참여해야지.”

그 말에 포인세티아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분신은 안 돼. 진정한 드라이어드를 가려 내는 자리니까 본체가 와야 돼.”

“그건… 각오했어.”

포인세티아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 온 게 본체란 말이야?

확실히… 전에 봤던 포인세티아의 모습과 많이 달라 보였다.

이쪽이 좀 더 활력이 넘치고 생기 있는 것 같았다.

더구나 포인세티아의 묶은 머리에 달린 붉은 잎 속 꽃이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는데,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그곳에서 요정의 가루처럼 반짝이가 사르르 퍼져 나왔다.

확실히 이쪽이 본체구나.

“본체를 내게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있겠네?”

“물론 알고 있지만! 아직 널 따라간다고 안 했어. 난 그저 이렇게 재밌는 축제에 내가 빠질 수 없으니까 왔을 뿐이야!”

본체를 찾는 건 단순히 시작 단계였다. 진정한 목표는 그녀를 설득해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뭐, 어쨌든 내 본체를 불러낸 것만으로도 인정해 줄게.”

낮은 거목은 그녀가 워낙 꼭꼭 숨어 있다 보니 찾는 게 무척 힘들 거라 말했지만, 생각보다 단순한 방법으로 본체가 제 발로 걸어들어왔다.

“그럼 각자 찾아온 다이아 수를 세어 볼까?”

일주일 내내 온 산을 뒤엎고 다니게 만들었던 보물찾기.

꾀를 부린 건지 다이아처럼 생긴 비슷한 푸른 돌을 끼워 넣고 우기는 드라이어드도 있었지만, 한 알 한 알 공평하게 수를 헤아리다 보니 마침내 승자가 정해졌다.

몰래 참여하면서도 온 열정을 다했는지 포인세티아가 보유한 다이아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그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는데 대체 언제 다 찾은 거람?

“승자는….”

“인정 못 해요.”

막 승자를 발표하려는데 복수초가 이의를 제기했다.

“저 꽃은 스노우 필드의 꽃이 아니잖아요. 이 승부는 스노우 필드의 드라이어드끼리 겨루는 거니까 인정할 수 없어요.”

“응? 하지만 포인세티아는….”

“그 말이 맞당. 이건 오롯이 스노우 필드의 드라이어드들끼리 겨뤄야 한당.”

“다들….”

“저 꽃이 찾아온 다이아는 제외해야 해요.”

“맞아! 포인세티아는 실격이야!”

꽃들이 입을 모아 포인세티아의 우승을 인정할 수 없다며 소리치고 있었다.

“다들 너무하는 거 아니야? 포인세티아는 스노우 필드의 가디언이잖아. 다른 필드 태생이라고 너무 배척이 심한 거 아냐?”

“가디언이라고요? 정말 우리가 단순히 태생 때문에 인정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내 말에 복수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기를 들었다.

이 화제의 주인공인 포인세티아는 잔뜩 상처받은 얼굴을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포인세티아가 어딜 봐서 스노우 필드의 가디언이란 거죠? 인간들의 가디언이 아닌가요?”

“본체가 이곳에 있다고 했징? 어디에 피운 거냥? 너도 우리처럼 눈 속에 꽃을 피운 것이 맞냥?”

“그 말도 맞아요! 당신은 진정 이 스노우 필드를 위해 무슨 일을 한 건가요?”

포인세티아를 몰아세우는 일에 복수초와 노랑만병초가 합심하기까지 했다.

더욱이 이 상황을 말릴 줄 알았던 친절한 앉은부채마저 아무런 조치 없이 관망하고 있었다.

난 갑작스레 포인세티아를 향해 터져 나오는 꽃들의 불만에 놀라서 그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건 단순히 텃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그러게 작작 놀러 다니라고 했잖아. 오래 눈을 감은 결과가 단순히 다른 드라이어드들도 필드의 규율을 지키지 않는 정도로 끝날 줄 알았더냐? 아예 필드의 규율을 지키는 자의 존재조차 부정하게 만들지.”

그 상황에서 실새삼이 불쑥 끼어들며 찬물을 끼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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