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8화 (368/604)

포인세티아는 확실히 특수한 유형의 드라이어드였다.

인간들을 축복하기 위해 본래의 자생 필드를 버려가면서까지 가디언이 되고자 하다니.

“그렇다면 지금 스노우 필드 상황은 어떤가요? 뒤 번대는 불에 의해 괴멸했으니 남아 있진 않을 텐데.”

“스노우 필드는 현재 세계수의 근처, 그러니까 한 자릿수 테라리움의 근방에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랍니다. 세계수의 보호를 받아 불의 침입을 피한 옛 지역들이 겨우 남아 있는 정도지요. 그마저도 태양의 기운이 강해지는 달에는 영역이 더 줄어들었다가 기운이 약해지는 11월을 기점으로 본래의 영역을 회복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노우 필드에 속한 드라이어드도 수가 많이 없겠네.

“1번째 테라리움 근처에도 스노우 필드가 있습니다. 그곳 어딘가에 포인세티아의 본체가 숨어 있죠.”

“그럼 왜 포인세티아는 현재 저 상태로 이곳에 머물고 있는 건가요?”

“포인세티아는 사실 어디에나 있습니다. 물론 트로피컬 필드의 포인세티아가 아닌 필드의 가디언인 포인세티아를 말하는 겁니다. 그녀의 능력은 축복, 인간들의 곁에 항상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형상화된 능력입니다.”

포인세티아의 능력은 짐작대로 분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 맞았다.

“12월, 다가오는 숨뭄데이에 맞춰 기쁨과 행복의 마음을 담아 장식한 포인세티아라면 그녀는 그것에 깃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모조품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옛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곳에 포인세티아가 축복을 내렸다고 생각하고, 축복을 받은 포인세티아를 잘 보관하면 내년 한 해를 안온하게 보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네요.”

“하지만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랍니다. 포인세티아는 한 번 깃든 곳이라면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지요. 지금 이곳에 그녀가 있듯이 말입니다. 저리 활발한 드라이어드인 만큼 이곳저곳 넘나들다 불의나 위기를 발견하면 남몰래 도움을 주니, 도움을 받은 사람들 입장에선 큰 문제를 치르지 않고 안온하게 보내게 되었다 여기게 되는 겁니다.”

정말 요정 같은 능력이었다. 가정의 생필품에 깃들어 남몰래 선행을 베푸는 브라우니 같은 요정 말이다.

혹은 산타가 떠오르기도 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도움을 베푸는 행위가 꼭 선물을 나눠 주는 것 같았다.

“선한 드라이어드이긴 하나….”

낮은 거목이 난처하단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으로선 본분을 잊고 인간들 틈에 섞여 돌아다니는 데 너무 치중해 버렸지요. 적어도 스노우 필드에 사는 인간들만을 돕던 때와 달리 지금은 세상 곳곳을 누비고 있으니.”

결국 내 두 드라이어드들처럼 스노우 필드의 가디언 역시 현재 직무 유기 상태였다는 말이었다.

드루이드가 너무 소중해 책임을 외면한 둘과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 결국 포인세티아 역시 인간이 너무 소중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전대 스노우 필드 가디언의 영향인 걸까?

실새삼의 말로 보면… 지금의 포인세티아는 세상을 멸망시켰던 드루이드가 모은 10그루의 가디언의 후대가 분명한데.

“자, 그렇다면 제 질문에 대한 정답을 맞혔으니 약속대로 그대에게 가장 필요한 세 가지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어? 진짜 주는 거였어요?”

주면 나야 고맙지! 무려 1번째 테라리움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 주는 선물이었다.

잔뜩 기대해 봐도 되겠지?

그런데 내게 가장 필요한 선물? 그렇다면 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다는 건가?

“숨뭄데이에 주고받는 세 가지 선물엔 단순한 가짓수를 넘어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미 그대가 알고 계실 수도 있으나 설명해 드리자면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합니다. 지나간 과거를 추억하는 선물, 현재를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선물 그리고 아름다운 미래를 기원하는 선물입니다.”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도 뜻깊긴 했지만 일단 선물을 하나도 아닌 세 개나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딨어?

“먼저 과거.”

낮은 거목은 날 내버려 둔 채 회장 안의 선물더미가 가득 쌓인 곳으로 향했다.

그중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상자를 꺼내 가져왔다. 단순한 장식품인 줄 알았는데….

“직접 풀어 보시겠습니까?”

난 얼떨떨한 마음으로 상자를 받아 조심히 리본을 풀고 포장지를 벗겨 냈다.

그러자 고급스러운 원목으로 만들어진 묵직한 상자가 드러났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짙은 밤색 상자는 품고 있는 내용물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상자는 세월감이 느껴지는, 살짝 녹이 슨 걸쇠로 잠겨 있었다.

“열어도 돼요?”

내 물음에 낮은 거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주저 없이 걸쇠를 풀고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두 눈이 멀어 버리는 줄 알았다.

“와… 이거… 와…. 이거 진짜 저한테 줘도 되는 거예요?”

회장의 조명을 받아 화려하게 반짝이는 붉은 보석으로 만들어진 목걸이가 검은 벨벳에 싸여 있었다.

은색의 줄엔 석류 알같이 동그랗고 새빨간 작은 보석이 듬성듬성 꿰어져 있었고, 끝의 펜던트는 동전보다 훨씬 큰 붉은 보석이 은색의 나뭇잎에 폭삭 감싸인 형태였다.

한눈에 봐도 대단해 보이는 고가의 액세서리라 감히 손대기도 힘들 정도였다.

은은하게 온기를 내뿜는 것을 보니… 이건 아마도 태양의 보석! 붉은색이라면 설마…?

“먼 옛날, 한 테라리움이 자신들의 터전을 위험으로부터 구해 준 위대한 드루이드를 위해 만들어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목걸이입니다. 테라리움의 모든 장인들이 모여 테라리움의 깊숙한 금고에 모아 뒀던 특등품의 보석을 모두 꺼내 모아 100일을 꼬박 넘게 세공에 매달려 만들었다고 하죠. 그들은 목걸이를 선물하며 지혜의 빛이 드루이들의 앞날을 밝혀 주길 기도했습니다. 자신들의 테라리움을 구해 준 것처럼 지혜로써 세상을 구해 주길 기도한 것이죠.”

역시! 이 목걸이는 지혜의 루비로 만들어진 목걸이였다. 게다가 척 봐도 영롱함이 스페셜 등급이었다.

“하지만 그 목걸이의 주인은 결국 좋지 않은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염원을 담아 목걸이를 선물한 이가 끝내 그들의 터전인 테라리움은 물론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을 지켜봐야 했지요.”

“어… 이거… 설마….”

갑자기 목걸이 케이스를 들고 있는 손의 핏기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세상을 멸망시킨 드루이드. 10그루의 가디언을 모두 모은 데다 실새삼의 전주인인 그 드루이드가 분명했다.

어찌 보면 내가 걷고 있는 순례자의 길, 그 선배라고 볼 수 있는 그 드루이드.

이 목걸이가 무려 그 드루이드가 갖고 있던 아이템이었다니.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던 이 목걸이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젠 올바른 주인을 찾아갈 때입니다. 부디 더렵혀진 과거의 추억을 그대가 올바른 지혜의 빛으로 밝혀 주길 기원합니다. 이젠 제 염원도 담겨 있으니 목걸이가 좀 더 힘을 내겠지요? 허허.”

난 낮은 거목의 말이 끝나도 한참 동안이나 목걸이를 바라봤다.

이 목걸이는 그 드루이드의 드라이어드들 중 어떤 드라이어드의 목에 걸려 있었을까?

어째서 테라리움을 구해 이런 귀한 목걸이를 선물 받을 만큼 정의로웠던 드루이드가 끝내 세상의 멸망을 불러오게 된 것일까?

“혹시 마음에 드시지 않습니까?”

“아뇨! 그럴 리가요! 이 목걸이에…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빠르게 수용하시는 걸 보니 세상을 멸망시킨 드루이드에 대한 전설은 이미 알고 계셨나 봅니다.”

앗, 모른 척했어야 했나?

하긴 그 전설은 내가 바다 위 폐쇄된 섬에서 우연찮게 알아낸 거긴 했다.

그렇다는 건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전설이란 거겠지.

“역시 믿고 맡길 만한 순례자군요. 분명 전해 듣기론 순례자의 길을 걷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다 했는데 이리도 빨리 세상의 지혜에 눈을 뜨고 있으니. 그 목걸이의 주인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으니 이젠 무를 수도 없습니다.”

물론 무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벌써부터 목걸이를 받고 환장할 엘더의 모습이 머릿속에 훤한데, 이걸 돌려준다고?

만일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엘더가 제 주인도 잊고 개화 당시의 개차반 인성으로 변해 험한 말을 내뱉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잘 쓸게요. 물론 좋은 일에만 쓰겠습니다.”

차마 낯부끄러워서 세상을 구하는 데 힘쓰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반지에 목걸이…. 이제 귀걸이만 모으면 루비 티아라를 만들 수 있는 건가?

나머지의 행방이 묘연하다더니 이런 곳에서 장식인 줄 알았던 선물 더미 속에 대강 숨겨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보통 이 정도의 아이템은 적어도 테라리움의 가장 보안이 높은 금고 속에 꼭꼭 숨겨 놔야 하는 거 아냐?

혹시 허를 찌르는 방법인가?

나 역시 선물 더미에서 나온 상자에 놀랐던 만큼, 그 누가 이런 곳에 귀중품을 숨겨 놓을 거라 생각했겠냔 말이다.

난 목걸이 케이스를 조심히 다시 닫고 주머니에 넣어 뒀다.

나중에 엘더에게 선물하기 전, 온갖 생색은 다 내서 놀려 먹을 만큼 놀려 먹은 후에 줄 거다.

그나저나 엘더는 참 운도 좋아. 어떻게 전투 보너스가 7월에 걸쳐 있어서 지혜의 루비 액세서리가 나오는 족족 독차지를….

“그거 나 안 줘?”

갑자기 실새삼이 툭 끼어들었다.

“응?”

“그거 내 건데.”

불현듯 실새삼의 정보가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7~8월에 전투 보너스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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