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3화 (353/604)

갈피 잃은 모든 꽃이 스스로 타오른다는 뜻이 대체 뭘까?

불에 타고 있는 꽃이라면 헬 드라이어드가 있었으나, 단순히 그것을 지칭하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왜 그러는 거야? 어디 아픈 거야?”

난 주저앉은 공작선인장을 부축해 보려 했지만 그녀는 어떠한 대응을 하지 못할 만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고통에 겨운지 몸을 자꾸 아래로 숙였고 끝내 완전히 엎드려 손톱으로 땅을 긁기 시작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는 공작선인장의 몸은 마치 불덩이처럼 아주 뜨거웠다.

나 역시 자세를 낮춰 그녀를 보살피려 했으나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손을 대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주변의 온도는 서늘한 편이었는데 그녀가 마치 불에 의해 공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열이 오르는 것이 기이했다.

알 수 없는 습격을 받기라도 했다면 내 드라이어드들도 무사하지 못했을 텐데, 공작선인장과 헬 드라이어드를 제외하면 모두 멀쩡했다.

그렇다고 헬 드라이어드가 공격을 했다고 보기엔 그쪽 역시 만만찮게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이건 어쩌면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의 인공 개량 드라이어드를 대상으로 한….

“엘더!”

덩달아 절박해진 목소리로 애타게 엘더를 찾았다.

같은 팀에 속하지 않는 드라이어드들끼린 능력의 영향이 저조했으나 가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 부름에 엘더가 영 탐탁지 않은 얼굴을 했으나 그러면서도 착실히 공작선인장에게 회복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서 밝게 피어난 빛은 오래지 않아 금방 사그라들었다.

“틀렸어. 이건 내 영역이 아냐.”

아무리 뛰어난 엘더의 능력이라 해도 결국 공작선인장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디버프 계열인 걸까? 그렇다면 바곳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급히 바곳이 스태프를 공작선인장에게 가져다 대었다.

“아냐, 뭔가 달라. 이건 정말…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걸로 보여. 미안해….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

바곳은 금세 엘더의 말에 동조하며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풀기 힘든 난해한 문제를 만난 것처럼, 공작선인장을 바라보는 엘더의 표정은 아주 심각해 보였다.

“조금만 참아 봐….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어떡해야 하지? 지금이라도 공작선인장과 영혼의 연결을 맺어 볼까? 그렇다면 그녀를 구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토록 나와 함께하길 원했던 공작선인장은 영혼의 연결을 맺어 보려는 내 노력에 시큰둥했다.

신음을 흘리며 몸을 떨던 공작선인장이 고개를 힘겹게 들어 올렸다.

그녀의 시선은 어째선지 내가 아닌 헬 드라이어드를 향하고 있었다.

“아파 보여.”

“너도 아파 보여. 지금은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너 자신을 먼저 걱정해야 될 때야.”

공작선인장은 땅을 긁던 손을 헬 드라이어드에게 뻗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보여….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조언은 도통 공작선인장에게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공작선인장이 왜 그토록 헬 드라이어드에게 유대감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두 드라이어드는 오늘이 있기 전까지 각자의 공연장에 갇혀 지냈다. 이전까진 서로 만난 적이 없었고, 잠깐의 마주침에도 감정의 교류가 쌓일 틈은 없었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뻗은 손은 자신의 고통을 덜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니라 헬 드라이어드의 고통을 위로해 주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내가 도와줄래….”

그녀의 말과 동시에 뻗은 팔의 손끝에서 작은 돌이 맺히기 시작했다.

물에 탄 우유처럼 옅은 하얀 빛을 간직한 돌이었다.

툭, 또르르.

공작선인장의 손끝을 떠난 돌은 바닥을 굴렀다.

이 와중에 대체 그녀가 헬 드라이어드의 무슨 능력을 봉인하려 한 거지?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시도가 통하기라도 한 것인지 헬 드라이어드의 비명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워하는 건 여전했으나, 엘더와 바곳의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을 공작선인장이 해냈다는 점이 놀라웠다.

“지금 둘이 고통스러워하는 게 드라이어드의 능력과 관계있다는 건가?”

난 공작선인장이 떨어뜨린 하얀 돌을 주웠다. 향수를 뿌린 것처럼 강렬한 향기가 돌에서 훅 풍겨 왔다.

맡아 본 적 없는 꽃향기였기에 어떠한 종도 특정할 수 없었다.

그녀가 헬 드라이어드를 이루는 어떠한 드라이어드의 능력을 봉인함으로써 고통을 줄였다.

회복의 힘이 통하지 않으니 고통의 출처는 공격으로 인한 대미지는 아닐 테고, 바곳의 능력도 통하지 않았으니 디버프 계열도 아니다. 단순한 드라이어드의 고유 능력일 뿐이다?

그런데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공작선인장이 능력을 사용해야만 한다면, 그녀 자신은 치료받을 수 없다는 걸 뜻했다. 남의 능력을 봉인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전히 헬 드라이어드가 발광하는 걸 보면, 현재의 그녀로선 해당 능력을 완전히 봉인해 낼 수 없다는 걸 뜻했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죽고 싶지 않아!”

조금 살 만해졌는지 몸을 일으킨 헬 드라이어드가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드라이어드가 애써 제압할 필요는 없었다.

“아아악!”

어떠한 액션을 취하기도 전에 헬 드라이어드가 홀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피해요!”

무언가 위기를 감지한 메스키트의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두터운 팔이 순식간에 내 허리를 낚아챘고 우린 빠른 속도로 헬 드라이어드에게서 멀어졌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공작선인장 역시 데이지가 강제로 끌고 갔다.

메스키트가 방패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피하는 선택을 했다는 것은, 막는 것으론 버텨 낼 수 없는 피해가 올 것이란 뜻이었다. 그건 내게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

화르륵.

발화선이 뿜어내는 열기와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불길이 헬 드라이어드를 집어삼켰다.

믿기지 않았지만, 불길은 마치 헬 드라이어드의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헬 드라이어드는 정말… 스스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콰앙!

귀가 얼얼해질 정도로 엄청난 굉음이 터졌고 소리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의 폭발이 헬 드라이어드가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헬 드라이어드는… 폭발했다.

파라다이스 테라리움 내의 모든 드라이어드들 위에 군림하고, 내 드라이어드들조차 전략적으로 맞서지 않았다면 쓰러뜨리지 못했을 강한 헬 드라이어드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헬 드라이어드의 막대한 존재감은 분명 막판 보스급이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데다 너무나도 허망한 최후에 머리는 현실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그 어떠한 광경도 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련의 광경에 충격이 커서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다고 멘탈을 수습하기 위해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수만은 없었다.

폭발에 영향을 받은 건물이 크게 흔들리더니 빠른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잔해에 깔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으려면 온 힘을 다해 건물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텅!

메스키트의 방패가 떨어져 내리는 돌을 쳐 냈다. 건물의 붕괴 속도가 너무 빨랐다.

빠른 탈출이 목표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민첩성이 떨어지는 바곳, 엘더, 실새삼은 아티팩트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다.

“드라이어드가… 자폭을 했어….”

메스키트에게 의지해 겨우 도망가고 있는 난 그저 방금 본 참상의 진실을 의심하며 되뇌는 행동밖에 할 수 없었다.

“제이, 공작선인장을 두고 가야 해요.”

메스키트는 데이지의 줄기에 칭칭 매인 채 끌려가는 공작선인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원활하게 이해하는 데에는 수 초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고통받던 헬 드라이어드가 갑자기 폭발했다.

헬 드라이어드는 목숨을 다하기 전까지 죽고 싶지 않다고 외쳤다.

자폭은… 아무래도 드라이어드의 자의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겠지.

그렇다는 건 똑같이 고통스러워하는 공작선인장 역시… 언제든 자폭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마지막으로 느낀 공작선인장의 체온은 굉장히 뜨거웠다.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기괴한 온도였다.

바로 곁에 있는 그녀마저 헬 드라이어드처럼 폭발한다면… 우리 역시 굉장히 위험했다.

대체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은 드라이어드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이제 겨우 세상 밖으로 나와 새로운 삶을 살아갈 드라이어드였다.

내가 아닌 다른 친절한 드루이드가 공작선인장을 밝은 길로 이끌어 줄 테고, 그녀는 여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신선한 삶을 만끽하며 진정한 드라이어드로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페르노는 자신의 소유물들이 남의 손에 넘어가느니 망가뜨려 버리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처럼 드라이어드들에게 가혹한 짓을 벌였다.

메스키트의 제안에 난 곧바로 동의하지 못했다.

내가 좋다며 졸졸 따라오던 공작선인장의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밟히는데 어떻게 매몰차게 무너지는 건물 안에 버려두고 갈 수 있을까?

물론 늦은 선택으로 인해 나는 물론 내 소중한 드라이어드들이 다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난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난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고통에 겨워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공작선인장이 어떠한 의사도 표하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이 달가웠다.

그녀라면… 자신을 버리라 먼저 이야기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

가까스로 건물에서 빠져나와 마주한 바깥 광경은 혼돈 그 자체였다.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건물에 채 다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아….”

사방에서 폭발로 인한 굉음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불길이 치솟았다.

경험으로 인해 폭발의 출처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기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멀리 보이는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의 경계선이 새빨갛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외부를 지키는 드라이어드들이 울타리가 되어 불을 막아 주고 있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 누가 봐도 이젠 그들의 방어력이 다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폭의 여파는 파라다이스 테라리움 내 모든 드라이어드에게 유효했던 것이다.

드라이어드 전부가 시한폭탄이었다.

지킬 수단이 없는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은 외부의 침입에 무력했다. 불이 시뻘건 아가리를 벌리며 침범해 오고 있었다.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은 이제 끝났다.

짙푸른 초목이, 높게 세워 올린 건물이, 거대한 산맥이, 불붙은 종이처럼 타올랐다.

이곳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니었다. 활활 타오르는 지옥의 중심이었다.

안에서 생명이 스러지며 불이 터지고 밖에선 굶주린 불이 잠식해 오고 있었다.

머지않아 이곳의 모든 것들이 불에 타 죽고 사라질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나 역시 같은 최후를 맞이하겠지….

“그만, 내버려 두렴. 어차피 살아 나가진 못할 테니.”

왜 노인이 내게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젠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을 통째로 없애 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어쩌면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을 만들기 전부터 이런 결말을 준비해 뒀을 것이다.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 낸 드라이어드들에 자폭을 유도하는 끔찍한 장치를 심으며….

“개새끼들….”

눈가가 뜨거워지며 차마 막을 겨를도 없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고막을 때리던 사방의 소음들이 일제히 멀어지고 귓가엔 어느새 이명만 가득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얼토당토않게 생명이 꺼져 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명이 귓가를 가득 메워도 그 소리는 공명한 영혼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기에 귀가 아닌 머릿속에 울렸다.

가슴을 옥죄는 고통이 목을 턱턱 막히게 만들었다. 이 고통은 단순히 내 목숨이 경각에 달렸기에 나타나는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왜 이곳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멋대로 이런 방식의 결말을 내는 게 맞다고 보는 건가?

그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점이 끔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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