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6화 (346/604)

이 전투의 승패는 가능한 많이, 최대한 빨리 헬 드라이어드에게 섞여 들어간 종들을 파악해 내는 데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메인이 되는 종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잘하게 섞인 서브 종들까지 파악해 낼 수 있을까?

난 실새삼을 바라보았다.

쟤만 다 컸어도….

은둔자의 정원에서 마주했던 성장도의 실새삼이었다면 종을 몰라도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드라이어드들의 능력을 가릴 것 없이 모두 흡수해서 똑같이 재현해 내는 능력이 얼마나 사기인가.

더구나 드루이드도 없는 드라이어드는 실새삼을 공략해 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다치면 다칠수록 강해질 거야. 마치 바곳처럼.”

내 말에 데이지는 굳은 표정으로 단검을 고쳐 쥐었다.

공격력이 가장 정점을 찍을 때는 헬 드라이어드가 리타이어 되기 직전.

그쯤의 공격력이 과연 현재 내 드라이어드의 포메이션으로 감당 가능한 수준인지도 측정 불가능이었다.

“메스키트와 엘더를 믿고 전력을 다해 공격을 퍼부어 줘.”

그렇다고 반격이 두려워 공격을 멈출 수도 없었다.

어쨌든 쓰러뜨리기 위해선 딜을 가해야만 했다.

주먹과 다리를 사용하는 최근접 파이터인 헬 드라이어드의 공격 반경에 들지 않기 위해 데이지는 원거리 딜링을 선택했다.

단검을 부메랑처럼 내던지며 사거리 밖에서 공격을 퍼붓고, 헬 드라이어드가 가까워질 때면 날렵한 몸놀림으로 훌쩍 피해 버리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물론 헬 드라이어드는 다치면 다칠수록 더욱 빨라졌고 점차 데이지와의 거리를 좁혀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쪽은 혼자인 헬 드라이어드와 달리 데이지를 보조해 줄 드라이어드가 상시 대기 중이었다.

저쪽이 혼자라고 우리도 일대일로 겨뤄 줄 아량은 없었다. 드루이드 간의 정식 승부도 아니고 정정당당하게 나설 필요가 어딨어?

데이지에게 가까워지려 하면 메스키트의 랜스와 방패가 경로를 막았고 바곳이 틈틈이 시야를 가려 혼란을 야기시켰다.

간신히 헬 드라이어드에게서 유효타가 터진다 하더라도 공격을 세 번까지 막아 주는 메스키트의 버프 스킬이 데이지를 비호할 뿐만 아니라 유능한 힐러가 항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바로 팀플레이의 아름다움이었다.

그중 정점은 데이지가 전설이 된 이후로 발휘할 수 있게 된 특수 능력으로, 여태 입힌 공격들이 다시금 되풀이되며 헬 드라이어드를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타오르는 불에 손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강한 드라이어드일지라도 결국 전투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이 겉으로 티가 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헬 드라이어드의 머리는 산발이 되고 드러난 피부엔 칼자국이 가득해 투명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바크 역시 누적된 피해로 인해 망가져 가는 것이 보였다.

“쳇.”

정신없이 데이지를 쫓아다니던 헬 드라이어드가 비로소 멈춰 섰다.

포기라도 한 건가 싶었는데 얼굴을 보아하니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스르르….

바곳의 독 늪이 거둬진 후의 땅에 이변이 생겼다. 우리 드라이어드들의 능력은 아니었다.

이대로 데이지를 쓰러뜨리기 전에 자신이 먼저 쓰러질 것을 예상했는지 헬 드라이어드가 새로운 기술을 구사한 것이다.

파랑에 가까운 청록색의 은은한 이펙트가 헬 드라이어드를 중심으로 1m 정도의 원을 그리며 떠올랐다.

그 이펙트의 반경에서 헬 드라이어드는 한껏 편안해진 얼굴을 했고 가쁘게 몰아쉬던 숨도 진정되어 가는 것이 보였다.

“힐링 필드?”

엘더의 광역 힐링엔 한없이 모자라나 헬 드라이어드가 사용하고 있는 기술 역시 광역 힐링이었다.

다만 고정된 지역에 깔려 힐링을 받고자 하는 대상이 그 기술의 범위 안에 직접 들어가야 효과를 받을 수 있는 방식이었다.

“자가 회복도 사용한다고?”

정말 골 때리는 드라이어드였다. 대체 구사 가능한 기술이 얼마나 더 남아 있단 말이야?

여태 회복 스킬은 회복형 드라이어드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는데 남을 회복시킬 순 없어도 자가 회복의 경우는 다른 특성의 드라이어드도 사용할 수 있었던 건가?

헬 드라이어드의 포지션을 보면 특성이 공격형이 분명한데, 인공 개량으로 인해 기술이 추가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럴 경우 특성 충돌로 인해 문제가 생기진 않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흐….”

웃음이 옅게 섞인 한숨을 헬 드라이어드는 데이지를 바라보며 다시 공격 자세를 취했다.

몸놀림이 가벼워진 걸 보니 그새 회복을 다 한 것이 분명했다.

비록 생명력이 차오른 만큼 다시 공격력이 떨어지긴 하나, 이쪽도 다시 생명력을 떨어뜨려야 하는 귀찮은 일을 해야 했다.

“자가 재생력이 너무 뛰어나.”

어쩌면 헬 드라이어드가 끊임없이 불태워져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엔 불에 내성이 강한 것과 더불어 자가 회복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헬 드라이어드가 자가 회복을 사용한 시점은 꽤 오랜 전투가 흐른 후였다.

버티기 힘들다는 판단에 사용했을 것이 분명한데, 그 시점이 오래 걸린 것을 보면 지닌 생명력 자체도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데이지처럼 생명력도 많고 엘더처럼 회복 스킬도 사용할 수 있다라…. 거기에 바곳의 특수 능력까지.

완전 내 드라이어드들의 능력을 한 데 뭉쳐 놓은 적을 상대하란 격이네.

“너무 까다로운데….”

만약 헬 드라이어드와 같은 캐릭터가 카드 게임에 신규 업데이트되기라도 하는 날엔 해당 게임의 커뮤니티는 난리가 날 것이다.

지독한 밸런스 파괴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태생 등급에 따라 캐릭터가 강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해도, 카운터가 되는 캐릭터를 키우거나 특별한 조합으로 팀을 구성하거나 똑같이 높은 등급의 캐릭터로 맞서거나 그도 아니면 한계까지 육성시켜 키운 캐릭터로 찍어 누르는 등의 대항 방법이 있었다.

실새삼도 만만찮게 사기 캐릭터지만 드루이드가 직접 참전 가능한 시스템이니 이 경우는 로드 캐릭터의 육성에 신경을 쓰면 됐다.

하지만 헬 드라이어드는 달랐다.

자가 회복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높은 생명력으로 탱킹도 가능하고 공격력도 강했다.

심지어 계속해서 불에 타는 자체 페널티도, 불 때문에 적에게 지속 딜이 박히는 디버프를 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애초에 드라이어드와 불은 상극이니 최상의 디버프 능력이라 볼 수 있었다.

거기다 같은 디버프인 독 스킬엔 또 면역이지.

어쩌면 우리에게 보여 준 스킬 외에도 더 많은 스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헬 드라이어드와 같은 캐릭터를 게임에선 OP(OverPowered) 캐릭터라고 불렀다.

OP 캐릭터는 그 캐릭터가 없으면 진행 자체가 불가능했다.

PVP 대전에서 상대가 OP 캐릭터를 들고 오면 똑같이 OP 캐릭터를 데려와 맞서지 않는 한 승패가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OP 캐릭터의 카운터는 오직 OP 캐릭터뿐.

등장과 동시에 수많은 유저의 환불 요청과 동시에 이탈 사태가 발생하니, 사실상 매출 위기에 놓인 게임사가 그동안 쌓아 놓은 이미지 다 버리고 발악하는 수준에서 내놓는 캐릭터나 다름없었다.

이미 OP 캐릭터를 출시한 시점부터 다음 신규 캐릭터를 출시하려면 그 OP 캐릭터를 가볍게 이겨 먹을 수 있는 또 다른 오버 밸런스의 OP 캐릭터를 출시할 수밖에 없게 되고 게임은 점점 소위 말하는 망겜이 되어 가는 거다.

이러니 한 명의 게임 유저인 내가 헬 드라이어드에게 필요 이상의 반감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나.

앞으로 인페르노를 계속 내버려 두게 된다면 결국은….

인페르노는 헬 드라이어드와 같은 오버 밸런스 종을 인공 개량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그들이 어디서든 숨어서 헬 드라이어드와 같은 오버 밸런스 드라이어드를 찍어 내기 시작한다면, 그 드라이어드들을 완벽히 통제 가능한 영역에 둘 수 있다면…. <테라리움 어드벤처>는 망겜이 되는 게 아닐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데이지의 역할이 중요해.”

어쨌든 당장은 눈앞의 헬 드라이어드부터 처리해야 했다.

헬 드라이어드는 자신이 위기라고 느끼는 특정 시점에 도달하면 자가 회복을 시전하니 까다로웠다.

고정된 영역 안에 서 있어야 했지만 회복 속도가 상당히 빨라 강제로 영역에서 벗어나게 하더라도 큰 피해는 주기 힘들 것으로 보였다.

자가 회복의 쿨타임이 어느 정도 될지 모르겠지만 절망적이게도 쿨타임마저 빨리 찬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한쪽이 지쳐 떨어질 때까지 한없이 발목이 붙잡힐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강제로 자가 회복 시점을 넘겨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믿을 건 데이지의 역할뿐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데이지가 가진 공격 리플레이 기능이 이 상황을 타파할 열쇠였다.

자가 회복이 시전되기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밀어붙인 다음, 그 뒤는 리플레이를 써서 한 번에 넘겨 버린다.

리플레이가 발동되면 데이지가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적이 공격받았던 지점이 차례로 다시 공격을 받게 되므로 자가 회복을 사용할 겨를이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헬 드라이어드가 눈치채선 안 됐다.

만약 눈치채고 빨리 자가 회복을 시전해 버리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거니까.

팀의 메인을 데이지로 돌려 공격력을 올리고 굳게 연결된 영혼을 통해 내 생각을 전달했다.

데이지는 다시 처음처럼 헬 드라이어드를 몰아붙이며 다시금 자가 회복을 터뜨리도록 유도했다.

헬 드라이어드가 자가 회복을 꺼내는 시점을 파악해야만 했다.

스르르….

이런 생각을 아직 모르는 헬 드라이어드는 다시금 여유롭게 발밑에 힐링 필드를 깔았다.

아무리 공격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과시하고 싶은 듯 만면에 여유로운 웃음이 가득했다.

이 모든 행동이 헬 드라이어드의 방심을 유발하기 위해서임을 전혀 깨닫지 못한 눈치였다.

데이지가 완전히 감을 잡을 때쯤 모든 버프를 데이지에게 몰빵했다.

마거리트의 두 번의 예언은 확정으로 터지는 패시브 스킬과 엘더의 행운 능력까지 이용해 데이지의 능력을 할 수 있는 한 한계까지 올렸다.

“레드 데이지는 최고의 공격을 할 수 있게 될 거야.”

“최고의 행운이 너에게 깃들 거다.”

헬 드라이어드가 이상을 눈치챘을 땐 이미 늦었다.

한계까지 몰려 자가 회복 스킬을 꺼내기 직전, 데이지의 공격 리플레이가 터지며 단번에 회복 구간을 넘어 버렸다.

드디어 헬 드라이어드가 무릎을 꿇었다.

다시 공격하거나 기술을 발동할 기운도 없어 보일 정도로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왕이라 믿던 자가 사라지면 저것을 따르던 드라이어드들 사이에서 혼란이 발생하긴 할 거다.”

실새삼이 우려를 표했지만 데이지에게 바로 끝장을 보라 말했다.

하지만 단검이 목에 날아들기 직전, 헬 드라이어드는 도주를 택했다.

도망갈 힘만 간신히 남겨 둔 것인지 빠져나가는 속도가 상당히 신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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