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3화 (343/604)

“드루이드님, 드라이어드가 장소를 이동하겠다는 말에 동의하던가요?”

“좀 다른 문제가 생긴 듯하지만 말은 들어줄 것 같아요.”

설마 내가 영혼의 연결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떠나지 않겠다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니겠지?

혹시 방금 대화로 호감도가 떨어져 버려서 처음의 상태가 되었다거나….

“난 너와 영혼의 연결을 맺고 싶은데. 혹시 나보다 더 화려한 꽃을 원하는 거야?”

“아니야, 다른 문제야. 내가 충분히 널 보살펴 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 그리고 세상에 나보다 좋은 드루이드는 많아. 너와 만난 나는 작은 경험에 불과할 뿐, 넌 앞으로 다양한 드루이드를 만날 기회가 있어.”

당장 이해하고 수긍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일단 장소를 옮기는 게 먼저로 보이는데… 혹시 움직일 수 있겠니?”

아직까지 공작선인장의 거대한 드레스로 인해 거리감이 상당했다.

그동안 무대에서 공연을 펼쳤을 테니 움직일 수야 있겠지만 밖은 어수선했다.

바크가 너무 화려한 탓에 이목을 끌게 될 수도 있었고 움직임에 제약을 받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동 속도가 느릴 수도 있고.

“내 바크가 불편해?”

“네가 움직이는데 불편할까 봐 그래.”

공작선인장은 내가 자신의 드레스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들어 천 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러곤 내 곁에 선 다른 드라이어드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내 바크는 남들과 달라.”

“드라이어드들의 동종이 아니고선 바크가 모두 달라. 네가 이상한 건 아냐.”

내가 가진 드라이어드 중 그나마 공작선인장과 비슷한 차림새를 뽑자면 마거리트가 있었다.

어쨌든 드레스 형태니까.

하지만 내 드라이어드 중 가장 화려한 차림새이긴 해도 공작선인장만큼은 아니었다.

“마거리트.”

“내 진리! 난 언제 부르나 기다렸잖아.”

기다렸다는 듯이 아티팩트에서 튀어나온 마거리트가 단숨에 날 끌어안았다.

퇴근 후 집에 가면 반겨 주는 반려동물의 반응이 이러할까?

“자, 얘도 봐. 너랑 바크가 비슷하지.”

“내가 더 예뻐.”

“아니지 예쁜 건 나지. 제이가 좀 전까지만 해도 내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어.”

“그건 내가 곁에 없었으니까 그런 거지!”

차라리 둘이 아웅다웅 싸우며 마거리트의 시선이 엘더에게 가 있는 것이 나았다.

“어때? 정말 그렇지?”

마거리트의 정신없는 활발함에 공작선인장이 당황한 것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내 질문에 답을 하는 게 조금 느렸다.

“그렇긴 하지만….”

공작선인장은 여전히 날 끌어안고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마거리트를 바라보았다.

마거리트의 치마에 오래 시선이 머물긴 했지만, 나와 마거리트를 번갈아 바라보며 좀 더 묘한 눈빛을 하곤 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녀의 답변이 묘했다.

내내 앉아 있던 공작선인장이 몸을 일으켰고 그 움직임에 따라 퍼져 있던 드레스가 좀 더 끌려 올라갔다.

“내 모습이 바뀌어도, 가시를 드러내도 날 아름답다고 생각해 줄 수 있어?”

“내 눈엔 모든 드라이어드가 존재 자체로 아름다워. 전투로 인해 흙투성이가 되어도 아름답고. 넌 화려한 겉모습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 그건 네가 가진 진정한 아름다움의 반도 못 보여 주는 일이야.”

물론 유독 얼굴로 승부하는 엘더가 있긴 하지만.

솔직히 예전 히아신스가 말했듯 모든 드라이어드들이 드루이드의 마음에 들기 위해 현란한 겉모습을 가지고 태어나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다들 아름다웠다. 엘더 말로는 꽃이기 때문에 그렇게 태어난 거라고 하지만.

그러니 드라이어드가 아름다운 건 이미 가지고 있는 패시브 능력이니 공작선인장은 자신의 진가를 감추면서까지 화려한 겉모습을 보여 주려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드라이어드가 사람들 눈을 위한 관상용이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기도 하고.

공작선인장은 가볍게 양팔을 뻗었다.

그러곤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렸다.

거대한 드레스가 느린 속도로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빙글 회전하기 시작하자 바닥에 천이 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자기 춤이라도 추나 싶었는데 단순 춤이라고 보기엔 뭔가 이상했다.

진한 꽃향기가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우며 공작선인장의 드레스가 밝게 빛을 내뿜었다.

나선형으로 휘감은 붉은 이펙트와 함께 그녀의 바크 외형에 변화가 생겼다.

“아니…!”

지켜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그 광경에 놀라움을 표했다.

입고 있던 드레스가 마치 꽃잎이 떨어지듯 한 올 한 올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양파 껍질처럼 드레스가 떨어져 나갈수록 크기가 줄어들었고 종래엔 마거리트와 비슷하나 좀 더 길이가 긴 드레스만 남게 되었다.

크기는 아담하지만 여러 겹의 둥근 꽃잎 위로 태양처럼 가느다란 꽃잎이 퍼져 나가는 드레스는 여전히 지나치게 화려했다.

공작선인장이 드러내길 두려워했던 가시는 그녀의 다리 부분에 형상화되어 있었다.

회전하며 살짝 들어 올려졌던 드레스 자락 안에 양옆으로 가시가 돋은 녹색의 줄기가 휘감는 듯한 롱 부츠가 숨겨져 있었다.

그녀가 공격형 드라이어드라면 발차기만으로도 상당히 강한 위력을 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바크 변화를 끝내고 사뿐히 선 그녀의 모습은 어느덧 귀부인 같은 모습으로 다소곳하게 날 바라보았다.

어딘가 홀가분해 보이기도 했다.

“내 꽃은 본래 피고 나서 하루 뒤에 시들어 버리거든. 그래서 이런 모습도 가능해.”

그녀는 바크가 바뀐 모습을 시들었다고 표현했지만 내 눈엔 여전히 만개한 꽃처럼 보였다.

“사실… 어쩌면 이게 내 모습이 맞을 거야. 사람들은 내가 오랫동안 아름답길 원해서….”

꽃이 오래 피어 있도록, 공작선인장이 바뀌기 전 모습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무언가 수를 쓴 것이다.

공작선인장은 다리를 교차하고 드레스를 꾹 눌러 치마 아래 가시 돋친 롱 부츠를 숨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네가 원래 모습이 더 좋다면… 다시 보여 줄 수 없거나…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거야. 난 또 같은 자리에 꽃을 피울 수 없거든.”

“지금이 훨씬 좋아 보여.”

내 말에 공작선인장은 배시시 웃어 보였다.

드라이어드의 외형이 바뀌는 경우는 처음이었고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간혹 턴 오버 특성을 가진 바곳이나 월계수에게 특성 변경 시 미묘한 변화가 생기긴 하지만 공작선인장은 아예 다른 종이라 봐도 무방할 만큼 변화가 극적이었다.

“드라이어드의 모습이 바뀌었네요! 잘됐습니다. 빨리 이동할 수 있을 겁니다.”

공작선인장과 대화를 트고 모습까지 변화시키자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경외에 가까워졌다.

군데군데 칭송하는 수준으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요, 이동합시다.”

난 윈터에게 공작선인장을 인계한 후 따로 행동할 생각이었다.

굳이 아지트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었고 한시바삐 목적지인 진줏빛 성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어어…. 이쪽으로 와야 합니다.”

“넌 저 사람들을 따라가야 해. 날 따라오지 말고.”

“왜? 나도 널 따라가면 안 돼?”

공연장 밖까지 순순히 움직이던 공작선인장이 이후 갈 길이 달라 갈라서려는 내 쪽에 붙어 버린 것이다.

처음엔 몰랐으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걸어가는 내 뒤로 당황한 소리가 가득했기에 알아차리게 됐다.

공작선인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날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안전한 곳에 있어야지. 내가 가려는 곳은 위험해.”

“하지만 여기 다른 드라이어드들은 널 따라가잖아.”

“그건… 나와 영혼의 연결이 된 드라이어드니까 위험에서 날 지켜 주기 위해서야.”

“그럼 나도 영혼의 연결이란 걸 하면 널 지켜 줄 수 있어?”

“나 말고 다른 드루이드와 해야지. 어쨌든 저 사람들을 따라가.”

사람들은 멀찍이 서서 공작선인장에게 되돌아오라고 애타게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 널 따라가는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을 거라 했잖아. 혹시 내가 널 지키는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말했듯이 넌 다른 드루이드를 만날 수 있어. 난 너의 작은 경험에 불과한걸. 저 사람들을 따라가면 다른 좋은 드루이드들이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내가 손짓하자 공작선인장은 어깨를 늘어뜨린 채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

저런 모습을 보니 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얼른 가자.”

하지만 애써 잊고 성을 향해 걸었다.

지도를 볼 필요 없이 멀리 지점이 보이니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한참을 걸었을까, 메스키트가 내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제이, 계속 따라오는걸요?”

“뭐? 진짜?”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나무 뒤로 누군가 후다닥 숨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숨는다고 숨었으나 붉은 드레스 천이 삐죽 튀어나와 있어 정체를 감추기 어려워 보였다.

“어쩌지….”

“네가 이토록 고민할 정도면 영혼의 연결을 맺을 생각이 없다는 건데. 쟤나 작은 민들레 묘목들은 좋다고 받아들였잖아.”

엘더가 마거리트를 가리키며 말하는 바람에 또 한 번 언쟁이 시작됐다.

“난 앞으로 필드의 가디언도 모아야 하니까…. 이젠 심사숙고해서 영혼의 연결을 맺을 드라이어드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공작선인장은 자신이 잘 숨었다고 생각했는지 한동안 나무 뒤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모르는 게 많아서 어쩌면 보살핌이 많이 필요한 드라이어드겠지. 내겐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드라이어드가 많으니까 무턱대고 데려오기엔 저 드라이어드에게도 좋지 못할 거란 생각도 들었어.”

“요즘 드라이어드들은 쯧쯧. 하나같이 어리광만 많아서는. 나 때는 황무지에 던져 놔도 알아서 잘 컸어.”

그런 말을 여기서 제일 어린애 모습을 한 실새삼이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그 보살핌에 자기도 포함되어 있는데 말이야.

“모른 척하고 계속 가다 보면 제 풀에 지쳐 떨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건 오판이었다.

공작선인장은 지치긴커녕 계속 내 뒤를 졸졸 쫓아왔다.

그 뒤를,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찌 데려갈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리는 네이처 키퍼의 사람들 한 무리가 쫓아오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라고 설득하려고 마음먹을 때쯤 습격을 받았다.

진줏빛 성에 가까워지니 난폭함이 차원이 다른 드라이어드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마치 몬스터들이 사냥터에 레벨별로 분포해 있던 느낌을 받은 것이 착각이 아니란 것처럼.

성엔 확실히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