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2화 (342/604)

“드루이드님! 드라이어드와 소통하는 데 성공하신 건가요?”

바로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윈터를 제외하고도 먼발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내가 드라이어드에게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초조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드라이어드가 내게 호의적인 몸짓을 보이고, 입을 열고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무리 없이 길게 이어 가자 지켜보던 이들의 표정도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들은 숫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칭송이라도 하듯 날 불러 댔다.

“네, 이 드라이어드의 종은 공작선인장이라고 하네요.”

“흔히 볼 수 있는 꽃은 아니군요. 또… 또 뭐라고 말했나요? 괴롭다고 하진 않던가요? 도움이 필요하다고는요?”

윈터는 일반인이기 때문에 드라이어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간절한 목소리로 내가 드라이어드와 나눈 대화를 전부 이실직고해 주길 빌었다.

“스스로 먼저 도움을 요구하진 않았어요. 그저 사랑을 많이 받고 싶은 드라이어드래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스럽습니다.”

그는 사랑이라도 빠진 눈빛이었다.

“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저희에겐 저 드라이어드를 구조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본인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공작선인장은 마음을 연 이후로 순박한 눈을 하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대화를 나눴던 순간이 꽤나 만족스러웠는지, 한껏 풀어진 얼굴을 하고 입과 몸을 달싹거리며 대화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인형처럼 굳은 얼굴로 멍하니 있던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여기서 떠나야 할 거 같아. 이곳은 이제 예전과 같지 않을 거야.”

“하지만….”

본인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차렸다곤 하나 당장 과거와 달라지라고 종용하면 모두가 어려워할 것이다.

공작선인장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강제라곤 하나 본인이 자신의 환경에 만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힘들지도 모른다.

달라지기 위한 가장 첫 단계는 주변 환경부터 바꾸는 일이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 어렵네. 여긴 곧 위험해질 거야. 일단은 피하는 게 좋아.”

“어떤 위험인데?”

“널 공격하려는 적이 올 지도 몰라. 그들은 우리 같은 사람이나 드라이어드를 가리지 않고 공격해.”

“날 아프게 할 거란 말이야?”

“그래…. 그리고 심하면 세계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고….”

“세계수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야?”

음… 딱 어린 바곳을 보는 기분이었다. 아니 바곳보다 더욱 심한 상태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공작선인장은 모르는 것이 많았기에 참 질문이 많았다.

이외에도 함께 대화를 했지만 미처 물어보지 못했던 의문점들이 뒤늦게야 물밀듯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모두 답해 주기엔 시간이 넉넉지 않으나 그렇다고 무시할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간단히 그녀의 질문에 답해 주며 틈틈이 바깥세상에 대한 열망을 심었다.

‘세계수를 본 적 있니? 모든 드라이어드가 세계수로부터 태어나는데 궁금하지 않아?’

‘현재 우릴 위협하는 위험은 너와 같은 드라이어드이긴 한데… 밖엔 불이라는 공통된 적이 도사리고 있어. 그리고 드라이어드들은 그 불을 무찌를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이야.’

차라리 호기심을 갖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본래의 모습을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순응해 버린다면 아무리 설득해도 나아질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겁이라도 먹는다면 오히려 제자리를 고수하려 하겠지.

그녀의 호기심이 변화의 원동력이 되어 준다면 앞으로 달라질 가능성은 있었다.

데이지와 같은 ‘성장 욕구’나 바곳 같은 롤 모델을 닮고 싶은 ‘열망’ 같은 것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너무 큰 바람일 것이다.

“그리고 네가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위해서라도 이곳은 맞지 않아. 함께 밖으로 나가자. 네가 여태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 널 기다리고 있어.”

“그럼 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그 질문엔 바로 답해 줄 수 없었다.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 거지?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에서 태어난 드라이어드들은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드라이어드를 어디로 데려가 보호하실 건가요? 제가 알고 있기론 이곳의 드라이어드들은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을 빠져나갈 수 없다 했어요.”

“그 점은 일단 저희가 준비해 둔 것이 있습니다. 일단 이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특수한 힘이 드라이어드를 묶고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힘을 무효화시키는 거겠지요.”

알 수 없는 어떠한 힘의 원천을 찾아 무력화하는 것, 그걸 위해 현재 네이처 키퍼의 단체들의 몇몇이 이미 수행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다만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을 운영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에 가까운 만큼 비밀리에 관리하고 있었으므로 닥치는 대로 내부를 수색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사업상 비밀이니 꼭꼭 숨겨 뒀을 법도 하지.

그러나 난 이미 실새삼을 통해 힌트를 얻은 후였다.

힘의 원천의 정체는 모르나 그것이 있을 법한 장소가 있지.

“그럼 만약 무효화시키는 것이 늦어진다면요?”

“파라다이스 테라리움 안의 드라이어드들은 드루이드와 영혼의 연결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희 쪽의 드루이드와 연결시키게 된다면 힘의 결계를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추측 중입니다. 물론 영혼의 연결은 드라이어드의 의사를 우선시 할 것입니다.”

추측 중이란 뜻은 아직 결과가 확인된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네이처 키퍼는 수많은 드라이어드들을 풀어 줬지만 정작 구조에 성공한 드라이어드가 없는 걸까?

또한 아무도 네이처 키퍼의 드루이드와 영혼의 연결을 맺지 않은 것인가?

어쩌면 말이 통하지 않는 드라이어드는 공작선인장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처럼 네이처 키퍼가 앞서 나가 안전을 확보해 둔 드라이어드가 그래도 여럿 있을 텐데도 영혼의 연결을 통하면 밖을 나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내지 못한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한데….

“일단 경과가 나올 때까지 저희 단체가 이 지역에서 점거 후 아지트로 이용 중인 곳으로 이동시켜 보호할 예정입니다.”

“알겠어요.”

결국 파라다이스 테라리움 안에 머물고 있는 상황은 동일했다.

하지만 아지트라고 하니 차라리 안전이 보장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낫겠지.

“여길 나가도 당장은 앞서 설명했던 더 넓은 지역들을 탐방하러 가는 건 무리겠지만…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거야. 네가 준비가 된다면 드루이드와의 영혼의 연결을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긴 해.”

“드루이드와의 영혼의 연결이 뭐야? 드루이드는 뭔데?”

어린 바곳과 같다 했던 말은 취소다.

공작선인장은 이 세계로 처음 넘어왔을 때의 내 상태나 다름없었다.

“드라이어드들은 세계수를 떠나 오래 버틸 수 없어. 드루이드는 드라이어드에게 작은 세계수가 되어 영혼을 위한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지.”

“드루이드는 드라이어드에게 또 다른 자신이나 다름없는 삶의 공유자다.”

“드루이드는 지켜야 할 주인이지.”

내 설명과 더불어 엘더나 실새삼이 끼어들어 드루이드의 존재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난 드루이드가 없어도 버틸 수 있는걸. 왜 나는 다른 거야?”

왜 다른 걸까?

왜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의 드라이어드들은 보통의 야생 드라이어드들보다 수명이 길고 드루이드 없이도 무리 없이 활동할 수 있는 걸까? 인공개량이기 때문에? 아니, 실새삼이 말했던 드라이어드와 연결된 보이지 않는 생명의 실이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난 이미 연결이 되어 있어. 이게 네가 말한 영혼의 연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영혼의 안식이 되어 주는 건 분명해. 이런 이상한 연결이 되어 있는 나도 드루이드와 영혼의 연결을 맺을 수 있어?”

공작선인장의 말은 의외였다.

그녀가 말한 연결은 아마 실새삼이 발견한 것과 동일할 테지. 그런데 그게 영혼의 연결과 비슷한 효과를 내다니.

“글쎄… 그건 나도 알 수 없어.”

“너도 모르는 게 있구나. 나와 공통점이 있어. 나도 모르는 게 있어.”

그에 대한 답은 나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른다고 말했을 뿐인데 공작선인장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삶의 전반에 대한 이변을 눈치채게 된 그녀는 어쩌면 나와 이야기하면 할수록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어 불안에 떨었는지도 모른다.

“너도 드루이드야?”

“맞아. 그리고 여기 있는 드라이어드들은 나와 영혼의 연결을 맺었어.”

“그럼 나도 너와 영혼의 연결을 맺을 수 있어?”

“음… 가능은 하지만….”

“그렇다면 나도 너와 영혼의 연결을 맺고 싶어.”

공작선인장의 말에 단번에 답을 해 줄 순 없었다.

내게 또 다른 드라이어드가 생긴다라….

COST 시스템이 있으니 드라이어드와 영혼의 연결을 무작정 맺을 순 없는 데다 내 COST에 아직 자리가 있는지 잘 몰랐다.

그간 레벨 업 좀 한 것 같은데 자리가 생겼을 수도 있지만, 난 이제 전략적으로 드라이어드를 데려와야 할지도 몰랐다.

물론 카드 게임의 꽃이 수집인 만큼 공작선인장을 데려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모험을 하며 달성해야 할 메인 퀘스트 중에 10그루의 필드 가디언을 모두 모아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이제 메스키트와 실새삼 둘이니 나머지 8그루를 데려올 자리를 충분히 비워 둬야 했다.

만물을 보는 눈을 사용하면 대략적으로 내 레벨을 짐작 가능하지만 수치상으로 레벨을 확인할 수 없으니 답답했다.

만약 대부분의 게임들이 그러하듯 테라리움 어드벤처 역시 레벨이 오를수록 필요 경험치 양이 증가한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레벨 업은 어려워질 테고 그만큼 COST 자리를 마련하는 것 또한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또 다른 필드의 가디언을 마주한 상태서 당장 내 영혼에 자리가 없다면?

또는 내 드라이어드들과 포레스트를 이룰 수 있는 동종의 드라이어드를 발견하고도 영혼에 자리가 없다면?

데이지나 민들레는 노멀 등급인 만큼 요구 COST가 낮았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문제는 내 다른 드라이어드들이었다. 하나같이 레어나 유니크다 보니 COST가 높을뿐더러 만날 확률도 희귀한 편이라 기회만 된다면 바로 데려와야 했다.

짭신 엘더를 데려왔을 때 느껴지는 묵직함이 남다르긴 했지.

공작선인장은 내게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으니 내가 데려가 보살피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이젠 드라이어드들을 막 데려오던 초반과 다르게 나는 전략적으로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위치가 되었다.

그래서 일단은… 보류였다.

“아마 나보다 더 좋은 드루이드를 만날 수 있을 거야.”

내 말에 공작선인장은 실망과 의문이 공존한 표정으로 잠깐 동안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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