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0화 (340/604)

소란이 생기면 고개를 돌려 볼 법도 한데, 드라이어드는 고집스럽게 우리 쪽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드라이어드는 오직 정면만을 바라본 채 마치 우리가 없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꽃 이름은 뭔가요?”

“이곳에서 저 꽃이 불리는 이름은 단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꽃’이라는 것뿐입니다. 분명 저 꽃도 이름이 있을 터이나 본래의 이름을 잊어버리게 된 것이겠죠. 그런 경우에 대해선 드루이드님께서도 아실 거라 생각됩니다.”

인공 개량으로 태어난 드라이어드구나.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다고 합니다.”

그 무슨 짓의 범위가 어느 정도길래….

16번째 테라리움 연금탑의 종자 보관소에서도 수많은 식물의 유전자를 결합시켜 만든 인공 개량종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각 식물의 장점만을 뽑아, 혹은 무작위로 선정하여 결합한 꽃들은 본래의 모체에서 많이 벗어나게 된다.

그래도 중심이 되는 종이 있을 텐데, 저 꽃은 대체 어떤 식물들과 결합하여 태어난 거지?

파필리온의 직속 전투 부대로 활약했던 검은 드라이어드들은 활발하게 움직일 수라도 있었다.

그러나 저 드라이어드는 종의 결합이 드레스 천 자락을 덕지덕지 덧댄 것처럼… 어찌 보면 과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혹시 우리 중에 알아볼 수 있는 드라이어드 없어? 그래도 떠오르는 꽃이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추측하자면 트로피컬 필드에 소속되어 있을 거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실새삼이 턱을 문지르며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트로피컬 필드라… 하필이면 내 드라이어드들 중 자생 필드가 그곳인 드라이어드가 하나도 없었다.

자생 필드가 같다면 알아볼 확률이 높았을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도움을 부탁받았으니 시도라도 해 보기 위해 드라이어드의 드레스를 밟지 않으려 조심하며 빙 돌아 시선 앞에 섰다.

“저기… 안녕?”

그러자 드라이어드는 크게 당황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

그러곤 대뜸 다소곳이 모으고 있던 손을 풀곤 허공을 향해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노란 빛 무리가 드라이어드의 두 손 위로 뭉쳐지더니 어느새 가늘고 긴 수많은 장대가 한아름 묶인 무기로 변했다. 장대 끝마다 작은 구슬이 달려 있어 작은 흔들림에도 차르르, 하는 가벼운 마찰음이 들려왔다.

처음 보는 무기는 정확히 무엇이라 규정하기 힘들었는데, 얼핏 보면 싸리비 같기도 했고 뼈대만 남은 부채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이한 형태라 하더라도 드라이어드가 사용하니 더없이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드라이어드는 날 바라보며 그 무기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때마다 차르르, 차르르 은은한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대체 뭐 하는 양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빤히 바라보고만 있자 드라이어드는 더욱 열정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가느다란 장대들 사이로 얼굴을 밀어 넣고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머리 뒤로 옮겨 왕관처럼 보이게 하거나 그도 아니면 부케처럼 들거나 한 품에 끌어안고 고요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은은한 분홍빛이 도는 새빨간 드레스에 상아빛에 가까운 노란 막대가 잔뜩 꽂힌 무기는 색 조합으로도 잘 어울렸고 드라이어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멀리서 본다면 무기가 꽃 한가운데 자리한 꽃술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제야 저 무기가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드라이어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침묵할수록 그 움직임은 어딘가 필사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드라이어드라더니, 아예 말을 못하는 건가? 그래서 행동으로 보여 주는 건가?

혹시 다른 드라이어드들은 눈치챘나 싶어 곁눈질을 해도 그들 역시 의아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묵묵히 바라볼뿐이었다.

결국 드라이어드는 항복이라도 하듯 우울한 표정으로 축 쳐졌다.

더 실력 있는 드루이드였다면 저 움직임을 통해 무언의 메시지를 읽어 낼 수 있었을까?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너무 미안했다.

“차분하게 생각해요, 제이. 천천히, 처음부터 다가가는 거예요.”

그리고 드디어 메스키트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 날 은근히 다독였다.

역시 엘더와 마거리트를 더불어 여러 묘목들을 키워 낸 장인다웠다.

“처음부터 다가가라고?”

“굳이 저런 녀석들에게까지 제이가 힘을 써야 해?”

엘더의 모난 말투가 툭 끼어들었다.

아차, 그러고 보니 내 드라이어드들이 인식을 많이 바꿨다 하더라도 애초부터 그들은 인공 개량 드라이어드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질적인 존재를 메스키트는 포용해 주려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끔찍한 환경이 동정심을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른다.

메스키트는 엘더를 마치 생떼 부리는 아이 바라보듯 흘기곤 다시 내게 다정한 목소리로 조언했다.

“이곳의 드라이어드들은 자라온 환경이 달라요. 아마… 다른 드루이드들이 교감하는 데 실패한 건 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제이는 이미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어 봤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들의 감정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거예요.”

내가 만난 수많은 인공 개량 드라이어드들과의 경험이 내게 도움이 될 거다?

폐쇄적인 환경, 보통의 드라이어드들과 다른 사고 방식.

메스키트의 조언은 어쩌면 여태 만났던 드라이어드들에 대한 보편적인 고정 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뜻처럼 들렸다.

내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드라이어드의 모습은 어떻지?

비슷한 상황이었던 바곳을 떠올렸다.

홀로 남겨진 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공포와 싸우며 외로운 사투를 벌였다.

드루이드인 나를 몰라보고 공격을 멈추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렵사리 영혼의 연결을 맺고 난 이후에도 결핍된 애정을 채우려 의존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었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몰라 자신감과 자존감이 많이 부족하기도 했고.

항상 내게 보호적인 입장을 취하는 드라이어드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긴 했지.

그렇다면 다른 이들은 어떨까?

주인에게 버려져 성장이 퇴화했던 레드 데이지.

그녀는 인공 개량과 결이 다르지만 근원이 되는 모체에 항상 아류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개량종 출신이었다.

항상 열심히인 그녀에게 단 한가지 약점이 있다면 자신의 모체에 대한 근본의 결핍이었다.

신화의 힘, 꽃들의 신화는 그 꽃들의 탄생 의의가 되기도 하고 일생의 목적이 되기도 하고 존재 가치가 되기도 한다. 꽃이 그 꽃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지표가 되어 주는 것이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라 드루이드들에게 선호되지 않다 보니 내게 온 뒤에야 스스로 전설의 힘을 피워 냈을 만큼, 그녀는 현재 종의 근본을 걸고 개량종이 아닌 독립된 꽃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둔자의 정원의 드라이어드들.

폐쇄된 환경에서 자라 눈앞의 진실만 믿을 수 있던 이들은 보통의 드라이어드들과 달리 인간과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공존이 불가했고 우위를 차지하는 자에게 쉽게 세뇌되었다.

그들에겐 아주 긴 세월 전의 선조들부터 시작해 모든 생을 통틀어 바다 위의 작은 섬이 세상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약한 레몬밤 드라이어드를 거리낌없이 괴롭히던 그들의 모습은 파라다이스 테라리움 이전에 짧게나마 약육강식의 논리를 적용한 드라이어드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는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폐쇄 환경이 제공한 편협한 사고관이었다.

어쩌면 내 눈앞의 드라이어드는 이 모든 결핍을 합친 존재가 아닐까?

사람들 손에서 태어난 이 드라이어드가 살아가는 평생 동안 보고 지낸 광경이 무엇일까?

은둔자의 정원에서 태어난 드라이어드들처럼 새장과도 같은 좁은 공연장 안뿐이겠지.

남들도 알아채지 못하는 독립되지 못한 모체를 가졌기에 일생의 목적과 존재 가치를 제시해 주는 신화의 힘이 없다면, 지금 이 드라이어드를 움직이는 가치관은 무엇일까?

옆에서 끌어 주는 드루이드도 없고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는 동료 드라이어드도 곁에 없는데, 그녀의 자존감은 무엇으로부터 충족되고 있을까?

내가 저 드라이어드의 입장이 되어 이 모든 것을 유추해 봐야만 했다.

반드시 너에게 닿아 볼게.

***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꽃을 소개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아무나 볼 수 없는 진귀한 공연, 객석을 차지한 이들은 선택받았다는 뿌듯한 마음 반, 명성이 자자한 드라이어드를 볼 생각에 기대가 반이었다.

보석과 장식품으로 치장된 무대는 아름다웠고 쏘아지는 조명은 트로피컬 필드의 내리쬐는 태양빛을 닮아 강렬했다.

두둥.

타악기의 묵직하고 둔탁한 베이스를 필두로 관악기가 현란하게 휘젓는 음악이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스르륵, 차르르.

기이한 소리와 함께 빛이 닿지 않는 정원의 초입에서 거대한 꽃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무대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화려한 드레스 형태의 바크에 관객들은 저마다 탄성을 내질렀다.

단숨에 시야를 가득 채우는 붉은빛의 향연이 가히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꽃이라고 칭송할 만했다.

드라이어드의 느릿한 움직임을 따라 주름지고 펴지는 꽃잎 같은 드레스는, 불꽃이 터지고 색종이 비가 내리는 그 어떤 쇼들보다 찬연하게 느껴졌다.

객석에 앉은 대부분이 무대 위에 선 드라이어드의 주인이 되고 싶다고 열망했다.

독 안에 든 생쥐처럼 아래로 내리꽂히는 수많은 시선들에 드라이어드는 무척이나 기뻤다.

언제나처럼 걷고 무기를 휘두르고 사람들이 가르쳐 준 자세를 취하면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것이 자신이 평생 갈고 닦아야 할 기술이었으며 시선들을 충족시켜 주는 것만이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드라이어드는 생각했다.

관객들이 환호할수록 열망할수록 자신을 보살펴 주는 사람들의 태도가 친절해졌기 때문이다.

드라이어드는 자신이 한 번도 무지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기민한 편에 속하다고 자신했다.

드라이어드는 사람들이 보내는 수많은 의사를 전부 해석할 수 있으며 이에 맞게 행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환호하지 않는 이들도 시선을 끄는 무기를 이용해 흔들어 보이거나 곡선을 이루며 허공을 휘저으면 금세 손뼉을 쳐 줬다.

그래도 만족하지 않는 이들에겐 좀 더 정적인 자세를 취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면 만족스럽다는 듯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언성이 높아지고 화를 내는 것 같다면 최대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시선을 내리깔고 가만히 있다 보면 넘어갈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드라이어드가 스스로 학습해 낸 결과물이었다.

보통 때와 조금은 다른 특별한 오늘, 공연을 보던 사람들이 부리나케 뛰쳐나가는 것을 보고 드라이어드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드라이어드는 혹시나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나 걱정했다.

평소보다 빠르게 은신처로 돌려보내지는데 따라와 보살펴 주는 사람들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드라이어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그저 늘 하던 대로 자리에 앉아 가만히, 최대한 숨을 죽이며 있다 보면 그렇게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은 자신의 컨디션이 많이 나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이들이 수없이 찾아와 자신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뭐라 입을 움직이길래 그에 맞는 모습을 보여 줘도 만족하는 표정을 짓는 이들이 하나 없었다.

드라이어드는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꽃이 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비관의 시간이 계속 흐르고 난 뒤, 처음으로 자신과 똑같은 드라이어드를 잔뜩 데리고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저기… 안녕?”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사람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생전 처음 듣는 의사소통에 드라이어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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