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5화 (335/604)

직원의 입을 통해 몰랐던 진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앞서 안내 방송에서 이야기했듯, 갑자기 차폐막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켜 갇혀 있던 드라이어드들이 일제히 풀려났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전시관에서 봤던 것처럼 대부분의 드라이어드들은 이미 의지박약 상태였기 때문에 있던 자리를 고수했다. 즉, 현재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드라이어드들은 내가 봤던 이들이 아니란 것이다.

문제는…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이 온순하고 유한 드라이어드들만 모아 둔 곳이 아니란 것이다.

“폐기를 기다리는 실패작들도 있고….”

“폐기요?”

“순화에 실패한… 뭐 그런 부류죠.”

내가 드라이어드들에게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의 실태에 대해 최대한 숨긴 터라 그들이 단번에 알아듣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직원의 말이 상당히 부정적이란 것은 느꼈기에 분노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또 위험한 것들을… 선호하는 층도 있어서… 그런 부류만 모아 놓은 전시관이 따로 있는데 말입니다.”

위험한 것들이라 하면 능력이 상당히 위협적인 드라이어드들을 뜻했다.

이를테면 용해액을 가지는 식충 식물이나 마비, 독, 날카로운 가시들을 보유해 모체 자체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기에 유해 식물로 지정된 그런 드라이어드들 말이다.

닿기만 해도 발진과 수포를 일으키거나 극심한 고통을 주고 심할 경우 생물이 죽음에 이르게 만들 수 있는 식물들을 안전한 차폐막을 믿고 가까이서 지켜보는 걸 선호하는 이들을 위한 전시 구역이 따로 있다고 했다.

물론 나처럼 배포용 초대장으로 온 사람은 갈 수 없는, 특별 회원들을 위한 구역.

사람들 중에도 스릴 넘치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자들이 있고 눈 뜨고 보기 힘든 공포 영화를 즐기는 자들이 있듯이.

그리고 해당 구역에서 풀려난 드라이어드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활개 치고 다니며 수많은 피해를 내고 있다고 했다.

하…. 이걸 자업자득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곳의 드라이어드들은 불에 아주 약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게 의문이었다.

이곳은 인페르노의 소굴.

불을 다루는 베스탈리스들이 자신들이 고삐를 쥐기 위해 불에 아주 취약하게 만든 드라이어드들을 이때까지 진압하지 못한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불을 쓸 수 있는 사람들 수는 한계가 있기도 하고 워낙 공격적이라서 이미 반격도 많이 당했고….”

직원은 애써 베스탈리스를 연관시키지 않으려고 빙빙 말을 돌렸다.

직원 전부가 베스탈리스는 아니었구나.

하긴 베스탈리스 역시 드루이드처럼 희소한 느낌이 들긴 했으니까.

본래 과거 여자들만 베스탈리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던가. 미미르 같은 특수 케이스가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샘의 원천을 마셔야 한다고 대강 들었으니 이해는 갔다.

그런데 그나마 있는 베스탈리스들까지 밀릴 정도로 드라이어드들의 기세가 장난이 아니라니.

“또… 특별 코너를 위해서 어느 정도는 불에 강하게 만들어 두기도 했고….”

직원이 덧붙이는 말이 갈수록 가관이었다.

해당 위험 식물 구역의 관람을 선호하는 이들을 위해 직접 불을 내뿜는다는 파이어 건을 쏴서 공격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크게 다치면 안 되니 내구성은 튼튼하게 만들고.

평소엔 절대 가까이하기 힘든 위험한 식물을 향해 인간의 지배욕을 표출하기 위해 무방비한 드라이어드들을 대상으로 기꺼이 공격까지 허락하는 코너라니.

“정말 지긋지긋하네요.”

하지만 언제까지 직원을 탓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건물까지 이미 그 위험 식물 드라이어드들이 침범했으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되나요? 그래도 매뉴얼이 있을 거 아니에요?”

“파라다이스 테라리움만 빠져나가면 안전합니다. 내부의 드라이어드들은 원칙상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을 빠져나갈 수 없으니까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문득 내 가드너 스킬로 인해 가상 테라리움에 묶인 인공 개량 드라이어드들이 떠올랐다.

“나가는 길은 알고 있나요?”

“저… 저를 보호해 주시는 건가요?”

“길을 모르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감사… 감사합니다!”

그냥 내버려 두고 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말 그대로 어쩔 수 없었다.

“들었지? 지금 드라이어드들이… 날뛰고 있어. 전투를 치러야 할 거야.”

내 말에 데이지를 제외한 드라이어드들이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있는 드라이어드들은 인공 개량 드라이어드인가요? 제이, 제게 다 하지 못한 말이 있죠? 드라이어드들이 갑자기 흉폭해진 이유, 뭔가 단서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메스키트가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후우…. 아마 인공 개량 드라이어드들이 맞을 거야.”

내 말에 직원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난 할 수 없이 내가 드라이어드들의 멘탈을 걱정해 숨겼던 이야기를 힘들게 꺼냈다.

이곳에서 드라이어드들이 받는 취급에 대해서 말이다.

예상대로 엘더가 크게 분노하며 직원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눈빛이 여간 사나운 게 아니었기에 공격 계수가 붙는다면 직원은 끔살이었다.

“그렇다면… 이곳 드라이어드들은 사회화가 되지 못했군요. 최악의 상황이에요. 섬에서의 일을 기억하나요? 폐쇄된 환경으로 인해 드라이어드들이 자연으로부터 정상적으로 이치를 배우지 못했던 일을 말이에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드루이드를 몰라보던 섬의 드라이어드들.

어쩌면 현재의 상황은 바곳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가 극단적으로 상상의 범위를 확장했다면 예상 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공 개량으로 태어나 사회화가 안 된 드라이어드의 결말.

“필드의 규율도 모를 어리석은 유목(流木)들이로다. 세상이 어찌 이리 변했을꼬.”

실새삼이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며 혀를 쯧쯧 찼다.

“어쨌든 이곳을 벗어나는 데 집중하자. 나 하나론 힘든 일 같아. 지원군을 데려오든 한 자릿수 테라리움에 실태를 고발하든 해야겠어.”

“그… 그런!”

고발하겠다는 말에 직원이 안절부절못했지만 실상 그가 나설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제 그의 목숨줄은 내가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가요. 어떤 드라이어드들을 만나든 결국 내 드라이어드들의 상대는 안 될 거예요.”

여차하면 아티팩트 안에 있을 다른 드라이어드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면 됐다.

난 장갑에 박힌 시간 정지의 힘이 담긴 보석을 매만지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메스키트가 먼저 방패를 앞세우고 강의실 문을 열었다.

불쾌한 냄새가 먼저 훅 끼쳐 들어왔다.

뒤이어 그동안의 참상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엔 알 수 없는 액체가 흘러내리고 바닥은 핏자국과 흙 자국, 그리고 난자된 자국으로 난장판이었다.

“끄으윽….”

어디선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무리 양심이 찔려도 도의를 앞세워 구출하러 가기엔 상황이 마땅치 않았다.

한번 구조를 시작하면? 쓰러진 사람을 내 드라이어드들이 죄다 업어서 이동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마주치는 드라이어드들을 해치워 아직 건물에 숨어 있을 사람들을 최대한 안전하게 만들어 주는 것뿐이었다.

가는 내내 쓰러진 사람들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

건물을 나가는 길은 이미 알고 있기에 막힘없이 걷고 있으나 여기저기 피가 튄 참혹한 잔상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건물은 어느새 던전화가 되어 있었다.

모두가 날뛰는 몬스터에 당해 쓰러진 사람들처럼 보였다.

“흐으… 있다, 있어!”

두어 번 내 귀를 괴롭혔던 허밍 같은 속삭임이 명확하게 들렸다.

“되갚아 줄 거야….”

“으아악! 저 드라이어드에게 가까이 가면 안 됩니다!”

직원이 황급히 내 뒤로 숨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직감상 저 드라이어드가 그의 옆에서 동료를 죽였다던 드라이어드인 듯했다.

마치 공작새의 깃털처럼 부채꼴로 퍼지는 하얀 꽃을 왕관처럼 머리 위에 피워 낸 드라이어드였다.

메스키트에 버금갈 정도로 상당한 장신에… 눈이 광인처럼 회까닥 돌아 있었다.

“물러서라.”

메스키트가 방패를 내세우며 우리의 앞에 서자 상대의 고개가 갸웃 움직였다.

그런데 드라이어드는 양손에 하얀 꽃이 수북하게 달린 부채를 천칭처럼 든 채 전혀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너 엄청 강해 보이는구나.”

“더 이상 드라이어드의 본분을 어기고 망동하지 마라.”

“이래서 근본 없는 녀석들이란.”

상대 드라이어드에게 한입 거리로 보이는 실새삼이 삐딱한 자세로 메스키트의 말을 거들었다.

“왜 그런 추악한 것들과 같이 있니?”

하지만 상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평이한 어조로 되물었다.

“얘, 이리 오렴. 우리와 함께하자. 우리의 왕이 우리들의 세계로 이끌어 줄 거야.”

“왕?”

철컹, 메스키트의 랜스가 단호한 거절을 뜻하는 것처럼 위협적인 기세를 뿜었다.

“너… 우리랑 다르구나?”

그 모습을 본 상대 드라이어드의 눈이 더욱 위험하게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두 드라이어드가 격돌했다.

동시에 실새삼이 강한 힘으로 나를 뒤로 끌고 갔다.

“가까이 가지 마라.”

나를 한참이나 떨어뜨려 놓은 후에야 그는 안심했단 얼굴을 했다.

“저것이 멍청해서 다행이다. 하필이면 모체가 내 드루이드에게 아주 치명적인 놈을 만났구나. 만약 정상적으로 지식이 박혀 있는 녀석이었다면 드루이드를 먼저 공격했을 텐데….”

작게 속삭이는 실새삼의 말이 섬뜩했다.

위험 식물 구역에 있던, 스치기만 해도 큰 피해를 입는 드라이어드 중 하나였나 보다.

더욱이 엘더 역시 위험을 알아차렸는지 메스키트가 아닌 날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군. 사회화가 안 된 녀석들이 포레스트를 형성할 리는 없고. 왕 같은 게 존재할 리가 없는데 왕이라…. 어떤 놈이 왕 행세를 하고 있는 거지?”

실새삼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면서 투덜거렸다.

승부는 상당히 싱겁게 끝났다.

애초에 드루이드가 없는 드라이어드는 아무리 강해 봤자 메스키트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

메스키트의 랜스에 목이 꿰뚫린 드라이어드는 숨이 넘어갈 듯 웃다가 그대로 숨이 끊겼다.

“세계수의 품에서 다시 시작하거라.”

거대한 랜스가 뽑히자 드라이어드는 열매로 화해 사라졌다.

그 드라이어드가 지나온 길엔 온몸에 누런 수포가 올라 끔찍한 몰골을 한 사람들의 시신이 가득했다.

직원의 말처럼… 드라이어드들이 무차별적으로 살인 행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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