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4화 (334/604)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밖에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저만 갈 수 없어요!”

“가족분들 역시 구역에 배정된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안전하게 대피하고 있을 겁니다. 저희는 고객님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내 가족들이 안전한지 어떻게 알아요? 직접 봐야겠어요!”

앞줄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때문에 우린 발길을 멈춘 채 소음 공해 수준으로 올리는 경보음 속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지금 건물을 나가면 위험하실 수도….”

“이곳은 안전하다면서요! 그렇다면 밖은 얼마나 위험한 겁니까?”

실랑이는 금방 끝날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기필코 자리에서 이탈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서 말리기 위해 붙은 직원이 벌써 셋이었다.

난 안전이고 나발이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드라이어드들이 탈출했다고 말했지?

그렇다는 건 앞서 설명으로 들었던 그 차폐막이 발동하지 않은 건가?

그렇다면 누가, 왜 드라이어드들을 탈출시킨 걸까?

이 일에… 혹시 샐스트가 관여되어 있나?

쾅!

갑자기 건물 안에서도 확연하게 들릴 정도로 커다란 폭음이 터졌다.

그 바람에 가족들을 보러 가겠다며 강짜를 부리던 사람도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엔 더 큰 소란이 발생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뛰쳐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직원이 인솔하던 방향으로 다짜고짜 뛰어가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질서를 되찾으려고 말리는 직원들이 섞이자 소란은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퍼져 나갔다.

아비규환이었다.

나처럼 그나마 침착을 유지하며 서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광란의 분위기에 동요되어 가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이곳이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이 아니었다면 비교적 군중 통제가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설명회나 각종 내부에서 배포한 자료를 통해 드라이어드가 매우 위험한 존재라고 학습해 버렸다.

그러니 마치 사방에 괴물이 득실대는 듯한 착각이라도 받는 게 분명했다.

가만히 있는 것은 자신의 안전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불안함이 퍼지기라도 하는지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은 드는데,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어딘가의 안전한 공간을 찾아 달리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솔 라인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늘었다.

난 서로 부딪히며 제2의 피해가 확산되는 난리 통 사이에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샐스트가 건물을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했었는데… 그렇다면 일단 그의 말을 들어 볼까?

이미 군중들을 통제할 의지를 잃어버린 직원을 바라보다 테라리움 아티팩트를 매만지며 조용히 원래 있던 강의실로 돌아갔다.

이 난리 통에서 나 하나쯤 빠져나가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솔직히 내가 그들의 공포에 동화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엔 본질적으로 드라이어드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내겐 날 지켜 줄 드라이어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라다이스 내에서 아티팩트가 발동하면 신호가 간다고 하니 어떤 불이익이 떨어질 줄 몰라서 당장은 드라이어드 소환을 아꼈다.

시끄러운 경보음만이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우는 강의실 안에서, 괜히 동떨어진 날 발견해 간섭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기에 복도가 보이는 창문의 블라인드를 모두 내린 후 차분히 책상에 걸터앉았다.

“침착하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부터 파악하자.”

강의실엔 다행히 건물 밖을 관찰할 수 있는 작은 창문도 존재했다.

가려진 블라인드의 틈을 벌려 밖을 바라보았다.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대체 이게 다 무슨 난리야….”

아마도 방금 전 들렸던 폭음의 정체인 듯했다.

다들 가까운 건물 안으로 대피한 것인지 당장 건물 주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건물에서 한 무리의 무장한 직원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무장까지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란 건…. 단순 드라이어드 탈출로 보기 힘든 것 같은데.

충돌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어느덧 경보음이 잦아들었고 삽시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사건이 종결되었다기보단 마치 태풍 전의 고요처럼 느껴져 불안만 가득했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지….”

상당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창문을 통해 아무리 밖을 내다봐도 소득이 없었기에 블라인드에서 손을 뗐다.

건물을 둘러싼 숲이 울창해서 바깥을 샅샅이 살피기 힘들었고 이곳은 다른 시설들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건물 밖을 나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오랫동안 한 자세로 앉아 있자니 몸이 고통을 호소하는 데다 미약한 따분함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동안 누구도 내가 있는 강의실을 살피지 않았고 복도가 보이는 창 너머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혹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실 밖을 나가 볼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귓가에 허밍 같은 속삭임이 작게 와 닿았다.

“여기에 많네.”

누가 한 말인지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목소리에 즐거움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누군가 내가 있는 강의실의 창문을 향해 한가득 물을 끼얹은 것 같은 굉음이 들렸다.

촤악.

블라인드는 시야를 차단할지언정 빛이 투과한 그림자까지 가려 줄 정도로 두껍지 않았다.

그래서 정체불명의 액체가 괴기하게 창문 전체를 덮고 있는 모습이 블라인드 너머로 적나라하게 보였다.

난 들킬세라 황급히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다.

“하나하나 다 찾아내서 똑같이 갚아 줄 거야.”

또다시 주인을 알 수 없는 귀곡 같은 허밍 음이 귓가를 맴돌았다.

복수를 다짐하는 선고가 너무나도 놀이를 앞둔 즐거움에 물들어 있어 소름이 끼쳤다.

“꺄아아악!”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이 강의실 옆 복도에 울려 퍼졌다.

비명의 주인은 한둘이 아니었다.

우당탕탕,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와 더욱 다급해진 발소리, 고함 소리 등이 이전의 아비규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난잡했다.

그 상황에서 느껴지는 확실한 점은, 더 이상 내가 있는 건물이 안전한 장소는 아니란 것이었다.

이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미 직원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단언하던 건물마저 모종의 침입으로 인해 비상사태였다.

내가 아티팩트를 가동하더라도 큰 소란에 금방 묻힐 거란 판단이 들었다.

“제이, 대체….”

“좋지 않은 기운이 흐르고 있어.”

“제이 님, 위기 상황인 건가요?”

밖으로 나온 드라이어드들이 내가 부르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씩 얹었다.

난 최대한 간결하게 내가 있는 장소에 대해 설명했다.

그 상황에서도 난 최대한 내 드라이어드들이 상처받지 않을 묘사를 고르고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갇혀 있던 드라이어드들이 탈출해서 소란을 일으킨다는 것 외엔 내가 아는 정보가 없어.”

내 말에 메스키트는 깊이 고민하는 얼굴이 됐다.

“밖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게 인페르노가 아니란 거지? 그 불을 다루는 녀석들 말이야.”

엘더는 그렇게 말하며 왜 항상 난 위험한 사건을 몰고 다니냐며 한 소리를 했다.

“나라고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겠냐. 어쨌든 여긴 인페르노가 운영하는 곳이거든. 정확히는 인페르노에 대적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탈출한 드라이어드들이 소란을 피운다는 거야?”

“아마도 그런 것 같아. 그런데 단순한 소란이 아닌 느낌이야.”

잘 모르겠지만 도망치기 위해 사물을 부순다거나 혼란을 일으키는 단순한 사건의 느낌이 아니었다.

뭔가 좀 더 위험하고 위태로운 기운이 진득하게 나를 향해 가시를 뻗고 있는 느낌이었다.

“피 냄새다.”

분명 필드로 불러낸 드라이어드는 메스키트, 엘더, 데이지 셋인데 어느새 실새삼이 자연스레 끼어 있었다.

그가 짧은 팔을 앙증맞게 꼬아 끼곤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피 냄새라고?”

난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는데.

“흠.”

메스키트가 마음에 안 든다는 식으로 길게 침음했다.

아무래도 그녀 역시 진작에 이변을 알아차렸는데 날 걱정해서 잠시 침묵한 것이 분명했다.

피를 흘릴 주체라고 하면 아무래도 나와 같은 인간뿐이니까.

“피… 냄새가 왜 나?”

“그리고 불쾌한 냄새가 섞여 있군. 이런 냄새를 내는 녀석들이 몇 있다. 용해액을 한가득 담고 있는 매스꺼운 녀석들이지. 가까이에 여럿 있어.”

쿠당탕!

그때 누군가가 거칠게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황급히 문을 닫고 등으로 막아섰다.

그는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복도 방향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직원 유니폼은 전투라도 벌인 것처럼 여기저기 다 뜯겨 있었고 온몸이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모습이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헉헉….”

그렇게 덜덜 떨며 상황을 살피더니 뒤늦게 우리를 발견했는지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드라이어드가… 드라이어드!”

본능적으로 현재 상황에서 큰 소란은 좋지 못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손짓하자 데이지가 재빠르게 줄기를 뻗어 그의 입을 재갈 물리듯 틀어막았다.

“웁… 웁!”

“진정하세요. 전 드루이드고 여기 드라이어드들은 제 드라이어드예요.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풀어 줄게요.”

한참을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우리를 살피던 직원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데이지가 그를 압박하고 있던 줄기를 풀어 주었다.

직원은 자유가 되자마자 무릎으로 기어 우리와 멀찍이 떨어진 구석진 곳에 몸을 밀착했다.

“대체 밖에서 무슨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꿀꺽.

크게 침을 삼키는 소리만 들릴 뿐 직원은 아직 진정하지 못했는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탈출한 드라이어드들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가요?”

내 추측에 직원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 당신 드루이드라고 했죠? 드라이어드들이 드루이드 말은 들을 거 아닙니까? 네? 제발… 드라이어드들을 진정시켜 주세요! 짐승처럼 날뛰는… 보이는 사람들을 죄다 공격하고… 다 죽일 거야….”

“천천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어요.”

직원은 내 손짓을 따라 한차례 심호흡을 하더니 겨우 정리된 말을 했다.

“드라이어드들이… 관람객들을 공격하고 있어요…. 벌써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어요.”

“말도 안 돼.”

직원의 말에 엘더가 단숨에 반박했다.

“엘더.”

“드루이드 없는 드라이어드들이 왜 인간을 공격해? 물론 넌 그런 특수한 상황을 겪어 보긴 했어도.”

특수한 상황이란 바곳과 은둔자의 정원 때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드라이어드는 세계수의 의지를 이어 자연을 수호하기 위해 세계수 밖으로 나온 존재들이야. 수호해야 될 존재엔 물론 인간도 포함되어 있어. 그들이 드루이드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의 적은 오직 불이니까. 인간들이 먼저 공격적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드라이어드는 방어적 태도만 고수할 수밖에 없어. 응당 흙에서 자라 자연의 이치를 배운 드라이어드라면….”

즉, 제대로 배운 드라이어드라면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엘더의 주장도 이해가 갔다.

여태 난 드라이어드들이 인간에 의해 피해를 받으면 받았지, 먼저 침범해 온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정말 드라이어드들이… 사람들을 공격해서 사상자가 발생한 게 맞나요?”

“네! 정말입니다! 제 옆에서 동료가 죽어 나가는 걸 봤어요! 저는 겨우 도망 나올 수 있었는데….”

공격하는 것도 모자라 죽이기까지 했다니?

사건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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