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3화 (333/604)

추가 상품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을 때, 앞선 질문자가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

“불에 대해선 누구나 상상 가능하지만 누구도 쉽사리 시도할 수 없었던 부분으로 접근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 줬다는 점에서 신뢰가 생깁니다. 다른 시스템을 이용한 것도 아니라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드라이어드를 이용해서 불을 막은 것인데도 앞 번호대 테라리움처럼 광활한 지역을 안전하게 컨트롤하고 있다는 게 참 놀랍네요.”

질문자의 말투는 상당히 호의적으로 변해 있었다.

아마 저자는 이 설명회가 끝나면 투자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상품 투자에 대한 안전성에 대해 또 질문 드릴 게 있어요. ‘인위 자연’은 1번째 테라리움이 최근 이단으로 규정하여 단속하고 있지 않나요? 16번째 테라리움의 연금탑에서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고.”

그 말에 강의실이 다시금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연금탑에서의 사건이 대다수의 테라리움의 소식지에 소개된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사전에 16번째 테라리움이 최대한 얽히지 않는 방향으로, 연금탑의 독단으로 일어난 일이라 작업을 쳐 놨다.

“아무리 이곳을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다지만… 1번째 테라리움의 눈에 띄면 큰일 아닌가요? 연루된 사람들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되나요?”

“일단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은 지도상에 없는 지역입니다. 사실상 없는 지역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여행자들도 일부러 이곳까지 오지 않죠. 사막은 물론 데드라인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우연으로도 도달하기 힘든 곳입니다.”

그 정도로 외진 지역에 숨어 있을 줄은 전혀 몰랐기에 놀랐다.

설명만 듣자면 하루 만에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닌데, 대체 오르골 소리는 내 인지 능력을 얼마나 저하시켜 놓은 거지?

“만약 이곳의 존재에 대해 알아차리더라도 많은 시일이 지난 후겠지요. 물론 그때는 이미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이 ‘대중화’가 되어 있을 겁니다.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은 공을 들여 치밀하게 사람들의 생활에 침입할 겁니다. 마치 과거의 ‘연금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 든다는 모함으로 수많은 연금술사들이 핍박받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하지만 지금은 연금술이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지요. 그 편리함에 익숙해져 많은 이들이 눈을 감게 된 것입니다.”

연금술에 그런 과거가 있었다고?

하긴… 따지고 보면 인공 개량 드라이어드 등 수많은 마법 같은 일들이 가능한 이유는 연금술에 있었다.

어떻게 보자면 연금술이야말로 신의 영역에 가까운데 그들을 이단이라 규정하는 자는 없었다.

대부분의 테라리움에 연금탑이 주둔하고 있고, 1번째 테라리움 역시 연금탑을 가지고 있으며 저명한 연금학회지도 존재했다. 루프와 필라의 꿈이 1번째 테라리움에 대서특필될 발명품을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정말로 자연의 모든 권한을 세계수에게 위임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 역시 연금술을 이용하면 안 되긴 했다.

“파라다이스 테라리움 프로젝트는 생활 전반에 밀접하게 자리 잡아서 결국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날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과거 연금술이 그랬던 것처럼 그 절차를 따라 밟을 예정입니다.”

너무나 생활 속 깊숙이 침투하여 더 이상 떼고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가정에 보급되는 장난감 같은 드라이어드, 의지와 다르게 몸을 바쳐 불을 막는 생체 울타리로 쓰이는 드라이어드, 드라이어드가 전시된 유원지로 휴양을 떠나는 것이 당연한 일상.

“그리고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은 16번째 테라리움의 연금탑 사건처럼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그저 모든 인간들이 동등하게 완전한 자연의 이상을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을 뿐이지요. 1번째 테라리움은 세계수를 지키기 위해 그 어떤 테라리움보다 많은 드라이어드들을 포섭하고 있습니다. 파라다이스 테라리움도 모토가 다르지 않지요. 오히려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은 드루이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드라이어드와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생활을 그려 나가고 있으니 이단이라 할 게 있습니까?”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은 현재 있는 지역 외에도 다른 지역에 새로 개장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러다 점차 지도상에 있는 지역까지 확대해 나갈 것이다.

현재는 휴양지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점차 앞 번호까지 진출하게 되면 복종화에 성공한 드라이어드만 남는 그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16번째 테라리움의 연금탑에서 숨어서 자행했던 연구들도 대놓고 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되겠지.

무수한 자본으로 밀고 들어갈 테니 투자는 투자를 부를 테고.

이후는 투자 상품에 대한 좀 더 세부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대체 어디부터 손봐야 할지, 이 끔찍한 설명회는 언제 끝나는지 아득해져 오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으며 듣고 있을 때였다.

“아, 깜박 잊을 뻔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께 확실한 증거를 보여 드려야겠죠. 현재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의 방어막을 맡고 있는 드라이어드의 견본을 보신다면.”

발표자가 질문을 했던 사람을 향해 찡긋 윙크를 했다.

“확실히 안심할 수 있으실 겁니다.”

갑자기 샐스트가 조용히 날 불렀다.

“이런, 고객님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볼일이 생겨서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설명회가 끝나기 전엔 돌아올 예정인데 혹시 늦더라도 잠시만 강의실에서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제가 이탈한 시간은 금액에서 제외하겠습니다.”

만면에 띤 개구쟁이 같은 웃음이 어색할 정도로 그는 초조해 보이는 기색이 가득했다.

“볼일이요?”

“네, 때가 왔거든요.”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참 거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혹시 위더(weeder)에 대해 아십니까?”

“어… 아뇨?”

샐스트는 발표자를 곁눈질로 쓱 보고는 날 향해 웃음 지었다.

그러곤 아주 작게 속삭였다.

“인간이 어떻게 자연과 함께 살겠습니까? 그게 가능하면 위더를 고용할 일도 없겠지요. 제초꾼 말입니다. 가만 놔두면 인간이 만든 것들을 식물이 죄다 파괴하니 고용하는 거 아니겠어요? 이길 수 없지. 이거야말로 어불성설 아닙니까?”

“네? 무슨….”

“한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드루이드님께선 최대한 이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그는 내 대꾸는 듣지도 않고 묘한 말만 남긴 채 홀연히 강의실을 나가 버렸다.

대체 무슨 소리지? 갑자기 건물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난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가 나간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빈 오디오를 발표자가 채우기 시작했다.

“저희가 입구에서 나눠 드린 팸플릿에 있는 관람 쇼 중 하나인데, 절대 불에 타지 않는 드라이어드 쇼가 있습니다. 본래는 일정 등급의 회원이 아니시면 관람이 불가능하지만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을 특별 게스트로 모시겠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진행됐는데 상당히 인기가 많은 쇼라서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절대 불에 타지 않는 드라이어드 쇼요?”

“네, 저희가 표본을 모집하던 도중 아주 굉장한 드라이어드를 확보했습니다. 솔직히 견본이라기보단 완전체에 가깝죠. 그런 드라이어드가 늘어나기만 한다면 사실상 세상에 불에 대한 걱정은 전무해질 정도입니다. 절대 불에 피해를 입지 않으니까요.”

“불에 타지 않는다는 게…. 쇼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드라이어드를 직접 불에 태울 예정입니다. 사방에서 치솟는 불길 속에 드라이어드를 집어넣을 예정이죠. 시간이 지나도 꿈쩍도 하지 않는 드라이어드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물론 보통의 불이 아닙니다. 아주 특수한 불이지요.”

드라이어드를 불에 태운다고…?

나도 모르게 입이 반쯤 벌어진 채 손이 덜덜 떨렸다.

어디까지 잔혹해질 생각이지? 그런데 다들 좋다고 불 속에 갇힌 드라이어드를 구경한다고? 그게 쇼라니….

쇼는 그 존재만으로 그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드라이어드를 지배하에 두고 짓밟으려 하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이젠 숫제 눈물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무 힘들었다.

차라리 이 모든 것이 꿈이라고 말해 줬으면 좋겠다.

왜 드라이어드들이 그들이 드라이어드라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고통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꿈… 드라이어드들이 울고 있던 꿈….

그걸 세계수가 내게 보여 준 것이라면 내가 대체 여기서 뭘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보낸 걸까?

왜 내게 이토록 끔찍한 참상을 보여 줘야만 했던 것일까?

설명회가 끝나도 난 샐스트에게 가이드를 받으며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의 또 다른 참상들을 보러 다녀야겠지.

내겐 고문과도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차라리 나 말고 다른 능력 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차라리 난 몰랐다면….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을 때 별안간 사방을 혼란하게 만드는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위잉, 위잉.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에 다들 몸이 얼어붙은 채 고개만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예요?”

“무슨 일 난 거예요?’

“뭡니까, 갑자기?”

발표자 역시 당황하여 강의실 밖만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게 저도 잘… 갑자기 왜 경보음이….”

“파라다이스 테라리움 내 모든 관람객 및 직원분들께 안내 드립니다. 현재 방어 시스템상의 오류로 내부에 보관 중이던 드라이어드들이 탈출하여 혼란을 빚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드라이어드들이 난폭하게 행동할 수 있으므로 관람객분들께서는 최대한 인접한 건물 안으로 대피…. 삐이이….”

안내 방송은 갑자기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부자연스럽게 끊겼다.

“드라이어드들이 탈출했다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지금 저희 위험한 거예요?”

“모두 진정하십시오. 현재 여러분들이 계시는 건물은 드라이어드 전시장 등의 시설과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안심하셔도 됩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지만 금방 소란은 진정될 겁니다. 방어 시설로 불 차폐막도 있고….”

“위더들에게 알립니다. 자연을 지배하려는 자들은 언젠가 벌을 받게 됩니다. 그날이 오늘일 뿐이죠.”

그리고 뒤이어 나온 안내 방송은 기존의 아나운서와 확연히 다른 목소리로 기묘한 말을 내뱉었다.

위더? 잠깐… 샐스트가 내게 위더 어쩌고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강의실 문이 벌컥 열리며 다급한 얼굴의 사람이 우릴 바라보았다.

“구역 내 사소한 소란이 발생해서 여러분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려 합니다. 다들 침착하게 저를 따라 이동해 주세요.”

그 말에 다들 큰 소리를 내며 앉아 있던 책상에서 일어났다.

나눠 줬던 유인물은 나풀나풀 흩날리다 신발에 짓밟혔고, 다들 서둘러서 강의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안달이었다.

“내가 잘못되기만 해 봐! 당신들 전부 고소할 거야!”

“그저 사소한 소란일 뿐입니다. 불편을 겪으신 것에 대해 저희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에서 전부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그저 비상 대피 훈련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시고, 안심하시고 저를 따라와 주세요.”

나 역시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인솔하는 무리의 제일 뒤에 섰다.

“다 풀려났다고? 보안이 왜 뚫려?”

“내부 소행 같다는데? 그래도 금방 소강되겠지. 불을 무서워하니까.”

어디론가 인솔되는 우리 주위로 직원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며 상황을 흘리고 있었다.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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