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2화 (332/604)

발표자도 인페르노인 걸까? 아니, 그 전에 베스탈리스인 걸까?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에 오기 전엔 이토록 극심하게 드라이어드를 향해 적대성을 보이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은둔자의 정원은 특이 케이스니까 제외하고.

발표자를 통해 볼 수 있는 드라이어드에 대한 적대성은 마치 일반인들이 베스탈리스를 향한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현듯 예전에 고찰했던 건이 하나 떠올랐다.

세상에 불이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는 한, 드루이드는 어디서나 필요하고 환영받는 존재지만 불을 사용하는 베스탈리스는 그 상징성 때문에 핍박받는 존재이다.

온건파 베스탈리스인 미미르의 가족들이 모은 재산을 환원하고 항시 위치를 보고하는 방식으로 숨을 죽이며 살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반전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도 드루이드의 영혼의 동반자인 드라이어드를 깎아내림으로써 말이다.

사람들이 불을 향해 공포심을 갖는 이유는 간단했다.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재산과 인명 피해를 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야생의 불보다 개체 수는 적으나 발표자의 말처럼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자연 발생 드라이어드가 불과 똑같이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주입하다 보면 드라이어드에 대한 호의가 변질될 여지도 있었다.

드루이드는 결국 드라이어드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보편적인 호감도를 이룩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드라이어드에 대한 반발감이 날이 갈수록 커지게 된다면 드루이드의 입지도 언젠간 흔들릴지도 모른다.

발표자의 현재 방식대로 꾸준히 밀고 간다면 말이다.

그런데… 결국 이건 양쪽 모두 자멸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나?

아직까진 어딜 봐도 이 상황에서 베스탈리스가 드루이드를 제치고 우위를 점할 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차라리 이 상황에서 완전히 베스탈리스를 배제하고 단순히 드루이드와 드라이어드를 끌어내리겠다는 의미면….

조직적으로 뭉쳐서 벌이는 일이 단순히 자리 뺏김에 대한 복수로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

뭐가 더 있는 거지?

“저기 질문이 있어요.”

앞줄에 앉은 누군가 손을 들었다.

“파라다이스 테라리움 프로젝트가 굉장히 매력적인 상품이란 건 알겠어요. 여태 그 누구도 시도해 보지 못한 일을 현재 이만큼 성공적으로 진행해 왔으니까요. 하지만 리스크 대비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네요. 불은 어떻게 할 건가요? 이곳은 사실상 세계수 가지의 축복이 완전히 상실된 곳이나 다름없는데 외부에서 끊임없이 불의 침입을 받는다면 너무 불안정한 상품이 아닌가요?”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절대 과장하지도 숨기지도 않습니다. 저희 역시 불을 완전히 배제한 채 낙원은 성립할 수 없다고 보니까요. 질문이 나온 김에 이어 계속 설명 드리겠습니다.”

한동안 더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에 대한 찬양이 이어질 예정이었는지 넘어가는 프레젠테이션이 뭉텅이였다.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의 시스템에 대해 안내 드리겠습니다. 앞서 설명 드렸다시피 저흰 가장 이상적인 드라이어드 표본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친화적인 유전자 외에 또 하나의 유전자에 집중했습니다. 어찌 보면 돌연변이라 할 수 있죠.”

인공 개량을 숨기기 위해 애써 포장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건 불에 아주 강한 유전자였죠. 아, 물론 현재 불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적수가 드라이어드긴 하나 결국 드라이어드의 유일한 적수 역시 불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죠. 드라이어드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불에 상처를 입습니다. 오직 드루이드만 제어할 수 있고 맞설 수단이 불뿐이란 점에서 드라이어드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느껴지시나요?”

다른 곳에선 드라이어드가 불을 물리칠 수 있기에 구세주와 같은 존재로 본다.

하지만 말장난을 치니 드라이어드가 불과 동급인 괴물이 되었다.

“그래서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은 적재적소에 이용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은 다시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에 대한 조감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보여 줬던 것과는 다른 점이 존재했다.

마치 울타리처럼 외부를 촘촘하게 둘러싼 표식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불 외에 적수가 없다면 불 곁에 상시로 붙여 두면 될 일입니다.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의 외부 경계는 인간들에게 극히 친화적인 유전자를 가진 것과 동시에 불에 아주 강한 드라이어드들로 방어막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생울타리에 대한 개념은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는데요?”

질문자가 다시 한번 태클을 걸었다.

생울타리, 보통의 나무들보다 불에 강하여 주변에 심어 화재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화수들을 일컬었다.

저 개념은 가막살나무를 데리고 있는 내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가막살나무가 겪은 암담한 과거도 그들이 방화수였던 점과 무관하지 않고….

“단순히 나무 몇 그루를 심는 개념과는 다릅니다. 저희는 벽 전체에 드라이어드를 심어 놨다는 점에 집중해 주십시오. 유전적으로 불에 아주 강한 것들을 고르고 골라 세워 놨으니 방어 효과도 좋고 살아 움직이니 커버 가능한 범위가 늘어나며, 그나마 다쳐도 치료를 해 주면 수복이 가능하니 자재 교체 비용이 확 줄어들게 됩니다.”

생체 울타리, 살아 움직이는 드라이어드들을 집 지키는 사냥개처럼 쓰고 있다.

“인간에게 극히 친화적인 유전자는, 수많은 드라이어드 기용에 따른 드루이드 섭외 비용도 줄여 줍니다. 모든 드라이어드들이 드루이드 없이 세워져 있죠. 또한 보통 드라이어드들보다 드루이드가 없는 상태에서도 수명이 더 길기 때문에 오래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가 좋습니다.”

그것도 목줄이 채워진.

달리 말하자면 그 ‘유전자’로 설명되는 것이 드루이드 없이 드라이어드들을 컨트롤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었다.

복종을 야기하게 하는 무언가가 드라이어드들의 발목을 잡고 끊임없이 불과의 전투 최전방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혹은 벗어날 의지를 완전히 지워 버렸거나.

혹시… 나와 파필리온이 썼던 것처럼 가드너 스킬이 개입되어 있는 건가?

하지만 이곳의 세계수 가지는 이미 죽은 지 오래라고 했으니 이곳은 가드너 스킬이 가동 가능한 테라리움 안이 아닐 터인데.

“불과 수시로 맞붙기 때문에 감히 인간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표출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불의 주의를 외부로만 돌리는 미끼 역할이 되어 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 말은 현재 생체 울타리로 차출된 드라이어드들이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의미로만 들렸다.

수시로 옥죄는 불지옥 속에서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도망치지도 못하고 생존을 위해 싸우거나 참고 버틴다.

“그리고 현재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을 관람하신 여러분들께 이미 증명해 보이지 않았습니까? 이곳에 불의 침입 흔적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없으시죠. 저희만의 생울타리 시스템은 아주 유효하답니다.”

조감도에 그려진 표식은 꽤나 촘촘하고 많았다.

그만큼 수많은 드라이어드들이 기둥처럼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끔찍했다.

“그렇다면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이 불에 강한 드라이어드들만 채용하느냐? 그건 또 아니죠.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드라이어드들은 전부 불에 아주 약한 드라이어드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들에게 끊임없이 불에 대한 공포를 주입함으로써 저희는 만일을 대비한 목줄을 만들어 둔 셈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이 넘어가며 나와 샐스트가 처음에 방문했던 전시관 건물 내부도와 벽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이미지가 나타났다.

“현재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의 시설 몇 곳은 특수 방어 시스템이 가동 중입니다.”

발표자는 드라이어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대한 유리창을 가리켰다.

“유사시 드라이어드와 관람객들의 경계가 되는 벽들이 차폐막으로 변화합니다.”

불로 만든 차폐막이었다.

인간들의 힘을 훨씬 웃도는 드라이어드들이 유리창 안에서 무기력하게 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불에 아주 약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몬스터 불이 아닌 일반 불에 대한 공포를 끊임없이 세뇌당해, 차폐막이 가동되는 유리창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세계수가 불로부터 세계를 지키기 위해 내보낸 드라이어드들이 불을 겁내게 만든다라….

“아, 여기서 추가 상품 하나 짚고 가겠습니다.”

발표자가 연설대 위에 쌓여 있던 유인물을 빠르게 나눠 주었다.

가정의 친구, 이젠 누구나 사랑스러운 꽃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