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다들 잘 빠져나갔을까? 다들 실력이 대단하니 괜한 걱정할 필요 없겠지?
조용히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드라이어드 하나 꺼내지 못한 채 고요만을 벗 삼아 어둠을 헤쳐 나갔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조명등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믿을 것은 오직 내 눈뿐이었다.
혼자 남게 되자 줄어든 자신감은 인삼 군락지에 외따로 떨어졌던 공포를 미약하게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사박사박, 풀 밟는 소리에도 어깨가 쭈뼛 설 정도로 놀랐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주저 없는 이유는, 인삼 군락지에서와 달리 언제든지 드라이어드를 불러낼 수 있다는 사실 덕이었다.
심호흡을 크게 해 차가운 밤공기를 잔뜩 들이마시며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나 홀로 떠나기로 한 건 내가 결정한 거니 약한 마음이 들지 않게 조심하자.
아무런 반응도 없는 폰을 간간이 내려다보았다.
곧 있으면 타토르가 예전에 안내원과 접선했다는 곳 부근에 도달한다.
한번 내게서 떠나 버린 말벌은… 아마 벌집에 도달하자마자 암벌에게 잡아 먹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 내게 위치를 알려 줄 수도 없을 텐데 안내원은 어떻게 나와 접선하려는 걸까?
혹시 타토르가 빼먹고 내게 알려 주지 않은 과정이라도 있으면 어떡하지?
엄폐물이 많은 곳에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봤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스키아 길드원들이 한 차례 머물렀기 때문일까?
괜히 불이 기웃대며 소란을 일으키지 않아 그 점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빛조차 스며들 틈이 없는 짙은 어둠 속에서 하염없이 때를 기다리다 나도 모르게 44번째 테라리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혼란이 소강된 것인지 조용하기만 하다.
그때, 바스락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일단 몸을 최대한 숨긴 채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테라리움 아티팩트를 쓰다듬고 있는데 체구가 작은 누군가가 일정 거리에서 멈춰 선 채 내가 있는 곳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내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기색이었다.
스스슥, 사각… 쓱….
종이가 부딪히는 소리와 종이의 거친 결이 딱딱한 물체로 비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작은 인영은 하던 일을 멈추고 제 손의 것을 내가 잘 보이도록 고쳐 들었다.
스케치북 크기만 한 종이엔 마치 굵은 목탄을 이용한 듯한 지저분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왜 굳이 멀리까지 나온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