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5화 (325/604)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원하는 것은 동굴 지역에 대한 소유권이었어요. 인력은 부가적인 것이고. 지분을 구매할 수 있다면 그쪽을 바로 사들였겠죠. 하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으니 투자라는 명목으로 그곳을 점찍어 놓으려고 해요.”

행정 관리원은 나와 글로리아의 눈치를 보며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아니면 혹시 그곳을 다르게 이용할 목적이라도 있으신가요?”

“애초에 거긴 타토르의 땅이에요. 그가 이미 구입했는걸요.”

“그래서 글로리아 당신이 필요한 거예요. 당신이 제 사업 파트너가 되어 주셨으면 해요. 그렇게 된다면….”

타토르 쪽의 설득은 아주 쉬울 것이다. 오히려 그를 끌어들여도 상관없고.

단순히 글로리아에게 잘 보이기 위해 벌인 일이지만 작은 테라리움에 전당포 사업을 활발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수완은 확실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사치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다른 페이크 로열들처럼 사채와 도박장을 운영하지도 않고.

“일단 들어는 보고 판단할게요. 전 당신을 보시는 것보다 더 많이 신뢰하고 있어요. 그러니 허튼 말은 하시지 않겠죠.”

차라리 오기 전에 수차례 고민했던 대로 사업 기획서라도 만들어 와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무지 내가 받아 봤던 황금 호박 상회나 주얼리 콘의 사업 기획서처럼 멋들어지게 만들 자신이 없었다.

내가 이미 이런 일로 잔뼈가 굵은 사람 앞에서 조리 있게 설득할 수 있을까?

“동굴엔 아마 이 세상 사람들이 처음 보는 건물들이 가득할 거예요. 규모도 아주 커요. 아마 절벽 전체가 동굴일 거예요.”

이곳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상상도 못 했던 한옥들.

“비록 많이 망가졌지만 형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보수하면 좋은 볼거리가 될 거예요. 처음 보는 양식의 건물들과 처음 보는 의복, 역할극이 곁들어지면 더욱 좋겠죠.”

내가 있던 세계의 것들이라 설명하지 않고 내가 동굴에서 겪었던 경험인 것처럼 풀어 설명했다.

더구나 길드원들과 떨어져 통로를 지나왔을 때 겪었던 동화를 각색한 함정들에 대해서도 설명해 줬다.

“아이들을 위한 테마파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이야기만 듣자면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네요. 물론 제이 님의 말처럼 완성도 높게 만들어졌을 때 말이지만요.”

“기념품도 특색에 맞춰 제작하면 좋을 거예요. 덧붙여 제가 겪었던 함정들을 통과했을 경우 완수 보상이 주어진다면 성취감도 느낄 수 있으니 재밌겠죠. 이 모든 비용은 두 분께서 걱정하시는 것처럼 증명되지 않은 사업이니 모든 투자금은 제가 내겠어요. 성공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제대로 개장하고 많은 아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동굴에 이전처럼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게 만들겠다는 인삼 드라이어드의 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44번째 테라리움은 새로운 자금줄을 얻게 되겠군요.”

“네, 도박장이나 사채 그리고 이에 기생하는 전당포에 의지하지 않아도 될 건전한 자금줄과 많은 일자리 창출이 되겠지요.”

“하지만 관광 사업이 발달하려면 테라리움 주변의 안전이 보장되어야만 해요. 오시면서 보셨을 것 아닌가요? 44번째 테라리움 주변은 앞 번호대의 테라리움과 달리 불의 위협이 심각한 수준이에요.”

“그건 인력 연계 사업과 연관이 있습니다.”

난 우리 테라리움에서 막 생긴 양성소에 대해 설명했다.

당장 양성소에 드루이드 인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진 않으나 어차피 동굴을 테마파크로 개조하는 데도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오픈할 시기가 되면 우리 양성소에도 많은 견습 드루이드들이 생겼겠지.

그리고 난 우리 28번째 테라리움에서 그들을 대상으로 길드 의뢰를 배포할 예정이었다.

28번째 테라리움만으로 부족하다면 16번째 테라리움을 끌어들이고, 더 나아가 나와 연합을 맺은 테라리움들에 협조 요청을 보낼 수도 있었다.

정 안 되면 인력 중개소인 그레이트 빈 연합에 개인 의뢰를 보내든가.

“그리고 만들어질 테마파크에서 일하는 우수한 인력은 28번째 테라리움으로의 거주 선택권을 주려고 합니다.”

열심히 살고 싶어도 환경이 이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글로리아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퇴사율이 높은 이유가 44번째 테라리움의 부패 때문이다.

“결국 그 역시 주민 빼 가기가 되지 않나요…?”

행정 관리원의 말을 글로리아가 막아섰다.

“잠깐만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이것 역시 홍보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정말… 열심히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앞 번호… 그것도 28번째 테라리움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다른 테라리움에서 오히려 사람들이 이동해 올 거예요.”

44번째 테라리움을 28번째 테라리움으로 가기 위한 정류장으로 삼는다.

이렇게 된다면 퇴사율도 낮아지고 사람들이 의욕을 갖게 될 것이다.

단순히 다이아를 많이 모아야 하는 것이 아닌, 열심히 일하기만 한다면 더 좋은 테라리움에 갈 수 있다는 꿈이 생기게 된다.

나 역시 28번째 테라리움에 부족한 주민들을 이 방법으로 수급할 수 있으니 좋았다.

“동굴은 꽤 넓어요. 테마파크를 운영하고도 자리가 빌 테니, 큰 건물 하나는 고아원으로 쓰고 싶어요. 모든 물품은 28번째 테라리움이 지원할게요.”

그리고 인삼 군락지를 방문했던 이들이 지키지 않았던 거짓된 약속까지.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하실 필요는 없지만 전 내일 떠날 예정이에요. 만약 제가 떠난 후라도 마음을 정하시면 28번째 테라리움의 제 보좌관들에게 연락을 주시고.”

만약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하지 않는다면… 난 인삼 드라이어드 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리하게 44번째 테라리움을 흡수하여 자체적으로 진행해야겠지.

여기서 테라리움을 더 늘리는 건 시기상조인데.

둘은 그 후로 사업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토론을 했는데 분위기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였다.

솔직히 어디로 보나 자신들은 손해 볼 것이 없는 사업이었다.

근본적으로 모든 돈을 내가 대고 큰 이득은 자기들이 보게 되지 않는가?

“하나만 묻고 싶어요. 대체 당신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요?”

그러니 저들 입장에선 이런 의문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첫째는 동굴에서 어떤 드라이어드와 한, 동굴 안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가득 채워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고….”

그 말에 글로리아의 표정이 무너졌다.

그곳에서 고아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내게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글로리아, 당신에게서 44번째 테라리움의 성장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에요.”

어디든 인재가 있고 인재는 뒤받쳐 줄 배경만 있다면 성장한다.

모두가 사치스러운 페이크 로열에 답이 없는 곳이었다면 나도 강경책을 썼을 것이다.

이미 한 번 쓴맛을 봤지만 결국 다이아로 밀어붙였겠지.

“당신이 테라리움의 미래를 위해 하려는 일에 제가 힘을 보탤게요.”

글로리아가 단순히 다이아를 끌어모으기 위해 사업을 벌이는 것이 아닌, 일자리 창출과 주민 구제를 위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인물이 중추가 된다면 사업은 잡음 없이 잘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내가 원하는 그림이었다.

“몹시 매력적인 사업이네요. 꼭 28번째 테라리움과 협력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44번째 테라리움 입장에서도 앞 번호 테라리움과의 협력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면 큰 이득 아닌가요?”

글로리아가 달래는 투로 행정 관리원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으로 보건대 내가 떠나기 전에 긍정적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행정 관리원이 답을 한 것은 아니나 이미 진행은 기정사실화가 된 듯, 그녀는 앞으로 일이 많아질 것으로 보이니 준비해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아예 못을 박아 버린 것처럼 보였다.

“정말… 이런 기회가 다 오는군요.”

“좋은 인재를 곁에 두고 있어서 행복하시겠어요.”

“그녀에게 숱하게 보좌관 자리를 제의했지만… 그녀는 그런 일에 어울리지 않겠죠. 사실 전 전대 행정 관리원이 벌여 놓은 일을 차마 손쓰지도 못하고 그저 이어받기만 했을 뿐입니다. 부끄럽네요.”

그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한탄했다.

어쨌든 목표했던 동굴에 대한 일은 잘 마무리될 것으로 보였다.

이제 말벌을 보내고 내일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으로의 안내를 받을 일만 남았다.

이대로 일이 잘 풀리면 다행인데….

예상치도 못한 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 님, 뭔가 이상해요. 44번째 테라리움 주변에 아스키아 길드원들이 진을 치고 있어요.”

밖을 나갔다 온 이리스가 심각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44번째 테라리움을 상대로 전쟁이라도 벌이려는 걸까요? 하지만 대체 왜 이런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5번째 테라리움이 겨우 44번째를….”

“잠깐, 아스키아 길드가 확실하다 보는 거?”

이리스의 말에 헤르마가 깜짝 놀라 물었다.

“검을 휘감은 포도나무 줄기 문양은 아스키아 길드 문양이잖아. 뭐 아는 거라도 있어?”

그는 단번에 시들링을 바라보았다.

“아이언비스트에게 현상금을 건 길드가 아스키아인디….”

난데없는 대형 길드의 등장에 일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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