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는 주인이 따로 있었을 초대장.
하지만 애드너가 44번째 테라리움의 전당포를 소개했을 때 말했던 것처럼, 다이아가 급한 누군가가 비밀리에 팔아넘겼을 것이다. 아니면 연금술을 가미한 종이가 판치는 세상이니 척 보기에도 뭔가 수상해 보이는 종이라 골동품처럼 취급되었을 수도 있고.
그걸 운 좋게 손에 넣고… 또 운 좋게 사용법을 발견하고 파라다이스 테라리움까지 다녀온 타토르는 대체?
“이미 다녀왔기에 한 번 더 초대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여행은 글로리아와 함께 가고 싶었지요.”
“그래서 내게 그렇게 자랑을 했던 건가요?”
“누구나 갈 수 없고 특별한 사람들만 갈 수 있다고 하면 당신이 동할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반응을 보아하니… 그것이 나에 대한 혐오를 키웠나 보군.”
난 타토르의 손에 들린 검은 말벌 집을 유심히 보다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것만 있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게 맞나요?”
“전당포에서 초대장을 손에 넣었던 저도 다녀왔으니 드루이드님도 가실 수 있을 겁니다. 듣자 하니 동행도 한 명이라면 데려갈 수 있는 것 같고요.”
비밀리에 운영된다고는 하지만 실상을 까 보니 초대장만 있으면 갈 수 있다라….
이건 초대장을 가진 사람에 대한 믿음 때문인 걸까? 아니면 파필리온이나 칼롱이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다른 걸까?
“제게 그 초대장을 양도해 주실 수 있나요?”
타토르는 두말없이 바로 초대장과 말벌 집을 넘겨주었다.
그것은 곁에 있던 제퍼와 로웰라의 손을 타고 내게 넘어왔다.
드디어 돌고 돌아 겨우 퀘스트 시작 물품을 손에 넣었다.
“이틀 뒤라….”
“제이 님, 같이 갈 동행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리스가 기대하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아, 동행은 한 명뿐이라고 했죠.”
로웰라의 얼굴엔 실망이 가득했고 시들링은 무덤덤해 보였다.
헤르마는 나와 눈이 마주치길 꺼려 했고 제퍼와 노토스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같이 가고 싶어 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한눈에 보였다.
“당연히 시들링과 함께 간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이리스는 같이 가고 싶어 하는 사람 쪽에 속하면서도 티 내지 않으려는 듯 다른 소리를 했다.
“으음….”
어느샌가 사람들이 나와 시들링을 너무 당연하게 페어로 보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제게도 기회가 있는 거 맞죠?”
내가 대답을 주저하자 이리스의 목소리에 화색이 돌았다.
누구나 갈 수 없는 환상적인 장소.
실력 있는 모험가들이라면 누구든지 가슴이 떨릴 장소긴 했다.
물론 이리스가 저토록 어필하는 이유는, 이미 인페르노의 소굴인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에 날 홀로 보낼 수 없다고 주장을 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외로 로웰라는 욕심을 내지 않네?”
“나야…. 지금의 나는 실력이 여기서 제일 좋지 않으니까.”
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삼키고 그녀는 냉정하게 현실을 고려한 얘기를 했다.
“아직 시간은 이틀 남았으니까 좀 더 고민해 볼게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틀은 부족했다.
본래 파라다이스 테라리움의 방문 목적은 인페르노의 큰 돈줄인 그곳을 망가뜨리기 위해서였지, 단순 관광이 아니었다.
이걸 겨우 둘로 어떻게 해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이번 방문은 단순 정찰이 될 수 있는데, 가장 유용한 드라이어드를 데리고 있으며 이 목적에 적합한 인물을 뽑아야 했다.
시간이 더 있다면 길드원 말고도 다른 용병을 데려올 수도 있겠지.
“이번을 놓치면 한 달 뒤라….”
무리하게 강행할 필요도 있나 싶겠지만 이미 난 인페르노와의 접전 이후 그래프트로 인해 앓아누우며 그들에게 한 달이 넘는 시간을 허락하고 말았다.
내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렸을 동안 그들은 나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을 수도, 더 몸집을 불렸을 수도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페르노는 더욱 성장하여 나로서는 어떻게 해 보지도 못할 단체로 성장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내가 18번째 테라리움을 빼앗으면서 그들에게 큰 타격을 줬을 때가 최적기였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이번 기회를 그냥 넘기는 것은 손해라는 판단이 들었다.
반드시 이틀 후에 가고 말 테다. 지금은 내가 강경하게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이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로웰라의 도움을 받아 말벌 집을 바꿔 끼워 넣었다.
식탁 위에 핸드폰을 올려 둔 채로 깁스 밖으로 삐져나온 손가락 끝을 이용해 힘겹게 터치를 했다.
말벌 스테이터스 창을 불러오자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말벌의 화면과 완전히 다른 것이 보였다.
기본적으로 내가 조작할 수 있는 것은 ‘보내기’ 버튼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특성은커녕, 마치 말벌 집의 색처럼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는 새까만 화면.
문득 바이러스라도 걸리는 게 아닌지 불안한 예감도 들었지만 내 핸드폰은 남들의 월렛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때 어두운 화면 끄트머리에서 작고 노란 조명 이펙트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득 울렸다.
[새로운 광산인가요?]
[주인님은 욕심이 많아요. 광산은 이미 충분해요.]
난쟁이들이 작은 랜턴을 들고 꾸역꾸역 화면 구석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무한 다이아> 화면을 넘어 내 핸드폰의 화면이라면 어디든지 간섭할 수 있는 난쟁이들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이거 원, 내 핸드폰이 햄스터 우리처럼 난쟁이 키우는 우리라도 된 거 아냐?
여느 때처럼 내가 보는 화면에 오지랖을 부리는 난쟁이들이 움직이면서, 그들이 비추는 랜턴 빛 사이로 얼핏 글자가 포착되었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