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6화 (316/604)

더쉬맨은 상당히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그가 처음 드루이드 제이의 약점을 찾고자 했을 땐 단순히 방비책을 찾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돈을 벌기 위해 의뢰를 맡는 것도 잊을 만큼 그것에 몰두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이를 향한 감정 역시 고름처럼 곯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길 거라 자신했는데 무려 사설 투기장 2위 출신인 자신을 노멀 드라이어드로 꺾어 버린 바람에 지인들 앞에서 망신을 준 것이 분했고, 언제 어떠한 일을 시킬지 정해 주지 않고 불안에 떨게 만드는 것이 괘씸했다.

또한 그토록 아끼며 애지중지 키워온 드라이어드들의 호감도를 떨어뜨리게 만들어 과거처럼 드루이드로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 아주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남들 다하는 솎아내기 좀 한 것이 뭐 그리 나쁜 일이라고.’

점차 가난에 쪼들려 거리 생활을 전전하는 것도 그 드루이드의 탓인 것처럼 느껴졌고, 어느새 모든 불행의 원인이 그 드루이드에게 있는 것 같다고 여겨졌다.

그 드루이드를 만난 이후부터 자신의 모든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쉬맨은 사설 투기장에서 거둔 준우승은 자신이 그토록 노력해 온 여정을 떳떳하게 검증받은 것이라 여겼었다.

그래서 그날 가뿐하게 이길 것이라 자신했던 전투에서 꺾여 버리고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받았다. 더불어 의욕도 꺾이고 말았다.

결국 현재의 더쉬맨을 움직이고 있는 원동력은 드루이드 제이를 향한 복수심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드루이드 제이의 정체를 알고 있는 더쉬맨은 그동안 끈질기게 그녀의 행보를 쫓았다.

그녀가 가는 길엔 항상 아이언비스트가 따랐다.

그리고 그것을 아스키아 길드에 보고했다.

드루이드 제이를 잡기 위해선 그자의 가장 큰 전력인 아이언비스트부터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한동안 홈그라운드인 28번째 테라리움 밖으로 나오지 않는 바람에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드디어 그자가 드디어 자신의 안락한 성을 떠났다.

더쉬맨은 이것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으나 자신 홀로 그자를 어떻게 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언비스트를 제외하고도 그 자에겐 동료가 더 있었다.

하릴없이 제이의 행방을 몰래 쫓던 와중 마침 자신이 사설 투기장의 같은 회차 출신이라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자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피게트의 길드원이었다.

아는 척 장단을 맞춰 주자 술과 음식을 사 주었고 우연히 길드에서 엘더 플라워를 데리고 있는 여자 드루이드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더쉬맨의 머릿속에 벼락이라도 내려친 것처럼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이 어떠한 연유로 찾는지도 몰랐고 찾는 인물이 정확히 드루이드 제이라는 확신도 없었지만 그건 자신이 알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내가 아는 바론 그 드루이드도 엘더 플라워를 데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까… 잘만 이용한다면!’

그는 이를 빌미로 피게트의 길드를 자신의 복수극에 끌고 올 생각이었다.

“아이언비스트는 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말씀드렸던 그 엘더 플라워를 데리고 있는 드루이드도 함께이지요. 동료가 공격당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아스키아 길드가 아이언비스트를 맡을 동안 당신 길드가 그의 동료들을 맡는다면 아스키아 길드는 무척 기꺼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쉬맨의 이 말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아스키아 길드는 애초에 타 길드와의 협조 요청 없이 자신들이 모든 것을 전부 맡을 예정이었다.

애초에 아스키아 길드는 피게트가 있는 중소 길드에게까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정도로 궁하지 않았다.

“저는 마침 아스키아 길드로부터 협력한 길드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더쉬맨은 품 안에서 아스키아 길드의 문장이 뒷면에 크게 박힌 종이를 꺼냈다.

종이의 내용은 단순히 아이언비스트의 위치를 제보해 준 것에 따른 감사 인사와 그에 대한 보상을 약속한다는 것이었으나 피게트에게 그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먼발치에서나 겨우 구경했던 아스키아의 길드 문장이 종이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그는 더쉬맨의 거짓말에 넘어가고 말았다.

“단순 협력만으로도 보상은 클 예정입니다. 더구나 저는 말씀드렸다시피 그 드루이드에게 빚이 있다고 했죠. 저도 그 임무에 참가할 것이지만 만약 그 드루이드를 확실하게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어 주신다면 제가 받을 보상금까지 드리겠습니다.”

그 말이 결정타가 되어 피게트의 마음을 흔들어 버렸다.

그렇잖아도 보좌관을 분에 넘치게 접대한 이후로 손실이 너무 컸다.

기껏 찾았다고 생각했던 황금알을 낳는 오리는 알고 보니 사람 잡아먹는, 키우지도 못할 오리였다.

그런데 대형 길드와의 협력 의뢰라니.

5번째 테라리움에 근거지를 둘 정도로 유명하니 보상이 짭짤할 뿐만 아니라 잘만하면 산하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일석이조였다.

피게트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왜 하필… 우리 길드입니까?”

따지다 보니 오히려 조건이 너무 좋아서 의심이 들었다. 왜 그런 좋은 의뢰를 하필 자신의 길드와?

“친구에게 이 길드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대형 길드에 비할 바 없이 사람도 많고 실력도 좋은데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해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죠.”

더쉬맨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자신을 친구라고 여겼던 길드원이 술자리에서 한탄했던 말을 곱씹었다.

물론 그가 말했던 것과 더쉬맨이 하고 있는 말의 내용은 조금 달랐다.

길드 마스터가 이게 다 길드원들의 노력과 열정이 부족해서라며 시도 때도 없이 길드원들을 굴리니 죽을 맛이라고 한탄했을 뿐이다.

그리고 더쉬맨은 이를 이용해 피게트의 욕망을 부추겼다.

“또한 믿을 만한 제 친구가 몸담고 있는 길드니, 이런 좋은 의뢰는 가장 먼저 나눠야 하지 않겠습니까? 친구 좋다는 게 뭐겠습니까?”

그래도 피게트의 의심은 여전했지만 그렇다고 거절하기엔 의뢰의 보상이 너무 욕심났다.

‘그래도 듣고 보니 영 틀린 말도 아니지. 우리 길드가 부족할 게 뭐 있어?’

“좋습니다. 아주 좋은 친구를 둔 길드원을 데리고 있어 다행이군요. 아스키아 길드의 의뢰를 수락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아스키아에 현 상황을 보고하고 추후 다음 안내 사항과 함께 재방문하겠습니다.”

길드 대 길드로 진행되는 의뢰임에도 불구하고 구두상의 계약이 끝인 점이 찝찝했으나, 피게트는 마스터 룸을 떠나는 더쉬맨을 차마 잡지 못했다.

대화 내내 그를 너무 날이 선 태도로 대한 점이 걸렸던 까닭이었다.

만약 그가 기분이 상해 의뢰를 없었던 일로 한다면 손해였다.

‘다음에 온다고 했으니 그때 의뢰서나 계약서를 들고 오겠지.’

길드의 스톤헨지를 떠나는 더쉬맨은 술술 풀리는 일에 자신의 영리한 머리를 칭찬하며 한껏 즐거운 기분이 됐다.

하지만 더쉬맨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피게트가 찾던 인물이 단순히 엘더 플라워를 데리고 있는 드루이드가 아니라, 얼마 전 해안 테라리움을 강타할 뻔한 해일을 막을 정도로 엄청난 그래프트를 펼친 이였다는 사실을.

또한 피게트 역시 더쉬맨이 밝히지 않아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제이가 최소 한 개 이상의 테라리움 행정 관리원이며 그런 존재와 척을 지는 의뢰를 수락했다는 사실을.

“부길마 아직 밖에 있습니까? 들어오세요.”

문밖에서 죽을상을 하고 있던 이가 느린 행동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금부터 엘더 플라워를 데리고 있는 드루이드를 수색하는 임무를 끝내고 다른 이를 수소문하십시오. 오래전 길드를 나갔던 스코풀루스를 찾도록.”

피게트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길드에 실력 있는 자들을 많이 모아 둬야겠다고 판단했다.

“스코풀루스라 하심은… 그 녀석들과 꽤 친분이 두터웠던 사람 아닙니까?”

“그래, 비록 보는 눈이 없어 애들 따라 길드는 나갔지만 후회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직 변변찮은 길드 하나 못 구해서 떠돌고 있겠지. 어디 우리 길드에서 몸담았다 나갔는데 다른 길드가 눈에 차겠는가? 그래도 실력만큼은 좋았으니 수수료를 낮춰준다는 등으로 회유해서 다시 데려오도록. 물론 그가 다시 길드로 돌아온다면 치기 어린 마음으로 길드를 나갔던 녀석들도 아무 잘못을 묻지 않고 길드에 재가입시켜 준다고도 하지.”

그는 피게트의 말에 그들이 과연 돌아올까 싶은 의문이 생겼지만 굳이 말로 하는 실수를 벌이진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수색을 모두 끝내고 스코풀루스를 수소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피게트는 나가는 이의 등을 바라보며 앞으로 길드가 크게 도약해서 잘될 일만 남았다며,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운영 능력이 좋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하지만 잘못 삼킨 아주 작은 생선 가시처럼 마음 한편을 쿡쿡 찌르는 미약한 불길한 기운을 도통 특정 지을 수 없어 영 찝찝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누가 내 욕하고 있는 거 아냐?

귀가 간지러워 죽겠는데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남의 손을 빌려 귀를 파다니… 남부끄럽게.

“제이, 뭐 불편한 거 있어?”

물기에 젖은 꽃 같은 얼굴을 한 엘더가 안절부절못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표정이 찌푸려진 것을 금세 캐치했나 보다. 문득 귀가 간지럽다고 하면 엘더가 어떻게 나올까 궁금하긴 했지만 도무지 그 그림이 상상이 되지 않아 대답을 우회했다.

“어, 쟤.”

내 뭉툭한 팔이 시들링을 가리키자 엘더의 예쁜 얼굴이 와그작 구겨졌다.

시들링이 자신이 뭘 잘못했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지만 솔직히 그의 태도가 불편하긴 했으므로 입을 다물었다.

시들링은 현재 마치 내 드라이어드라도 된 것처럼 굴며, 그들의 틈을 차지하고 앉아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만 지켜보고 있었다.

내 말에 엘더는 잘 훈련된 사냥개처럼 짜증을 무기로 시들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드루이드님, 오해예요. 저희 시들링은 그저 드루이드님이 걱정돼서….”

시들링이 하는 양을 옆에서 지켜보며 마치 부모와 같은 인자한 눈길을 보내던 칼미아와 로즈우드가 지원 사격을 나오고, 엘더의 짜증에 자리를 빼앗긴 마거리트의 짜증까지 가세하자 꽃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첫 시작은 장난과 농담이 반쯤 섞인 내 말이었지만 점차 내가 묵고 있는 병실이 수습하기 힘들어질 정도로 떠들썩해지자 그동안 수차례 우려먹었던 필살기를 꺼내야만 했다.

“아이고….”

잠깐의 앓는 소리로도 충분했다.

다들 부리나케 입을 다물고 기세를 수그리며 초조한 눈으로 날 살폈다.

양심이 찔렸지만 어쨌든 병실은 조용해졌다.

내 양팔은 장비 강화 스킬 ‘시간 정지’의 여파로 말 그대로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시는 양팔을 못 썼을 거라고, 내가 기절한 사이 날 진단한 의사가 말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 내 신체는 보통 사람과 달랐다.

내가 31번째 테라리움에서 해일을 막기 위해 엘더와 그래프트를 벌인 이후, 죽기 직전까지 내몰린 내 신체를 세계수 가지의 힘을 써서 간신히 회복한 적이 있었다.

물론 죽기 직전까지 내몬 것도 걸신들린 아귀처럼 내 영혼을 빨아먹은 세계수의 가지의 짓이니 병 주고 약 주고나 다름없었지만.

어쨌든 내가 완전히 회복한 이후로도 그 힘은 계속 내 신체에 머물렀다.

세계수의 가지의 힘이 내 신체에 머무는 한, 내 신체의 내구도와 회복력은 치트키를 쓴 게임 캐릭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박살 난 팔을 금빛 세계수의 줄기 문양이 휘감았고, 고통은 끔찍했으나 점차 복구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현재는 양팔에 두터운 깁스를 칭칭 감고 병실 침대에 반쯤 누워 오도가도 못 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내 드라이어드들은 물론 시들링을 포함한 길드원들에게까지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주 극진하게 모셔지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것이 정말 죽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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