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쉬맨? 처음 듣는 이름인데. 길드 가입 희망자라면 곧바로 날 찾아올 이유는 없을 거고.”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피게트는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온 의문의 인물이 영 달갑지 않았다.
그가 불만을 표하기 전, 더쉬맨을 인솔해 온 길드원이 부리나케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제 투기장 동기입니다. 마스터님도 아시죠? 제가 사설 투기장 8강까지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여기 더쉬맨은 그날 2위를 했던 대단한 실력자입니다! 그날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지요.”
더쉬맨의 이력을 듣자 피게트는 그에 대한 첫인상을 싹 잊고 그가 길드 가입 희망자여도 상관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검증된 실력자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실력자들은 단순히 연을 만들어 두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었기에 피게트는 다이아 냄새가 나는 이들을 좋아했다.
“이거 실례를 했군요. 제가 미처 몰라뵈었습니다. 저희 길드 스톤헨지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런데 길드 가입이 아니라면 어떤 용무로?”
“그… 제가 얼마 전에 이 친구와 술자리를 가졌다가 실수로 저희 길드가 찾고 있던 인물에 대해 살짝 흘렸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피게트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술김에 행정 관리원의 개인 문서 내용까지 발설해 버리는 보좌관 같은 인물이 자신의 길드원 중에도 있다니!
피게트가 호통을 치기 전, 길드원은 황급히 수습을 시작했다.
“그래도…! 그래도 말입니다! 덕분에 마스터께서 찾고자 하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됐지 말입니다! 이 친구가 우리 길드가 찾는 인물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엘더 플라워를 데리고 다니는 드루이드를 찾았다고?”
“네… 네…. 그러니 정상 참작을 좀….”
“듣고 판단하지.”
피게트의 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는 것이 보이자 길드원을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랫동안 길드원들이 수색해도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그 드루이드에 대해 알고 있다는 자가 제 발로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어제 달이 바뀌었군. 이번 달은 내 운이 좀 트일 모양이야.’
피게트가 눈짓하자 더쉬맨이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자리는 단순히 당신이 찾고 있는 인물의 정보를 알려드리기 위해서만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혹시 정보 값을 요구하는 겁니까? 그것보다 제가 당신이 가져온 정보의 신뢰성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죠?”
“단순히 정보만을 팔려고 온 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그자를 찾은 후 어떻게 대할 예정인지는 모르나 만약 길드 가입을 제안하는 거면 먼저 큰 실수를 하는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연을 맺는 것도 위험할 것입니다. 그자는 아주 위험한 자입니다.”
“그래서 경고라도 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겁니까?”
“조금 다릅니다. 전 이 길드에 협력을 부탁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어이, 이봐! 그런 말은 없었잖아?”
더쉬맨의 말에 길드원이 당황하여 그의 어깨를 찔렀다.
“협력? 협력이라….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군. 일단 그쪽은 나가 봐도 좋다.”
“네? 하지만….”
“말실수에 대한 건은 추후에 묻지.”
피게트의 말에 길드원은 하얗게 질렸다.
그는 정보원을 찾은 대가로 보상을 기대했겠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벌뿐이란 사실에 좌절했다.
괜히 미적거렸다가 화가 더 커지기 전에 황급히 마스터 룸을 떠났다.
“계속 이야기해 보시죠.”
“당신이 찾고 있는 드루이드의 이름은 ‘제이’입니다.”
“제이라…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인데.”
피게트는 드루이드에 대한 정보를 찾으며 어쩌면 아주 유명한 드루이드의 숨겨진 업적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무려 엄청난 그래프트를 쓸 수 있는 드루이드니까.
하지만 더쉬맨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된 드루이드의 이름은 무척이나 생소했다.
그리고 그편이 피게트를 더 자극했다.
차라리 유명인이었다면 포기라도 하지, 유명인이 아니라면 정보를 독과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쉬맨이 그 드루이드를 위험한 인물이라고 말한 것이 신경 쓰였다.
“저는 그 드루이드에게 빚이 있습니다. 꽤나 좋지 않게 엮였기에 상대의 약점이 필요했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상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니던 도중 그 드루이드가 26번째 테라리움의 과수원에서 열매를 통해 엘더 플라워를 개화시켰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더쉬맨은 한 달여 전 지인들과 31번째 테라리움의 근방을 여행하다 도둑을 만나 짐을 모두 털렸던 적이 있었다.
다이아는 물론 비상식량까지 모두 도둑맞아 몇 날 며칠을 쫄쫄 굶어야 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던 중 마침 한 무리의 드루이드팀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리더인 드루이드와 다이아를 걸고 드라이어드 결투 시합 내기를 했으나 장렬히 패하고 말았다.
상대는 내기의 상품으로 비상식량과 다이아를 내걸었지만 빈털터리였던 더쉬맨은 결국 원하는 대로 다 하겠다는 약속을 걸고 말았다. 죽으라는 것 외엔 모든 따르겠다는 무모한 약속.
그만큼 이기는 것에 자신 있었는데 너무나도 어이없게 지고 말았다고 더쉬맨은 지금도 이를 갈았다.
당시에는 딱히 시킬 일이 없다며 내기의 대가를 이행하지 않고 헤어졌지만 그 드루이드는 분명 훗날 다시 만나 대가를 받겠다고 말했다.
그 드루이드가 바로 피게트에게 말한 ‘제이’라는 이름의 드루이드였다.
그대로 마주치지 않도록 피해 다니면 그만일 수도 있으나 상대는 더쉬맨과 일행들을 충분히 찾아낼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곁엔 굉장한 실력자를 두고 있었다.
또한 이행해야 하는 대가의 난이도도 큰 걱정이었다.
더쉬맨이 생각하기에 그 드루이드는 자신에게 큰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그날, 드루이드 제이는 내기의 대가로 자신이 보이는 앞에서 더쉬맨에게 그의 드라이어드들과 연결을 끊으라면 끊겠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같은 드루이드로서 심한 요구라 생각됐는지 그저 질문일 뿐이라며 이행은 불발되었으나 더쉬맨은 그 속에서 아주 진한 악의를 느꼈었다.
어찌나 충격적인 요구였는지, 그날 내기 결투에 출전했던 더쉬맨의 드라이어드들이 갑자기 주인에 대한 호감도가 극감하여 그를 잘 따르지 않아 지금도 애를 먹고 있었다.
겨우 예시에 가까운 질문뿐이었는데도 너무나도 기상천외한 요구였다.
그러니 언젠가 이행해야 할 대가가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아주 지독한 일을 시키리란 불안감이 앞섰다.
결국 더쉬맨은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엘더 플라워라… 확실히 우리는 엘더 플라워를 데리고 있는 드루이드를 찾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엘더 플라워를 데리고 있는 드루이드는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찾고 있는 드루이드는 엘더 플라워를 데리고 있으며… 아주 실력이 뛰어난 드루이드입니다. 겨우 사설 투기장 우승 정도로는 비견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한 존재이지요.”
더쉬맨은 사설 투기장을 우습게 보는 듯한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나 대단한 존재를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은 누군가에 대한 평가가 과장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엔 다른 이의 업적을 훔치는 자들도 존재하고요.”
이번엔 피게트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쪽이 전해 들은 제이란 드루이드에 대한 업적이 사실은 다른 이의 업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요. 아주 실력이 뛰어난 드루이드라고 했죠? 분명 검증된, 아주 대단한 드루이드가 있긴 합니다. 그 드루이드의 곁에.”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엘더 플라워를 데리고 있는 드루이드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한 다른 이의 행적이란 것입니까?”
“네, 그럴 확률이 아주 높죠. 무려 그 드루이드 곁에 있는 자가 그 유명한 아이언비스트니까 말입니다.”
“아이언비스트!”
피게트는 갑자기 이 자리에 언급된 자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미친! 내가 찾는 이가 결국 그 악명 높은 아이언비스트였다니!’
겨우 사설 투기장 우승 정도론 비견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한 존재라고 했으나, 그 사설 투기장에서 매회 연승을 거둬 명예의 전당까지 오르는 바람에 출전까지 금지될 정도라면 말이 달랐다.
사설 투기장은 우승자를 점치는 도박의 수수료로 운영되고 있었고 또한 3번째 테라리움의 큰 수입원이었다.
그런데 우승자가 고정되니 수입이 급감해 결국 명예의 전당이란 허울뿐인 업적을 쥐여 주고 강제로 출전을 금지시킬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현재까지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는 아이언비스트뿐인 셈이었다.
더구나 아이언비스트라는 인물은 얼마나 악독한 짓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대형 길드에 수배될 정도로 위험한 자였다.
길드와 어지간히 척을 지지 않는 이상 온 테라리움에 수배지를 뿌려 가면서까지 막대한 비용과 수고를 소모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대형 길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기업인 만큼 평판에 아주 신경을 썼다.
평판이 좋아야 다른 대형 길드들을 제치고 좋은 의뢰를 다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평판엔 절대다수의 강한 실력자들이 보여 주는 너그러움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겨우 작은 트러블 정도는 뒷공작을 할지언정 앞에선 너그러이 용서해 주는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평판 하락을 각오하면서까지 곳곳에 수배지를 뿌리게 만들었다면 대체 무슨 짓을 벌였단 말인가?’
“아이언비스트라… 그 정도 인물이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피게트는 수배지를 통해 만났을 뿐인 아이언비스트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들리는 위명이 심상치 않을 정도 실력자라면… 감히 세계수의 축복에 비견될만한 엄청난 그래프트를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더쉬맨의 말처럼 엘더 플라워를 데리고 있는 드루이드가 옆에 있다가 업적을 덮어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니면 아이언비스트는 현재 수배 상태이니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프트를 썼다고만 들었지, 정확히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도 진실을 모르겠지. 마침 그 상황에 필드에 나와 있던 드라이어드가 엘더 플라워라 오해했을 수도 있고. 잠깐… 엘더 플라워와 그래프트를 썼다는 말은 없었잖아? 데리고 있다고만 했을 뿐이고…. 그래,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았어. 그렇게 대단한 힘을 펼친 드루이드의 이름을 이 자리에서 처음 듣는 다니. 이건 단순히 내가 흙더미에 파묻힌 이름모를 진귀한 약초를 우연히 찾아낸 수준이라 치부하기엔 한참을 넘어섰다. 그게 맞으려면 세상 어디에도 없던 약초가 갑자기 세상에 뚝 떨어진 시점에 내가 그곳을 걷고 있어야 할 정도로 불가능에 가까운 이상함이지.’
“이런, 알려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꽤나 위험한 인물의 뒤를 쫓을 뻔했군요.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협력을 부탁드린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물론이고 길드는 진실을 알았으니 이만 손을 뗄 예정입니다만?”
피게트는 결국 보좌관에게 밑 빠진 물독처럼 값비싼 술을 들이붓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래프트를 벌인 드루이드에 대해 캐내느라 정작 11번째 테라리움의 의뢰와 관련된 건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너무나도 손해가 컸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언비스트를 건드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대형 길드와 협력한 전적을 남기고 싶지 않으십니까?”
“대형 길드?”
“네, 어쩌면 공헌을 크게 세운다면 기꺼이 연합에 가입시켜 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대형 길드와의 연합이라니. 말이 연합이지, 결국 부속이 되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대형 길드라하면?”
“5번째 테라리움에 근거지를 둔 ‘아스키아’ 길드입니다.”
피게트는 더쉬맨이 언급한 상상 이상의 대어에 체면을 잊고 입을 쩍 벌렸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 큰 길드가 우리 같은 길드에까지 협력을 요구한다는 겁니까? 가만… 아스키아는….”
“아이언비스트를 수배하고 있는 길드입니다. 저는 그자의 행방을 길드에 알렸고 곧 토벌대가 꾸려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