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내가 찾던 그 남자는 이 나무의 드라이어드인걸까?
실을 잡아당기자 끝이 뿌리 안쪽에 깊숙하게 파묻혔는지 팽팽했다.
묻힌 부분을 찾기 위해 나무에 손을 대려고 할 때, 찢어지는 비명이 날 멈추게 만들었다.
“안 돼!”
내 행동을 만류하는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손대면 안 돼!”
“이리 와. 이리 와서 우리와 놀자.”
“거기 있으면 위험해.”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을 정도로 꼭꼭 숨어 버렸던 아이들이 어느새 우르르 몰려나와 있었다.
아이들은 나무와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서 애타게 내게 손짓을 하며 짱알짱알 떠들어대고 있었다.
내게 시도 때도 없이 장난을 걸려던 아이들이 일제히 기겁을 하니 찝찝한 마음이 들어 나무에 손을 댈 순 없었다.
이 역시 그들의 장난이나 함정이라 하더라도, 굳이 반대되는 행동을 해서 내가 얻을 이익이 없었다.
“이 나무가 뭔데 그래?”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곤 일제히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 아니, 그 끝엔 내가 들고 있는 청사초롱이 있었다.
“이 초롱이 왜?”
이번엔 아이들의 손가락이 나무를 가리켰다.
초롱으로 나무를 비춰 보라는 건가?
지금도 어둠을 밝히기 위해 들고 있긴 하지만 나무의 주변은 기이하게도 굳이 빛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환한 편이었다.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팔을 쭉 뻗고 초롱을 앞세워 나무를 비춰 보았다.
따스한 빛이 생기 하나 없는 축축하고 새까만 나무껍질에 닿자, 그 부분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물에 풀린 반죽처럼 흐물흐물하게 형태가 녹아내리고 말로 형용하기 힘든 무언가가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짐작도 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잠깐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기분이 최악일 정도로 나빠졌고 급격한 피로가 밀려올 뿐만 아니라 토기가 치밀어 올 정도로 속이 불편해진다는 것이었다. 계속 보고 있어봤자 내게 좋을 것이 하나 없는 광경이었다.
이건 나무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괴물에 가까웠다.
무언가 나무의 형태를 흉내 내고 있었다.
“안 미쳤네?”
“눈이 달라졌네.”
“눈이 노래졌다!”
내 눈이 달라졌다고?
손을 들어 눈가를 만져 봤자 거울이 없으니 내 눈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노래졌다는 건, 설마 금안이 됐다는 걸까?
실새삼이 무언가의 조치를 취한 이후로 그가 말하는 나의 ‘만물을 보는 눈’이 완전히 차단당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힘이 돌아오기라도 했다는 걸까?
“잠깐, 설마 내가 이걸 봤다가 미쳤을 수도 있었다는 거야? 너희 그걸 알면서도 나보고 초롱을 비춰 보라고 한 거야?”
역시나 함정이었나 보다.
동굴로 오는 내내 어떠한 형식으로든 날 괴롭혔던 아이들이었다.
방 안에서 내게 이곳의 진실을 털어놓았던 그 아이들과 달리, 저 아이들은 아주 영악한 녀석들이었다.
화가 나서 따지듯 소리치자 아이들은 후다닥 흩어져 도망가 버렸다.
돌멩이가 떨어진 연못 안에서 혼비백산 흩어지는 물고기 떼와 다를 바 없었다.
다시 홀로 남겨지고 나니 섣불리 화를 내 아이들을 쫓아내지 말았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못된 녀석들이라 해도 이곳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행동이 괘씸하긴 하지만 어르고 달래서 정보를 캐내 볼 것을.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나무를 만지지 말라고 했지….
초롱의 빛이 닿지 않는 나무는 처음 봤을 때처럼 평범한 고목처럼 보일 뿐이었다.
등불을 비춰 보라는 것은 날 골탕 먹이려는 속셈이었으니, 만지지 말라는 조언도 같은 목적인 건 아닐까?
그렇다면 반대로 만져야 내가 이득이 되는게 아닐까 싶다가도….
등불을 비춰 확인했던 기이한 무언가가 나를 찝찝하게 만들었다. 내가 본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우울한 감정을 죄다 끄집어내고 속을 후벼 팠던 끔찍했던 무언가….
“달리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니까…. 초롱으로 비추지 않으면 평범한 나무로 보이기도 하고….”
단순히 아이들이 지시했던 행동의 반대로 행동해 본다.
그 일념에 사로잡혀 홀린 듯이 붉은 실이 처박힌 거대한 나무의 뿌리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갑자기 세찬 바람이 훅 불어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무언가가 썩는 고약한 냄새와 비를 잔뜩 맞아 곰팡이가 핀 것 같은 눅눅한 냄새가 삽시간에 주변을 가득 채웠다.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지독한 냄새였다.
이런 비슷한 악취를 어딘가에서 맡아본 적이 있었다.
바곳이 독을 풀어 그 어떠한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했던 죽음의 늪.
내부에 고인 물이 순환되지 못해 생명은 물론 토양까지 썩혀 오랜 시간 죽음의 기운이 응축되어 후각으로 나타났던 것이 지금과 같았다.
“누구냐.”
중후한 음성엔 노기가 가득했다.
나무에 갖다 댔던 손은 누군가에게 거칠게 손목 채로 움켜 잡혔다.
“……!”
바람이 멎어 간신히 눈을 떴을 땐… 기절하는 줄 알았다.
너무 놀라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고 몸 안이 쿵쿵거리는 긴장으로 가득 차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눈앞의 존재는 내가 관아처럼 보였던 건물에서부터 실을 따라 쫓았던 그 남자였다.
그런데…. 남자의 두 눈이 있어야 할 곳이 움푹 파여 새까만 어둠이 일렁거리고 있었고, 그 어둠은 내가 나무에 초롱을 비춰 확인했던 끔찍한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게 드라이어드라고? 귀신? 악마? 대체…!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비상등이 울려 대기 시작했다.
괜히 손댔다고 후회할 틈도 없이 당장 도망쳐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몸부림쳤다.
“넌 이곳의 사람이 아니군. 그렇다면 바깥에서 온 탐욕스러운 자식들 중 하나이더냐! 우리의 터전을 짓밟고 어린 생명들을 잔악무도하게 베어 넘기고 내 목숨까지 가져갔으면서 아직도 더 가져갈 것이 남았단 말이냐!”
“사… 살려….”
“또 무슨 거짓말을 해서 날 속일 것이냐!”
“그쯤 해 두거라, 처량한 망령아.”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오른 긴장의 끈을 걸걸하고 서슬 퍼런 목소리가 끊어 냈다.
거칠고 재빠른 손길이 내가 쥔 청사초롱의 손잡이를 빼앗아 갔다.
그러곤 내 손목을 붙잡고 있는 남자를 향해 초롱을 무기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화르륵.
이리저리 휘둘리던 초롱은 안에 담긴 불씨를 해방시켰고, 불씨는 초롱을 감싼 천을 타고 활활 타오르더니 이윽고 남자에게로 옮겨붙었다.
남자는 기름이라도 흠뻑 뒤집어쓴 것처럼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쯧쯧, 그래도 한때 본질은 드라이어드라고 환장하고 잡아먹는구나!”
날 남자의 손에서 구해 낸 자는, 내게 청사초롱과 실타래를 건네주었던 노파였다.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을 침범한 모두를 벌하고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분노로 가득 찬 그의 외침에 이 일대의 기운이 술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하나 곧 먹을 것 하나 없는 빈 껍질뿐이라는 걸 깨달을걸세. 그러니 어서 이 틈에 도망가세나.”
“세상에… 설마 저거 보통 불이 아니라 그 ‘불’이었어요?”
“드라이어드의 천적이 그것 말고 더 있겠는가? 꾸물거리고 있다간 자넬 양식으로 삼겠다며 뿌리 밑으로 끌고 들어갈 걸세.”
노파는 생긴 것과 달리 엄청난 힘으로 내 등을 떠밀며 발길을 재촉했다.
물론 나 역시 다시 잡히고 싶은 마음을 없었으므로 그길로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다 노파의 손짓을 따라 한 집 안에 몸을 숨겼다.
집은 상태가 썩 좋지 못했지만 모습을 가려줄 돌담과 벽은 건재했다.
다행히 그 이상한 남자가 쫓아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듯해 안심이 되었다.
한참을 숨을 몰아쉬는 나와 달리 노파는 전혀 힘든 기색이 없어 보였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체 저게 뭐예요? 아… 일단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분명 망령이라 하지 않았는가?”
“망령이요?”
“그렇다네. 저것은 망령일세.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기이한 존재지. 잘못된 원념이 뭉쳐 의지를 갖게 되고 저런 형태가 되었다네.”
“원념… 뒤틀린 이곳에 잘못된 원념이 섞여서 뭔가 꼬여 버렸다고 했던 것 같은데.”
“홍동(紅童)들에게 들은 게로군. 어쩐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더라니… 자넬 찾아갔던 거군.”
“그런데 방금 분명 그 남자의 본질은 드라이어드라고 하지 않았어요? 혹시 그 거대한 나무가 드라이어드의 본체인가요?”
“우리의 모체는 저렇게 거대한 것이 아니었지.”
하면 할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스무고개를 하는 기분이다.
“하… 됐어요. 저를 찾아왔던 아이들보다 할머니가 알려 주는 답이 더 이해하기 힘든 기분이에요. 아이들은 제가 이곳을 구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제가 정확히 뭘 해야 하나요? 저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솔직히 방금 봤던 남자를 제가 해치워야 하는 거라면 자신 없어요. 무기도 없고요.”
전 전투력이 쓰레기라고요.
요 며칠 아침 운동으로 체력 스탯은 좀 올렸지만 아직 전직도 못 한 상태지요.
제가 날 때부터 베스탈리스였다면 손에서 불이라도 쐈을 텐데 말입니다.
차라리 나 대신 시들링이 끌려왔다면 더 나았을까?
그러고 보니 청사초롱에 어째서 불 몬스터가 사로잡혀 있었던 걸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등불처럼 써먹었는데, 그 포악한 불이 곱게 갇혀 타오르고 있었다니.
“무기라면 저기 있네.”
노파는 벽 한편에 세워져 있는 도끼를 가리켰다.
먼지가 잔뜩 끼고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이 썩은 자루에 녹슨 날이 위태롭게 박혀 있는 도끼였다.
세월의 흐름을 정통으로 처맞아 내구도가 간당간당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니, 앞에 이야기 다 잘라먹고 무기가 없다는 말만 들으시면 어떡해요? 저게 있어도 제가 어떻게 휘둘러요!”
“그 어떤 대단한 무기를 가져와도 저것만은 못할 걸세. 망령의 모체가 자네가 본 거대한 나무는 아니지만 그곳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분명하지. 저건 그 나무를 과거에 쓰러뜨렸던 적이 있는 도끼일세.”
그리 말하니 낡은 도끼가 달리 보여 추적추적 도끼가 세워진 곳으로 걸어갔다.
저래 보여도 알고 보니 전설의 도끼?
“끙….”
들고 보니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아주아주 낡은 도끼였다.
손에 먼지가 잔뜩 묻어 나도 모르게 치마에 닦았더니 붉은 치마가 금세 얼룩덜룩 더러워졌다.
아무리 봐도 낡은 도끼는 특별한 곳이 없어 보여 여전히 찝찝한 마음만 한가득이었다.
검이라면 모를까, 도끼는 어떻게 휘두르는 거지?
시험 삼아 들고 휘둘렀더니 금방 팔이 뻐근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이걸 들고 덤볐다간 필패인데요? 혹시 아이들처럼 절 함정에 빠뜨리려는 건 아니죠?”
“망령을 잡기 위해선 강한 힘도 좋은 무기도 필요 없다네. 실체가 없는 것을 어찌 벨 수 있겠는가? 망령을 베려면 그 망령을 유지하고 있는 과거의 원념을 노려야 한다네. 이미 한 번 죽음을 선사했던 도끼이니 그 기억에 사로잡혀 어찌하지 못할 걸세.”
“그럼 왜 그쪽은 저보다 힘이 세 보이는데 이 도끼를 사용하지 않은 거예요?”
그녀는 내 말에 달리 입을 열어 답하지 않고 뚜벅뚜벅 내게로 걸어왔다.
그러곤 도끼를 빼앗아 가려는 것처럼 손을 뻗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손은 도끼 자루를 가볍게 통과했다.
“드라이어드라면서요….”
진짜 귀신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