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0화 (300/604)

난 내 손 안에서 영롱하게 빛을 내는 다이아몬드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걸 웅덩이에서 꺼낸 이후로 접근이 막혔는데… 설마?

정말, 정말… 끔찍하게도… 상상하기 싫지만!

혹시 다이아몬드를 다시 웅덩이에 버려야 하는 건가?

다이아몬드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게 맞는 조건이라면 아까워 죽을 것만 같았다. 속이 잔뜩 뒤틀리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다이아가 많아도 상등품의 태양의 보석들은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애초에 매물도 없고 얻는 조건들이 너무 까다로웠다.

엘더의 반지는 추첨권을 통해 단 한 명의 행운의 주인공만이 손에 넣을 수 있었고, 데이지의 반지는 28번째 테라리움에 주둔하고 있던 거대한 벌레 불을 토벌하고 난 후 획득했다.

심지어 단계가 좀 더 낮은 가막살나무가 끼고 있는 상등품의 반지마저 뽑기 운에 맡겨야 했던 퀘스트 보상품이었다.

그런데 정말 간만에 어렵사리 발견한 태양의 보석을… 공략을 위해 스스로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오다니.

“이 아까운 걸… 아이고… 아이고… 이 아까운 걸….”

내가 웅덩이와 다이아몬드만 번갈아 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자 엘더가 경악한 눈으로 내게 소리쳤다.

“설마… 너 그거 다시 웅덩이에 버릴 거야?”

“나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 내가 더 아까워 죽을 것 같아! 이걸 가공하면 데이지나 메스키트가 더욱 강해질 수 있는데 다시 버려야 하다니!”

“왜… 꼭 버려야 하는데…?”

사랑하는 애인과 헤어져도 저런 목소리가 나올까 싶었다.

엘더는 절절매는 목소리로 내 손을 붙들고 매달렸다.

까마귀처럼 반짝이는 물건에 환장하는 엘더가 500원짜리 동전만 한 영롱한 보석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바랄 리가 없었다.

“욕심…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이걸 웅덩이에 다시 던져 넣고 검은 돌을 찾아야 해.”

“그따위 초라하고 빛도 안 나는 돌 때문에 태양의 보석을 포기하지 마!”

“그래야 우리가 여기서 나갈 수 있어. 불멸의 다이아몬드를 얻어 봤자 여기서 나가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야?”

“메스키트한테 다 박살 내 달라고 해. 이따위 돌벽쯤은 랜스를 내지르는 것만으로도 뚫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다 동굴이 무너져서 안에 있는 사람 다 죽으면 어떡해? 엘더, 이성을 찾아. 아니, 넌 짭신 엘더가 열 손가락에 주렁주렁 반지를 달고 있을 동안 뭐 했어! 걘 야생 상태에서 착실히 제 몫을 긁어모아 온몸이 태양의 보석으로 반짝거리더만!”

“내… 내가 뭘….”

뉘 집 애는 시집올 때 패물을 손 한가득 들고 오는데 넌 어디 얼굴만 믿고 몸만 덜렁 오느냐!

“난… 난… 너만 믿고 온 건데. 그런데 자꾸 나 말고 다른 드라이어드들만 보석을 챙겨 주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힌다는 너만 믿고 숟가락만 들고 왔지 않느냐.

소박맞는 며느리의 모습이 저러할까.

물기 젖은 눈으로 처량하게 날 바라보는 얼굴에 가슴이 찡해졌다.

하지만 저 애달픈 마음이 다이아몬드를 향한 것임을 알기에 혀를 차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자신의 공격 보너스 보석도 아니고 정작 4월의 드라이어드들은 가만히 있는데 말이야….

“쯧… 예뻐서 봐준 줄 알아. 이건 어차피 우리랑 연이 없던 보석인 거야. 포기해.”

패악을 부리는 답 없는 시어머니에 빙의돼서 엘더를 구박하니 어쩐지 마음이 좀 나아졌다.

엘더가 더 매달리기 전에 주저 없이 다이아몬드를 웅덩이로 던져 버렸다.

“안 돼!”

엘더가 허망한 얼굴로 주저앉아 반짝이는 보석이 하염없이 가라앉고 있는 웅덩이를 바라보았다.

다이아몬드를 버리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는지 다시 웅덩이에 손을 넣을 수 있었다.

이 다이아몬드는 제가 찾는 돌이 아닙니다.

어쩐지 금도끼 은도끼 전래 동화가 떠오른다.

팔을 깊숙이 물속에 넣고 한참을 휘저었을까, 다시금 손끝에 무언가 둥그런 것이 걸렸다.

설마 또 다이아몬드는 아니겠지? 하며 잡아 빼냈는데… 이번엔 날 더 환장하게 만들었다.

생전 처음 보는 연두색 보석이 덩그러니 내 손에 들려 있었다.

한여름의 햇빛이 닿아 금빛에 가깝게 보이는 녹음을 닮은 보석은, 좀 전의 다이아몬드처럼 어둠 속에서도 영롱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품질이 상당히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와, 페리도트네?”

“8월의 태양을 담은 보호의 페리도트네요.”

“8월…? 8월의 보석은 처음인데.”

8월이면 무려 바곳과 실새삼의 보석이었다.

실새삼은 아직 아이라 그렇다쳐도 바곳의 보석이라니… 자꾸 선을 세게 넘네?

“악! 어차피 갖지도 못할 거 왜 이렇게 장난질이야! 그냥 순순히 검은 돌을 내놓으라고!”

어차피 오래 들여다봐 봤자 욕심만 심하게 날 뿐이었다.

주저 없이 보석을 다시 던져 넣자 엘더의 얼굴이 말도 못 하게 어두워졌다.

그 후로도 웅덩이는 날 가지고 놀 셈인지 온갖 태양의 보석들을 뱉어 냈다.

이 보석이 네가 찾던 보석이더냐? 그럼 이건? 존나 반짝거리지? 갖고 싶지? 너네 드라이어드는 이런 거 없지?

아, 금도끼 은도끼 다이아몬드 도끼 죄다 제 도끼 아니라고요!

퍽퍽 소리를 내며 물을 휘젓다 마침내 검은 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런 작은 웅덩이에 희소성 있는 보석이 대체 몇 개나 들어 있는 거야?”

젖은 팔을 수건으로 닦고 말리는 도중 끝내 욕심을 버리지 못한 엘더가 웅덩이에 달려들었다.

풍덩.

그런데 놀랍게도 나 말곤 번번이 가로막혔던 시도가 갑자기 성공했다.

엘더 역시 웅덩이에 들어갈 수 있었을 거라곤 전혀 예상도 못 했는지 쫄딱 젖은 생쥐꼴로 허망하게 날 바라보았다.

“저 철부지….”

“역시 덜 자랐다니까. 쟨 세계수의 품에서 다시 배우고 와야 해.”

엘더는 내친김에 내가 버린 보석들을 회수하려는 생각인지 아예 대놓고 웅덩이 바닥을 뒤지기 시작했다.

“엘더, 감기 걸려도 모른다.”

“없어….”

“뭐가?”

“바닥에 아무것도 없어…. 네가 그렇게 많은 보석들을 던져 넣었는데 단 한 개도 없어.”

엘더의 욕심은 꼴사납긴 했지만 겸사겸사 던져 넣었던 보석들 중 하나라도 집어 온다면 그거 나름대로 이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단 한 개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물론 엘더가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걘 자기가 찾았으니 자기 것이라고 우길망정 찾지 못했다며 날 속여서 이득 볼 게 하나도 없었다.

“왜 하나도 없지…?”

“꼬맹아, 보기 꼴사나우니까 어서 나오거라.”

메스키트가 결국 야단을 치자 엘더는 터덜터덜 웅덩이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미련이 진득하게 남는지 웅덩이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없어… 왜 없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웅덩이에서 찾은 검은 돌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내가 그렇게 웅덩이를 뒤졌는데 왜 한 번에 한 개의 돌밖에 발견하지 못했을까?

돌은 아주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는데, 그럴 리 없음에도 꼭 나와 엘더를 비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이거…. 애초에 웅덩이에는 이 돌 하나밖에 없던 거 아냐?”

물론 그럴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맞다는 것처럼 돌이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실체가 없는 목소리들이 날 속여 먹더니… 이젠 하다못해 돌멩이 따위가 날 농락해?

산신령이 효자인 두 형제에게 선물이라며 커다란 돌덩이를 내렸는데, 같은 돌임에도 불구하고 쓸모없는 돌이라 생각하며 바라본 형의 눈에는 그저 돌이었던 반면, 황금이라 생각하며 바라본 동생에게는 정말 금이 되어 장에 내다 팔아 갑부가 됐다는 전래 동화가 떠올랐다.

이야기처럼 모습을 바꾸는 돌이라니….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야.”

내 드라이어드들이 총출동하고도 결국 얻은 것은 물에 홀딱 젖어 넋을 잃은 엘더뿐이었다.

다른 드라이어드들을 아티팩트로 돌려보내고 다시 메스키트와 단둘이 가로막힌 벽이 있는 통로로 돌아갔다.

검은 돌을 두 개 모두 찾았기 때문인지 더 이상 어떠한 목소리도 날 괴롭히지 않았다.

가로막힌 벽에 도착해 빈 홈에 돌을 끼워 넣었다.

두 개의 돌은 원래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처럼 아귀가 딱 맞았다.

돌들은 철컥 소리를 내며 홈에 틀어박혀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그사이에 다른 누군가 시험을 통과했는지 돌의 개수가 늘어 있었고, 남은 것은 4번째 통로로 들어갔던 제퍼와 노토스의 자리뿐이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자리라면 시들링이었다.

시들링도 무사히 조건을 충족했구나….

어쩌면 이런 해괴한 시련은 오히려 생각이 단순한 시들링에게 별거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벽에 기대어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제발 제퍼와 노토스가 무사히 돌을 찾아낼 수 있기를….

어디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걸까?

뒤들 돌면 소금상이 되어 버리는 구간? 질문에 세 번 이상 대답하면 안 되는 구간? 웅덩이에서 귀중한 보석을 포기하고 검은 돌을 찾아내야 하는 구간?

“다들 잘하고 있겠지?”

“그럴 거예요.”

“엘더, 참 웃기지 않아? 보석 때문에 웅덩이에 뛰어들 줄은 몰랐어.”

“버릇을 잘못 들여 놨어요. 제이가 너무 오냐오냐하니까 정도를 모르는 거예요.”

“엘더가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성향을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있겠어? 걘 그래서 귀여운 거 같아.”

무료한 시간을 때우려 메스키트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철컥.

드디어 나머지 홈이 돌로 채워졌다.

염려할 필요 없이 길드원들은 모두 무사히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가로막힌 벽이 점점 진동하기 시작했다.

드드득.

벽은 덜덜 떨리더니 뿌연 흙먼지와 함께 땅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와! 열렸다!”

로웰라의 목소리였다.

“뭔가 김이 빠지는디….”

“오, 다들 빠져나왔네요? 다행이에요! 각자 통로에 들어가 돌을 찾아야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었나 봐요.”

뒤이어 헤르마와 이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곳에 오랫동안 있어서 시력이 떨어진 것 같아. 이러다 나 박쥐처럼 눈이 퇴화하는 건 아닐까?”

“제퍼는 무섭다며 내 등 뒤에 숨어 있기만 했다.”

“아냐, 이리스! 난 최선을 다했어!”

“무사해 보이는군.”

뒤이어 제퍼와 노토스 그리고 시들링의 목소리까지 이어졌다.

지금 들리는 목소리는 날 현혹하려 했던 속임수가 아니었다.

기지개를 켜고 웃는 얼굴을 하고 늘상처럼 아웅다웅하는, 반가운 길드원들의 목소리였다.

5개로 나뉜 통로로 헤어졌던 길드원들이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행이다….”

어쩐지 긴장이 풀려 메스키트에게 한껏 등을 기댔다.

소금상으로 변한 사람도 없었고 낙오된 사람도 없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마스터도 어둠이 무서우셨던 건가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제이 님, 괜찮으세요? 돌 찾기가 많이 힘드셨죠?”

“…정말 큰일 날 뻔하긴 했죠. 정말 많이 어렵더라고요. 글쎄 이리스의 목소리까지 흉내 냈다니까요?”

“네? 제 목소리를 흉내 내요?”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들고 질문에 답하게 만들고.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들이 아니었다면 감도 못 잡았을 거예요.”

“음…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네?”

다들 반응이 왜 이러지?

“어… 다들 통로 안에서 뭘 하셨어요?”

“수정 바위를 고치고 어딘가에 떨어진 돌을 찾으려고 계속 허리를 숙이고 다녔죠.”

“아니 글쎄 마스터! 입구에 버려져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니까요. 그것도 이미 제가 발로 밟아 놓고 몰랐을 줄은.”

이야기만 듣자면 과정들이 너무 평화로운데?

“아이들 웃음소리는요? 돌멩이가 농락하진 않았어요? 소금상은요?”

“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정말로 다른 길드원들은 기이한 현상들을 하나도 겪지 못한 얼굴이었다. 설마… 그 과정들을 전부 나만 겪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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