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좀 으스스하다….”
통로 안으로 들어서자 급격히 온도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로 기분 나쁜 서늘함이었다.
포르타가 만들어 준 장비는 기본적으로 온도 변화에 덜 민감하게 해 주었다.
해가 떨어져 쌀쌀해지는 밤공기가 맨살인 볼에 닿을 때에나 그 온도를 가늠할 수 있지, 장비에 뒤덮인 신체는 항상 적당한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통로를 가득 메우는 서늘함은 마치 영혼 자체를 꽁꽁 얼리는 것 같았다.
아직 날 위협하는 어떠한 적을 만난 것도 아닌데 금방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바짝 긴장하게 된다.
오히려 폭풍 전의 전야처럼 이렇게 고요한 순간이 더 버티기 힘든 기분이다.
뭔가 있는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차라리 나타날 거면 빨리 나타나라!
꺄르륵….
“악! 방금 뭐였어?”
나도 모르게 메스키트를 바짝 끌어안고 말았다.
“왜 그래요?”
“방금 웃음소리 들리지 않았어?”
분명 귓가에 어린아이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떨어지는 물소리나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확연한 소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메스키트는 이 소리를 듣지 못한 표정이었다.
“방금 웃음소리가 들렸나요?”
“왜 그래…. 정말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농담이 아니랍니다. 전 정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어요.”
“그럼 내가 환청을 들었나….”
하긴, 나보다 예민한 메스키트가 그런 소리를 놓쳤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주변에 무엇이 있다면 금방 알아차릴 만큼 감이 뛰어났다.
후…. 너무 긴장한 탓에 환청까지 듣다니.
혹시 내가 너무 길드원들과 함께 다니는 데 익숙해져서 따로 떨어지니 겁쟁이가 되어 버린 걸까?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호기롭게 통로를 가장 먼저 통과하는 건 나라고 외쳤는데 이쯤 되니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아무리 환청이라 해도 어쩐지 무서워져 메스키트에게 바짝 붙은 채 끝없는 통로를 계속 걸어 나갔다.
통로는 거대한 메스키트의 몸집으로도 꽉 차 비좁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는 진정할 수 없었다.
메스키트는 딱히 내 행동이 불편하단 티를 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먼저 내 어깨를 한 팔로 감싸 안은 채 천천히 발걸음을 맞춰 주고 있었다.
가던 도중 수정 바위들을 발견했다.
밖의 커다란 수정 바위까지 빛을 보내는 것이 분명해 보였는데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은 흙더미에 덮여 있거나 더럽혀져 있었다.
이미 통로 밖에서 안의 수정 바위들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가장 안쪽에 있던 바위들도 이 상태라면 다른 4개 통로의 바위들도 빛을 반사시킬 수 없는 상태인 것이 분명했다.
이건 단순히 동굴 전체를 밝게 만드는 것을 떠나, 수정 바위를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동굴을 통과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처럼 느껴졌다.
수정 바위를 발견한 것을 제외하고 다시금 아무것도 없는 길만 쭉 이어졌다.
“우리 혹시 같은 곳을 계속 맴도는 건 아니겠지?”
어느새 한참을 걸어도 풍경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단순히 돌로 된 벽과 바닥만 존재하는 공간인 데다 무척 어두워 조명등만으로 바로 발아래의 공간까지만 확인할 수 있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제이, 너무 긴장한 것 같아요. 우린 지금 일방통행인 길만 걷고 있답니다.”
메스키트는 차분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날 달래주었다.
물론 이 상황에서 그녀가 내 의문에 동조라도 했다면 더욱 불안했을 것이다.
차라리 엘더나 마거리트를 불러낼까…. 둘이 떠들면 오디오가 빌 일이 없어서 분위기 전환이 될 텐데.
하다못해 실새삼이라도 불러와서 안고 있으면….
‘난 애완동물 따위가 아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된 이후로 아티팩트에서 쉬는 걸 전처럼 크게 마다하진 않는 그가, 내 생각을 알면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하하하….
방금 그 소리는… 내가 생각한 실새삼의 웃음소리가 아니었다.
생면부지의 어린아이 웃음소리였다.
“이번엔 진짜야! 진짜 들렸어! 환청 따위가 아냐. 정말 웃음소리를 못 들었어?”
“애석하게도… 전 정말 듣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확실히 뭔가 있는 것 같군요. 저는 느끼지 못하는 무언가를 제이가 느끼는 걸 수도 있어요.”
“드라이어드 중에 구태여 사람 웃음소리를 흉내 내는 종이 있을까?”
“음… 글쎄요.”
아니라는 거겠지?
그럼 대체 나와 메스키트밖에 없는 이 공간에서 누가 이렇게 기이한 소리를 내냔 말이야!
설마… 귀신?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았다.
“나… 이런 거엔 진짜 약한데… 시발….”
너무 약해서 게임도 공포 태그가 붙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왜 갑자기 귀신 타령이냐 해도 그게 아니면 대체 뭘로 이 웃음소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진정해요, 내 주인. 앞을 봐요. 뭔가 있어요.”
“뭔데? 뭐가 있는데? 귀신?”
“귀신이요? 후후후… 제이, 그런 걸 걱정했던 건가요? 음… 하긴 드라이어드는 죽으면 세계수의 품으로 돌아간다지만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는군요. 하지만 분명 어디론가 돌아갈 거예요.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썩고 영혼만 남아 세상을 떠돈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는 내 전 주인만 믿고 겁내는 줄 알았는데…. 제이도 똑같네요.”
여기 사람들은 귀신이나 유령, 악마 같은 심령적인 걸 잘 믿지 않는 걸까?
그러고 보니 이리스 파티와 있을 때도 그런 주제로 이야기해 본 적은 없었지.
애써 잡생각을 떨치고 팔을 길게 뻗어 조명등으로 앞을 밝히니, 메스키트의 말처럼 정말 뭔가가 있었다.
좁은 통로가 끝나고 둥글게 넓은 공동이 나타난 것만으로도 큰 변화였지만, 땅에서 우뚝 솟은 듯한 기이하고 새하얀 바위들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었다.
“석순?”
바위들은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고 보기엔 어딘가 어색했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진 석회가 쌓여 생긴다는 석순과 달리 위가 뾰족한 형태도 아니었고, 만들다 만 조각상처럼 군데군데 뭉툭하고 저마다 독특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바위의 높이도 하나같이 나와 비슷해서 마치 거대한 체스판 위에 놓인 하얀 말들 사이를 지나다니는 기분으로 천천히 구경했다.
“이런 게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여기 물이 있네요.”
메스키트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모를 뻔했다.
하마터면 잘못 밟고 빠질 뻔했네.
조명등으로 땅 아래를 밝히니 연못이라 하기엔 좁은 물웅덩이가 공동 중앙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시 보니 기이한 바위들은 웅덩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
“대체 이 바위가 뭘까….”
조심히 바위를 문지르니 어쩐지 만진 부위가 닳는다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조금 만진 걸로 바위가 닳는다고? 난 그렇게 힘이 세지 않은데.
“어…? 메스키트, 이 바위 좀 봐 봐. 정말 특이하게 생기지 않았어? 여기 이 부위는 눈코입을 닮은 것 같아.”
두 개의 동그랗게 조각된 부위와 오뚝한 부위, 그리고 그 아래 매끄럽게 호선을 그리며 푹 파인 부위.
가끔 특별한 무언가가 연상되는 자연물들이 있긴 했다.
그리고 내가 보는 바위는 유독 사람의 얼굴을 똑 닮았다.
“제이는 상상력이 풍부하네요.”
“여기 전체가 꼭 머리 같고, 여긴 팔?”
문득 가슴속을 차가운 칼날이 난도질하는 것 같은 섬뜩한 소름을 느꼈다.
“와… 이거 진짜 사람 같다. 꼭 사람이 돌이 된 것 같아.”
설마… 아니겠지.
“그리고 이 바위도 그렇네. 이 바위는 비교적 눈코입이 선명해…. 어… 이 바위도.”
한번 의식하고 나니까 보는 눈이 달라지고 의심이 확신이 되자 무섭도록 눈앞의 풍경이 확 바뀌었다.
공동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바위들은 더 이상 평범한 바위로 보이지 않았다.
전부 사람의 모습을 빚어 놓은 조각상들처럼 보였다.
이건 단순히 내가 겁에 질려 보이는 광경이 아니었다.
정말로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 전부 머리와 상체의 부위가 나뉘어 있고 뭉개져 제대로 확신할 순 없으나 분명 이목구비의 위치가 구별은 되는 얼굴이 존재하고 있었다.
“전부 사람의 형태야.”
내 말에 메스키트는 오랜 시간을 들여 조각상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정말… 그렇네요.”
그녀는 결국 내 의견에 동의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해 놓은 거야.
왜 하필이면 사람 형태를 조각해 인적이 드문 곳에 잔뜩 세워 뒀단 말이야?
“이건 단순한 돌이 아니에요. 소금이네요?”
“응? 소금이라고?”
바위를 문질러 보던 메스키트가 의아하단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한 말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건 아주 쉽고 단순했다.
난 손가락으로 살짝 바위를 문질러 아주 살짝 혀를 댔다.
“앗, 짜. 정말 소금인가 본데.”
진짜 소금이었다.
긴 시간 동안 통로를 걸어 발견한 장소에서 우릴 맞이하고 있는 것은 소금으로 만들어진 사람 조각상들이었다.
다른 길드원들도 우리와 같은 광경을 보고 있을까?
오랫동안 여행을 다녔던 이리스는 이것들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까?
“메스키트… 이런 거 본 적 있어?”
“아니요. 저도 처음 보는 광경이랍니다.”
“이것들이 우릴 공격할까?”
“도저히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군요. 그저 빨리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볼 것 없는 장소예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지만 그녀 역시 이 장소가 굉장히 꺼림칙하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래, 얼른 빠져나가자.”
아무런 힌트도 얻지 못하고 불쾌함과 의구심만 잔뜩 얻은 장소였다.
다신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무섭긴 해도… 신기하단 말이지.”
넓은 공동은 금방 끝이 나고 다시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사람을 닮은 조각상에… 거기다 소금으로 만들어졌고….”
기이한 바위들이 하나 같이 날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분명 꿈에 한 번쯤 그 장소가 나타날 것 같았다.
잠깐… 나만 바라봤다고?
“왜 조각상들이 전부 같은 방향만 바라보고 있었지?”
놓여 있는 위치가 불규칙적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주시하고 있던 방향은 우리가 걸어 들어온 방향이었다.
“조심해요.”
메스키트가 딴생각을 하느라 정신이 팔린 날 잡아당겼다.
“어? 여기에도 조각상이 있네….”
공동만 장식하는 용도라 생각했던 조각상은 기이하게도 통로 중간중간에 서서 우리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 조각상도… 날 바라보네?”
그렇게 많은 조각상들이 전부 한 방향만 보는 이유가 있을까?
그때였다.
“제희야.”
“뭐야? 방금?”
“제이, 왜 그래요?”
날 제이가 아닌 제희라고 부르지 않았어?
“제희야. 여기야. 여기를 봐.”
너무 놀라서 다리가 얼어 버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걸음을 뗄 용기조차 완전히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이 세계에서 내 진짜 이름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메스키트가 부르는 ‘제이’와 뒤쪽에서 들려온 ‘제희’라는 발음은 확연히 달랐다.
분명 그 소리는 내 진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제희야.”
더구나… 이 목소리는… 이곳에서 절대 들릴 리 없는 우리 엄마의 목소리였다.
“제희야, 여길 봐.”
“제희야, 카페 갈래?”
“제희야, 과제하러 가자.”
온몸이 굳어 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한 채 앞만 보며 가만히 있자니, 목소리는 우리 엄마에서 아빠 그리고 대학 친구 등등 내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로 바뀌어 갔다.
“메스키트… 제발 이 목소리가 나만 들린다고 말하지 말아 줘.”
하지만 슬프게도 그녀는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