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라….”
남들이 듣기엔 무척이나 구미가 당기는 단어지만…. 일단 기쁜 척 표정을 연기했다.
그러면서 내 무한 다이아에서 바쁘게 생활하는 난쟁이들을 떠올렸다.
걔들이 그걸 좋아할까?
분명 투자 명목으로 여태 내가 사람 대 사람으로 지불했던 금액 중 비교도 안 될 만큼의 큰 다이아가 빠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난쟁이들은 간만의 대량 인출에 환호하겠지.
하지만 훗날 공동 사업이 성공해서… 농작물이 풍년이라도 맞게 된다면?
몇 배가 되는 회수금이 내게 돌아올 텐데…. 난쟁이들이 가만 보고 있을 리가 없는데….
아니 좋은 일인데…. 분명 투자금을 회수하는 건 좋은 일이긴 한데….
왜 난 다이아가 늘어나는 걸 걱정해야 하냔 말이다!
어쨌든 아직 먼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회수한 다이아를 내 월렛으로 보내지 않고 따로 굴릴 만한 방법을 생각해 봐야 될 것 같다.
“28번째 테라리움은 그 공동 사업에 끼기엔 지형상으로 애매한 위치네요.”
평지가 상대적으로 많은 10번대 테라리움에 비해 20번대 테라리움은 산 지형이 많았다.
특히나 28번째 테라리움으로 오는 길목엔 높은 산 고개가 듬성듬성 깔려 있었다.
농작지로 개간하기엔 적절하지 못한 지형인 것이다.
“판매 중개에 나서면 될 것 같습니다. 큰 고객은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한 자릿수 테라리움들이 될 테지만, 그들에게 모두 팔아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수요자를 많이 유치해야 적당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28번째 테라리움은 20번대 테라리움으로의 판매 중개책이 된다면 우선 판매권을 명목으로 다양한 권익들을 챙길 수 있지 않을까요?”
10번대 테라리움에서 대량 생산된 식량의 우선 판매권을 주는 대신, 다른 판매권에 대한 우선권을 가져온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순 없으니. 이를테면 어떤 테라리움에선 그곳에서 생산되는 상등급의 공예품을 28번째 테라리움에 우선적으로 납품하는 거지.
그중 태양의 보석이 생산되는 테라리움이 있다면 나로서는 아주 환영하는 상황이었다.
26번째 테라리움에선 루비가 생산되고 있으니 루비를 내가 독점할 수 있다면?
엘더들에게 루비로 만든 장신구를 둘둘 둘러 주면 기뻐 날뛸 것 같은데.
“28번째 테라리움과 16번째 테라리움은 특수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경로상 불의 위협이 거의 없는 아주 안전한 무역로라고 볼 수 있어요. 28번째 테라리움이 중개책을 맡는 건 좋은 방안이라고 봐요.”
회수금보단 떨어질 다른 콩고물들에 기뻐하는 날 보며 키르켄이 ‘역시 그럼 그렇지.’란 얼굴을 했다.
“제이 님은 양손에 테라리움을 쥐신 것만큼 욕심이 많으신 분이니 분명 사업 이야기를 기쁘게 받아들이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음… 내가 욕심이 많은 이미지였나?
“물론 이번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키르켄 님께도 제가 성의를 보일 테고요.”
그래서 그쪽은 어떤 콩고물을 받아먹으려는 걸까나?
키르켄은 내 말에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문득 그의 두 눈이 다이아 모양으로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공동 사업 연합을 10번대 테라리움의 행정 관리원들이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잘 풀린 것을 알게 된다면 몇 날 며칠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고 다니겠군요. 투자금에 대한 정확한 확정 내역은 정식 회의를 통해 결정 후 제이 님께 전달드리겠습니다. 회의엔 제이 님의 대리로 16번째 테라리움의 보좌관이 참석할 겁니다. 그는 잇속을 매우 잘 따지는 사람이니 제이 님께선 안심하고 이곳에 머무르셔도 될 겁니다.”
그의 말대로 파필리온이 호구 잡힌다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그는 악착같이 이득을 남겨야 고스란히 자신의 월급으로 돌아오니 열심히 할 거다. 믿고 맡길 만하지.
“평야를 개간하는 것도 일이지만 더 넓히기 위해 주변 고지대를 다지는 것도 염두 중입니다. 물론 근방에 자리 잡은 군락지가 있다면 안전하게 이주시키는 비용도 필요하겠지요.”
“개발로 인해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해 주세요. 보통 사람이 하는 일 중에 자연에 피해가 안 가는 일이 드물긴 하지만 최소화만 시킬 수 있다면 그에 필요한 다이아는 얼마든지 지불할 테니까요.”
“역시 드루이드시니 그런 부분을 걱정하실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세계수와 드라이어드의 은혜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찌 자연을 등한시하겠습니까? 자연 보호는 제이 님의 배려 안에서 철저하게 이뤄질 겁니다.”
내 다이아가 굽어살피겠지.
“땅을 버려야 할 만큼 위협이 될 만한 큰 불이 최근에 10번대 테라리움 지역에서 목격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작은 불들이 벌레처럼 군데군데 좀먹을 수 있으니 수시로 인력을 파견해 살펴야 하지요. 다 키워 놨는데 몰래 들어온 불이 태워 먹으면 이 무슨 손해입니까?”
“드루이드를 고용할 테니 일반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다이아가 많이 들 테고요.”
“혹시 봐 두신 연계 업체가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해 주십시오.”
그래 봤자 내가 아는 인력 업체는 그레이트 빈 연합뿐이었다. 그들을 소개해 주고 빚이라도 달아 놓을까?
아마 28번째 테라리움을 복구하는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력이 요구될 것이다. 그들은 인력 소개소 업체로 중개 수수료를 챙기니, 이번 10번대 테라리움 공동 사업에 참여할 주요 업체로 선정된다면 아마 다이아를 쓸어 담겠지.
“음, 어쩌면 정식으로 테라리움에서 임무 의뢰를 발간하는 방법도 이용할 수 있겠네요. 마침 잘됐어요. 28번째 테라리움엔 곧 드루이드 양성소가 생길 예정이에요. 간간이 그곳으로 훈련생들을 훈련할 겸 보내는 것도 좋은 견학이 될 것 같네요.”
퀘스트 발생! 개간 중인 평야에서 불을 10개체 잡아라! (0/10)
개체를 처리 후 주변의 농부에게 보고해 주세요!
퀘스트 보상: 10다이아
꽤 그럴싸한 초보자 퀘스트잖아?
“그리고 연금탑에다 광범위한 토지에 급수를 할 수 있는 기계 개발 의뢰를 해야 할 겁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급수기로는 면적당 몇 대를 배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으니 아예 새로운 기계를 개발하는 것도 좋겠지요. 물론 대형 비료 살포기도 개발이 필요합니다.”
“아마 개발 비용이나 상용화에 맞지 않는 유지 비용 등으로 섣불리 연구에 도전하지 못할 확률이 커요. 뛰어난 연구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발판을 마련해 줘야 하는데….”
내 입장에선 참신하고 좋은 발명품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유지 비용 때문에 윗선에서 여러 번 반려를 당해 어려움을 겪었던 루프와 필라를 떠올렸다.
발명에 성공한다면 분명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연구원들은 실패에 대한 페널티를 두려워해서 쉽사리 지원하지 않을 확률이 컸다. 루프만 해도 생활고로 인해 빚더미를 지고 도박에 빠질 정도였으니까.
“대회를 열고 상금을 거는 건 어떨까요? 또한 연구 신청자들에겐 기획서를 받고 일종의 투자 명목으로 지원금을 선불로 지급해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물론 이 모든 투자의 주체는 제 다이아를 이용하되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닌 10번대 테라리움, 그 중심엔 16번째 테라리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연금 학회에 16번째 테라리움이 불미스러운 일로 밉보인 전적이 있으니 나서서 연금술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이미지를 심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상용되기 전 테스트 단계의 제품들은 28번째 테라리움에서 앞장서서 사용하겠다고도 전해 주세요. 상용화되지 않고 폐기되더라도 다이아를 벌 수 있다는 걸 알면 부담이 많이 줄어들 거예요.”
“그렇다는 건 28번째 테라리움도 농장 운영을 염두해 두고 있다는 걸로 봐도 될까요?”
“저희도 특산품을 하나 개발해서 홍보도 하고 관광객도 유치해야죠. 마침 여기 그걸 위해 힘써 줄, 능력 좋은 직원분들도 뽑아 놨으니 조만간 독보적인 브랜드 하나가 이름을 알릴지도 모르겠네요.”
내 말에 세페스를 비롯한 직원들이 결의에 찬 얼굴이 되었다.
“18번째 테라리움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저희 테라리움이 영광스러운 첫 구매지가 되고 싶군요. 제이 님이 품질 보증을 하시니 시장에만 나온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구매하겠습니다.”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드는 키르켄에게 손뼉이라도 쳐 주고 싶었다.
“공동 사업 관련 안건은 경영 부서와 사업 및 무역 부서가 함께 추진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는 당장이라도 소식을 전하러 자리를 떠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 테라리움이 대체 어떤 특산품을 개발할지 궁금한 나머지 슬쩍 정보라도 엿듣기 위해 남고 싶어 하는 것도 느껴졌다.
“제 다이아는 도망가지 않아요. 하지만 참을성은 없는 편이라 금방 다른 곳에 눈독을 들일 수도 있는데….”
“하하, 분명 초기 투자금이 엄청나게 필요할 거라 미리 언질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부담스러워하는 눈치가 아니시군요. 역시 호탕하십니다. 휴가는 끝났군요. 어서 18번째 테라리움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겠습니다.”
언질…. 솔직히 말하자면 키르켄이 입을 열 때마다 난쟁이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입체 서라운드로 들릴 정도였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다이아 금고가 테트리스 하듯 숭덩숭덩 빠져나가는 모습이 연상되었으니까.
키르켄은 선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추후 나올 이야기가 28번째 테라리움의 내부에서만 진행되길 바라는 내 눈치를 읽고 바쁘게 집무실을 나갔다.
만약 콩고물에 집착한 나머지 끈질기게 엿들으려 했다면 그에 대한 호의가 순식간에 부담으로 변질됐을 것이다.
“행정 관리원님, 제가 들은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면… 테라리움들이 대규모로 진행하는 공동 사업에 홀로 투자 대주주가 되시려는 것 같은데… 사실인가요?”
“바로 들으셨네요. 아시겠죠? 전 다이아가 많으니 제가 관리하는 28번째 테라리움 역시 다이아가 많다고 볼 수 있어요. 여러분들께서 저희 테라리움을 선택하신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 드릴게요. 사업? 좋아요.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뭐든 도전해 보세요. 테라리움의 발전에 기여만 할 수 있다면 전 얼마든지 지원해 드릴 테니까.”
“테라리움에 대대손손 뿌리를 내리겠습니다.”
과수원 직원들을 채용한 후 내 근시안적 목표는 하나였다.
이직률이 0에 수렴하는, 그야말로 모든 근로자들이 꿈꾸는 직장.
소문이 널리 널리 퍼져서 각지에 있는 인재들이 제 발로 우리 테라리움으로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 28번째 테라리움의 특산품을 고민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