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3화 (273/604)

푹 잤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미미한 두통이 머릿속을 헤집는 날파리처럼 귀찮게 굴었다.

전날 내가 너무 무리했던 걸까? 아니면 아침마다 하던 운동을 빼먹었다고 벌써 몸이 굳기라도 하는 걸까?

그리고 꿈을 꿨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쩐지 눈을 뜨자마자 실새삼 생각이 유독 강하게 난다.

꿈에서 실새삼이 나왔던 걸까?

혹시 내가 어제 뒤늦게 합류한 마거리트의 성장은 걱정하면서 실새삼은 외따로 두었기 때문인 걸까?

따지고 보면 실새삼 역시 마거리트보다 훨씬 늦게 합류한 내 드라이어드였다.

바위손의 당부처럼 엇나가지 않게 잘 가르쳐 키워야 했는데.

아기부터 시작하는 드라이어드는 도통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성장 욕심이 많은 내 드라이어드들과 달리 실새삼은 양분 열매도 잘 안 먹으려고 했다.

아기들이 이유식을 먹는 것처럼 실새삼에겐 양분 열매가 아직 버겁게 느껴지는 걸까?

“제이, 의외네요.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다니.”

내가 깬 기척을 느꼈는지 메스키트가 약간 놀란 기색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걸어 왔다.

방 안이 어쩐지 수명이 다한 조명을 켜 둔 것처럼 빛이 부족했다. 완전한 아침이 아닌 새벽인 듯싶었다.

“오늘 해야 될 일이 많아서 나도 모르게 일찍 일어났나 봐.”

하지만 오늘은 시험 일정이 몰려 있던 어제보단 덜 바빴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돼서 침침한 눈을 비비고 있는데 메스키트의 얼굴이 불쑥 가까워졌다.

“응? 놀라라. 왜 그래?”

“제이, 눈이….”

의문을 가득 담은 목소리였다.

“눈? 내 눈이 왜? 뭐 또 잘못되기라도 한 거야?”

세계수 작작 해라. 난 금색 눈도 적응하는데 힘들었단 말야. 이번엔 뭔 색으로 바꿔 놓은 거냐? 무지개면 빨대를 뽑아 버릴 줄 알아!

“원래대로 돌아왔네요?”

“원래대로?”

“네, 제이를 처음 봤을 때와 같은 차분한 밤색 눈이네요.”

“어라?”

핸드폰을 꺼내 거울 삼아 내 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자기주장이 심한 금빛이 보이지 않았다.

“어? 정말이네. 왜 갑자기….”

그러고 보니 금안을 얻게 된 이후로 달라졌던 시야가 좁아진 느낌이었다.

방 안에 깔린 어둠을 잘 느끼는 것도 그러했다.

부담스러운 금안이긴 해도 특별한 시야를 갖게 해 주는 점에선 참 좋았는데. 마치 내게 특수 스킬이 생긴 기분이었으니까. 그런데 바뀔 때도 그렇더니 갑자기 원래대로 돌아가 버리다니.

“바뀐 이유는 잘 모르겠어…. 헐, 설마 내 몸에 문제라도 생긴 거 아냐?”

메스키트는 아무 말 없이 날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뇨, 제이의 영혼은 언제나처럼 고요하고 맑아요.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지 말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해요. 전 제이의 그 눈도 좋답니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을 막 집어삼키고 열기를 흩어지게 한 어스름을 닮은 눈이라 더욱 그렇답니다.”

메스키트의 말에 어쩐지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무슨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흠흠, 일찍 일어난 김에 부지런 좀 떨어 봐야겠어. 눈은 언젠가 또 제멋대로 바뀌겠지, 뭐.”

침대에서 일어나 간단히 몸을 풀었다.

“어라? 실새삼은 아직도 아티팩트 안에 있는 거야? 별일이네.”

내 침대 주위나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드라이어드들 중 실새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제 내게 뭐라고 말하더니 혼자 아티팩트로 슝 도망치고 나서 아직도 안에 있는 건가?

내 드라이어드들과 함께 있는 것을 꺼리며 항상 기를 쓰고 내 곁에 붙어 있으려고 하더니 말야.

손을 들어 아티팩트 안을 바라보았다.

“어디 보자 아티팩트 안에 실새삼의 구역이… 안 보이네?”

내 드라이어드들은 모두 테라리움 아티팩트 안에 저마다의 구역을 정해 꾸몄다.

초기엔 허허벌판과 같았던 아티팩트 안이었지만 드라이어드 각자의 자생 필드에 맞춰 구역이 변모하고 그들의 모체들이 각각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아티팩트 안은 마치 지구를 작게 축소해 놓은 것처럼 각양각색이었다.

아티팩트 안에서도 유독 자기주장이 심한 구역은, 모래가 드넓게 깔리고 위용이 대단한 신전이 자리한 메스키트의 구역과 하얀 꽃나무가 흐드러지게 피고 온갖 가구로 치장해 놓은 엘더 플라워 구역이었다.

데이지2가 데이지에 비해 바지런하고 꾸미기에 욕심도 많은지, 과수원 내부처럼 아늑하게 꾸며진 레드 데이지 구역도 바로 근처였다.

내겐 자생 필드가 노멀 필드인 드라이어드들이 많은 편인데 그들은 구역도 이웃해서 잘 나눠 쓰고 있었다. 공원의 풀밭 한 뙈기를 보는 듯한 민들레 아이들의 소박한 구역도 나름대로 열심히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바위가 곳곳에 솟아오른 땅엔 외로이 피어난 듯해도 모체의 주인 되는 드라이어드의 성격이 잘 보이는 가막살나무도 한 그루 보였고, 잘박한 늪을 중심으로 자수정 같은 꽃을 틔운 바곳의 구역도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도 실새삼의 구역은 물론 실새삼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작아서 구역을 만들 정도가 아닌 건가? 그건 그렇고 대체 어디 간 거야? 데이지, 안에서 실새삼 좀 데려와 줄래?”

물어와. 데이지가 전광석화처럼 실새삼을 잡아 왔다.

“뭐야? 왜 애가 축 처져 있어?”

“음, 제가 발견했을 때부터 이 상태였어요.”

데이지가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실새삼은 마치 끈 떨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왜 그래?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나 좀 봐 봐. 뭐 잘못 주워 먹은 건 아니지?”

데이지에게 실새삼을 넘겨받아 아이 대하듯 이마에 손을 올려 보았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아니 드라이어드도 사람처럼 아프면 열이 나긴 할까?

실새삼은 내가 볼을 찔러보거나 등을 토닥여도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꾀병.”

이를 지켜보던 짭신 엘더가 새초롬하게 말했다.

“꾀병 아냐.”

잠이라도 자는 줄 알았던 실새삼이 곧바로 반응했다.

“흥, 제가 그런 모습 한두 번 보는 줄 아나요? 날 이용해 바위손의 군락지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나 어려운 일을 시킬 때면 그렇게 아픈 척을 했으면서.”

“그런 기억은 없어. 그땐 아픈 척을 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좀… 지칠 뿐이야.”

실새삼이 부스스 눈을 떴다.

“어라? 넌 눈이… 왜 그래?”

밍근한 커피 크림 같았던 그의 두 눈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햇빛 한점 들지 않는 우울하고 어두운 우기의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실새삼은 내 물음에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난 집요하게 그의 눈을 쫓아 바라보았는데 어딘가 이상했다.

나와 눈을 마주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너… 설마 눈 안 보여?”

“…….”

“눈이 안 보인다고? 내가 안 보는 사이 드라이어드의 능력에 당하기라도 했어?”

내 말에 다들 반사적으로 마거리트를 바라보았다.

드라이어드들이 자신을 주목하자 당황한 마거리트가 양손을 저으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나 아니야!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난 내 진리랑 함부로 능력을 쓰지 않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이 내가 겨우 이제 꽃 틔운 나무 따위에게 당할까….”

“하지만 지금은 무척 쓰고 싶긴 해.”

마거리트는 실새삼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갑자기 금빛이 사라진 내 눈, 그리고 동시에 이상해진 실새삼의 눈.

“너 내게 뭐 했어? 내 눈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과 네 눈이 그렇게 된 것, 서로 관계되어 있지?”

“나도 모른다. 갑자기 이렇게 됐을 뿐이야.”

“갑자기? 너도 모르는 사이에?”

대체 뭔 짓을 했길래 자체 디버프가 걸려 있는 거니?

“내 주인, 제이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한 거라면…!”

메스키트는 실새삼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실새삼이 기를 쓰고 내게 붙어 다니려는 가장 큰 이유가 그녀이기도 했다. 그녀는 엘더와 마거리트를 겁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위협적인 모습으로 실새삼을 다그쳤다.

“이 드루이드는 내 주인이기도 하다. 내 과거가 너희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지금의 나는 너희가 드루이드를 생각하는 마음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어쩐지 잠에서 깨자마자 실새삼 생각이 많이 난다 했다.

잠든 사이에 대체 우리 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안심해라. 나는 모르는 무의식이 내 눈을 이렇게 만들었다 하더라도 다 이유가 있겠지. 모습은 이래도 난 필드의 가디언이다. 우매한 것들과 차원이 달라.”

“바이오 필드는 재수 없어.”

“난 내 필드의 가디언을 만나는 날이 아주 나중이었으면 좋겠다. 저런 녀석 같은 가디언이 내 필드의 가디언이라면 얼굴 들고 살 수 없을 거야.”

떨떠름해하는 엘더들을 달래 실새삼을 살펴보게 했다.

혹시라도 실새삼의 몸에 본인도 모르는 문제가 있나 걱정됐기 때문이다.

힐러들이 보는 건 또 다르겠지.

하지만 그들은 실새삼은 그저 덜 자란 몸이라 연약한 것일 뿐, 문제가 없다고 진단해 주었다.

거짓말로 보이진 않았다.

디버프 해제를 할 수 있는 바곳에게도 능력을 사용해 보게끔 종용했으나, 잿빛으로 변한 실새삼의 눈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체 실새삼은 왜 멀쩡한 내 금안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자신의 눈을 그렇게 만든 걸까?

내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 장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은둔자의 정원에서 벽화를 해석함으로써 갑자기 발현하게 된 내 기이한 금안이 어쩌면 내게 결코 이로운 것만은 아닐 거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 된 이상, 날 떼어 놓고 다니지 마.”

실새삼은 메스키트를 의식하는 듯한 말투로 내게 꼭 붙어 안겼다.

그렇지 않아도 애 상태가 이상하니 곁에 두고 볼 생각이었다.

“설마 계속 눈이 그런 건 아니겠지?”

“어쩌면 하얀 꽃들의 진단처럼 내가 너무 어린 모습이라 이런 상황일 수도 있다. 완전히 성장한 후의 나는 누구보다도 강하니, 자라기만 한다면 눈은 곧 되돌아올 것이다.”

“네가 말하는 것처럼 되면 좋을 텐데.”

오늘따라 그가 어리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하여 확인했기 때문일까?

아직 묘목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할 만큼 어린 드라이어드라 그런지 유독 영혼의 연결이 다른 드라이어드들보다 가늘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한 뭐든 지원해 줄 테니 쑥쑥 자라라. 어려서 전투에 참여할 수도 없으니 도통 어떻게 키워야 할진 모르겠지만.”

난 민들레 아이들의 정보를 확인했던 것처럼 뒤늦게나마 핸드폰을 꺼내 실새삼의 드라이어드 정보를 찾았다.

양육에 대한 힌트라도 얻을 겸이었다.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 실새삼이 제멋대로 일방적으로 나와 영혼의 연결을 맺은 덕에 확인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실새삼 (Cuscuta Australis)

칭호: 무자비한 파괴자

꽃말: 의지

자생지: 바이오 필드 (★★★★★)

필드 발생 확률: middle-high (★☆☆☆☆)

가치: 약재 (★★★☆☆)

특성: 공격형, 지원형

최종 확정 등급: 유니크(Unique)

다른 식물의 수분을 빨아먹고 살기 때문에 반드시 숙주가 필요한 식물이다.

7~8월에 전투 보너스를 받는다.

발생 시 인근의 모든 식물을 전멸시키기 때문에 섣불리 재배하면 안 된다.

[현재 단계에선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있습니다.]

[현재 단계에선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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