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8화 (268/604)

내내 바소르를 주시하느라 뒤늦게 진상을 알게 된 이리스는, 노토스의 장담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제퍼가 붙들지 않았다면 당장 바소르를 죽이러 뛰쳐나갈 기세였다.

하지만 아직 나를 대상으로 한 셀럽 킬링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불발된 그를 대놓고 처벌하긴 어려웠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물론 제 손으로 직접 처리하진 않을 겁니다. 길드원들의 손을 빌리지도 않을 거고요.”

“제이 님, 정말 그를 저대로 떠나게 둘 건가요?”

이리스가 답답한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가만둘 거라곤 안 했어요. 알게 된 정보를 써먹어야죠.”

난 디케와 에이레네 자매를 내 앞에 앉혔다. 그리고 집무실 책상에서 이미 그들에게 전달되었을 고용 계약서와는 다른 계약서를 찾아 건넸다.

“원래 오늘 하루는 합격자분들께서 푹 쉬게 두고 내일부터 정식 부서 발령을 나누려고 했는데, 두 분의 경우는 조금 서두르고 싶네요. 제가 두 분께는 어떠한 특별한 부서로의 위임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만약 정말로 가고 싶으신 자리가 있으시다면 지금 말씀 주세요.”

내 말에 자매는 서로를 바라보며 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부서가 있나요?”

“현재 28번째 테라리움에는 정형화된 부서 리스트는 없습니다. 내일 정식 직원이 되시는 분들의 지원 여부와 내부 회의를 거쳐 꼭 필요한 부서를 파악 후 유동적으로 부서가 설립될 예정이에요. 이를테면 경영이나 무역 관련 부서는 꼭 생성될 예정이지만…. 즉, 두 분께서 꼭 가고 싶으신 부서가 있으시다면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10번대 테라리움은 연합을 맺어 공동 사업을 추진하고 싶어 했다. 내가 관리하고 있는 16번째 테라리움만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28번째 테라리움이 끼어들 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키르켄은 두 테라리움 모두 내 소속이란 것을 알고 있으니, 기꺼이 사업의 연장선에 28번째 테라리움을 추가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제 발로 내려온 것이겠지. 그러니 사업과 무역을 나 대신 도맡아 줄 부서는 꼭 필요했다. 물론 어울릴 만한 사람도 2차 시험에서 미리 봐 두었다.

그 밖에 행사나 관광, 예술 등의 다양한 부서가 필요하겠지.

“저희에게 부서의 선택권을 주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보통은… 저희의 사정을 고려해 복지와 관련된 부서를 제안하실 거라 생각했어요. 또한 저희가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 할 거라 생각하신 분들도 많으시고요.”

사고로 인해 후유증을 앓는 자매들. 어쩌면 둘의 말처럼 남들은 자매들이 자신들과 같은 사정의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저흰 남을 돕는 것도 좋지만, 단순히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기 위해 어려움을 극복해 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한 것입니다.”

둘은 복지와 관련된 부서에 가는 것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단 부서를 고민 중이신 걸로 보이시니 제가 먼저 제안 드릴게요. 두 분께서 제 보좌관직을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

“보좌관이요?”

“네, 행정 관리원의 보좌관 말입니다. 디케의 능력을 확인했을 때, 바로 마음먹었어요. 저는 아직 28번째 테라리움에 정식으로 보좌관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따로 면접을 보거나 아니면 직원 중에 뽑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두 분이야말로 제 행정 관리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행정 관리원의 보좌관은 테라리움 내에서 행정 관리원 다음으로 보안에 신경 써야 하는 직급이었다.

또한 셀럽 킬링의 경우처럼 누군가 나를 향해 작정하고 정보 교란을 마음먹는다면, 보좌관은 정보 보안의 최후의 방어선이 되어야만 했다.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뛰어난 능력을 개발한 둘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떠한 위기가 닥쳐와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능력이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좌관 정도 될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또한 위조문서를 감별해 낼 수 있는 디케와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거짓된 정보까지 읽어 낼 수 있는 에이레네라면, 그야말로 정보 보안의 스페셜리스트들이나 다름없었다.

둘은 정말로 내 곁에 가까이 두고 싶을 만큼 욕심나는 인재들이었다.

물론 둘이 내 제안을 수락해 줘야 하지만.

“정말 저희 둘을 보좌관으로 둬도 괜찮으신가요?”

“괜찮다니요? 저는 지금 두 손으로 비는 심정인데요. 제 보좌관이 되어 주신다면 최고의 대우를 약속드릴게요.”

둘은 재는 것 없이 바로 내 제안을 들어주었다.

아직 섬 출신의 사람을 한 명 더 보좌관으로 고용하는 일이 남아 있지만, 일단 한시름 놓은 기분이다.

“저희에게 단점이 있음에도 행정 관리원과 가장 가까운 자리를 흔쾌히 제안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보좌관은 테라리움에서 직원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단점이 있고 두 분은 그 단점을 상쇄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개발해 내셨으니까요. 그럼 악덕 업주로 보일 수는 있지만… 두 분은 다른 직원들과 달리 하루빨리 업무를 수행해 주실 수 있을까요?”

“첫 업무를 훌륭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둘에겐 루프가 연금술사들을 상대하며 벌였던 일의 확장된 버전을 지시했다.

그녀는 여론을 집중시키기 위해 모든 10번대 테라리움 소식지의 1면 광고 자리를 사서 의견을 실었다.

“바소르가 셀럽 킬링을 당하게 만들 거예요. 셀럽 킬링을 행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라고 했죠? 그를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예요.”

마케팅의 가장 단순한 방법은 자본으로 밀고 들어가는 거다. 인구 많고 자본 많은 모 나라가 우리나라에서 잘 써먹는 방법이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멈추는 모든 구간에 광고를 싣는다. 철저히 바소르란 인물을 셀럽으로 브랜딩시켜 주마.

돈만 있으면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지하철역을 광고로 도배하는 것은 물론, 도로를 지나다니는 버스나 택시에도 광고를 싣는다. 물론 그 광고를 본 사람들이 실제로 구매로 이어지는 것은 드물다. 하지만 인식에 꽂아 넣을 수는 있다.

사람들은 어디선가 알게 모르게 지속적으로 광고를 많이 접한 상품을 유명한 상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시들링의 경우도 길드 수배범이 되어 수배지가 온 테라리움에 나돌다 보니 악명 높은 애가 됐다.

내가 무한의 다이아를 가지고 벌일 바소르에 대한 복수는, 그를 상품화시켜 세상에서 가장 단기간에 유명해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에이레네는 기억력도 좋답니다. 한 번 본 것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아요.”

“디케는 손재주가 좋아요. 잉크뿐만 아니라 물감도 잘 다룹니다. 바소르의 얼굴을 정확히 그려 낼게요. 이름을 바꾸는 것은 쉽지만 얼굴은 어려우니까 세상 모두가 그의 얼굴을 알게 만들겠습니다.”

내 생각을 전해 들은 둘은 금방 계획을 세워 나갔다.

“셀럽 킬링의 복수로… 대상자를 셀럽 킬링 당하게 만든다라…. 이건 제이 님이 아니면 하기 힘든 복수네요.”

키르켄은 내가 작정하고 다이아를 사용할 낌새를 보이자 자신의 테라리움의 소식지의 광고 칸도 슬쩍 끼워 넣으며 탐욕스럽게 웃었다.

“제 보좌관이 된다면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행할 모든 일에 대해 절대 다이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비용은 상관없어요. 단기간에 섭렵할 수 있는 모든 소식지의 광고 칸과 배포할 수 있는 광고지를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다이아의 출처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아서 좋다.

자매들이 행동력이 좋다면 바소르의 얼굴은 금방 널리 퍼져 나가게 될 것이다.

주목할 만한 최고의 드루이드, 바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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