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리트!”
이 못된 망아지, 어디 있어!
나와 눈이 마주친 데이지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쓱 비켜섰다. 그러자 멀뚱멀뚱 날 바라보고 있는 마거리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는 내게 평소처럼 해맑게 달려오려다 멈춰 섰다.
“멋대로 행동하면 어떡해? 하마터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잖아!”
질타를 담은 큰 소리가 나가는 건 참 오랜만이란 생각이 든다.
날 빤히 바라보는 노란 눈이 당황으로 젖어 들었다. 마치 내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 못했던 것처럼 보였다.
“나… 난… 내 진리가 나만 빼놓고…. 나도 할 수 있는데….”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 있으란 명령을 좀 빙 둘러서라도 내려 둘 걸 그랬나?
하지만 묘목도 아닌 마거리트를 자꾸 실전에서 제외시킬 수도 없고….
마거리트는 다들 전투에서 무언가를 하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소외된 느낌을 받았다고, 너무 천진난만하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네 상태론…!”
가까스로 입을 다물고 말을 골랐다.
도움이 안 된다? 그거야 말로 드라이어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
더욱이 마거리트처럼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드라이어드에겐 평생을 남을 상처가 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나도 내 진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단 걸 보여 주고 싶었어.”
항상 명랑하던 목소리가 위기를 감지한 것인지 주눅 들어 갔다.
“그 행동이 정작 제이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해도, 네가 잘했다고 말할 수 있겠니?”
잠자코 있던 메스키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진리를 난처하게 만들었어?”
마거리트는 겁먹은 표정으로 메스키트를 바라보았다. 그 처량한 모습과 그녀의 얼굴에 자리 잡은 검은 문양에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지만 다잡았다.
언제까지 교육을 메스키트에게 떠넘길 순 없었다.
그래, 이건 어쩌면 내 잘못도 있었다.
“물론 넌 드라이어드니까 드루이드를 위해 행동하는 건 당연해.”
마거리트가 스킬을 사용하는 것은, 행동 자체만 놓고 본다면 엘더가 틈틈이 힐을 넣거나 메스키트가 방어 버프를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회복형 드라이어드니 힐을 사용하고 방어형 드라이어드니 방어에 힘을 쓰는 것처럼, 마거리트 역시 지원형 드라이어드니까 자신이 가진 스킬로 지원을 하는 것이다.
악의를 가진 채 작정하고 팀이 망하라고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른 드라이어드들은 확률형 스킬이 없기에 반드시 팀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하에, 가끔은 내 지시가 없어도 자신의 판단으로 알아서 전투에 개입하기도 한다.
만약 마거리트의 스킬이 확률성이 아니었다면 확실히 버프의 성격을 띠는 스킬이니 이런 부정적인 상황까진 벌어지진 않았겠지.
어쩌면 마거리트는 제멋대로인 성격이라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벌인다기보단, 확률형 스킬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를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사용하지 않는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마거리트는 생긴 것과 달리 완벽한 성목이 아니었다. 개화시킬 당시 들었던 것을 떠올리면 그녀는 막 아카데미에서 졸업한 림파와 같은 청소년 시기나 다름없었다. 즉, 사회 경험이 부족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스킬이 갖는 위험성에 대해 미리 인지하고 있던 난 사전에 무슨 조치를 취했지?
내가 마거리트를 개화시킨 후 얼마나 실전에 투입해 봤지?
그녀가 다른 드라이어드와 합을 맞추며 전투에 나서고 자신의 스킬이 반작용을 일으켰을 때, 전투의 결과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실질적으로 확인시켜 준 일이 있었나?
미리 대비책을 마련해 두고 그녀가 개입해 볼 때를 연습시키거나 하다못해 자주 곁에 두고 훈련이라도 시켜 줬냔 말이다.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그녀의 주인인 나였다.
드라이어드는 결국 드루이드가 육성하기 나름이었다.
스코풀루스의 라피도포라 드라이어드를 접하고 난 후 내 잘못이 더욱 크게 와닿았다.
그 드루이드는 자신의 드라이어드의 한계를 보고 그걸 감안하여 최선의 덱과 전략을 짰다.
만약 실전에서 라피도포라를 처음 사용해 보는 상황이었다면, 데이지와 단둘이 맞붙는 것만으로도 금방 패배해 나가떨어졌겠지. 라피도포라 자체는 최선을 다했을지는 몰라도 결과는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태생이 공격력이 약한 드라이어드의 잘못일까? 적재적소에 써먹지 못한 드루이드의 잘못이 아닐까?
“후….”
어쩌면 마거리트가 처음 모험을 떠났을 때의 나에게 왔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때의 난 내 드라이어드들이 합을 맞춰 전투를 할 상황을 빈번하게 접했다.
지금의 난 파티가 너무 안정적이라 그녀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불을 상대할 때 서툴렀던 초기의 데이지가 나중엔 그저 단검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잡을 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를, 마거리트 역시 가질 수 있었을 거다.
내 한숨에 마거리트는 숫제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울상이 되었다.
“마거리트, 바곳에게 무슨 힘을 썼어?”
내가 큰소리로 혼낼 것을 기대하기라도 한 건지, 옆에서 듣고 있던 엘더가 한쪽 눈썹을 삐죽 올렸다.
“난… 최고의 공격을 할 수 있을 거라 예언했어…. 나 때문에 내 진리가 난처하게 됐다면, 다시는 그런 예언을 하지 않을게!”
마거리트가 책을 펼치더니 어느 한 페이지를 북 찢어 냈다. 그 위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무기를 그렇게 다뤄도 돼? 잠깐 줘 봐.”
마거리트는 결국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내게 찢어 낸 페이지를 넘겼다. 데이지가 안타깝단 얼굴로 마거리트를 바라보았다.
종이엔 금빛으로 반짝이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드루이드 제이의 각시투구꽃은 지금 바로 최고의 공격을 할 수 있게 된다.